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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래: 캐리어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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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래: 캐리어즈
2020.07.23-09.13
아트선재센터 3층

“‘캐리어(carrier)’는 사용할 수 있고 무엇인가를 담아낼 수도 있는 어떤 것이다. ‘캐리어’는 임신한 여자를 의미하기도 하고 무엇인가를 옮기는 수단을 의미하며,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사람일 수 있고, 혈관, 용기(容器), 교통 수단을 지시할 수 있다. 동사 형태 ‘캐리(carry)’는, 아이를 ‘가졌다’, 병이 ‘있다’, 액체나 전자가 ‘흐른다’, 무거운 것을 ‘옮긴다’, 어떤 아이디어를 ‘시도한다’라는 것을 모두 의미한다.”
 
이미래는 간단한 원리로 작동하는 기계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재료를 함께 다루며 조각과 설치 작업을 해왔다. 물질을 손으로 만지며 작업하는 것이 중요한 조각가인 이미래는 즉물적인 단서에 의존하여 세계를 인지한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자신이 만지는 물질과 자신의 관계를 구체화하기 위해 ‘캐리어즈(carriers)’로서의 신체를 상상한다. 이미래에게 ‘캐리어즈’는 인간의 신체의 상태를 설명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가 만든 조각을 통칭할 수도 있는 개념이나 다름없다.
 
이미래의 ‘캐리어즈’는 서브컬쳐 장르인 ‘보어(vore)’라는 개념을 통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 ‘보어’는 ‘보레어필리아(vorarephilia)’의 줄임말로, 살아있는 사람이나 생물을 산 채로 집어 삼키거나 또는 먹히는 행위에 대한 페티시즘을 일컫는다. ‘보어’는 관념적인 측면에서 보면 집어 삼켜져서 그 대상의 속 안에 있거나, 혹은 반대로 대상을 신체의 안으로 넣음으로써 대상에 대한 ‘거리’라는 개념 자체를 무화하는 것이다. 이 개념을 극단으로 가지고 가면 엄마의 자궁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마저 상상하게 되는데, 이러한 조건에서 ‘보어’라는 개념은 오히려 무성(無性)적이고 추상적인 상태가 되며, 궁극적으로 가장 원초적인 단계에서의 인간 조건을 환기한다.
 
이 개념은 이번 전시 «캐리어즈»에서 작가의 조각적인 언어를 입고 비유적으로 구현된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 소개되는 신작 <캐리어즈>(2020)는 호스 펌프를 사용한 대형 키네틱 조각 작품으로 동물의 소화 기관과 닮아 있다. 이 설치 조각은 점액질의 물질을 빨아들이고, 운반하고, 추출하는 운동을 반복하는데, 점액물질이 조각의 구조를 따라 이동하는 과정에서 기계의 움직임에 맞추어 소리가 빗겨 나온다. 어떤 살아있는 것이 좁은 틈을 뚫고 겉으로 불거져 나오는 상황을 상상하게 하는 이 소리는 물질의 운동이 만들어 낸 또 다른 형태의 에너지다. 그의 조각은 산 육체를 비유하기 때문에 움직임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며, 기계는 그가 만진 물질을 구동하고 이를 반복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전시장에 놓인 다른 여러 조각들은 설치 작품 <캐리어즈>와 대조적인 태도를 가지고 존재한다. <캐리어즈를 위한 콘크리트 벤치>(2020)는 관람객이 앉아서 전시를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든 콘크리트 캐스팅 조각이다. 이 조각은 <캐리어즈>의 움직임에 비해 에너지의 가동 범위가 미약한 <누워있는 모양>(2020) 조각들과 함께 바닥에 낮고 길게 뉘어 있다. 이들은 벽에 투사된 영상 <잠자는 엄마>(2020)를 볼 때 그 놓임새가 자연스럽게 겹친다. 다른 어떤 신체적 움직임이나 자세에 비해 ‘누운’ 상태는 아주 미미한 에너지만을 필요로 한다. 또한 죽은 상태와는 달리 ‘누워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아직 결론이 없는, 공격에 취약한 상태의 지속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반대로 이러한 취약함은 살아있음에 대한 전제 조건임을 생각하게 한다. 작가는 운동하거나, 혹은 누워있는 형태의 조각을 동시에 병치하면서, 인간이 존재하는 상태의 양가성을 조각 언어의 변증법을 통해 제시한다.
 
어떤 부족에서는 샤먼이 다른 사람의 감정을 매개하기 위해 아주 작은 자극에도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샤먼의 피부를 벗기는 의식을 행한다고 한다. 피부는 신체 내부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외부의 세계를 감각하게 하는 촉수로, 신체 내부를 감싼 피부를 없앤다는 것은 세계와 신체 사이의 거리를 한 꺼풀 벗겨내 외부를 인지하는데 있어 거리와 오차를 좁힌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미래는 구전으로 알려진 이 이야기에서 전복적인 힘에 대한 실마리를 얻는다. 이미래에게 조각은 피부가 벗겨진 샤먼의 상태처럼 감각의 촉수를 예민하게 세우는 영매(carriers)로서 자신이 아닌 모든 것을 감각하고 그에 대한 생각을 촉발하게 하는 구심점이 된다. 이것은 대상에 대한 지적인 접근이나 해석보다는 즉물적이고 직관적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작가의 태도이기도 하다. 전시 «캐리어즈»는 문자 그대로 혈액, 태아, 병균, 영양소 등의 신체 내부를 이동하는 여러 물질의 원초적인 움직임을 환유하면서, 가장 내밀하고 신체적인 감각의 자리에서 세계와 포개어지는 경험을 제안한다.
 
 
작가 소개
이미래(b.1988)는 물질과 만드는 행위를 기반으로 하는 그의 작업은 일차적으로 입체 매체가 지닌 물질성과 운동성에 관심을 두고 욕망, 감상성, 생동력 및 박력 등 정동과 에너지에 대해 탐구한다. 개인전 «낭만쟁취»(인사미술공간) 및 그룹전 «무빙/이미지»(아르코미술관), 2016 미디어시티 서울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서울시립미술관), 제15회 리옹비엔날레 «Where Water Comes Together With Other Water» 등 다수의 기획전에 참여했다.
 
기획 전효경(아트선재센터 큐레이터)
주최 아트선재센터
후원 문화체육관광부,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참여작가: 이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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