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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원로들의 반란

윤진섭

어느 글에선가 ‘노경은 아름답다’는 구절을 읽은 적이 있다. 사람은 늙어가면서 향기를 풍겨야 성공한 인생이랄 수 있는데, 그런 사람은 그윽한 품위와 함께 얼굴에 관록이 보이게 마련이다. 어떤 분야에서 한 평생 외길을 걸어 일가를 이룬다는 것은 말이 쉽지 그 과정은 결코 녹록치 만은 않았을 것이다. 미술계의 원로작가 중에 이승택과 김구림이 있다. 두 분 모두 전위미술에 심취, 일가를 이루었다. 이승택은 작년에 성곡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가졌고, 김구림은 서울시립미술관 회고전을 앞두고 있다.



김구림은 작년에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이 기획한 ‘A Bigger Splash:Performance after Painting’란 전시에 한국 작가로는 이강소와 함께 초대를 받았다. 잭슨 폴락, 데이빗 호크니, 니키 드 생팔, 이브 클랭 등 세계적인 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이 전시에 그는 1969년에 제작한 바디 페인팅 사진 3점을 출품하였다. 이번에 열리는 서울시립미술관 전시에서 그가 어떤 작품을 보여줄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이승택은 백남준미술상을 수상하면서 전위작가로서의 확고한 위치를 굳힌 바 있다. 그는『Flash Art』2013년 1, 2월 호에서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와 함께 대담을 나누었다. 또한 미국에서 발행되는『Art & Asia Pacific』의 표지작가로 등장하여 그의 작품세계가 여러 면에 걸쳐 특집으로 상세히 소개되기도 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소셜 네트워킹(SNS)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세계는 나의 손 안에 있고, 새로운 창조가 나의 손끝에서 이루지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작가로 출세하기 위해 많은 돈을 들여 해외 유학을 갔지만, 이제는 내가 어디에 있건 위치가 파악이 되기 때문에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어디서 구했는지 해외의 유명 큐레이터들이 원하는 작가들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갖고 도움을 청하는 세상이다. 비평가와 전시기획자로서 나는 그런 경험을 최근 들어서 더욱 자주 하고 있다. 이승택과 김구림은 다같이 ‘A.G’ 그룹 출신이다. 1969년에 창립하여 ‘S.T’ 그룹과 함께 한국 현대미술사에 전위단체로서 확고한 위상을 확립한 이 그룹은 동명의 기관지를 발행하는 등 전위예술에 대한 이론 진작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이일, 오광수, 김인환 등 미술평론가를 회원으로 영입한 일도 획기적이다. 이 전설적인 그룹의 출신 작가들은 단 한 명도 낙오하지 않고 지금도 화단의 원로로 활동하고 있다. 

 

아카이브가 원로들의 역사를 깨운다

이승택과 김구림은 50년대에 작품 활동을 시작, 어언 반세기를 맞고 있다. 그 긴 세월 동안 두 분은 한 눈 팔지 않고 외길 인생을 걸어 이제야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작가가 된 것이다. 그 고난의 역정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이 두 분의 작가로서의 삶은 후배들에게 귀감이 된다는 점에서 되새겨 볼 만 하다. 특히 상업주의가 만연된 요즈음 화단의 풍경에 견주어 볼 때 이 분들의 전위적 삶과 예술은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진정한 예술가의 삶이라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지, 예술 행위란 어떠해야 할지 웅변하고 있다. 특히 고난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전위와 실험이라는 자신의 예술세계를 견지한 일은 백 권의 교과서보다 더 값어치가 있다. 1960년대 후반 이후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 속에서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 초기의 실험을 등지고 현실과 타협했던가. 어느 작가는 붓을 꺾고 어느 작가는 잘 팔리는 그림으로 돌아섰다. 그렇게 해서 생활은 풍족해졌을지 모르지만 그들은 그 대가로 예술을 버렸던 것이다. 


역사는 정직하게 기록한다. 최근 들어서 빈번히 열리는 아카이브 전시는 살아온 역사에 대한 기록이다. 아카이브란 개념조차 없었던 시절에 혜안을 가지고 자료를 잘 챙긴 작가는 그 자료로 인해 해묵은 역사 속에서 다시 걸어 나온다. 그렇게 해서 미술사는 재해석되고 우리의 문화는 더욱 풍부해진다. 나는 내가 활동을 시작한 70년대 중반 이후의 적지 않은 분량의 자료를 지금도 잘 보관하고 있다. 그것들은 나의 삶의 기록이자 분신, 그리고 매우 값진 자산이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작가들이나 미술관계자들 중에서 그렇지 않은 분들은 지금부터라도 자료를 잘 챙길 일이다. 시작이 곧 절반이다. 

 


- 윤진섭(1955- ) 웨스턴시드니대 철학 박사. 월간미술대상 전시기획부문 대상 수상. 광주비엔날레 큐레이터, 한국미술평론가협회장,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전시총감독 역임. 현 호남대 미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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