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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 : 픽셀로 부르는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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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의 공간
 

어떤 이름을 크게, 아주 크게 부르고 싶었는데, 내게 남은 모든 힘을 다해 부르고 싶었고 그럴 준비와 각오가 다 되었는데, 입안에 이름이 터질 듯 가득 차 이제 부르기만 하면 되었는데, 그것이 더는 없는 이름이라서, 부르면 누구도 돌아보지 않을 이름이라서 부르지 못하는 이름이 있었다.
부르지 못한 이름은 꿈에서 불렀다. 심장이 터지도록 세차게 그 이름을 불렀다. 부르지 못해 암전돼 버렸던 그 무수한 순간을 모조리 되돌리겠다는 듯이 부르고 또 불렀다. 내가 부르는 이름은 점점 기쁨의 함성이 되었다. 이름을 부르는 순간만큼은 이름을 부를 수 있던 순간의 내가 되었기 때문에. 이름을 부르면 돌아보던 누군가가 존재하던 시간으로, 그 시간의 공간으로 돌아갈 수 있었기 때문에. 꿈이란 걸 알았지만 꿈에서라도 더 강렬히 그 공간에 머물기 위해 입이 부서져라 이름을 불렀다. 꿈에서라도 반드시 그 공간에 머물고자, 부르고 또 불렀다. 아무리 불러도 입안은 새롭게 가득 차올랐다. 이름을 부르겠다는 욕망으로. 이름을 부르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그 호명이 내게 가능케 하는 공간에 머물겠다는, 머물고야 말겠다는 욕망과 의지. 비록 현실의 공간은 아니지만. 그러나 현실이란 무엇인가. 내가 살고 있는 곳이 그토록 생생하고 나의 감각과 인식을 깨우친다면 그곳이 현실은 아닌가.

그가 이름을 부르는 장면은 여러 번 목격하였다. 아니, 그를 만날 때마다 사실 그는 이름을 부르고 있었고 그것도 아주 강하게 부르고 있었다. 그가 부르는 이름은 아주 많았다. 고등학교 때까지 거쳤던 수많은 학급 아이들의 이름과 선생님들의 이름, 성인이 되어 만났거나 만나오고 있는 사람들의 이름, 그동안 가보았거나 책에서 접한 도시와 여행지의 이름, 이십 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그의 기억에 각인된, 무수한 순간과 기쁨과 슬픔의 이름… 그 이름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부르기 위한 문서화 작업을 병행하며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이름을 불렀다. 이름을 부르는 것만이 유일하게 해야 할 일이라는 듯 쉬지 않고 불렀다. 잘 들리지는 않았다. 들리더라도 띄엄띄엄 가까스로 귀에 들어오는 미약한 소리였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강하게 이름을 부르고 있었고 어느 순간 거의 폭발적으로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그가 부르는 무수한 이름은 시각적 형상으로 발화되었다. 그 형상은 구체적인 인물일 때도 있었고, 구체적인 무언가가 뭉개지거나 해체된 추상일 때도 있었다.
눈부신 색채와 에너지를 발산하며 율동하는 픽셀의 패턴일 때도 있었고, 복잡하게 얽힌 채 정지한 것 같은 두껍고 어두운 선들의 교차일 때도 있었다. 그가 부르는 이름은 아주 많았으므로 이미지는 끝이 없었다. 아무리 불러도 입안은 새롭게 가득 차올라, 매번 새롭게 부르는 것이 이름이었으므로 그의 이미지는 끝없이 변주되었다. 노트 수십 권에 기록된 무수한 이름들. 그것을 부른다는 건 또한 하나의 강력한 이름을 부르는 것과 같았다. 아무리 불러도 닿을 수 없는 하나의 이름. 그러나 닿기 위해 불러야 하는 하나의 이름.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라면 응당 그 이름을 필요로 했고,
그는 그 이름에 정말 이름을 지어주었다. 남영현. 그렇다. 이름은 생성된 것이다. 그리고 생성되었으므로, 당연히 그것을 불렀다. 그가 이름을 부를 수 있는 다양한 방식으로 남영현은 발화되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발화는 진행 중이다. 그와 비슷한 또래에 미술작가이자 전시기획자, 동시에 그의 아내인 남영현은 그와의 커플전시회를 기획하기도 하였는데 그가 기록한, 그녀의 한 장짜리 전시기획서가 본 전시의 모티브가 되었던 것이다. 즉, 그가 부르는 남영현이 이 전시를 불러왔다.

이름을 부르며 그는 어디까지 갈까.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무한히 팽창하는 그의 창작세계를 마주할 때마다 이름을 부르고자 하는 욕망과 의지뿐 아니라 또 하나의 강력한 원동력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용기. 현실에서, 가상의 이름을 부르며 가상의 공간에 강렬히 머물면서 그곳을 자신의 현실로 만들어내는 용기. 이름을 부르며 그는 스스로 자신의 우주를 생성하고, 다른 어디보다 생생하게 그곳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또는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다른 무엇도 아닌 이름을 붙잡고, 그는 생을 살아내고 있다.



김효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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