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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고 작은 수집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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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고 작은 수집품
2018-08-31 ~ 2018-09-26
가나아트센터 제 1, 2, 3 전시장



전  시  명    ≪나의 작고 작은 수집품≫
장      소     가나아트센터 제 1, 2, 3 전시장 전관
                 (서울시 종로구 평창 30길 28)
기      획      조현정 t. 02.396.4050 
                 편소정 t. 02.3217.0235 
홍      보      최윤이 t. 02.3216.1020  
일      시     2018. 8. 31 (금) –2018. 9. 26 (수)
작 품   수      임히주 선생의 소장품 약 200여점 
오  프  닝      2018. 8. 31 (금) 오후 5시



II. Collection Story

임히주 선생은 수십년 동안 현대미술 교육에 몸담아 온 교육자이다. 선생은 컬럼비아대학원에서 미술학 석사(MA)과정을 마쳤다. 이후 워싱턴 트리니티 컬리지와 이화여자대학교(1969-1985)에서 미술 강의를 하였으며, 국립현대미술관내 현대미술관회에서 23년간 현대미술아카데미를 총괄 운영하였다. 이외에도 SADI의 초대학장, 삼성미술관의 자문위원, 외교통상부 미술자문위원으로 역임하며 미술과 건축, 디자인을 넘나드는 전문가적인 식견으로 문화예술의 발전을 위해 앞장서 왔다. 

한편, 임히주 선생은 우리 미술품에 대한 조애가 각별하다. 선생은 어릴 적부터 특히 작고 아담한 우리나라 전통 민예품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고 한다. 이러한 예민한 기호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이기도 하지만, 1960년대 뉴욕의 현대미술과도 관련이 깊다. 선생이 미국에서 머물렀던 1960년대 뉴욕은 미국 모더니즘 미술이 최 전성기를 이루던 때였다. 강의 준비를 위해 뉴욕과 워싱턴에 소재한 미술관과 갤러리를 수시로 드나들며 솔 르윗(Sol Lewitt), 리처드 터틀(Richard Tuttle), 아그네스 마틴(Agnes Martin)을 비롯한 여러 미니멀•포스트 미니멀 아트 작가의 작품을 쉽게 접할 수 있었고 이러한 현장 경험은 간결한 것에 대한 취향을 한층 성장시킨 배경이 되었다.

미국 유학 시절 쌓은 안목은 귀국 후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시작한 강사 생활과 함께 본격적인 컬렉션으로 이어지게 된다. 급격한 서구화의 진행으로 옛 물건을 쓸모 없는 것으로 취급하는 당대의 세태는 선생으로 하여금 우리의 전통을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였고, 1970년대부터 선생은 아현동 골목길에서 크게 비싸지 않은 민예품들을 수집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실천은 민예품에서 서구 현대미술에 상응하는 미감을 발견한 선생의 남다른 안목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인데, 이것이 현재 컬렉션이라 일컬을 수 있는 규모가 되어 본 전시에 이르게 되었다.



III. 전시 요약 

가나아트는 2018년 8월 31일부터 ≪나의 작고 작은 수집품≫展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우리나라 민예품에 대한 대중의 이해와 관심도를 높이고자 마련된 자리로, 개인 컬렉터 임히주(林喜珠)선생이 반 생에 걸쳐 모은 수집품이 총망라하여 공개된다. 전시에 출품되는 작품 수는 약 200여점으로, 필갑, 인괘, 망건통, 먹통, 등잔, 비녀 및 여인의 장신구, 보자기, 바늘집 등 조선후기 선비와 아녀자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했던 조선후기의 민속공예품이 중점적으로 소개된다. 이외에도 신라시대의 부장품, 현대미술작품 30여점이 출품된다.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점은 고미술에서부터 현대미술에 이르는 임히주 선생의 광범위한 범주의 수집품 대부분이 손바닥 한 뼘도 채 되지 않은 자그마한 크기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임히주 선생만의 독특한 심미안, 즉 작고 간결한 것에 집념어린 애정을 드러내며, 이러한 일관된 미적취향에 개인 컬렉터의 수집의 의미가 있음을 시사한다. 
한편, 본 전시는 구성에 있어서 민예품이 본래 쓰임새를 충실히 반영한 생활 용구라는 점에 중점을 두고, 이를 사용하는 주체와 그 용도에 따라 작품을 분류하여, 제 1 전시실과 2 전시실은 각각 조선 후기의 선비용품과 그 시절 부녀자들이 애용했던 규방용품으로 구성하였다.

이렇듯 가나아트는 임히주 선생의 안목과 열정이 깃든 수집품들을 총체적으로 조망하여 특별히 젊은 관람객들에게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을 독려하고 이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히는 계기를 제공하고자 한다.



IV. 출품작 이미지



바늘방석모음, 19세기

바늘방석은 바늘을 꽂아 두는 물건으로 바늘집·바늘겨레라고도 한다. 무명이나 비단 조각으로 주머니 보양을 지어 그 속에 솜 등을 채워 넣고 바늘이 녹슬지 않게 만든다. 바늘을 위험하지 않게 꽂아서 보관하는 것이 목적이다. 사진 속 맨 오른쪽의 바늘방석은 삼각형의 비단 조각을 원형으로 이어 붙이고 내부에 솜을 두어 만든 형태이며, 몇몇 비단 조각에 화문이 수놓아져 있다.



유기합, 19세기

합뚜껑과 합신이 분리되는 형태의 유기합으로, 뚜껑과 몸체는 모두 놋쇠로 만들어졌다. 민무늬의 정갈한 바둑알 형태이다.



골무모음, 19세기

이와 같은 형태는 골무 여러 점을 포개어 놓은 것으로 주로 연두색과 청색, 빨간색, 노란색, 분홍색 등의 천을 앞·뒷면에 각각 덧대어 노란색, 분홍색, 청색 등의 실로 꿰매어 마감하였다.



망건통모음, 19세기

망건은 상투를 틀 때 머리카락이 흩어지지 않도록 동여맬 때 사용하는 띠를 말한다. 보통 망건을 사용하지 않을 때는 망건통에 넣어서 보관하였다



먹통 모음, 19세기

먹통은 먹물을 보관하는 통이다. 조선시대 사대부 남성들은 휴대용으로 허리춤에 이와 같은 작은 먹통을 차고 다녔다. 먹통은 주로 뚜껑의 상면 가운데에 화형의 장식이 붙여진 형태로, 고리에는 통을 감을 수 있는 끈이 달려 있다.



V. 전시 평론

생활의 지혜와 아름다움: 임히주 소장품전에 부쳐


오광수(미술평론가, 뮤지엄 산 관장)

한동안 자신의 소장품을 탁상용 캘린더로 인쇄하여 주변에 돌린 임히주선생의 새해 선물은 아직도 기억에 새롭다. 손아귀에 소옥 들어오는 작은 캘린더는 매월 종류를 달리하는 소장품들이 아름답게 인쇄되어 그 내용물이 주는 애틋한 정감과 이를 해마다 전한 정성이 받는 이들을 마냥 즐겁게 해 주었다. 

이번에 열리는 ≪임히주 소장품전≫은 캘린더를 통해 알려진 것들을 중심으로 오랜 세월을 두고 애써 모아왔던 것을 분류하고 체계화하여 한 자리에 펼쳐 보여주고 있어 또 한번 여러 사람들의 안복(眼福)을 누릴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컬렉션은 그 내용이나 수장의 의도에 따라 여러 종류로 분류해볼 수 있다. 재화를 의식한 것도 있고 특정 영역의 연구를 위한 것들도 있다. 개인의 취향이나 특별한 인연에 의해 수장이 시작되는 경우도 있다. 어떠한 경우이거나 오랜 시간과 노력이 불가피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수장품은 금전적 가치로 평가될 수는 없는 것이다. 어떤 수장이거나 거기에 쏟은 애정이나 즐거움을 금전으로 살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수장에 따르는 즐거움은 당연히 당사자가 누릴 권리이다. 그러나 모으는 열정이나 즐거움 못지않게 이를 더불어 보고 즐기는 일은 정서의 공유이자 감동의 공유로서 그만큼 수장의 가치는 고양된다는 사실도 결코 간과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소장전은 바로 더불어 즐기려는 소장자 미덕의 결과로 높이 사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임히주선생의 소장품은 우리 고유한 생활품목들로 생활의 지혜와 아름다움이 깃든 것들로 절로 정감이 가는 것들이다. 내용물을 크게 분류한다면 문방 -사랑채, 남자의 생활공간의- 용품과 규방 -안채, 여성의 생활공간의- 용구들로 나뉘고 생활 전반에 사용되었던 용구들이 포함된다. 

문방용구로는 벼루, 필갑, 서류함, 인장감, 벼루함, 목침, 망건통, 인괘 등이 있으며, 규방용구로는 좌경, 경대, 반짇고리, 분항, 빗, 실패, 바늘집, 귀주머니, 복주머니, 버선본 주머니, 패물보자기, 버선, 자수골무, 운혜, 노리개, 분합 등이 포함되며 
그 외 각종 연장, 인두, 다리미, 등잔, 소쿠리 등은 일반생활 용구로 분류되는 것들이다. 
이들 용구들은 규모가 작고 아담한 것이 공통된 특징으로 보석은 작아서 아름답다고 하듯이 보석과 같은 빛을 발하고 있다. 

내외가 분명했던 조선 시대 생활공간은 남녀가 각각 사용했던 기물을 통해 격조를 달리하고 있다. 사랑채에서 사용했던 문방용구는 선비들의 소박하면서도 절제된 미의식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면 규방용구들은 대체로 아담하고 정겨우면서도 알맞은 장식성을 곁들인 것으로 문방용구와 대비를 이룬다. 

“이 달력에 등장하는 자수품은 염낭, 단추, 바늘꽂이, 버선본집, 열쇠패 등으로 소박하고 단아하게 수놓아 만들어서 꾸민 것들이다... 한 땀 한 땀 정성과 사랑 그리고 염원이 깃든 바느질에는 놀라울 정도의 섬세한 솜씨와 아름답고 고운 문양 속에 옛 여인의 숨길을 간직하고 있다”
-2009년 캘린더에서-

바로 전시대의 유품들이기에 더욱 애정이 가는 것들이다. 우리들 어머니, 할머니 그리고 할머니의 할머니에 이르는 세대의 생활의 숨결이 고스란히 배어 있기에 더욱 애틋한 정감을 불러일으킨다. 쉽게 잊혀지고 버려지는 것들을 다시 만나는 반가움이 메마른 현대인의 마음을 따스하게 데워주는 기회가 되리라 믿는다. 



소소한 아름다움 우리 민예품


김형국(가나문화재단 이사장)

1.일설에 우리 전통미학의 특성을 살펴 ‘누추하지도 않고, 사치스럽지도 않다’고 했다. 지금 민예품이라 부르는 것이 전통시대의 생활용품인데, 그 대종(大宗) 가운데 바깥주인의 공간이던 사랑방 비품은 말 그대로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았다(儉而不陋)’. 견주어 안주인의 규방(閨房)용품은 ‘화려해도 사치스럽지 않았다(華而不侈)’고 말함이 합당할 듯싶은데, ‘화려’라는 말이 보태짐은 바깥사람들보다 부녀들이 태생적으로 아름다움에 한결 민감했기 때문이었다…

2.가나아트센터가 주최한 이번 전시는 한 눈썰미 좋은 애호가가 젊은 날부터 집념으로 모아온 규방용품 한자리다. 전시의 주인공은 임히주(林喜珠) 선생. 

당신 이름의 한글 표기는 ‘희주’가 아닌 ‘히주’다. “지이(地異)라 쓰고 지리라 읽는다.”는 이병주(李炳注)의 소설 『지리산』첫 머리가 연상되는데, 겹모음 ‘희’ 대신 홑모음 ‘히’ 로 자식 이름을 지었음은 여성으로서 선구적인 삶을 살길 바랐던 아버지의 사랑이 바로 직방으로 느껴지는 듯하다…

선생은 미술계 현장으로 나와선 당시 국립현대미술관내 현대미술관회 상임이사로 무려 23년간(1985-2008) 현대미술아카데미를 총괄⦁운영했다. 그 시절 조형작가는 물론 나 같은 사람도 말석에 끼인 수많은 애호가들 그리고 그들 활동상을 만나는 사이에 선생의 안목은 점입가경했을 것이다. 그렇게 쌓아진 눈썰미를 높이 산 곳이 신세계갤러리로 그곳에서 고문으로 7년(2009-15) 일했다. 그래저래 미술업계 몸담기가 육십년에 가깝다. 

3.규방용품 수집의 시발은 이화여대 출강할 때부터였단다. 이대 교정에서 멀지 않은 아현동 고개는 1970년대 전후로 골동상이 꽤나 몰려 있었다. 옛 보자기나 농짝들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던 시절이었으니 당신의 하교 길에 들리던 ‘참새 방앗간’이었다. 

선생의 선호는 요즘말로 여성 신변용품들이었다… 모두들 ‘손끝에서 노는’ 물건이고 보니 하나같이 ‘손에 쥐이는’ 소품일 수밖에 없었는데, 그렇게 절대적으로 작은 소품이기에 일단 경상도 말로 ‘새칩은’, 표준말로 ‘앙증스럽기’ 그지없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이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작아도 상대적으로는 크게 보이는, “비록 크기는 작지만 구수하게 큰 맛이 나는 모순을 가진다” 했던 우리 미학 선각(先覺)이 말하던, 그런 소품들이다. 이런 해석이 결코 이 나라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지방방송 수준의 아전인수가 아닌 것이 넓게는 미니멀 미학, 더 넓게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는 세계⦁보편적 미학으로 확대되는 그런 아름다움이다. 

4.전시 물품은 약 2백점에 가깝다. 안방 주인들이 매무새를 가다듬던 분함, 분항, 연적, 화장용 분무기, 좌경, 면경, 동경을 필두로 입성 마련에 소용되던 인두, 다리미, 가위, 실패, 바늘집, 버선본 주머니, 바늘방석, 바늘꽂이, 바늘집, 괴불, 골무가 빠질 수 없다. 일상에 파적(破寂)이 되어주던 담배함도 등장하고 안주인들의 애지중지 가락지 쌈지, 비취 가락지, 칠보 쌍가락지, 패물보자기도 있다…

5.이번 전시는 전시품의 아름다움도 도저하지만 수집품 자체가 엮어내는 분위기에서 수집가의 격조 있는 구안(具眼)도 느낄 수 있다… 선생의 눈썰미는 규방용품에서 ‘진일보(進一步)’하여 오브제(objet)의 발견에도 눈길⦁손길⦁발품을 아끼지 않았다. 오브제는 “일상의 물품이나 자연물 등을 원래의 기능이나 있어야 할 장소에서 분리해선 그대로 독립된 작품으로 제시한 결과, 일상적 의미와는 다른 상징적이고 환상적인 의미를 안겨줌”이라 하겠는데, 현대미술의 혁명이라 할 뒤샹(Marcel Duchamp)의 <샘>이 화장실 변기를 오브제로 사용한 작품이었다. 그러한즉 임히주 선생의 오브제에서 그의 미술공부 경지도 만날 수 있음인데 그래서 더욱 소중한 전시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작은 별들의 우주: 아름다움을 향한 여정


안소연(前 삼성미술관플라토 부관장)

아름다움에 대한 개인의 취향과 안목은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그것은 분명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가 언급한 ‘아비투스 (Habitus)’의 한 측면으로, 개인의 성장환경과 교육, 그리고 그가 속한 공동체의 가치 지향에 의해 형성되는 경향이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글로 쓰여진 지식을 통해 안목을 키우고 전문가들의 권위있는 의견을 경청하며 자신의 취향을 드높인다. 그래서인지 고귀함과 아름다움에 대한 판단은 유명세와 가격에 비례하는 경우가 많으며 대체로 화려하고 거대한 외관에 높은 가치가 매겨지곤 한다. 

그러나 가끔은 예외적으로 그런 보편적인 판단기준이나 교환가치에 대한 관심과는 무관하게 자신만의 섬세한 안목을 가다듬어 가는 이들이 있다. 대상의 품질이나 특성에 관한 개념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과 직관을 따르는 일, 칸트는 이를 두고 ‘판단력’이라 했던가. 그런 이들의 공통점은 대상과의 직접적인 대면을 통해 생생한 미학적인 경험을 지속함으로써 자신만의 주체적인 감정을 고양시켜 나간다는 점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 과정은 상상 이상의 노력과 헌신을 필요로 한다.  

임히주 선생님은 내가 미술계에서 만나 온 사람들 중에서 가장 특별한 한 분이라 할 수 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첫 만남에서 선생님은 미술계에 첫발을 내딛는 나에게 매우 인상적인 조언을 해 주셨는데, 그것은 매달 수입의 일정부분을 작품 수집에 할애하라는 것이었다. 아마도 본인의 오래된 좋은 습관 하나를 전수해 주신 것이었을 텐데, 얼마간 흉내를 내던 나의 실천은 안타깝게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수집에 드는 비용의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대상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과 반드시 나의 것으로 소유하고 싶은 욕구, 그리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 함께 늙어가면서 평생 보관하고 보살필 헌신이 내게는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요즘도 새롭게 눈에 들어온 작품을 소장하고 싶어서 마음 설레고 밤잠을 설치신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 세월도 비껴가는 그 열정에 그저 놀랄 뿐이다. 
 
오랜 시간 임히주 선생님을 뵈면서 진심으로 경탄하고 존경해 마지 않는 것은 문화예술 각 분야에 대한 선생님의 해박한 지식과 현장의 젊은 전문가들도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최신 정보에 능통하다는 사실이다. 현대미술과 고미술은 물론이고 음악과 건축, 디자인을 넘나드는 전문가적인 식견은 끊임없는 탐구와 현장 경험의 결과일 터인데, 이는 영역이 세분화된 현대의 전문가 문화 속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오랜 시간 현대미술의 교육자였고 수많은 작은 음악회의 기획자이자 20년에 걸친 건축강의를 흩어 버리지 않고 책으로 엮어낸 편집자, 디자인 스쿨의 수장이었던 임히주 선생님은 오늘날까지도 현대미술의 자문 역할을 수행하는 현역이시다. 임선생님의 ‘르네상스人’적인 폭넓은 활약은 지식의 공유가 거의 불가능한 오늘날 드물고 빛나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그런 까닭에 선생님의 수집품은 대부분 조선시대의 민속공예품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이를 고미술품의 분류대로 용도나 형태, 또는 시대로 구분해서 보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민예품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한점 한점 수집할 때마다 현대미술과 음악, 건축의 경험으로부터 유래한 미학적 판단이 종합적으로 투영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그리고 분리된 여러 영역들은 한 사람의 비범한 감수성과 기억 속에서 융합되어 고유한 취향과 예민한 기호를 형성해 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취향의 핵심은 작고 작은 것, 과시하지 않는 것, 그 자체로서 자족적이고 완결된 형태들, 그리고 소박한 재료와 미묘한 색채들로 수렴된다.     

‘작음 안의 많음’은 눈과 생각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낙원이며 수학 공식과 상징들 속에, 간결한 경구적 시 속에, 그리고 시각예술이라는 미니어처적 형식 속에 존재한다.    
-Zigrosser, “Multium in parvo” 중에서-

미술 전문가가 되기 이전에 임히주 선생님은 피아노를 잠시 전공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전쟁 이전에 피아니스트였고 음악 후원자이기도 했던 모친은 막내딸이 대를 이어 피아노를 전공하기 원했다고 한다. 음악은 시간의 연속성이란 측면에서 ‘작은 것’과는 거리가 있지만, 거꾸로 무한한 화성의 출발점이 높낮이만 다른 단지 12개의 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한 데가 있다. 추상화된 세계이자 평균율의 세계인 피아노를 줄곧 연습하던 소녀 임히주는 음악을 통해 이미 현상 너머의 원리를 희미하게나마 감지했던 것은 아닐까? 분명한 것은 음악이 주는 미묘한 아름다움이 선생님의 전 생애와 분리될 수 없이 공존하며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점이다.   

특별한 계기는 우연과 필연이 겹쳐서 찾아오곤 한다. 부친의 임지였던 호주 시드니에서 학업을 계속하던 1958년에서 1960년 사이에 시드니에서는 세계적인 건축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 중이었는데 그것은 바로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의 건립이었다. 완공되기까지 무려 20년(1953-1973)이 걸렸던 이 프로젝트는 전 세계에서 220명(팀)이 현상 공모에 지원했을 정도로 세간의 관심사였고 마침내 1957년에 덴마크의 신예 건축가 예른 오베르 웃손(Jørn Oberg Utzon)의 설계안이 최종 선정되었다. 

음악당 건립에 관심을 갖고 있던 예비 피아니스트는 현지에서 이 모든 것을 직접 접하게 된다. 공모 건축가들에 대한 연속적인 특집 기사와 공모작 모형 전시를 흥미롭게 바라보면서 자연스럽게 건축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다. 음악과 유사한 건축의 구축성은 향후 지속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는데, 건축가의 아이디어가 응축된 설계도면은 일종의 기하학의 향연으로 추상 드로잉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켰다. 특히 건축 모형들은 너무도 경이로운 것으로 경험되었는데, 그것은 건축이라는 수집불가능의 영역을 수집 가능하게 해주는 미니어처의 세계였기 때문이다. 또한 실재의 축소판에 불과하지만 보이는 것 바깥의 서사와 역사성까지 포괄하는 것으로 그 자체가 하나의 소우주로 인식되었다.
  
임히주 선생의 수집품 가운데 ‘함’, ‘갑’, ‘통’ 등으로 분류되는 각종 상자들이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은 높이 10cm 남짓한 작은 규모에 깃든 그들의 조형적인 완벽함 때문일 것이다. 거대한 ‘장’이나 ‘궤’를 축소한 듯한 이 소형의 기물들은 수공기술의 결정체로서 의미가 있지만, 더욱 확장해서 생각해 보면 일종의 건축 모형으로도 유추된다. 이러한 상상의 가능성은 건축에 대한 임히주 선생님의 지속적인 관심, 그 가운데서도 페터 춤토르 (Peter Zumthor)의 건축물에 대한 애호에서 찾을 수 있다. 춤토르의 “성 베네딕트 채플”이나 “부르더 크라우스 채플”의 소박하고 진정한 형태와 침묵의 공간에 크게 감동하면서, 선생님은 본인의 애장품 가운데서 ‘망건통’이나 ‘먹통’과 같이 순정한 함들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그 둘 사이에서 비견되는 시각적 유사성을 넘어 시대와 장소, 규모를 초월하는 미감의 일치에 전율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드니를 떠나 뉴욕에 입성하면서 임히주 선생님은 본격적으로 현대미술을 전공한다. 컬럼비아 대학원에서 미술학 석사를 마친 뒤 워싱턴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강의를 시작한 것이다. 1960년대를 관통한 이 시기는 미국 모더니즘 미술의 최 성기로서 미니멀리즘을 전후로 무수한 중요작가들이 출현하던 시기였다. 임선생님은 강의 준비와 학생들의 갤러리 리포트를 평가하기 위해 미술관과 갤러리를 샅샅이 살폈는데 이때의 현장 경험이 현대미술을 바라보는 그의 탁월한 안목과 감각을 성장시켰을 것이다. 

귀국 후 본격적인 수집활동을 하는데 있어 현대미술에 대한 지식과 안목은 매우 의미 있는 역할을 하게 된다. 남다른 시각으로 서양 현대미술에 상응하는 민예품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것은 물론이고, 그런 과정을 통해 거꾸로 선조 장인들의 시대를 앞선 미감을 발견하고 드러내는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각종 자수품들 (보자기, 바늘방석, 자수 골무)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아그네스 마틴(Agnes Martin)과 솔 르윗(Sol LeWitt), 그리고 리처드 터틀(Richard Tuttle)의 뉘앙스로 가득한 선과 면을 유추해 내면서, 옛 여인들의 시대를 앞선 감탄할 만한 색채와 형태 감각을 제시하는 식이다. 각종 매듭을 비롯한 여성 장신구는 요절한 페미니스트 작가 에바 헤세(Eva Hesse)를 떠올리게 하고, 철(凸)자로 투각된 ‘등가’는 영락없이 에두아르도 칠리다(Eduardo Chillida)를 소환한다. 그야말로 미니멀한 ‘붓걸이’는 우리의 사유를 도널드 저드 Donald Judd)의 언저리로 이끌고 빛 바랜 헝겊과 벼루들은 뜻밖에도 로버트 라이먼(Robert Ryman)을 조우하게 한다. 

관심이 없는 이들에겐 단지 하찮은 일상 용품에 불과했을 과거의 오브제들을 수집하고 그것을 적절히 배치하는 행위는 현대미술에 정통한 임히주 선생님의 안목으로 인해 더욱 빛을 발한다.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Felix Gonzalez-Torres)의 오랜 팬이자, 최근엔 사라 제(Sarah Sze)와 준야 이시가미(Junya Ishigami)의 팬이 된 선생님은 ‘작고 작은 것들’이 가진 필연적인 유약함에 더욱 마음이 이끌리시는 것 같다.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 아름다운 것에 대한 애착은 수집이라는 열정적이고 책임 있는 행위를 지속하는 원동력이 되어 왔다. 

서구가 중심이 되는 현대의 문화 흐름 속에서 과거와 현재, 동과 서의 접점을 찾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당면한 과제가 되고 있다. 지식과 경험과 사랑을 바탕으로 이들의 아름다운 만남을 주선한 임히주 선생님의 컬렉션이 이제 그에 대한 하나의 작은 실마리를 제공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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