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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의 데칼코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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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

작업 중 실수로 아크릴 색이 칠해진 면이 서로 붙었다가 떨어지면서 구멍이 만들어졌다. 페인트칠, 석고보드가 떨어져 내부 구조가 보이는 낡은 벽을 봤을 때, 윤곽선을 흉내 내지 않고 어떻게 재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었는데, 그리는 것이 아니라 실수의 과정을 통해서 방법을 발견하게된 것 같다. 칠이 벗겨진 자국이나 물감이 붙었다가 다시 떨어지며 만들어지는 우연적인 형태는 규칙이 없고 따라서 패턴을 읽지 못하게 만들어 어떤 의미를 만드는 것을 차단한다. 그리고 같은 공간 안에서도 빗겨나 이질적인 공간을 만들어버린다. 하지만, 뜯긴 벽지같이 어떤 틈을 만들고 규칙을 허물어버리는 우연적 형태는 오히려 형태를 있는 그대로 보게 만들고 그리는 것 너머의 어떤 행위의 가능성과 힘의 작용 등을 상상하게 만든다.
물감이 칠해진 두 면의 접는 방법과 건조시간, 구김의 정도 등을 계산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벽히 통제할 수 없는 환경적 요인을 통해 우연적 형태를 얻고자 했다. 그리고 그 우연의 형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형태의 빈틈에 색을 채우며, 작가의 행위와 우연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고자 하였다. 형태를 재현하지 않고, 우연이 만들어낸 형태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그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고 능동과 수동이 교차되는 과정을 연습하고자 하였다.



Décollage (붙어 있는 것을) 떼기, 뜯기
Décalage 1.(시간·장소를) 옮기기, 변경하기 2.(시간·장소의) 차이, 간격 3.[비유] 차이, 괴리
Décalcomanie 전사술(轉寫術)

<틈의 데칼코마니> 틈은 어떤 힘의 관계에 의해서, 계획되지 않은 우연적 형태로 만들어진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붙였다가 다시 떼고 (décollage),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기는 (décalage) 과정에서 저절로 발생하는 우연적 형태, 현실의 무언가를 연상시키거나 어떤 의도가 담겨있지 않은 순수한 형태를 만들고자 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틈을 다시 재배치 (décalcomanie) 해봄으로써 보는 것과 보여 지는 것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의 관계를 나타내고자 하였다. 동일한 것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기는 것은 지금의 이미지 재생산 과정과 흡사하게 여겨진다. 여기서 저기로 퍼 나르고 게시되며 무한복제 되는 것으로써 이미지의 가치가 정의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전시서문>

작가의 의도 혹은 우연이라는 틈새로부터 발견되는 시선에 대하여  

회화를 설명하는 고전적 이론 중 하나인 미메시스의 직접적 의미는 복제를 뜻하지만 예술 개념의 역사를 추적해 보면 이는 우리말의 복제 이상의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본질적으로 회화가 대상을 평면 위에 옮기는 과정에서 이미지 복제가 일어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본다면 이는 예술가의 역할에 대한 이해를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서수향 작가는 작가로서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대한 고찰과 실험으로부터 그의 작업을 시작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그가 제시하는 ‘틈의 데칼코마니’라는 주제는 이미지의 복제와 그 진행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종의 이미지 손실 혹은 변형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는 원형 이미지와 복제 이미지 사이의 차이 또는 간극, 다시 말해 이미지의 틈새를 파고들어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작가는 본래 순수한 형상을 만들고자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때 작가는 그 순수한 형태란 우연적이며 현실의 무언가를 연상하게 하거나 어떤 의도가 담겨지지 않은 상태라고 전제하고 있다. 작가는 이 지점에서 작가의 의도에 의한 것과 우연적인 것, 재현적인 것과 비재현적인 것, 보여 지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등의 관계를 드러내고자 하였다고 말한다. 이것은 예술가의 작업이란 결국 이 양쪽 간극 사이 어딘가에 있을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연적인 것을 추구하여도 그 과정에는 어느 정도 작가의 의도에 의한 작업 진행은 필연적이기 때문이며, 비재현적인 것을 그리고자 한다고 할지라도 인간은 어느 순간 자연이든, 인간의 내면이든 혹은 질서든, 혼돈이든 어떤 무엇인가와 상동적인 작업, 즉 일종의 재연행위를 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화한다는 것 역시 그 말 자체는 아이러니하고 모순적인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그 간극 사이에서 순수한 형상이라는 지점을 향해 그의 작업을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작업이 도구적이고 수단적이며 지시적 의미체계의 테두리 안에 갇혀 있는 것처럼 보이는 틀에 박힌 예술가 혹은 예술로부터 탈주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작가는 이러한 길을 가는 방법으로 우연성과 이질성을 선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작업에서 이미지를 만들고 그것을 다시 떼어내고 뜯어내는 것과 같은 작업을 통해 우연히 생기는 형상을 만들어내고 그형상의 빈틈에 색을 채우고 칠하는 과정을 통해 이질감을 증폭시킨다. 그리고 이와 함께 이러한 작업 가운데 부수적으로 생성되는 것들을 그의 작업 안으로 가져오고 있다. 작가는 이렇게 함으로써 자신이 그려낸 것, 의도했던 것이 아니라 의도치 않았던 것, 가시화 할 수 없는 것, 지시적 의미체계를 벗어나 이성이나 논리가 지배할 수 없는 영역들이 그의 작업 가운데 드러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서수향 작가의 작업이 모순적 간극의 틈 사이에서 작가가 의도한 바를 어느 정도 성취 했는  가는 쉽게 평가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의도적이고 작위적인 것과 우연적인 것을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며 이는 어디까지가 의식적인 행위이고, 또 무엇이 무의식적이거나 우연적인 것인지 그리고 판단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수향 작가는 예술 창작에 있어서 의식적이고 작위적인 행위들이 만들어내는 것의 한계를 제시하면서 그 너머의 세계를 향하는 길을 작업가운데 모색하고 있다는 것은 예술가에게 예술 창작과 예술의 개념이라는 영역에 본질적이면서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지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본다. 자연 그리고 인간, 그 관계로부터 예술가의 시각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보게 된다면 예술은 능동적이야 할까, 아니면 수동적이어야 할까? 이때 작가의 의도가 중요한가, 우연이 중요한가? 서수향 작가의 작업은 이와 같은 근본적 질문들 속으로 우리의 시선을 더 끌어들이는 묘미가 있다.

이승훈 (미술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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