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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제현 :텍스트스케이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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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출된 몸 영상이 전시장 전체를 뒤덮었다. 달콤한 초콜릿의 등장, 그리고 몸을 핥는 행위가 에로틱한 클리셰cliché를 연출한다. 그런데 얼굴이나 몸의 일부를 상대가 혀로 핥으면서 초콜릿 단어가 쓰여진다. 혀로 핥으면 몸에 묻은 초콜릿이 지워져야 하는데 도리어 글씨가 써지는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다. 세 파트로 나뉘어진 신제현의 영상작품은 몸과 행위의 노골적gross 표현으로 인해 자극적이긴 하지만 휴먼스케일을 넘어서는 규모와 함께 초콜릿으로 쓰여진 글씨와 그 의미에 주목하게 만들고, 특히 리버스(Reverse, 역재생) 효과를 통해 사고의 부조화, 혼란스러움을 전달한다.

신제현은 일상 속에서 알거나 믿는 것과 보고 경험하게 되는 것의 차이로 인해 인지부조화가 일어나는 지점을 탐구하고, 그것을 유희적인 방법으로 비틀어 사건을 일으키며 부조화를 더욱 가속화시키는 작업을 해왔다. 이번 전시 《텍스트스케이프 Textscape》에서 그는 에로티시즘적 행위와 글을 쓰는 행위, 즉 “발화” 사이의 인지부조화에 집중한다. 그리고 리버스 방식과 함께 다양한 방식으로 반복되는 행위를 통해 가속화된 부조화라는 사건으로 전환시켜 인지적 공백(Attentional Blindness)을 일으킨다.

“글자를 쓴다.” “초콜릿을 핥는다.” “글자를 지운다.” “서로의 신체를 핥는다.” 이렇게 따로 떼어 놓고 보면 자명한 행위와 문장들이 영상 속에서 합쳐져 마치 전혀 다른 것 같은, 새로운 현상과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장면을 촬영한 후 리버스함으로써 초콜릿으로 만든 글자를 혀로 핥아 지우는 행위는 서로의 몸에 글자를 새기는 행위로 변모한다. 문신이나 낙인이라고 부르기에는 연약하지만, 혀로 핥아 얼룩진 초콜릿 흔적이 리버스를 통해 선명히 읽을 수 있는 글자로 몸 위에 점점 드러나는 과정은 분명 다소 그로테스크한 지점을 건드린다. 그리고 작가는 혀가 닿는 몸의 일부에서 텍스트가 발생하는 행위의 패턴을 통해 몸을 유기적인 것으로 사고하는 동양적 사유방식과는 달리 객관화(오브제화, 분절화, 텍스트화, 구조화)하여 정의하는 서구 모더니스트적인 사고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이렇게 신제현은 신체성을 시각적으로 전면에 드러내면서도 텍스트를 함께 사용하는 전략을 이용한다. 이를 통하여 그 나름대로의 성적인 것으로부터, 또는 언어, 문자화로 이루어지는 모든 오브제화, 분절화, 구조화로부터의 탈구속을 도모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떤 깨달음으로 인한 것이라기보다는 인지 부조화의 심화, 가속화를 통한 일종의 해방이다. 이를 도와주는 것이 영상 전체에 사용된 리버스 기법으로, 이로 인해 시각적으로 혼란스러워진 기호들이 모여 뇌에서 지속적으로 인지적 공백을 일으킨다. 이를 통하여 비이성과 이성,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의 충돌, 그리고 시간차를 둔 그들 간의 연속적인 전복을 일으키고자 한다. 이는 그의 이전 작업들에서도 볼 수 있는 포르노, 혹은 그것을 직접적으로 연상시키게 하는 소재들에 대한 관심의 연장선 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신제현_발화하는 단어들 I_싱글채널 비디오, 사운드_2019

그가 2007년부터 진행했던 <3PM(Personal Porno Production Manual)>은 제목으로 알 수 있듯 프로젝트 참여자의 개인 맞춤형 포르노를 제작해주는 프로젝트였다. 포르노는 여성주의 운동에 있어서도 첨예한 대립지점을 만드는 문제점 중 하나였다. 반-포르노 여성주의적 입장은 포르노의 생산 과정에 있어서의 문제에 집중하며, 그 구조가 여성에 대한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 강제를 수반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한다. 기존의 포르노 생산 구조가 남성중심주의적이기 때문에 이러한 착취가 일어난다는 것인데, 한편 표현 매체로서 포르노의 형태를 포용하는 관점에서는 포르노도 여성주의적인 표현이 가능한 하나의 매체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신제현의 <3PM>에서 나타나는 포르노에 대한 관점도 이와 유사하다. <3PM>이 기존 포르노 제작 방식과 달리 확연하게 가졌던 차별점은 여성 내담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맞춤형 포르노를 제작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기존 남성 중심 구조의 획일화된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왜곡된 성 관념의 포르노가 아닌, 여성 고객 개개인에 따른 더 다원적인 기제를 가진 포르노를 생산하는 구조가 성립된다.
과거 작업들은 포르노그래피, 대마초, 아브젝트, 보험사기, 다자연애 등 자극적인 소재를 활용하면서도 표현 방법에 있어서는 신체를 시각화한 작업이 없었다. … 하지만 이번 작업은 오히려 시각적으로 신체적이지만 내용적으로는 개념적인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작가노트 中)

이전까지의 작업에서는 신체성이 작품에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경우는 적었던 반면 이번 작품들에서는 그것을 오히려 제일 앞쪽에 내세운다. 가장 먼저 핥는다는 행위와 벗은 몸이라는 신체성이 보는 사람을 자극한다. 그 다음으로는 각자 시간 차이를 가지고 퍼포머들이 혀로 글자를 쓰는(혹은 먹거나, 지우는) 행동을 함으로써 신체에 새겨지는 텍스트의 의미와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생겨나는 개념들에 대해 떠올리게 된다. 신제현은 이 개념들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세 가지 영상 작품으로 각각 보여준다.

<발화하는 단어들 I>에서는 흔히 연인, 혹은 친구 관계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로 비유되는 소통 불가능성과 애무를 비롯한 감각적 소통 방법을 보여준다. 상대방에게 전하고자 하는 텍스트는 상대방이 신체에서 스스로 직접 확인할 수 없는 부분인 얼굴에 쓰여진다.

초콜릿을 사용하는 것에도 특별한 이유가 있는데, 이는 먹어도 안전하고 다루기가 비교적 쉬운 재료라는 특성도 있지만 중요한 의미는 따로 존재한다. <발화하는 단어들 II>는 영상이 상영되고 있는 화면 아래에 물이 든 수조를 놓은 영상 설치 작품인데, 영상이 상하 반전되어있기 때문에 관객은 물에 반사된 영상을 보게 된다. 이는 언어분석학에서 말하는 언어는 세계의 거울이라는 은유이다. 그런데 그 세계는 한 편의 아이들은 달콤함을 느끼는 동안 다른 한 편의 아이들은 카카오 농장에서 학대를 당하는 등 모순으로 가득 차있다. 초콜릿은 그런 모순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물질이다.

<발화하는 단어들 III>에서 쓰인 단어들은 얼핏 보면 문장을 이루는 듯하지만 그 연결이나 구조가 애매모호하다.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 보면 한 글자씩 새겨질 때마다 울리는 소리로 인해 그 단어들이 음계를 나타내는 7개의 알파벳(C-D-E-F-G-A-B)만으로 만들어져 있는 “음계시”라는 점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알파벳을 제한하는 것 만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단어와 문장이 굉장히 제한적이게 되고, 이같은 비선형 언어는 비논리적인 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게 된다. 여기에서 언어는 음계와 단어를 결합한 유희 행위와 비선형 구조를 동시에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들에 집중하려고 할수록 그 위로 시각적, 청각적 자극에 의한 지속적인 방해가 일어난다. 또한 텍스트로 나타나는 개념들 역시 비 과학, 비논리, 부조리 등으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결국 어느 한 곳에 집중하려고 하여도 이성과 비이성간, 지속적인 인지공백이 생겨난다. 이렇게 인지공백을 연속적으로 만들어내는 구조를 통해, 작가는 인지 체계와 감각적 경험 사이의 불균형과 간극을 메울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아니라 더 떨어트리라고 호소하는 듯하다.

전시 제목인 “텍스트스케이프(Textscape)”는 “텍스트(Text)”와 “풍경(Landscape)”의 합성어로, 다음과 같은 의미들로 작용한다. 크게 스크리닝 된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신체는 휴먼스케일을 아득히 넘어가는 마치 풍경과 같은 형상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먹는 행위를 통해서 오히려 쓰여지는 글자들에 대해 신제현은 말하기를 넘어서는 행위로써의 ‘발화’ 개념을 내세운다. 결론적으로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은 신체의 풍경이지만 그 신체는 발화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먹는 “행위”를 리버스시켜 입에서부터 단어가 나오게 하는 것은 발화란 곧 단순한 말하기 이상의 하나의 행위라는 것의 은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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