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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도심에 미술관이 없는 나라

윤범모

도심에 미술관이 없는 나라_기무사 터와 덕수궁 동관에 미술관을!


이번 여름 워싱턴에서 며칠을 보냈다. 아메리카 땅을 몇 바퀴 돌아보았지만 워싱턴처럼 즐겨 찾게하는 도시도 그렇게 많은 것 같지 않다. 도시의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는 내셔널 몰, 거기에서 산책하는 기분은 상쾌하다. 이유는 단 한 가지, 바로 내셔널 몰은 뮤지엄 거리이기 때문이다. 스미소니언 이름 아래 다양한 뮤지엄은 그야말로 관광객 천지이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 그 한복판은 바로 미술관의 거리이다. 아니 미술관의 옆에 행정부나 입법부 같은 나라의 심장도 함께 있다. 하지만 이들 권력의 전당은 미술관을 위호하면서 옆에 서 있다. 그야말로 미술관의 나라인 것이다. 이렇듯 미술관이 수도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나라, 서울에서 온 나는 기가죽을 수 밖에 없다. 워싱턴을 비롯 로마, 파리, 런던, 뉴욕, 도쿄, 베이징 그리고 평양. 한 나라를 대표하는 이들 도시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도시의 한복판에 미술관이 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아아, 미술관이 도심 속에서 존재하다니! 국제도시로서의 이들 도시는 괜히 명성을 떨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 도시는 마치 미술관을 중심에 모셔놓고 그 나머지 시설을 부차적으로 연장시켰다는 느낌을 줄 정도이다. 때문에 이들 도시를 방문하는 관광객은 무엇보다 미술관부터 찾게 마련이다. 이들 도시에서의 미술관 방문은 하나의 통과의례에 해당하기도 한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이렇듯 ‘국제도시로서의 당연한 일’을 애써 외면하는 도시가 있다. 바로 서울이다. 말로만 국제도시, 그것도 세계의 10대 도시 운운하며 바람만 잡고 있는 도시. 서울의 도심에는 그럴듯한 대표적 미술관이 없다. 부끄러워서 외국 친구를 오라고 부를 자신도 없는 도시다. 어쩌다 외국인을 태우고 과천까지 안내하면서 나는 마치 지옥으로 가는 것처럼 황당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국립현대미술관은 서울이 아니라 경기도에 위치하고 있다. 도심은커녕 강 건너고 산을 넘어야 하는 변두리에서 미술관은 목하 유배중이다. 서울은, 우리의 서울은, 과연 정상적인가. 


기무사자리에 미술관 건립

뜨거운 여름에 미술계를 더욱 뜨겁게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미술계의 오랜 숙원사업인 도심 속의 미술관 건립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아, 어쩌다 이런 일이! 정말 안타깝고 답답한 일이다. 경복궁 건너편의 기무사 자리에 미술관 건립이라는 염원이 상처를 입고 있는 중이다. 더불어 덕수궁 석조전 동관의 미술관 활용문제에도 먹구름이 끼고 있다. 불행한 일이다. 서울 도심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공간마저 미술관 세우기에 사형선고를 내리다니, 정말 서울은 어디로 가고 싶은가. 살아 있는 역사의 도시이기를 포기하고 싶은가. 한 나라의 대표 도시, 그 대표도 시를 대표하는 미술관, 과연 서울은 대한민국의 대표도시인가. 국제도시이기를 자임하는가. 기무사 터는 오래전부터 미술인의 열망에 의해 미술관 공간으로 점지했던 곳이다. 이 지역은 인사동으로부터 가회동과 사간동 그리고 삼청동으로 이어지는 미술의 거리이기 때문이다. 랜드 마크가 부재한 서울에 아트 타운은 그야말로 한국의 자존심과 연결되는 부분이기도하다. 기무사 터에 미술관만 들어서면 단절된 이 거리를 예술과 문화의 거리로, 서울의 상징적 마을로, 우뚝 솟아오를 명품 서울의 심장으로 부상될 곳이다. 그런데 이같은 미술계의 염원에 찬물을 끼얹는 자 누구인가. 당국은‘기무사에 미술관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주창하는 절규를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덕수궁에 국립근대미술관을

덕수궁 석조전 동관의 미술관 활용문제에 대하여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위원회는 근래 동관의 미술관 활용문제에 대하여 제동을 걸었다. 과천 유배중인 국립현대미술관이 겨우 덕수궁 서관을 분관으로 활용을 해오던 차였다. 공간의 협소함으로 서관에 이어 동관의 미술관 활용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사적분과위원회의 의결은 역시 미술계의 열망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들 동관과 서관을 포함한 국립근대미술관 건립을 앙망하던 미술계의 바람은 초입부터 망가지는 신세가 되었다. 미술관은 어디로 가야하는가. 문화국가라는 한국에서 이렇듯 미술문화가 천대를 받고 있다면, 미술은 어디로 가야한단 말인가. 대다수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경제논리로 풀어보자. 기초예술과 문화의 홀대 아래 과연 창의성있는 경제활동이 가능할까. 영화 한 편이 자동차 수 백, 수 천대 이상의 수출 효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싶은가. 루브르미술관이 연간 벌어들이는 엄청난 수입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미술과 경제의 협력관계에서 벌어지는 부가가치, 이를 외면하는 나라는 선진국 대열에 끼기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 없다. 기무사 자리에 미술관을 세우자. 덕수궁 서관에 이어 동관에도 미술관 간판을 달자. 그것이 수도 서울의 최소한의 체면이다.



윤범모(1950- ) 동국대 미술사학 박사. 예술의전당 미술부장, 우리미술문화연구소 소장, 호암갤러리 큐레이터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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