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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조각 Art is Public전

  • 전시분류

    단체

  • 전시기간

    2018-10-04 ~ 2018-12-20

  • 참여작가

    성동훈,강용면,엄혁용,박찬걸,한정무

  • 전시 장소

    익산예술의전당 미술관

  • 유/무료

    무료

  • 문의처

    063)859-3317,3312

  • 홈페이지

    http://arts.iksan.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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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예술의전당 미술관
2018 야외조각전 : 일상의 조각(Art is Public)


§ 전 시 명 : 2018 야외조각전 – 일상의 조각(Art is Public)
§ 전시기간 : 2018. 10. 04. ~ 12. 20.
§ 전시장소 : 익산예술의전당 야외광장
§ 참여작가 : 성동훈, 강용면, 엄혁용, 박찬걸, 한정무
§ 주최/주관 : 익산시, 익산예술의전당



익산예술의전당은 시민들에게 열린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매년 야외조각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다. 올 해로 두 번째를 맞이하는 야외조각전은 중견 작가들 간 작품 교류를 통해 지역 작가들의 예술 활동의 폭을 넓히고, 예술작품을 생활공간으로 끌어내 향유의 폭을 넓히기 위한 목적이다. 스틸, 알루미늄을 비롯하여 아크릴, 합성수지 등 각기 다른 재료와 기법을 사용하여 만들어진 13점의 작품은 현대적인 재료와 색감으로 조각예술의 조형미를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여러 사람들이 함께 공유하는 공간에서 조각의 역할에 대한 논의에서 시작되었으며, 확장된 공간에 전시되는 작품은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미적 경험을 제공한다.

참여 작가 강용면, 엄혁용, 성동훈, 박찬걸, 한정무는 표현기법, 작품 재료 등을 자유롭게 활용하여 내면의 작품세계를 표현한다. 우리 시대의 작가들이 얼마나 진지한 작가의식을 지니고 조형적 미감을 모색하며 작품을 만들어 내는지 살펴볼 수 있다.






§ 평론 §


예술 민주화를 성취하는 일상 속 예술, 일상의 공공조각

- 김성호(미술평론가, Kim, Sung-Ho)


0. 프롤로그


  익산예술의전당은 작년에 이어 올해 2회 째의 야외조각전을 마련했다. 올해의 주제는 ‘일상의 조각(Art is Public)'이다. 1910년대 다다(Dada)의 등장 이래 1960년대의 팝아트와 '누보레알리즘(Nouveau réalisme)'에 이르기까지 20세기 들어 일상은 예술 속에 깊숙이 들어온 지 오래되었다. 대개는 오브제가 미술이 되는 상황으로부터 촉발된 이러한 일상의 미술은 오늘날 회화, 조각, 설치에 이르기까지 구별 없이 사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공공의 장소로 침투해 들어옴으로써 용어의 의미를 보다 더 구체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야외조각전의 영문 제명 ’Art is Public'은 한글 제명 ‘일상의 조각’에 대한 의역이자 해설인 셈이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미술을 위한 미술’ 혹은 ‘미술 전문가를 위한 미술’에 국한되지 않고 ‘인간을 위한 미술’ 또는 ‘대중을 위한 미술’을 지향하고 있음을 명확히 한다.

  10월부터 12월까지 ‘일상의 조각전’이 펼쳐지는 전시 공간은 고층 아파트 단지와 공원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익산예술의전당 야외광장’이다. 미술 공간의 문턱을 넘어 도시인의 일상의 공간 속에 들어와 미술전을 개최함으로써 ‘일상의 예술화’를 꾀하는 한편, 구체적으로 ‘광장의 예술화’를 도모한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광장이란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게 거리에 만든 넓은 빈터”라는 물리적 공간을 지칭하면서도, “여러 사람이 뜻을 같이하여 만나거나 모일 수 있는 자리”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단어이기도 하다. 즉 공동의 관심사를 논하는 토론장이자 공동의 목표를 함의하고 성취하는 ‘공론장’인 것이다. 하버마스(Jurgen Habermas, 1929~ )가 논하는 ‘공론장(Public Sphere)이 ‘사회 구성원들이 직접 대면하는 가운데 소통하는 민주적 커뮤니케이션 체제’를 지칭하고 있음을 상기할 때, 이 전시의 공간인 야외광장은 조각품이 시민과 직접 만나 ‘광장의 예술화’를 도모하는 장이자 시민들로 하여금 ‘문화 민주화(Démocratisation culturelle)’ 또는 ‘예술 민주화(Démocratisation Artistique)'를 성취하게 만드는 ‘공공미술(Public Art)의 공론장’이 된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5인의 참여 작가들, 즉 한정무, 박찬걸, 성동훈, 강용면, 엄혁용의 출품작들이 견지하는 공공미술의 위상이 과연 무엇이며, 그것이 공론장 속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예술 민주화’를 성취해 나가고 있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1. 한정무(Han, Jung-Moo) - 순수 추상조각의 공공미술화


  한정무의 조각은 ‘순수 예술의 공공미술화’를 통해서 ‘예술 민주화’를 선보이는 한 모범이자, 전형적인 작품이다. 갤러리나 미술관에서 볼 수 있었던 순수 추상 조각의 몸체를 키우고 대중이 넘기를 어려워했던 미술관 문턱을 스스로 넘어서 일상의 공간으로 뛰쳐나왔기 때문이다. 특히 그의 출품작은 미술에 학습되지 않은 이들에게 이해하기 어려웠던 추상미술이라는 점에서, 대중으로 하여금 ‘예술을 위한 예술’의 미학에 한발 더 접근할 수 있게 만든다.   
그는 조각의 매체적 본질인 볼륨과 매스를 요철(凹凸)의 언어로 접근하는 관계의 미학을 선보인다. 그의 작품에서, 네거티브와 포지티브라는 대립하는 경계의 이면은 실상 축(軸, axis)의 관점에서 보면 같은 몸이다. 직선/곡선, 오목/볼록의 대립항은 가상의 축을 통한 회전이 구현될 때, 서로의 몸을 뒤섞어 한 몸이 된다. 따라서 오목과 볼록이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숨결, 마음결처럼 ‘결’이라는 이름으로 조화의 한 몸이 된다. 골은 ‘이미 골이자 동시에 마루’인 양가적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의 작업은 직사각형, 원형, 원통형의 상이한 구조들 혹은 대립적 존재가 ‘만남의 관계학’과 ‘축의 개념’을 통해서 결국 하나의 변형 또는 확장이 되는 미학을 이야기한다, 그것(곳)에는 음양 조화와 상생의 미학으로 넘쳐난다.
  보라! 절단된 두꺼운 철판들은 작가에 의해서 용접으로 몸을 녹여 서로를 만나면서 비로소 조각이 되고, 육중한 조각의 거친 피부는 세월에 의해서 벌겋게 녹이 슨 채, 꿈틀거리는 뜨거운 생명체가 되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보도블록 위에 놓인 이 작품들이 야외 공원의 일상적 풍경을 미술관으로 변주시키는 마법을 말이다.   


2. 박찬걸(Park, Chan-Girl) - 아이콘의 해체와 재구축


  박찬걸의 조각은 전통적인 아이콘을 해체, 재구축하는 방식으로 변형시켜 선보임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예술 민주화’를 체감케 한다. 즉 미술사 속 명작이나 대중에게 익히 알려진 유명  인사 등 ‘아이콘(Icon)’의 외형을 취하여 낯선 이미지로 재탄생시킴으로써 원작 혹은 아이콘에 대한 대중의 접근을 흥미로운 방식으로 허용하는 것이다. ‘아이콘’의 그리스 어원인 ‘에이콘(εικον, Eikon)’은 ‘진정한 유사성’이라는 뜻을 함유한다. 즉 외형적 유사성뿐 아니라 내면의 유사성을 동시에 지니는 용어인 셈이다.
박찬걸의 조각은 ‘에이콘’의 미학을 뿌리로 삼고 유럽의 가톨릭과 동방정교회가 숭배하던 성상(聖像)으로서의 ‘이콘(Icone)’을 출발점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성상’을 세속화하고 ‘명작’을 대중화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예수상>,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상>, <모세상>과 같은 성상 그리고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보티첼리의 <비너스>, 앵그르의 <샘> 과 같은 명작뿐 아니라 김연아, 마이클 잭슨과 같은 시대의 아이콘을 대중의 눈높이에 내려서게 하는 것이다. 
그는 조각으로 실현시킬 아이콘을 선택한 후, 해체와 재구축의 단계를 거쳐 지금, 여기에 그것을 되살려 낸다. ‘가상의 공간에 3D그래픽 이미지로 입체화시키는 단계- 그래픽 이미지를 100-200여 개의 가로선들로 해체하는 단계 - 해체의 설계도에 따라 실제의 스테인리스 스틸 판재를 레이저 커팅하는 단계 - 원래의 아이콘의 이미지로 조립과 용접을 거쳐 재구축하는 단계’가 그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수평’의 가로축으로 얇게 잘려진 스테인리스 스틸 판재를 재구축하는 과정에서 ‘수직’의 철제 봉의 굵기와 위치를 변주하여 이어 붙임으로써 마치 전통과 신화 속 아이콘이 지상에 내려오는 듯한 이미지를 구현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오늘의 시공간에 소환된 아이콘은 그의 투과체 조각 안에서 관객의 시점에 따른 시각의 변주와 옵티컬 효과를 거듭하는 새로운 시각장(field of view)을 형성하면서 끊임없이 재맥락화된다.


3. 성동훈(Sung, Dong-Hun) - 옛것의 패러디와 해학적 풍자 


  성동훈의 작품 〈동기호테 2018〉는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의 소설 제목이자 그 주인공인 돈키호테(Don Quixote)를 패러디함으로써 관객에게 ‘예술 민주화’에 다가서게 한다. 즉 ‘패러디에 대한 또 다른 패러디’를 통해서 대중에게 익숙한 ‘옛것’을 희화화시키고 ‘현재의 시대’를 통렬히 풍자함으로써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서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옛것의 외형이기보다 내용과 관계한다. 그의 작품에서 외래어 표기를 비트는 ‘동키호테’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주인공의 ‘이미지’, 즉 기계 부속품과 각종 철 오브제로 뒤섞인 형상도 그러하지만, 건강한 황소의 모습으로 둔갑한 ‘늙은 말 로시난테’의 ‘역전된 이미지’는 옛것의 외형보다 내용에 대한 패러디와 관계한다.
건축 재료라 할 수 있는 철근과 시멘트를 조각의 질료로 삼아 변형된 로시난테의 이미지와 철 오브제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돈키호테의 이미지는 소설 속 메시지만큼, 풍자적이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가 전투 중 해적의 포로 생활으로 고난에 처했던 자신의 자화상인 것처럼, 성동훈의 ‘동키호테’ 역시 험난한 시대를 예술가로 사는 자신의 자화상으로 출발한다. 또한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를 통해서 쏟아놓는 말들이 소설 밖 17세기의 독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처럼, 성동훈이 ‘동키호테’를 통해서 선보이는 메시지 역시 작품 밖 21세기를 살고 있는 오늘날의 관객을 향한다. ‘작품 밖 독자’를 창조한 세르반테스의 소설 미학처럼 성동훈 역시 자신의 풍자적 비판이 가득한 조각을 대면하는 관객의 능동적인 관람을 이끌면서 독자의 상(像)을 창출하는 것이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17세기나 21세기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언제나 존재한다. 작가 성동훈은 비루한 현실을 강퍅한 심성으로 사는 오늘날의 현대인에게 현실 밖 꿈을 꾸게 만드는 ‘탈주의 내러티브로서의 제2의 돈키호테’를 선물하고 있다고 하겠다. 


4. 강용면(Kang, Yong-Meon) - 전통의 계승과 재해석이 품은 사회적 메시지


  강용면의 작품 〈온고지신(溫故知新)〉은 전통의 계승과 현대화를 통해서, 또 다른 작품 〈응고(凝固)〉는 관객에게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으로 ‘예술 민주화’의 이념을 성취한다. 즉 작가의 최근의 조형 세계는 역사를 통한 통시적 관점과 사회적 담론을 통한 공시적 관점 속에서 양자가 상호소통하게 하는 방식으로, 관객에게 접근한다. 달리 말해, 역사적, 사회적 담론을 공유하는 관객에게, 그 담론을 형상화한 예술 작품을 통해서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2000년대부터 천착해 온 시리즈물 중 하나인 작품 〈온고지신〉은 1980-90년대 한국적 전통에 근간한 미의식을 자신의 것으로 조형화하는 데 몰입해 온 전통적 소재주의로부터 보폭을 넓혀 한국 고유의 정신성과 한국적 정체성을 담는다. 즉 옛것의 답습이 아닌 옛것에 대한 근원적 해석과 반성적 성찰에 따른 변용이 주요한 것임을 피력한다. ‘놋그릇에 수북이 담긴 밥’을 재현한 작품은 한국인과 한국인의 삶에 대한 근원적인 해석과 상징이다. ‘밥심’으로 펼치는 노동과 ‘밥의 정신’으로 전개하는 한국적 삶, 이 모든 것은 현대화된 삶 속에서 한국의 유전자를 망각하지 않으려는 강용면의 치열한 작가 정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한편, 작품 〈응고〉는 1990년대 천착했던 ‘역사원년’ 시리즈로부터 동시대의 사회학적 맥락 속으로 내려앉는다. 역사를 잇는 이 시대의 민중의 상징처럼 표현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마치 커다란 물줄기가 혹은 발아하고 있는 씨앗이 응고된 것처럼 보이는 형상은 ‘푸른 생명’이 봉인된 채, 동면에 들고 있는 듯한 모습을 유추케 한다. 민주화된 작금의 시대에서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불합리와 불평등, 경직된 비민주적 양상들 속에서 부단히 저항하는 민중의 존재는 여전히 사회를 작동시키는 힘이다. 
아울러 철골 구조물 위에 에폭시와 유화 물감을 올린 특유한 그의 ‘회화적 조각’은 이전에 그가 사용했던 나무, 아크릴, 폴리와 같은 조각적 재료는 물론이고 자동차 외장 도료, LED와 같은 다양한 재료를 통해 부단히 모색했던 그간의 조형 실험에 대한 ‘또 다른 버전’이 된다. 

 

5. 엄혁용(Um, Hyuk-Yong) - 직지의 전통과 나무의 근원에 대한 성찰


엄혁용의 두 작품  <책으로부터 Ⅰ>와  <책 이야기>는 전통과 근원이 지닌 형식과 내용을 변용한 현대적 공공미술을 통해서 ‘예술 민주화’에 다가선다. 그 전통이란 세계 최고의 금속 활자본인 ‘직지(直指)’로 상징되는 것이며, 그 근원이란 책이 고향으로 삼고 있는 자연에 대한 것이다. 즉 그의 작품이 소재와 주제로 삼고 있는 ‘책’이란 현대적 인쇄물을 도래케 만든 세계 최초의 전통으로부터 유래한 것이자, 펄프-나무-자연으로 확장되는 질료적 근원으로부터 온 것이다. 아울러 그의 작품은 조각의 재현적 언어를 통한 ‘형식’과 상상력 가득한 내러티브 구성이라는 ‘내용’의 조합을 통해서 현대적 공공미술을 구축함으로써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선다.
책이라는 일관된 소재와 주제를 통찰하고 조형화하는 엄혁용의 작업은 구체적으로 그가 어린 시절 매일처럼 바라보았던 마당의 느티나무로부터 출발한 것이다. 따라서 그의 작업은 체험적 각인으로부터 시작된 개인적이고 ‘미시적인 내러티브’가 점차 ‘직지’로 상징되는 책의 형상을 만들고 그 책이 근원하고 있는 나무와 자연 그리고 전통을 성찰하면서 ‘거시적인 내러티브’로 확장하게 된 것이라 하겠다. 2011년부터 ‘직지’를 주제로 한 작업을 시작한 당시의 재료는 자연스럽게 나무, 그것도 고사목(枯死木)이나 번개를 맞아 죽은 나무, 병든 나무 혹은 썩은 나무였다. 이 재료에 카빙(carving)의 방식으로 조각체를 만들고 마치 치유하듯 색을 입혀 예술 작품으로 부활시키고 최종적으로는 그것을 애초의 고향인 자연으로 환원시키고자 한 것이 그의 작품세계가 담고 있는 미학이었다. 
  이번 전시의 출품작 <책으로부터 Ⅰ>는 스테인리스, 동,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나무와 책’이다. 나무를 질료로 하던 이전 작품들과 달리, 그는 인공의 철을 재료로 삼아, 책의 근원인 나무의 형상을 한국 책의 전통인 직지를 상징하는 형상과 오버랩시켜 만든다. 또 다른 작품 <책 이야기>는 마주하는 두 어린이를 금속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책 속에 투과체의 실루엣으로 비워냄으로써 전통-현재-미래의 세대를 잇는 역사를 형상화한다. 두 작업 모두 관객이 공유하는 전통의 미감을 현대적 언어로 조형화함으로써 관객과의 심리적 거리감을 좁히고 소통을 도모하는 ‘예술 민주화’의 이념을 성취한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6. 에필로그


  오늘날 공공미술의 범주가 조각 공원, 퍼블릭아트를 거쳐 도시디자인이나 커뮤니티아트로 다양하게 변모해 왔다고 할 때, 이번의 익산예술의전당의 야외조각전은 비교적 오래된 공공미술의 형식으로 접근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럼에도 익산예술의전당은 초청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서 삶의 맥락을 중시하는 ‘장소 속 조각’ 혹은 ‘장소로서의 조각’이라는 특성들이 발현되기를 도모한다. ‘새로운 장르로서 공공미술(new genre public art)’이라는 것이 전통적 조각 형식에서도 충분히 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는 공원 안에 조각품을 배치해서 일상의 공간을 예술 공간으로 변모시키는 한편, ‘대중의 예술 향유’의 기회를 확장하는 ‘예술 민주화’ 개념을 성취하려는 목적을 지향한다. 공공미술과 예술 민주화는 한 쌍이다. 주지하듯이, ‘공공미술’이라는 용어는 1967년 존 윌레트(John Willett)의 저작인 ‘도시 속 예술(Art in a City)’에서 등장한 이래, ‘대중에게 공개된 장소에 설치, 전시되는 예술품이자 그것을 실천하는 미술’로 사용되어 왔다. 미술가 개인의 내밀한 예술 세계로부터 시작된 순수 예술이 공공의 장소성과 대중 공개성을 요청을 받으면서 ‘인간 환경의 공공적 맥락(context)’ 속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즉 미술 전문가들만이 함께 소통하는 미술계로부터 ‘문화의 민주화’란 이름으로 ‘생활계(life world)’ 또는 일상으로 넘어온 것이다. ‘문화의 민주화’는 순수한 고급 예술의 향유가 어느 지역, 연령에서 소외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문화 예술의 민주적 향유’ 차원에서 제기된 문화 정책상의 개념이자, 예술 생산자(창작자)로부터 예술 소비자(관람자)로 주체적 권한을 이양시키는 수용론의 개념이기도 하다.
남겨진 관건이 있다면, 출품작들이 지향하는 ‘문화 민주화 또는 예술 민주화’를 성취하는 공공미술의 담론 너머에서, ‘문화 민주주의(Démocratie culturelle) 또는 '예술 민주주의(Démocratie artistique)'와 같은 개념을 실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즉 ‘예술 민주화’가 순수 예술, 고급 예술의 향유의 범위를 확대함으로써 대중의 소외를 제거하는데 목적이 있다면, ‘예술 민주주의’란 대중도 예술 창조를 할 수 있다는 관점 즉 향유로부터 창작의 경험을 목적으로 한다
'예술 민주화'를 성취하는 일상 속 예술, 일상의 공공조각은 멀리 있지 않듯이 ‘예술 민주주의’의 길 역시 멀지 않다. 올해의 전시가 대중의 예술 향유에 집중함으로써 이러한 ‘예술 민주화’를 도모하고 있다면, 향후 관객과 대중에게 ‘예술 창조의 주체적 역할’을 부여할 ‘예술 민주주의’를 고려하는 특별 프로그램들이 부대행사의 방식이든 전시의 방식이든 병행될 필요성이 요청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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