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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룸비스타 기획 초대전 RIM, HYO

  • 전시분류

    개인

  • 전시기간

    2017-07-01 ~ 2017-09-30

  • 참여작가

    림효

  • 전시 장소

    현대블룸비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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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림효 작가 개인전 일정



▢ 7월1일(토): 개막 

▹4:00-4:30 : 식전공연

일점 김환수 선생(대금 연주, 중요무형문화재 제45호 이수자)

향산 강재일 교수(시조창, 무형문화재 제10호 이수자)

▹4:30-5:30 : 

작품소개: 김찬호(경희대교육대학원 주임교수): 共, 觀, 緣을 말하다.

작가 인사: 림효 

축가: 테너 이시환(주, 명우산업대표 이사, 강남뮤지컬 레미제라블, 이토오히로부미 등 다수 출연)

▹5:30-7:00: 전시관람 및 뷔페 만찬


▢ 7월22일(토):  

▹5:00-5:30 : 공연

▹5:30-6:00 : 작품소개

김찬호(경희대교육대학원 주임교수)

공(共), 관(觀), 연(緣)을 말하다


▢ 8월12일(토): 

▹5:00-5:30 : 공연

▹5:30-6:00 : 작품소개

김찬호(경희대교육대학원 주임교수)

공(共), 관(觀), 연(緣)을 말하다


▢ 9월2일(토): 

▹5:00-5:30 : 공연

▹5:30-6:00 : 작품소개

김찬호(경희대교육대학원 주임교수)

공(共), 관(觀), 연(緣)을 말하다





<A branch-fused tree1 연(緣)>, 124cm x 158cm, 선지, 수묵, 옻, 2016 



- 공(共)․관(觀)․연(緣)을 말하다 -


김찬호(경희대교육대학원 주임교수)



세상을 보는 창(窓)


“꽃을 보려거든 그림으로 그려서 보아야 해

그림은 오래 가도 꽃은 쉬이 시들거든

더더구나 매화는 본바탕이 가벼워 

바람과 눈 어울리면 아울러 휘날리네.

이 그림은 수명이 오백 세 갈만하니

이 매화 보노라면 응당 다시 신선되리.“

……


이 시는 추사가 지인의 매화그림을 보고 지은 <見梅畵圖>이다. 자연속의 꽃은 쉬이 시들지만 그림으로 남기면 수백 년을 간다. 이는 그림의 효용성을 말한 것으로 화가는 그림을 통해 세상과 소통한다. 일반적으로 사물을 인식하는 방법이 날것 그대로 인식하지 않고 그림이라는 프레임을 통해서 사물을 인식하게 된다. 그래서 그림이 중요하다. 우리는 그림을 배우지 않았어도 자기도 모르게 그림을 통해 사물을 인식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렇듯 화가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들을 결정짓는데 중요한 키워드를 던져준다. 화가는 단순히 그림을 통해 현상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어떻게 바라 볼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우리는 림효의 작품을 통해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지 살펴본다.


1970년대 이후 한국미술은 구상과 추상, 구세대와 신세대, 국전과 전위 등 끊임없는 대립상황 속에서 한국적 정체성을 모색하고 새로운 미술양식을 추구한다. 이후 한국적 정체성을 추구한 모노크롬 미술을 보여준다. 1980년대의 이후 수묵화 운동, 미술의 사회참여를 강조한 민중미술 등이 등장해 다원화의 길을 걷고 있다. 1986년 과천국립현대미술관 개관 기념전에 <한국 현대미술의 어제와 오늘전>에 출품하면서 일찍이 화단에 이름을 알린 림효는 그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림효는 1983년 첫 번째 개인전을 시작하였다. 20대 후반 대상의 사실적인 재현에서 벗어나 반추상적 표현을 선보였던 <wall>작품에 주목한다. 그는 1985년 배를 삼킬 것 같은 풍랑 속에서 홍도의 절경을 보고, 실경산수의 회화관을 탈피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실성보다는 보이지 않는 비대상적인 데에서 말할 수 없는 예술적 감흥을 발견한 것을 <wall>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수묵이 갖는 표현적 특징을 살리기 위해 발묵(潑墨)과 파묵(破墨)을 과감히 구사함으로써 자연스러운 공간의 확대를 통해 수묵추상을 만들고 있다. 발상의 전환은 바로 대상에 대한 경외감에서 나온다. 그의 작품 소재는 멀리 외부 환경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모든 자연의 물상을 충실히 관찰하는데서 얻고 있다. 보는 것이 아닌 느끼는 것을 그리고자 하였다. 

 

1990년 이후 그의 작품은 작품의 보존력과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 새로운 조형언어를 실험한다. 추상적 표현, 도(陶)판을 이용한 부조의 표현, 종이판을 이용한 표현, 전통한지의 특성을 이용한 표현, 화면 재질에 대한 연구와 천연염료의 연구는 그의 작품세계를 넓고 깊게 만든다. 또한 종교, 철학, 문화에 대한 관심이 다양한 조형언어와 상호침투 되어 작품 속에 드러나고 있다.


끊임없이 자연의 물상의 근원을 찾아 현대 추상화에 독자적으로 접목시키는 조형적 실험의식과 오토프린팅, 번지기, 등의 다양한 기법의 골격은 항상 필묵이다. 형체의 골격 또한 역설적이게도 물상을 떠나지 않고 있으면서 떠나 있다. 그의 작품에서 현상을 보면 현상이 보이고, 이미지를 보면 이미지가 드러난다. 또한 림효의 작품 속 이미지는 고대 암각화에 보이는 도상을 연상시키고 한편으로는 풍경이나 동물, 사람으로 읽히기도 한다. 자연과 인간의 움직임을 흔적으로 기록한 일종의 문자로도 읽혀진다. 


림효는 2012년에 발표한 에세이 『그림 속에 놀다』의 ‘그림 인생’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림은 끝이 없는 정진의 세계다 섣부른 자만이나 교만으로 결과를 얻으려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단순히 기술만을 연마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삶속에 있는 가장 근본적인 의식을 깨워 기도하는 마음으로 아름다움을 심고 예술의 향을 피워야한다. 그래서 아름다운 예술의 향기를 전달해야 한다. ……그림처럼 격을 가꾸는 지혜는 흔치않을 것이다. 인생을 굴리는 바퀴는 수없이 많다.” 


그는 여기에서 문자향 서권기에 바탕한 ‘기도양진(技道兩進)’으로 나아가야 됨을 말한다. 이런 기능적 숙련과 세상에 대한 이해가 함께 성숙되어 아름다운 예술의 향기를 전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인생을 굴리는 바퀴는 수 없이 많다. 작가는 그림을 통해 인생의 수레바퀴를 굴리고 있다. 


림효는 전통적 필묵이 갖는 현대적 감각을 발견하고 전통성과 현대성를 아우르는 독창적인 창작세계를 구축하였고, 장르와 소재를 넘나드는 끊임없는 실험으로 한국 현대미술사에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그는 한 가지 방법에만 얽매이지 않고 늘 새로운 양식을 개척해나간 밑바탕에는 신화와 종교 등 전통적인 사상이 자리하고 있으며 20세기 현대미술에서의 포스트모던적 영향도 작용하고 있다.  ‘공(共)·관(觀)·연(緣)을 통해 그가 찾고자 하는 길 없는 길을 따라가 보자. 



공(共)․관(觀)․연(緣)을 말하다.


공(共, together)


공(共)은 ‘함께’라는 의미를 가진다. 공(共)의 한자 어원은 네모난 옥을 두 손을 들고 있는 모양이 변한 모습이다. 전통적으로 동양에서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을 믿었기 때문에 하늘에 제사 지낼 때는 둥근 옥을 바치고 땅에 제사 지낼 때는 네모난 옥을 바쳤다. 그런 이유에서 같은 신을 섬기는 부족끼리 제사를 지냈기 때문에 ‘함께, 같이’ 라는 의미가 파생되었다고 한다. 우리말에서도 ‘함께’는 동반성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공심(共心)>, 274cm x172cm, 수제한지, 옻, 2017



작품 <공심(共心)>은 ‘함께’라는 의미를 잘 보여준다. 작품의 소재인 수제 한지를 만들고 그 한지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질감의 특성을 찾아내어 팽창과 수축,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몇 년에 걸쳐 반복하면서 하나의 작품이 만들어진다. 이 작품은 바로 느림의 미학을 보여준다. 느림이란 단순히 속도를 느리게 하는 것이 아니다. 주변의 다양한 변화를 관찰하고 이해하는데서 출발한다. 슬로 철학은 균형(均衡)이라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느린 것이 아름답다』의 저자 칼 오너리는 “음악가들이 말하는 ‘템포 기우스토(Tempo Giusto'알맞은 속도'를 뜻하는 음악용어)’ 곧 적당한 속도로 사는 삶을 추구”하자고 말한다. 작가는 태양과 달과의 만남, 바람과 이슬의 만남, 두드림과 발림의 만남, 한지와 옻칠과의 만남, 선과 면의 만남, 시간과 공간의 만남, 이렇게 작가는 수년에 걸쳐 <공심(共心)>과 만나고 있다. 그 지난(至難)의 과정을 거쳐 하나하나의 개별이 만들어지고, 수많은 개별들이 모여 하나가 된다. 작가는 이 개별들의 하모니를 위한 지휘자요 개별성을 연결시켜주는 매개자이다. 그렇게 더디지만 자연의 변화와 <공심(共心)>이 만나 자연으로 돌아간다.  <공심(共心)>은 바로 작가가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찾고자 하는 길 없는 길이다.




<고집멸도(苦集滅道)>, 227cm x 94cm, 선지, 수묵, 옻, 2017


인생에는 고통이 따른다.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깨달음의 경계에 도달하려고 끊임없이 정진해야 한다. 작품 <고집멸도(苦集滅道)>는 바로 우리의 삶 자체를 노래한다. 작품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푸른색 바탕에는 신묘장구 대 다라니경이 스며들 듯 녹아있고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된 뒤 중생을 위해 맨 처음 설법한 고집멸도가 펼쳐져 있다. 이 작품은 의도하지 않음 속에서 필묵이 지나간 자국에도 희미한 색의 흐름에도 하나하나 저절로 나타나 화면에 피어오르는 향기가 되고 있다. 이거다 하고 드러내지 않아도 여러 번의 누름의 과정을 통해 저절로 우러나온다. 

심연(深淵)에서 발원되는 물은 깊이와 자연의 햇살이 더해져 푸른색이 된다. 이 작품에서 보이는 푸름은 바로 현색(玄色)이다. 현(玄)은 블랙(black)이 아니라, 끝이 없다는 오묘함의 극치를 말한 것으로 모든 것의 출발점이며, 모든 것을 포괄하고 있는 것이 현이다. 따라서 여기에서의 현은 박(樸)으로 본래의 대상, 본연의 모습을 의미한다. 장자에 “박산즉위기(樸散則爲器)”라는 말이 있다. 소박한 통나무의 모습이 변하여 구체적인 기가 된다는 것이다. 작가는 수없이 반복하는 붓질을 통해 기존의 모습은 사라지고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 낸다. 그 반복이 모여 형상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렇듯 작가는 생성과 소멸의 생명의 순환원리를 <고집멸도(苦集滅道)>에 담아내고 있다. 


관(觀)



관(觀)의 사전적 의미는 ‘보다’이다. 불교 수행법의 하나로 진리의 대상을 자세히 관찰하는 법을 말한다. ‘보다’라는 한자는 시, 견, 관, 찰이 있다. 시(視)는 단순히 고개만 돌렸는데 저절로 보이는 것으로 1차적 행동으로 눈의 감각이 사물에 닿는 행위를 말한다. 견(見)은 관심을 갖고 보는 것으로 눈으로 본 현상과 사물이 머리로 인식되는 과정을 말한다. 관(觀)은 보이는 사물에 보는 이의 주관적 생각이 들어 있는 것을 말한다. 찰(察)은 어떤 사물의 본질을 알려고 꼼꼼히 살펴보는 것을 말한다. 


<관(觀)>, 50x70cm, 선지, 채색, 석채, 2016



한마음선원 대행 큰 스님은 관(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역설하고 있다.

 “마음의 눈으로 항상 자기를 지켜보는 것이 관(觀)이다.”

나와 타자가 융합되면 자기를 구원할 수 있고 남을 구원할 수 있다. 닥쳐오는 모든 것을 근본자리에 관함으로써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관은 과거, 현재, 미래와 삼라만상의 시공간성을 직관하고 현실의 삶에 반영하라는 의미이다. 파랑은 과거, 빨강은 현재, 노랑은 미래를 상징하는 색이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대행스님이 설파하신 관의 의미를 화면에 담아내고 있다.

우리가 관찰자로서 자연을 보듯이 자연도 우리를 똑 같은 시각으로 본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상보상성(相補相成)의 순환적인 의미를 보여준다. 그동안 인간의 입장에서 자연은 지배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젠 돌려주어야 한다. 자연과 인간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공생(共生)의 관계이다. 






연(緣)

연(緣)은 불교에서는 모든 것이 생성하거나 소멸하는 데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고 보고, 생멸에 직접 관계하는 것을 인(因)이라고 하며, 인을 도와서 결과를 낳는 간접적인 조건을 연으로서 구별한다. 인연은 <인과 연>과 <인으로서의 연>의 두 가지로 해석되는데, 이 양자를 연(緣)이라고 한다.

작품 <A branch-fused tree1연(緣)>은  두 나뭇가지가 서로 하나가 된다는 의미에서 연리지(連理枝)라고 한다. 나무는 그 고유한 실체와 형태로 신앙심을 불러일으킨다. 나무 그 자체가 아니라 나무를 통해 드러내는 것, 나무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가 경외(敬畏)의 대상이다. 나무는 수직으로 자라고 수없이 죽고 부활한다. 그래서 나무는 아주 옛날부터 삶을 가리키는 기호로, 세계를 가리키는 상징으로 표현되어져 왔다. 이 작품에서 보이는 두 개의 나무는 가지가 서로 맞대어 있다. 두 그루의 나무를 둘러쌓고 있는 연결망은 유기적이다. 하나하나의 돌이 모여 성곽을 이루듯이 전체가 하나고 하나하나가 모여 전체를 이룬다. 

아사코 와의 짧은 만남과 이별을 주제로 한 피천득의 수필 인연의 마지막 구절이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우리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진다. 그 중에는 내 곁을 잠시 스쳐가는 인연도 있을 것이고 아주 오랜 시간동안 곁에서 함께 하는 인연도 있을 것이다.

림효는 에세이 『그림 속에 놀다』의 ‘인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A branch-fused tree2연(緣)>, 100cm x 70cm, 선지, 수묵, 옻, 2016 



“일상을 살아가며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지혜를 배운다. 짧은 생각으로 남을 판단하지 말고 긴 생각으로 남을 재지도 말라.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삼라와 나의 인연이거늘 어찌 나를 위해서만 나를 살게 하랴. 생로병사가 내 뜻이 아닌 것을 다만 사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니 삶을 노래하자. 시간의 수레바퀴에서 본체가 탄생하니 그것은 다시 소멸이다. 탄생과 소멸이 거듭되는데 무엇을 얻고 버림이 있겠는가 하루를 만나 살더라도 깊은 인연의 늪에서 빠져 나온 것이니 그 마음을 아름답게 받아주자. 너와 내가 본래 하나였으니 살아가는 시간이 인연의 연속이다.” 


수레바퀴는 진보를 상징한다. 옛 적의 말의 발자취를 따라 길이 만들어지고 그 길을 이용해 수레가 만들어지고 길을 따라 다양한 문화가 형성되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이루어진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작가는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인연으로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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