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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재 : 짓고 쓰고 그리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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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재_icon_Kim Whanki acrylic, crystal on canvas, 41x32cm, 2018





전시글

< CRYSTAL SEED >

 

가회동에서 성북동으로 이전한 《60화랑》에서는 두 번째 전시로 이동재 작가의 『짓고 쓰고 그리다』전을 준비하였다. 이동재 작가는 지난 10월 청와대 여민관 복도에 걸린 김구 선생의 쌀 초상인 「아이콘_김구(2014)」 작품으로 회자되기도 하였는데, 알려진 바와 같이 쌀알 같은 작은 곡식이나 레진으로 제작한 알파벳을 재료로 초상이나 영화의 장면 등 우리에게 친숙하고 유명한 이미지들을 형상화 하여 작품으로 표현해 왔다.

 

이러한 재료들의 조합을 통해 크기나 밀도의 미세한 차이만으로 누가 봐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초상을 제작한다는 점에 있어 단편적으로 그가 형상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비춰질 수도 있다. 그러나 녹두로 녹두장군 전봉준의 이미지를 재현 한다던가 미스터 빈의 초상을 콩bean으로 제작했다는 사실만 보아도 그는 이미 알파벳이라는 재료로서의 특성과 표현된 텍스트가 가진 의미로서의 특성을 유희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증명이나 하듯, 2017년 개최한 개인전에서 그는 독해 가능한 텍스트를 캔버스에 나열하는 작업으로 『Text, Textured』라는 시리즈를 발표하면서 이전까지의 작품과는 다른 느낌으로 과감히 형상을 지우며 텍스트 자체를 부각하여 화면의 주인공으로 끌어내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성북동으로 이전한 《60화랑》이 기획하는 지역특정적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 이동재 작가는 마침 2년 전 성북동으로 이주한 후 진행해온 소품들을 보여주었는데, 수많은 문인과 예인을 배출한 성북동을 거닐며 그들의 텍스트와 자신의 텍스트의 접점을 통해 소담한 재미를 표현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크리스탈이라는 반짝이는 재료와 은은한 배경색이 칠해진 작은 캔버스 위에 전작보다 단순화 되었지만 인물의 특징이 그대로 드러나는 한용운, 이태준, 김환기, 조지훈, 전형필 다섯 점의 초상과, 그들과 연계된 시들을 운율만으로 표현하여 작업하였다. 마치 일제강점기라는 시기적 불운을 통해 자신의 뜻을 모두 이루지 못한 성북동의 대가들이 크리스탈 씨앗을 통해 다시 피어나는 듯 화사하여 다가올 성북동의 봄 향기가 물씬 풍긴다.


이외에도 그는 『Text, Textured』 전시에서 발표한 단색화에 가까운 텍스트 시리즈와 연계선상에 있는 소품들, 그리고 그 전신인 2013년 미발표 작품으로 원색 톤의 자극적인 컬러에 ART, ARTWORK 등의 사전적 내용을 담은 텍스트를 나열하여 표현한 작업들을 준비하였다.


작품 수가 많지는 않지만 컬러와 재료의 대비만으로도 전시는 충분히 인상적이다. 시선을 잡아끄는 강렬한 컬러의 큰 화면에 조밀하게 돋아나온 듯이 느껴지는 레진의 텍스트들과, 은은한 컬러에 조명을 받아 다양한 형태로 반짝이는 크리스탈 입자들은 시각적인 자극을 선사한다.


하지만 이 작은 전시장에서 더 재미있게 읽히는 것은 텍스트와 컨텍스트의 대비다. 운율만으로도 짐작이 가능한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를 통해 읽히는 텍스트와, 엄연히 내용이 담긴 텍스트가 존재하지만 읽으려는 시도만으로도 난독증에 빠질 것만 같은 영문자들이 내비치는 컨텍스트. 마치 컨텍스트 적인 텍스트와 텍스트적인 컨텍스트의 대비 같지 않은가.



untitled  acrylic, resin object on canvas, 113.7x91cm, 2013



그는 작가노트를 통해 다산茶山과 제자 황상黃裳의 「제황상유인첩題黃裳幽人帖」 이야기를 꺼내며 작가에게 있어 환경과 일상의 모습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이야기한다. 작가 자신이 거니는 장소를 거쳐간 예인과 문인들이 짓고, 쓰고, 그려나간 예술혼을 생각했다고 한다. 과거 예인이라면 갖추어야 할 세가지 덕목으로 여겼던 시詩·서書·화畵가 연상되면서 동시에 그가 바라보는 ‘작作’의 의미가 드러나는 글이다. 이를 그의 작업과 연결해 보자면, 작가가 작업을 하는데 있어 환경이란 중요한 텍스트를 위해 존재하는 컨텍스트와 같은 역할이 아닐까.


이동재 작가의 크리스탈 「님의 침묵」을 ‘읽으’며 2003년 이동재 작가가 첫 번째 개인전에서 발표했던 「캔버스에 검은쌀」 작품을 떠올린다. 그 작품들은 마치 멀리서 본 소설의 페이지들을 캔버스에 옮겨놓은 듯한 이미지였고 「콩」, 「팥」 등의 문자를 직접적으로 표현한 텍스트 작품과 초상의 형상이 드러난 쌀그림 사이에서 작가의 속내를 살짝 보여주듯 은밀한 느낌을 전했는데, 무려 1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의 시선이 텍스트와 컨텍스트 사이를 비스듬히 바라보고 있었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가 앞으로 이곳 성북동에서 짓고 쓰고 그리며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텍스트와 은밀하게 전달하는 컨텍스트를 통한 끊임없는 시도와 실험이 그의 첫 번째 개인전 제목처럼 『씨앗』이 되어 어떤 형상과 재미로 자라날까 상상하게 되는 것, 그것이 앞으로 그가 보여줄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이다. 이와 함께 이제 막 성북동에 자리를 잡고 있는 《60화랑》도 작가의 ‘크리스탈 씨앗Crystal Seed’처럼 작지만 반짝이는 장소로 피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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