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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라:실의 빈도

  • 전시분류

    개인

  • 전시기간

    2018-11-22 ~ 2018-11-28

  • 참여작가

    김보라

  • 전시 장소

    아트스페이스퀄리아

  • 유/무료

    무료

  • 문의처

    02-379-4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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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울 수 있는 것과, 비워야만 하는 것들의 빈도 


 정신이 가장 맑고, 깊을 때 느닷없이 떠오르는 환영이 있다. 그 환영의 대부분은 우리가 원하는 간절한 바램 들이 기억처럼, 떠오르는 것들이다. 엄청난 믿음과 절심함의 결과다. 물론, 진짜의 기억은 실제적인 경험에서 비롯되지만, 환영은 말 그대로 허상에서 시작된다. 어디에도 없었던 가상의 이미지며, 거짓의 경험이다. 오직, 그 환영을 본 사람만의 정신적 경험일 뿐이다. 하지만, 이 지극히 사적이면서도 증거 없는 정신적 경험이라는 이유로 과연,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서 무의미한 것으로 지워버릴 수 있는 것일까. 누구에게는 평생 잊혀지지 않을 만큼 강렬했을 그 경험들을. 미싱은, machine (기계) 에서 유래 되었으나, 특히 바느질 기계를 일컫는 말이다. 물론, 강점기를 거치게 되면서 일본말이 우리말로 굳어진 것 들 중 하나다. 재봉틀보다는 미싱이 더 빨리 와 닿는 관계로, 김보라 작가의 박음질로 그려지는 작품의 기법들을 설명 할 때, 미싱이라는 단어가 더 자연스러울 듯 하여, 재봉틀 보다는 미싱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이는, 그의 세밀하다 못해 신기가 느껴질 정도의 예민한 감정들로부터 살짝 거리를 두고 살피고자 하는 장치로 활용하고자 한다. 그 골동품 같은 미싱은 학교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던 우리 할머니가 유창하게 말 할 수 있는 유일한 외래어였으며, 가장 잘 사용했던, 말 그대로 기계였으니까. 김보라 작가는 일단,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과 섞이고, 섞는 것들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던 것 같다. 누군가 에게는 상처였고, 누군가 에게는 고통이었을,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어 줄 수 있는 능력. 일종의 미술 치료와 같이, 그들의 간절한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하도록 만들고, 그들이 자신도 모르게 그렸던 그림들로, 스스로를 관찰하고, 나아가 이 험한 세상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물론, 그것이 결국, 작가 자신도 모르게 그의 삶에 꾹꾹 도장이 찍히듯 새겨지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 그것이 작가의 재능에 있어 가장 큰 위험요소 이기는 했지만. 어찌되었든, 작가는 다른 이들의 상처가 아물 수 있음에 무한 긍정 에너지를 자신이 겪었던 수 많은 경험으로부터 끌어왔으며, 그것으로 그들의 상처를 위로했고, 자신의 위험요소를 감내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삶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을지에 대한 희망도 찾았다는 것. 돌덩어리처럼, 가장 강해 보이고, 무거워 보이는 것들도 결국, 아무것도 없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 김보라 작가가 지금까지 쉼 없이 미싱으로 그리면서, 깨달은 메시지인 것 같다.


무심코 지나던 길이다. 어제는 보이지 않던 돌멩이가 발길에 닿는다. 분명, 어제까지 이 길에 없었는데. 여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발견 된다는 것. 늘, 거기에 있었음에도 내가 의식하지 못했던 것들이 갑자기 나에게 발견된다는 것. 과연 그것들의 의미는 무엇일까. 너무 허무한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작가는 그것을 인연이라고 말한다. 온 세상을 돌고 돌아 내 앞에 온 것들. 그 세월이 얼마나 험 했을까. 그리고 그것이 왜 하필 내 앞이었을까. 작가는 나름 궁금했던 것 같다. 표면에 광택이 느껴질 만큼, 구르고 굴러 무뎌지고 닦여진 돌처럼, 작가는 그렇게 구르고 구르면서 찬란하지는 않더라도, 누군가에게 반짝 반짝한 이야기를 들려 줄 수 있지 않을까. 를 희망하고 있는 만큼, 할 수 있을까… 를 궁금해 하고 있는 것 같다. 당연한 질문이겠지만, 왜 미싱을, 박음질을 택했느냐고 물었을 때, 작가는, 처음, 미싱으로 박음질했을 때, 그 바늘이 뚫어내는 구멍이, 지금 여기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답답한 응어리를 뚫어버리듯 시원시원했다, 그래서 그 박음질로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뚫리는 동시에 매듭이 지워지는 그 순간이 매력적이었다고 했다.  이미 지난 우리의 삶을 보자면, 상처가 생기면 반드시 그것이 아물 수 있는 이러저러한 치유의 일들이 생겼었다. 그것처럼, 우리의 기억 속에서는 상처와 치유의 간극이 찰나처럼 느껴진다. 그런 의미로, 김보라의 (뚫림과 동시에 매듭이 지워지는) 미싱은, 상처와 치유를 순식간에 만들어낼 수 있는 아름다운 기계일 수 밖에 없다. 그러면서, 작가의 무의식적인 조형언어를 생성하는 또 다른 미싱(machine) 인 듯 하다.


작가의 미싱에는 계획이 없다. 오히려, 그의 미싱은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드로잉들을 죄다 파괴한다. 그 미싱의 바늘이 뚫어대는 구멍으로 이미 작가가 구성하려고 하는 형태와 질료들은 모두 다 빠져나가게 된다는 말이다. 일상에서 떠오르는 다양한 생각들을 특정한 색도, 형태도 없이 무심하게 그리고 난 후, 말 그대로 미싱이 움직이는 대로, 무의식적으로 박음질을 한다. 그리고 그 실이 그리고 있는 것에, 그 실의 메시지에 집중하면서, 작가는 실과 물감을 섞는다. 비빈다고 하는 말이 더 와 닿을 것 같다. 그럼으로, 물감과 실의 경계는 사라지게 된다. 비비는 행위, 즉 작가 특유의 조형언어로 형성될 수 있는 공간. 물질들의 경계를 없앨 수 있다는 것.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김보라 작가의 비비는 작업이다.


실. 잃어버려 아무것도 없는 것. 공, 아무것도 없지만, 누군가로 인해 계속 이어지는 것. 실은 외로움이고, 공은 그리움인 것 같다. 우리가 버릴 수 있는 것과 버려야만 하는 것들을 정할 수 있는 능력이 언제 생길까. 김보라 작가의 미싱과 드로잉은 철저하게 회화적 효과를 가진다. 즉, 감상하기를 요구한다. 그리고 작가는, 이미 버릴 것들은 버렸고, 비울 것들은 비웠다고 했으니, 우리도 비울 것들은 충분히 비워야 할 듯. ■ 임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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