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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희: HAPPY MEM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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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제목  정정희 개인전_HAPPY MEMORY
전시기간  2018.01.05-2018.02.03

전시기획  세컨드 에비뉴 갤러리

전시장소  세컨드 에비뉴 갤러리(2nd Avenue gallery)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 2가 128-22

문    의  02.593.1140



숲속에서 2009 



정정희, 현대판 ‘아라크네(Arachne)’

“나의 작품은 실로 만드는 예술이므로 직조라고 할 수 있는 타피스트리가 아니다.”

2011년 정정희 작가(1930년생)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타피스트리가 아니라 실로 만드는 예술이라고 진술했다. 오늘날 그녀의 진술은 당연시될 것이다. 하지만 1960년대 그녀가 실로 작업을 시작할 당시는 물론, 그녀가 활발하게 작업할 197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그녀의 진술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니다! 2011년 그녀가 자신의 작품을 타피스트리가 아니라 실로 만드는 예술이라고 진술했던 것을 고려한다면, 여전히 그녀의 작품은 온전하게 평가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런 점에서 그녀는 ‘현대판 아라크네’라고 할 수 있겠다. 

아라크네(Arachne)? 아나크네는 그리스 신화 중 여신 아테나(Athena)의 노여움을 사서 거미로 변해 영원히 거미집을 짓게 된 소녀를 지칭한다. 왜 여신은 소녀를 거미로 변신시킨 것일까? 아라크네는 염색 기술자 이드몬(Idmon)의 딸이다. 그녀는 베를 짜는데 훌륭한 솜씨를 지녔다. 그녀의 명성은 높아져 베 짜는 여인들의 수호신인 아테나 여신에게까지 알려진다. 그런데 그녀는 자신의 출중한 재능이 아테나 여신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호언장담한다. 

어느날 노파가 아라크네를 찾아 여신에게 용서를 구하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아라크네는 오히려 노파에게 반문한다. 왜 아테나 여신이 자신의 도전을 피하냐고. 결국 노파는 본모습(아테나 여신)을 드러내고 아라크네와 한판승부를 벌인다. 아테나 여신은 제우스를 중심으로 올림푸스(Olympus) 12신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수놓은 다음 네 귀퉁이에 신에게 도전한 인간들의 처벌을 짜 넣었다. 이를테면 아테나는 신의 권위에 도전한 인간 아라크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짜 놓았다고 말이다. 

반면 아라크네는 불륜을 저지른 제우스에서부터 여성을 겁탈한 포세이돈에 이르는 올림푸스 주신들의 애정행각을 화려하게 베틀에 펼쳐 놓았다. 그런데 아라크네의 작품이 여신의 작품보다 훌륭했다. 여신은 아라크네의 훌륭한 솜씨에 마음을 상하게 되자, 여신은 신들을 모욕한 아라크네의 작품을 찢어 버린다. 아라크네는 억울한 나머지 들보에 목을 맨다. 그러나 여신은 아라크네를 살린 다음 헤카테의 액즙을 끼얹어 영원히 실을 짜야하는 거미로 변신하게 만든다. 

아라크네는 단지 자신의 뛰어난 재능을 믿고 신에게 도전장을 내서 신들의 진실을 낱낱이 폭로한 훌륭한 작품을 제작해 승리한 결과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그렇다면 정정희는 무슨 연유로 ‘현대판 아라크네’로 불리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겠다. 정정희는 새로운 조각의 개념을 외도(外道), 즉 조각이 아니라 섬유공예에서 차용했다는 점 때문에 그녀의 작품은 새로운 조각으로서의 ‘패브릭 아트(Fabric Art)’가 아닌 ‘타피스트리(tapestry)’로 간주되었다.


가을을 보내며, 1994, 440x200cm

 

정정희, 조각과 섬유를 접목시킨 아티스트

1948년 경기여고 3학년이었던 정정희는 삼선교에 있던 이쾌대가 운영하던 성북회화연구소에서 미대입시를 준비한다. 그 다음 해 그녀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한다. 그녀는 회화과를 지원했지만 조소과에 배정된다. 그녀는 김영종 교수로부터 조각을 배운다. 그러나 1950년 6.25전쟁으로 인해 1953년이 되어서야 서울대 미대 조소과를 졸업하게 된다. 1957년 그녀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젊은 여인’으로 입상(특선)해 촉망받는 조각가가 된다. 하지만 그녀는 “조각은 돈도 체력도 공간도 많이 드는 대형작업이다 보니 계속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1960년 정정희는 결혼 직후 한국공예시범소(Korea Handy Craft Design Center)에서 디자인 업무를 수행한다. 한국공예시범소는 국내 최초의 디자인 진흥기관으로 미국의 경제조정국과 CIA가 후원해 1958년부터 1961년까지 운영되었다고 한다. 미국에서부터 파견된 스텐리 피스틱(Stanley Fistic), 폴 타렌티노(Paul Talentino), 오스틴 콕(Austin Cox) 등 3명의 디자이너가 한국의 공예가들과 디자인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1960년 그 디자인 프로그램에 참여한 정정희는 필라델피아 뮤지엄 미술대학(Philadelphia Museum College of Fine Art)에서 섬유미술(Fabric Design)을 전공하게 된다. 당시 그녀는 라르센(Jack Lenor Larsen) 교수로부터 섬유예술을 배운다. 

1961년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정정희는 조각에 섬유를 접목시킨 작업을 시작한다. 그녀는 조각에 “섬유가 갖고 있는 자연스러운 주름이나 늘어지는 곡선 등의 가변성도 담았다”면서 “여러 개의 띠를 짜고 규칙적인 간격으로 꾸미고 펴보면 리드미컬한 공간과 곡선이 생기고, 벽에 걸었을 때 생기는 음영까지도 작품과 일체가 되는 시각미를 형성한다”고 진술했다. 덧붙여 그녀는 “조각에서 소외되고 있는 풍부한 색채를 도입했다”고 언급했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녀는 작품에 “양감, 공간, 질감, 음영 같은 조각의 특성”도 간과하지 않았다. 

1963년 정정희는 덕성여대에서 섬유미술 강의를 시작해 건국대, 홍익대, 성균관대, 상명대 등 30여년 넘도록 강사로만 활동한다. 이 단적인 사례만 보더라도 그녀가 조각계뿐만 아니라 (섬유)공예계에서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녀의 작품은 조각계에서 외도한 섬유공예품이었고, 섬유공예계에서는 섬유공예가 아니었던 것이다. 앞에서 조각에 섬유를 접목시킨 사례를 들었으니 이번에는 섬유공예에 조각을 접목시킨 사례를 들어보겠다. 

정정희는 “직조작품의 매력을 화면의 평면성과 프레임(frame)에서의 해방”으로 보았다. 그녀는 섬유에 조각을 접목시킨 초기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내가 처음 시도한 것은 서로 질감이 다른 평면과 양감과의 대비와 조화, 적절한 공간의 삽입, 이런 것들의 구성으로서 나의 이미지를 형성해 나가는 작업이었다. 이것은 전통적인 타피스트리의 규범에서의 탈피였고 나름대로의 새롭고 자유로운 표현의 시도였다.” 이 진술은 왜 그녀가 조각계뿐만 아니라 성유공예계에서조차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했는지 알려준다. 

깃털I, 1986, 120x250cm



정정희, 대한민국 ‘패브릭 아트(Fabric Art)’의 선구자

정정희의 첫 개인전은 50세가 되던 해인 1980년 공간화랑에서 개최된다. 당시 그녀는 조각과 삼유가 접목된 16점의 작품을 전시한다. 당시 정정희의 개인전에 그녀의 스승인 김영종 교수가 방문한다. 그녀의 작품들을 본 스승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누가 뭐라고 그러나 어디다 걸릴 것인가, 팔릴 것인가 그런 생각만 하지 않으면 좋은 작가가 될 거다.”

만약 정정희의 작품에 대해 김영종의 목소리를 빌려 말하는 것이 허락된다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녀의 작품에 대해 누가 ‘조각이 아니다, 섬유공예가 아니다’라고 하던 괘념치 않고 작업한다면 좋은 작가가 될 것이다. 그녀는 스승의 화두 같은 말을 곱씹으면서 작업에 전념한다. 물론 그녀가 작업에 매진하게 된 것은 조각에 새로운 매체로서 섬유(실)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정정희는 첫 개인전을 개최하고 난 15년 후인 1994년 현대미술관(무역센터)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개최한다. 그녀는 조각과 섬유의 접목을 한 걸음 더 밀고 들어간다. 공간이 그것이다. 그녀는 실로 면을 만들되 조각처럼 제작하여 공간감을 부여한다. 그 점에 관해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섬유예술 분야에서 공간을 만들어내는 시도를 한 것은 아마도 제가 처음일 겁니다. 생활 속에서 특정한 용도가 있어야 하는 공예품과 달리 제 작품은 실로 만드는 순수한 예술 작품입니다. 조각과 달리 색을 쓸 수 있고 회화와 달리 입체적일 수 있어서 더 좋고요.”

2011년 정정희는 김종영미술관에서 세 번째 개인전을 개최한다. 당시 그녀는 조각과 입체의 공간감을 설치작업으로 확장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작품은 ‘타피스트리’로 간주된다. 당시 김종영미술관의 정정희 개인전 타이틀이 ‘타피스트리의 거장, 정정희’였기 때문이다. 2011년 9월 23일자 서울신문에 실린 조태성 기자의 <색실과 만나 평면성 벗다>라는 타이틀의 기사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밥 먹을 자리를 잡는데 구석자리로 간다. ‘이렇게 환대받는 게 처음이라서….’ 영 어색한가 보다. 한마디 더 붙인다. ‘오래 사니 좋네요. 저에게도 이런 자리가 다 마련되고….’ 그럴 법도 한 게 천 작업은 예술로 인정받지 못했다. 10월 20일까지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에서 ‘타피스트리의 거장, 정정희’전을 여는 정정희(81)는 달랐다. ‘거장’이란 호칭에도 ‘타피스트리’(Tapestry)라는 말이 불만이다. 그보다 ‘패브릭 아트’(Fabric Art)로 받아들여지길 바란다고 했다.”

정정희의 작품은 서울시립미술관과 서울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각과 섬유를 접목시킨 그녀의 ‘패브릭 아트(Fabric Art)’는 대한민국 조각계와 섬유공예계에 중요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작품이 여전히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안타깝다. 



깃털II, 1986, 170x150cm



세컨드 에비뉴 갤러리(2nd Avenue gallery)

조각과 섬유를 접목시킨 정정희의 ‘패브릭 아트(Fabric Art)’가 2018년 새해 벽두에 세컨드 에비뉴 갤러리에서 열린다. 세컨드 에비뉴 갤러리는 미술컬렉터였던 최기영 씨가 2016년 서초구 방배동에 개관했다. 세컨드 에비뉴 갤러리는 주로 국내 미술계의 신진작가를 발굴하는데 노력해 왔다. 그러다 2017년 10월 중구 필동으로 이전하여 이전 개관전 3인전(최병소, 김태혁, 이지현)을 개최했다. 세컨드 에비뉴 갤러리는 앞으로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원로작가와 중견작가 그리고 신진작가들을 발굴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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