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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우 : 성수동 일요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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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수 동 의 일 요 일

  불특정한 다수의 사람들이 모여 다니면서 서로를 훔쳐보는 동시에 다양한 볼거리를 완상하는 공간인 광장은 르네상스기에 태동되었다.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광장이 바로 그 대표적인 곳이다. 그로 인해 현란하고 웅장한 건축물, 그곳을 채운 무수한 시각 이미지들, 조각, 그리고 패션 등이 등장하면서 이른바 보는 문화가 정착되었다. 미술과 건축, 패션은 그야말로 광장의 소산인 셈이다. 그런 측면에서 서구 근대는 공공의 장소, 도시문화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한다. 중세를 탈피해 근대 로 향해가던 콰토르첸토시대(15 세기)를 거쳐 산업혁명 이후 대다수 사람들의 보편적인 삶의 공간은 이제 자연에서 도시로 이동했다. 오늘날 우리들의 삶은 철저하게 도시 공간 안에서 규정된다. 발터 벤야민은 이에 대한 예언적 인식을 아케이드프로젝트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현재 도시 공간은 무수한 볼거리로 가득 채워져 있다. 도시는 그런 의미에서 거대한 시각 이미지의 보고이다. 그곳에서 생을 영위하는 모든 이들은 도시를 에워싸고 있는 사물, 상품, 이미지 등이 발산하는 여러 기호를 통해 소통하고 욕망하며 다양한 감각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니 도시에서 산다는 것은 그곳의 이미지를 어떻게 독해하느냐의 문제와 분리될 수 없다. 정희우의 작업은 바로 그런 맥락에서 출현한다.

  작가는 어느 일요일, 산책자 구보씨처럼 성수동 일대를 배회했다. 보들레르 식으로 말하면 이른바 플라뇌르 (고독한 산책자)가 된 것이다. 지금은 많이 쇠락했지만 한 때 번성했던 공장지대를 유추하게 해주는 허름한 건물들과 낡은 간판들, 닫힌 셔터, 그리고 새롭게 들어선 가게들이 혼재하는 공간을 관찰했다. 이때 작가의 눈에 들어온 것은 보기 드문 나무 간판들이었다. 단단한 나무판에 부조로 깎아 문자를 새긴 간판은 오늘날 찾아보기 힘든 추억의 오브제다. 이는 지난 시절 번성했던 성수동의 한때를 불현듯 상기시켜주는 역사적 매개이자 그것 자체로 흥미로운 시각 이미지, 라벨적인 효과를 지닌 기표이기도 하다. 작가는 그 간판들에 기생해 나가면서 탁본을 하고 여기에 채색을 입혔다. 탁본이란 이미 존재하는 사물의 피부에 쓰라리게 붙어 나가면서 복제해내는 가장 기본적인 이미지 재생수단이자 동시에 오로지 피부로만 존재할 수밖에 없는 회화의 운명을 드러 내보여주는 평면 작업이다. 이처럼 작가는 성수동 일대를 다니다 매력적인(?) 간판을 찾아 탁본을 하거나 혹은 점포를 정해서 실물 크기에 가깝게 정면을 그리기도 했다. 간판과 건물 입면을 비스듬한 시점에서 본 것을 그려서 컷아웃으로 패널을 만들기도 했으며 ㈜ 세림 공장의 기계와 제품을 건탁기법으로 탁본하기도 했다. 그것들이 실제 전시장에 부착되는 순간 묘한 착시감이 발생한다. 우리는 마치 성수동 일대를 거닐고 있다는, 특정 공장에 들어와 있다는 묘한 환시에 시달린다. 이 작업은 결국 이미 존재하는 도시를 구성하는 이미지들, 레디메이드라고 부를 수 있는 다양한 이미지를 발견하고 여기에서 묘한 미감과 시간에 대한 향수와 지난 역사와 사람들의 체취와 흔적을 읽어내고자 하는 다분히 고고학적인 관심( 이른바 고현학적 관심)을 반영한다. 도시는 이처럼 무수한 기호, 라벨로 치장되어 있고 그것들 역시 매우 중요한 시각 이미지이자 미술에 다름 아니다. 우리는 미술을 오로지 전시장 안에 갇혀 있는 매우 제한적인 것으로만 보거나 읽는다. 이해하려 한다. 그러나 정희우의 시선과 동선에 의해 포착된 간판들에 의해, 그 흥미로운 기호( 라벨)들에 의해 우리는 시각 이미지, 미술이 얼마나 풍요하고 흥미롭게 넓혀질 수 있는가를 알게 된다. 간판들과 기계들 역시 우리에게 생각거리를 안겨주는 시각 이미지이다. 아울러 그것들이 공간을 차지하면서 인간의 삶과 문화와 역사를 만들어내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던 기호들, 라벨들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 박영택 ( 경기대교수, 미술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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