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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정 회화전_mat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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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 Not Ever Park Here, 한지에 먹, 75.5x60.6cm, 2023


[전시 서문]


김소정은 사물의 온전한 형태만을 그릴 뿐, 그것의 본질은 설명하지 않는다. 집결한 군중을 그리지만 표정은 그리지 않고, 그들이 쥐고 있는 깃발과 현수막은 그리되 외침과 주장은 비운다. 그의 헌신적인 먹 선은 구체적인 현실로 향하지 않는다.


아무도 기억에 남기지 않을 것들, 없었던 것처럼 사라질 일들을 이러한 방법으로 되짚어보는 이유는 내가 목도한 것들이 어딘가 어긋나 보이고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바로잡는 것은 작가의 몫이 아니기에 그저 형태를 분해하고 다시 배치하고 가려보며 이 흥미로운 불편함을 작품이라는 창을 통해 내보일 뿐이다.


강한 전달은 이해와 해석의 범위를 좁힐 수 있다. 때로는 은유적인 것이 더 예리하게 새겨지고 오래 기억되곤 한다. 없어도 그만인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무엇’이라 기록하는 행위는 이 시대에 대한 김소정의 나지막한 발언이다.


이영지 (OCI미술관 큐레이터)


[평론]


김소정과 정조의 군상


김준혁 (미술연구자)


참사와 재난, 전쟁과 분쟁, 긴장과 무장, 범죄와 비리, 차별과 착취, 고독과 중독, 빈곤과 격차. 우리 삶의 망가진 곳은 늘어만 가는데, 고치는 사람보다 망가뜨리는 사람이 많다. 내버려 두면 영영 망가지기에 고치는 사람들은 거리로 나서 군중을 이룬다. 마음속에 의지를 품고, 머릿속에 문제를 채우며, 귓속에 목소리를 담고, 손안에 해법을 쥔 채, 입으로 해결을 말하며, 몸으로 실천을 행한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말과 우리 사회는 몸과 마음이 무너진 사람들이 발전시킨다는 말에 어울리는 사람들이다. 군중은 곧 우리 조국과 사회를 사랑하여 발전시키는 사람들인 것이다. 1894년 동학 농민과 1919년 조선 민족 그리고 1948년 제주 도민과 1980년 광주 시민은 모두 그런 군중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반란이나 소요를 일으키는 세력으로 몰려 죽임을 당했다. 서로 다른 때와 다른 곳에 살았지만,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시선은 한결같았다. 이 한결같은 시선은 지금도 여전하다. 여전하며 강력하다. 강력하게 외면하고 왜곡한다. 법률로 죄를 씌우고 벌금으로 짐을 지운다. 배척하고 고립시킨다. 그래서 김소정의 군상 속 인물은 얼굴을 가렸다. 자칫하면 고치기는커녕 죄와 짐만 얻은 채, 배척과 고립 속에 쉬이 놓이고 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군중은 계속 거리로 나선다. 그리고 김소정은 그런 군중을 바라본다. 바라보는 일은 슬픔과 노여움을 가진 이유를 살피는 일이자, 몸과 마음이 무너진 이유를 살피는 일이며, 망가진 곳을 고치기 위해 내딛는 첫걸음이다. 김소정은 바라보았기에 첫걸음을 내디뎠고, 그림으로 옮겼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계속 나아간다면 틀어진 시선을 바로 잡을 것이고,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상과 경청해야 할 소리를 짚어줄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정조와 닮았다. 정조는 어릴 때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떨어져 지냈다. 어른일 때는 아이를 잃고 연인도 잃었다. 자신의 즉위를 반대하거나 변화를 반대하는 세력. 심지어 자신을 죽이려는 세력 한 가운데서 오랜 시간 살아남았다. 배척과 고립 속에 살았을 것이다. 슬픔도 알고 분노도 알았을 것이며, 몸도 마음도 무너진 적 있을 것이다. 그에게 세상은 망가진 세상이었을 것이다. 나라의 주인인 양 행세하지만, 제 도리는 못하는 수많은 관료를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정조는 나의 나라를 뜻하는 아국이 아닌 백성의 나라를 뜻하는 민국이란 말을 썼다. 나라의 주인을 고쳐 잡는 말이었다. 재위 기간 대비 가장 많은 능행을 하며 어떤 임금보다 백성을 자주 만났다. 과거와 달리 행차를 모두가 볼 수 있게 했고, 억울한 일이 있다면 길을 막고 호소할 수 있게 했다. 군주로서 정조는 자신과 같은 군중을 보았다. 그렇기에 망가진 곳을 발견할 수 있었고 또 고칠 수 있었다. 국가가 아이를 돌보게 했고 노비와 차별을 없앴다. 상권을 독점하지 못하게 했고 누구나 장사를 할 수 있게 했다. 학문만큼 무예를 중시하여 방어에 능한 성을 짓고 전투에 능한 군을 키웠다. 그리고 어느 때보다 많고 다양한 백성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겼다.


과거의 전승과 시대의 변주


김소정은 정조 때 그림을 참고한다. 바라보는 대상이 같기 때문이다. 이때 묘사나 장황 방법은 참고하기 쉽다. 바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족자, 책자, 병풍’으로 나누어 장황한 ‘초상, 도상, 군상’이 가지는 구성의 이점은 집중하지 않으면 참고하기 어렵다. 이 점에 집중해 보자. 정조 때 그림은 화성 능행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어진, 의궤, 계병’이라는 세 가지 방식으로 나누어 그렸다. 어진으로 군주의 의지를 나타내고, 의궤로 행차의 방식을 전달하며, 계병으로 행사를 기념한다. 목적이 다르기에 방식도 달랐다. 덕분에 우리는 화성 능행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여러 관점으로 살필 수 있다. 어진으로 중심 인물을 깊고 섬세하게 살필 수 있고, 의궤로 주변 인물과 여러 사물을 분명하고 정확하게 살필 수 있으며, 계병으로 모든 ‘인물, 동물, 사물, 건물, 지형, 산세’를 다양하고 실감 나게 살필 수 있다. 하나의 주제와 그림 간 수직적 연결이 긴밀하고, 세 가지 다른 방식 간 수평적 연결도 긴밀하다. 김소정은 현재 대주제가 넓고 소주제가 약하다. 그래서 낱장과 병풍으로 나눈 그림 간 연결이 비교적 긴밀하지 않다. 어진 속 임금은 의궤와 계병에 나타나고, 의궤 속 행렬은 계병에 나타난다. 세 가지 그림은 공통으로 등장하는 인물 덕에 서로 연결된다. 이 점을 참고한다면 구성이 조화로운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며, 양식의 전승뿐 아니라 구성의 이점까지 취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어 다른 선례와 비교해 보자. 조선시대 채색 안료의 수는 26색이다. 정조 때 〈화성능행도〉는 이 중 12색을 썼다. 인물의 형태는 80종류다. 당대 최고의 화원이 7명 이상 붙어 1년 넘게 그렸기에 다채롭고 다양하다. 하지만 관료만 그렇다. 백성은 겨우 넷으로 추릴 만큼 단일하다. 이응노의 군상 〈3·1 만세운동〉은 1945년의 그림인데, 150년이 지나도 백성의 모습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들에게 다채로움과 다양함을 안긴 화가는 서세옥이다. 1986년에 그린 〈3·1 만세운동〉으로 14가지 색채와 57종류의 형태를 주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군상은 점차 하나의 색채로 동종의 형태를 반복해 그리는 방식으로 변한다. 일본의 침략과 미소의 냉전이 민족을 말살하고 분열시킨 때를 겪었기 때문이다. 하얀 바탕에 검은 묵색으로 엮은 수많은 인물. 이는 사라지고 갈라진 민족을 되살리고 엮어내는 표현이었다. 이러한 단일성은 정권을 찬탈한 군인에 의해 획일성으로 바뀌었다. 이에 하성흡은 〈화성능행도〉를 참고하여 박승희 열사의 장례 행렬을 그렸다. 이는 단색으로 그린 수묵화가 아닌 여러 형태와 다색으로 그린 채색화였고, 획일화에 시달리는 군중에게 다채로움과 다양함을 주는 회화적 시도였다. 이러한 선례는 후대에 좋은 참고이자 기준이다. 하지만 이르지 못하면 그에 준하는 평이 뒤따른다. 김소정은 서세옥이나 하성흡과 달리 군중에게 색을 입히지 않았다. 군상 속 인물이 얼굴을 가린 이유와 같을 것이다. 그러나 칠해야 한다. 단일성을 강조할 시대가 아니며, 선례에 비해 묘사 수준이 낮아 보이기 때문이다. 과거와 달리 현재 안료의 수는 최소 60종이다. 이러한 이점을 살려 색채를 늘려야 한다. 그러면 두 가지 변별력을 얻을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속한 사회 구성원은 저마다 각양각색의 지향을 가졌다.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그래서 군중으로 뭉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결국 뭉친다. 뭉쳐야만 풀 수 있는 중대하고 시급한 문제 때문이다. 형태의 다양함에 색채의 다채로움을 얹힌다면 선례에 준하는 표현력을 지닐 것이고, 나아가 저마다 다른 사람들이 하나로 뭉칠 만큼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전달력을 지닐 것이다. 추가로 보존력이 필요하다. 어렵게 얻은 표현력과 전달력을 지키는 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낱장은 책이나 첩으로 장황해야 하고 병풍은 더욱 튼튼해야 한다.


탕탕평평 평평탕탕


이쪽 아니면 저쪽, 민생이 아닌 정권, 승자 독식과 패자 절멸. 우리는 탕평을 잃은 조선시대 붕당 정치가 세도 정치로 변하여 백성의 삶을 영영 망가뜨렸음을 안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정당은 거대 양당으로 나뉘고 정책은 사람보다 자리를 우선하며 정권은 승자의 목에 화환을 걸고 패자의 손에 수갑을 채운다. 김소정의 눈은 어느 한쪽 군중만 바라보지 않는다. 둘이면 둘을 보고 셋이면 셋을 바라본다. 지금 우리나라는 김소정처럼 눈이 귀한 사람과 균형 잡힌 발언이 필요하다. 작가의 발언은 작품이다. 작품의 표현력과 전달력은 곧 발언의 힘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선례의 온전한 전승과 이점을 취한 시대적 변주를 바랐다. 두 가지 색채와 형태만 남은 우리에게 작가의 작품이 다시금 다채로움과 다양함을 안겨주길 기대하며. 이상으로 김소정의 군상 비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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