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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억 : 아침 꽃을 저녁 줍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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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전시정보

전 시    제 목    복합문화공간에무 기획초대전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 이호억
전 시    기 간    2019년 6월 4일(Tue) - 7월 5일(Fri) 
관 람    시 간    오전 11시 - 오후 7시 *매주 월요일 정기휴관
전 시    장 소    복합문화공간에무 B2 갤러리

작가와의 대화    2019년 6월 21일(Fri) 3pm


ㅣ전시서문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
한국화가 이호억은 젊다. 시퍼런 에너지를 굴하지 않는 ‘투혼’으로 쏟아낸다. 그 과정에서 특이점(비약)이 발생했다. 그 작품은 『시간과 움직이는 것과 살아있는 것』으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공모전 1회 대상(2017)을 수상했다. 이후 생산된 <붉은 얼굴> 시리즈부터는 놀랍게도 중앙유라시아대륙을 풍미했던 ‘요철법’(凹凸法)을 표현하고 있다. 본 공간은 이에 주목해서 전시회를 기획했다.
고려불화에까지 구사된 서역화가 울지을승의 ‘요철법’을 말한다(비평문에 상술돼 있음). 학계의 견해가 반영된 담론이 필요해서 이 분야 전문학자의 발표 후 ‘작가와의 대화’ 시간을 갖고 자유롭게 의견을 나눈다. 한편, 한국화가 contemporary art에서 어떻게 평가 또는 해석되는가에 대해 뉴욕 현장에서 활동하는 전문가의 의견을 듣는다. 
본 타이틀은 루쉰의 산문집 제명에서 빌려온 것이다. 지난 일을 되돌아보며 ‘투혼’의 현재성을 벼리는 내용인데, 이 점에서 작가 이호억을 새롭게 조명할 전시 제목으로 취했다.


ㅣ작가노트

사방이 가로막힌 이곳에서 나아갈 수도 돌아설 수도 없었다. 나의 고통. 억울함. 좌절. 망연자실한 상태에서도, 살아가고야 말겠다는 희망의 본능은, 시시각각 불쑥 나타났다. 하지만, 그것은 무력하게 발버둥치는 나의 절망적 상황만을 재확인시킬 뿐이었다.

위리안치(圍籬安置)랄까. 스스로를 유배시켰다. 인간관계 없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작은 영광 뒤의 작은 그늘이었겠으나, 절망감과 무력감은 나를 수면 아래로 침전시켰다. 희비의 감정이 바닥에 닿았을 때. 더 도망칠 곳이 없어졌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놀이가 시들해졌을 때. 비로소 내면을 마주하여 자의식이라는 실체를 마주 할 수 있었다. 

고립으로 마주한 산수풍경을 그리드 삼자, 나의 의식(생각)과 감정이 투박하게 걸려들기 시작했다. 마른 붓과 묵힌 먹으로 그리는 산수는 아주 느린 속도로 진행됐다. 입말과 문자로는 형언할 수 없는 존재와 상태를 그리는 일이 됐으므로, 그리는 자신 너머의 그려짐으로써 밝혀지기를 원하는 무엇에 주목하며, 선형들의 필연적 궤적을 찾아야 했다.

사생수묵 작업을 할 때면 온몸을 사용하는 편이다. 발가벗은 상태(의식 차원의 발가벗음)에서, 끌어올려진 마음을 팔과 손목뿐만 아니라 척추와 어깨를 동원해, 온몸으로 그린다. 금처럼 아껴 묻힌 먹을 온전히 부리기 위해서는, 온몸의 근육과 운동 에너지를 집약시켜 쏟아내야 한다고 믿는다.

종이를 대하는 나의 자세는, 인간의 피부를 대하는 것과 같다. 잘 찢어지고 다시 붙고 피나고 번지는 물성이 언제나 ‘피부’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 ‘피부’에 움직이지 않는 나무와 바위를 그리드 삼아 ‘사람의 표정’을 주름으로 잡아낸다. 고립과 침전을 통해서만 그 단계에 닿을 수 있다. 
고쳐 말하자면, ‘내면을 수면위로 끌어올리는 작업’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인적 없는 숲과 해안선에서, 작업은 아주 천천히 진행됐다, 내면의 피부를 매만지듯이.

제주로 떠나 사계의 비와 바람을 맞으며 망망대해를 바라볼 때면, 한줄기 해방감을 느끼기도 했다. 도피의 위안감와 고립감이 교차하고, 원망과 그리움의 감정이 뒤엉키는 상태로, 피신한 외부인의 삶을 살았다. 한데,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러한 상황이 야기하는 정신적 상태를, 그리기에 몰입하기 위한 조건이자 재료-형식을 위한 확장된 미디엄으로 삼고 있었다.

태평양의 외딴 섬에서, 수면 아래의 아름다움에 도취된 나머지, 현지인에게 빌린 물안경과 오리발에 의지한 상태로, 땅에서 먼 곳으로 둥둥 떠내려 간 적이 있었다. 대양이 선사하는 숭고와 그에 대비되는 미약한 나를 느끼며 하염없이 표류했다. 정신을 차리고 육지로 헤엄쳐서 돌아오는 중에 바닷물을 얼마나 마셨는지 모른다. 일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산호 군락의 별천지와 열대어가 기억에 남아 꿈틀거린다. 수면 위 인간계의 잿빛 현실과 죽고 싶다는 감정마저 망각하게 했던 수면 아래에서의 유영.

이후, 흔들리는 산수풍경과 박제된 듯 고정된 동물을 그려오던 나는, 화재(畫材) 모두를 수면 아래의 세계에 침전시키게 됐다.

고립과 유영과 침전의 시간은, ‘자아(주체)의 재발견’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이는 무명의 숲에서 겪었던 어둠의 시간과 유사한 맥락으로 작동하고 있다. 문명으로부터의 이격이나 박락은, 이전엔 몰랐던 관조(觀照)의 눈을 뜰 수 있도록 했다.

이호억

ㅣ전시평론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특이점’(비약)이 나타난다면, 이를 계기로 그 작가의 전시를 구성하는 것은 흥미롭다. 이번 이호억 전시는 그런 기획이다.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는 중국 문호 루쉰의 산문 제명에서 가져온 것이다. 여유 있고 아름다우며 사색적인 이 타이틀에는 그러나 벼린 비수가 숨겨져 있다. 그 루쉰의 비수는 시종일관 ‘명인이나 명교수들’, ‘청년들에 대한 지도적 책임을 진 선배’, ‘정인군자’를 향하고 있다. 이 점에서 이호억 작가의 전시 타이틀로 적절한 것 같다. 
이호억 또한 그들에게 팽 당하고 바닥까지 내려갔던 아픔을 고백하고 있다. 어느 겨울날 조부의 묘를 찾았다가 거기서 그 바닥을 차고 비약한 경험이 이 전시의 모티프를 이룬다. 눈 속에서 차가운 비석을 손에 댄 순간 손이 뜨거워지고 마음이 뜨거워지고 몸이 붉어진 체험을 했다고 한다. 이 이후에 작가는 변했다. 그 첫 소출, 그러니까 특이점이 된 작품이 『시간과 움직이는 것과 살아있는 것』(2017)이다.  
첫 소출을 경과하고서 <붉은 얼굴> 시리즈부터는 필선에 뚜렷한 특징이 나타난다. 요철(凹凸)로 특성화된다. 그리고 그런 붓질을 만든 욕망은 혼자서는 살아가는 것을 견뎌낼 수 없는 사랑이었다. <붉은 얼굴>은 ‘뿌리’를 그린 그림이다. 요철의 필선으로 그려진 ‘뿌리’는 작가에게는 미완의 사랑을 상징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랑의 욕망과 요철의 필선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잠시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자. 요철법의 화가로는 7세기 서역 사람 울지을승을 꼽는다. 그래서 요철법을 서역화풍이라고도 한다. 중국에 들어와 일세를 풍미하고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거장이다. 그는 불화를 그렸는데, 주인공뿐 아니라 화면 전체가 생생하게 살아나는 것이 특징이다. 
울지을승의 요철법은 간다라미술의 자장 안에서 태어났는데, 불상 중 유일무이하게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있는 『석가모니 고행상』이 원류일 것이다. 문헌에는 울지의 요철화법이 ‘굴철반사’(屈鐵盤絲)를 특징으로 한다고 했다. 마치 ‘철사를 구부려놓은’(굴철) 것 같고, ‘실이 말려있는’(반사) 듯하다는 것이다. 
아주 쉽게 ‘굴철’의 필선을 알 수 있다. 반 고흐 작품 『별이 빛나는 밤』, 『의사 가쉐의 정원』 등을 보면 된다. 철사를 감아놓은 것 같은, 나무와 산과 집과 그리고 별들이 있는 정경. 
이 고흐 그림은 요철법 중 ‘굴철’이 사용됐다. 『별이 빛나는 밤』이 어떻게 우리의 망막을 두드리는지 모르지 않는다. 그 앞에서 울지 않을 수 없다. 왜일까? 보지 못하는 우리 능력 너머의 진짜 자연으로 데려가기 때문이다. 고흐의 손에서 흘러나온 굴철의 필선을 통해 넘실대는 우주 에너지를 만나 내 몸이 반응하는 것이다. 이렇듯 사랑의 욕망과 요철법은 상관관계가 있다. 이호억은 요철법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는데, 그가 자기 필선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지 직접 들어보자.

 “나는 입자로 이루어진 분말가루를 으깨고 섞어서 아교액과 배합해 그린다. 선이라는 명료한 구분의 장치가 아닌 입자로써 살아서 움직이는 감정을 묻혀내려는 의도 탓이다.”(작가노트)

바로 이 필선이 요철법을 표현하는 것이다. (지식에 구애 받지 않고) 그만큼 몸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반증이다. 이 작가의 정념은 명료한 구분을 가져오는 선에서는 충족되지 않는다. 가루가 묻어나는, 캔버스가 아닌 종이 위에서 ‘살아서 움직이는 감정’을 표현하려는 작가다. 굴철이 주도하고 반사로 채워나가는 붓질에서 ‘생명의 음양 관계’를 보인다.
이호억이 제주도로 가서 ‘위리안치’로 감정이입한 추사에게서 위로를 얻고자 그 유배지를 절실한 마음으로 배회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모르나 <붉은 얼굴> 필선을 보면 추사의 『세한도』가 떠오른다. 허나, 형태는 비슷하지만 전혀 성질이 달라서 분별하는 게 중요해 보인다. 
위상수학에서는 구멍이 하나 난 도너츠는 같은 제과 종류인 찐빵과는 위상이 다른 반면, 도자기류인 손잡이 달린 컵과 위상이 같다. <붉은 얼굴>은 『세한도』와 같은 통속으로 눈에 들어오지만, 처한 처지도, 분노의 성질도, 추구하는 세계도, 표현기법도 전연 다르다. 추사 그림은 그 절창의 수준과 상관없이 보이지 않는 땅 속 뿌리의 욕망보다는 보이는 세계의 성쇠가 우리를 압도한다. 니체를 빌리면 디오니소스와 아폴론적인 차이다.
울지을승의 요철법은 고려불화에도 이어졌는데, ‘필의가 흐르는 듯하고 무척 섬려하다’고 원나라 탕후의 『화감』에도 나와 있다. 이로 볼 때 요철법은 불성을 표현하는 데 적합한 필법이 아닌가 한다.  
이호억은 불성이라는 북극성을 발견하고 망망대해를 항해하고 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태평양을 바라다보는 제주도에서 작업하고 있다. 바위를 움켜쥔 뿌리의 구애가 ‘오래된 미래’의 요철법으로 구체화되고 있는 한편으로, 작가는 더 벼린 비수를 품고 항해선 위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침 꽃을 저녁에 줍는다.

김영종(기획/작가)


■ 작가와의 대화

일시 : 2019년 6월 21일(Fri) 3-5pm

순서 : 1부 - 발표

                   중앙유라시아미술사에서 울지을승의 요철법_주수완 (고려대 교수, 문화재 전문위원) (30분)

                   왜 한국화에 주목하는가_김유연 (뉴욕 독립 큐레이터) (30분)

          2부 - 패널 토의

                   권영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역임, 실크로드미술 최고 전문가)

                   주수완 (고려대학교 교수, 문화재 전문위원)

                   김유연 (뉴욕 독립 큐레이터)

                   이호억 (전시 작가)

                   김영종 (기획, 비평문 작성)

          3부 - 청중과의 질의응답


*작가와의 대화 신청은 복합문화공간에무 갤러리 전시팀으로 문의 바랍니다.

(선착순) 02-730-5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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