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전시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전시상세정보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최종태 : 영원의 갈망

  • 상세정보
  • 전시평론
  • 평점·리뷰
  • 관련행사
  • 전시뷰어


최종태 : 영원의 갈망
2018-10-11 ~ 2018-11-04
가나아트센터

 

전시 개요

전  시  명     최종태 개인전 《영원의 갈망(The Longing of Eternity》
장      소     가나아트센터 1, 2, 3관 (서울시 종로구 평창30길 28)
주      관     가나아트
일      시      2018. 10. 11 (목) – 11. 4 (일) (총 25일간)
오  프  닝      2018. 10. 11 (목) 오후 5시 
출품  작품     평면 및 조각 작품 40여 점  

    

작가 소개


최종태(b.1932-)는 1958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한 후,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하여 구상과 추상,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등 대조되는 개념들의 조화를 추구하는 조각을 탐구해왔다. 또한 매체와 장르에 국한을 두지 않고, 나무와 브론즈(bronze), 돌 가루, 아크릴 물감 등의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여 조각의 영역을 확장하였을 뿐 아니라, 파스텔화, 소묘, 수채화 등의 회화 작업도 병행하며 작업 영역을 넓혀왔다.
 
분리와 배제의 논리가 아닌 조화와 통합을 추구하는 최종태의 작업관은 1970년부터 지금까지 오랜 시간 축적되어 온 것이다. 작가는 천주교 신자로서 성상조각의 대가로 이름을 알렸으나, 한편으로는 대학시절 공부한 불교 교리를 바탕으로 반가사유상을 제작하거나, 한국의 토착문화에 기인한 다양한 형태의 조각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특히 최종태 작업의 소재적 범주는 주로 인물상에 치중되어 있는데, 이는 관념적 대상의 표본으로, 작가는 고대 이집트에서 중시된 ‘영원성’과 ‘내면의 본질’을 작업에서 드러내고자 했다. 즉, 작가는 삶의 본질과 진실된 내면을 작업에서 찾고자 했다.



전시 소개

1. 색채 조각: 한국 전통의 현대적 계승

최종태는 전통을 중시하며 한국적인 것에 뿌리를 두고 작업을 전개하는데, 이를 잘 드러내는 특성은 채색이다. 2000년대 이후부터 나무 조각에 채색을 하기 시작한 작가는 전통적인 오방색을 사용하여 새색시의 한복이나 전통혼례복 등을 표현하거나 조각에 고려청자를 연상시키는 맑은 옥색을 칠했다. 작가가 전통에 입각하여 한국의 미로 재해석한 성모자상은 서구적인 느낌을 전달하는 여타의 성상조각과는 다른 한국적인 분위기를 담고 있다. 



Untitled, 2018, Color on the wood, 20.7x27x90.3cm


작가가 조각에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채색 재료 중 하나는 바로 흙이다. 황토와 백토 등 흙의 종류는 다양한데, 이렇게 제작된 조각은 나무가 아닌 마치 흙을 빚어 놓은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키기도 한다. 이와 같이 흙을 비롯한 나무, 돌을 작업의 매체로 활용하는 작가는 예술과 자연이 긴밀하게 연결된다고 여긴다. 물질, 그 자체에 불과했던 자연물들은 작가의 손에 의해 조각으로 만들어진다. 작가가 나무에 채색을 하게 된 계기 또한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그는 썩은 나무 토막을 색채로 덮음으로써 조각으로 새롭게 재탄생 시키고자 했다. 

예술에 창조라는 명칭을 다는 것은 지나친 표현이겠지만 생성과 표현 그리고 탄생의 과정을 보면 자연을 많이 닮아 있습니다. 예술이란 결국 자연의 질서를 닮는 것이 아닐까 
-「형태는 낳는 것이다」 최종태 글 발췌

이번 전시에서는 하나의 전시 공간(2 전시장)이 그가 오랜 기간 연구한 채색조각으로 구성되었으며 본 전시를 통해 최종태의 색깔을 느낄 수 있는 채색조각을 다수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2. 새로운 매체의 탐구

나는 점점 파스텔 그림에 빠져들게 되었다. 내가 흙을 만지는 사람이라 그런지 손으로 문지르는 것을 좋아했다. 두 가지, 세 가지 파스텔을 함께 문지르니 참으로 재미있는 색깔이 만들어졌다. … 가끔씩 있는 일이지만 조각하는 일이 정말 힘들 때가 있다. 그때 문득 머리에 스치는 생각은 사물을 보이는 대로 가감 없이 그리는 것이었다. 역시 재료는 파스텔로 말이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해졌다. 어둠이 걷히는 듯 싶었다. 그 무렵부터 나는 예술로서 파스텔 그림을 생각하게 되었다. 
- 「예술이 의미를 배제할 때」 최종태 글 발췌


이번 전시에서는 근래에 제작된 조각과 함께 이전에는 시도되지 않았던 대형크기의 파스텔화가 전시된다. 하늘과 바다의 풍경이 담긴 파스텔화는 큰 화면에 색으로만 표현되어 비구상의 색면추상과도 연결된다.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은 재현한적 없다’는 최종태는 조각뿐만 아니라, 회화 작업에도 마음의 심경을 풍경으로 담아낸다. 화면 속 파란 바다와 곧게 뻗은 수평선, 그리고 그 위로 흩뿌려진 하늘은 어딘가에서 본 듯 익숙하지만 이는 그의 내면에서 만들어진 허구의 풍경이다.



Drawing, 2017, Pen on the paper, 20x14.5cm


또한 최종태는 이번 전시에서 2017년부터 볼펜, 사인펜, 연필 등으로 그린 소묘화를 다수 공개한다. 작가에게 이러한 소묘화들은 파스텔화처럼 심적인 여유를 주는 도구로, 한달이라는 입원기간 동안 병상에서 볼펜과 종이를 이용해 그림을 그린 것이 소묘화로 이어졌다. 볼펜과 연필로 표현된 직선의 조형요소들은 표면의 질감이 그대로 살아나는 그의 조각을 연상시킨다. 소묘화는 그가 평생을 작업의 주제로 삼은 소녀, 얼굴, 손, 성모상 등 다양한 주제로 나뉜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최종태가 새롭게 탐구한 파스텔화와 소묘화와 같은 다양한 신작들을 만나볼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작가 약력

최 종 태 崔鍾泰 b. 1932-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前 김종영미술관 관장

1958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졸업


개인전
2018 최종태 개인전, 가나아트센터, 서울
2015 한국현대미술작가: 최종태 개인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과천
2014       최종태 파스텔 그림전: 빛ㆍ사랑ㆍ기쁨, 가나아트센터, 서울 
2011 구원의 모상, 가나아트센터, 서울; 대백프라자갤러리, 수성아트피아, 대구
2007 구도의 여정, 가나아트센터, 서울
        먹빛의 자코메티: 최종태가 그린 가녀린 영혼의 초상, 갤러리 로터스, 파주
        갤러리 선, 서울
2005 영원과 본질의 탐구, 대전시립미술관, 대전
        갤러리 현대 두가헌, 서울
        최종태 1970년대 소묘전, 갤러리 로터스, 파주
2001 일흔의 시간, 가나아트센터, 서울
1998 『나의 미술, 아름다움을 향한 사색』 출판기념전, 가나화랑, 서울
1996 가나보부르, 파리
1993 아테네미술관, 제네바
1992 가나화랑, 서울
1991 헤란드 웨터링 갤러리, 스톡홀롬
1990 가나화랑, 서울
1988 호암갤러리, 서울
1986 가나화랑, 서울
1982 파스텔 그림전, 가람화랑, 서울
1981 신세계미술관, 서울
1977 목판화, 조각전, 신세계미술관, 서울
1976 조각, 파스텔 그림전, 문헌화랑, 서울


주요 단체전
2017 장욱진 탄생 100주년: 인사동 라인에 서다, 인사아트센터, 서울
2015 장욱진의 숨결: 시대를 품은 예술가들,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양주
2014       시대의 얼굴, 가나아트센터, 서울
2011 한국가톨릭미술가 100인, 대구경북디자인센터, 대구
2009 조각 읽는 즐거움,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분관, 서울
        한국현대조각의 흐름과 양상 Ⅱ, 경남도립미술관, 창원
2008 조각의 바다, 거제문화예술회관, 거제
        한국현대미술: 세월에 담은 형상, 신세계갤러리 본점, 서울
        The Bridge: 가나아트 개관 25주년 기념전, 가나아트센터, 서울
2007 최종태, 최병상 조각, 선화랑, 서울
2006 서울 가톨릭미술가회전, 가톨릭화랑, 서울
        한일현대미술전, 세종문화회관, 서울
2005 가톨릭미술가회전, 가톨릭화랑, 서울
        예림을 걷다, 소마미술관, 서울
        숙란 25주년 기념전, 서울갤러리, 서울
2004 예술원 개원 50주년 기념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불교와 가톨릭 미술인의 만남전, 법륜사 불일미술관, 서울
        한일현대미술전, 다케시마야 화랑, 니혼바시, 일본
        전북도립미술관 개관기념전, 전북도립미술관, 완주
2003 서울특별시 원로 중진작가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예술원 회원전, 예술원미술관, 서울
        한일현대미술전, 인사아트센터, 서울
        불교와 가톨릭 미술인의 만남전, 가톨릭화랑, 서울
2002 서울미술대전,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00 새 날, 새 삶, 대회년 미술전 기획, 예술의 전당, 서울
1997 한국의 서정, 모란갤러리, 남양주
1995 몬테카를로 야외조각 비엔날레, 몬테카를로, 모나코
1994 서울국제현대미술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1993 우정의 만남: 이종수, 최종태, 대전문화원, 대전
1990 한국 현대미술 오늘의 상황, 예술의 전당, 서울
1988 조선일보미술관 개관전, 조선일보미술관, 서울
1987 한국현대미술, 어제와 오늘,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1986 아시아 현대미술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한국현대미술, 어제와 오늘,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1985 현대미술 40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1968 현대공간회 창립전, 삼보화랑, 서울
1967 5인 작가전: 이남규, 이민희, 이지휘, 조영동, 최종태,
        신문회관, 서울

수 상
2008 문화훈장 은관 수훈
       가톨릭 미술상 특별상 수상
2006 대한민국예술원상 수상
       가톨릭출판 120주년 공로상
1998 국민훈장 동백장
1996 한국문인협회 수여, 가장 문학적인 상 수상
1989 서울시 문화상 수상
1970 <회향>으로 「국전」 추천작가상 수상
1964 충청남도 문화상 수상
1962 <앉아있는 여인>으로 「국전」 특선, 국전 추천작가
1961 <어머니와 아들>로 「국전」 특선
1960 <서있는 여인>으로 「국전」 문교부장관상 수상



충만하면서 한도를 넘지 않는 절제된 형태가 지닌 아름다움

최태만(미술평론가) 

2015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가진 대규모 회고전 이후 다시한번 규모가 큰 개인전을 위해 최종태는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 내내 작업에 매진했다. 이번 전시에는 2017년 5월 뜻하지 않은 부상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그린 얼굴드로잉으로부터 올해 집중적으로 그린 바다풍경 등의 평면과 함께 나무에 황토나 백토를 입혀 마감하는 새로운 실험에 의해 탄생한 조각에 이르기까지 신작중심으로 구성된 작품을 발표한다. 

인사도 드리고 작품도 볼 겸 그의 작업실이 있는 자택으로 찾아뵈었을 때 책상 위에는 마침 한 화랑에서 전시 중이던 민화를 인쇄한 엽서가 놓여있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민화로부터 시작되었다. 팔순 중반의 조각가는 민화를 가리키며 조선 후기에 겸재 정선도 있었고 추사 김정희도 있었지만 민화야말로 가장 한국적인 것을 구현하고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평생을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묻고 그것을 찾고자 했던 이 노 조각가가 민화에서 발견한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민화에서 볼 수 있는 꾸미지 않은 넉넉함, 단순하면서도 꽉 찬 구성, 절제된 형태는 최종태의 작품에서도 나타나는 특징이다.



Untitled, 2018, Color on wood, 31.4x25.6x64.6cm


최종태가 그린 얼굴은 언제나 원만하고 그가 만든 얼굴조각의 대부분은 둥글고 부드러운 형태를 지니고 있다. 그가 그린 풍경은 고요하지만 눈이 머물면서 고른 호흡으로 바라볼 풍부한 여백을 지니고 있다. 여백은 텅 비어있거나 아무 행위도 하지 않은 백지와도 같은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스토아학파에서 경험 이전의 마음의 상태를 가리키기 위해 사용했던 ‘타불라 라사(tabula rasa)’와도 같은 마음의 여유가 넓게 열린 공간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나아가 그의 인체조각은 동작을 최소화하고 있으나 정지된 것이 아니라 운동을 함축하고 있다. 운동을 최소화함으로써 조각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의미는 더욱 분명하게 부각된다. 그것은 단순하게 처리된 얼굴에서가 아니라 맞잡은 손이나 가지런히 모아 기도하는 손을 통해 드러난다. 이때 손은 얼굴의 표정을 대신한다. 묘사를 생략하고 번잡한 형태를 단순화할수록 작품의 견고성은 강화된다. 재료를 떠나 최종태의 조각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단단한 덩어리이다. 여기에는 설명적인 장치가 틈입할 여지가 없다. 단순하면서도 단단한 덩어리, 그것은 그의 조각의 명징성을 고양시키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가 민화에서 발견한 것도 이 명징성이지 않을까.

2005년 자신의 고향에 있는 대전시립미술관에서 회고전을 가졌을 때 그는 “평생을 예술이 무엇인지 찾고 물어보고 연구하였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히 깨달았다. 나는 아직 예술이 무엇인지,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사실을…”이라고 고백한 바 있다. 그 현장에 있었던 나는 그의 발언을 겸손으로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그의 말은 아직 생각하고 추구해야 할 것이 남았다는 심경을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Woman, 2015, Color on wood, 29.8x23.4x91.9cm


조각가로서 최종태의 삶은 예술로 향한 사색과 성찰로 일관해 왔다. 그것을 그가 쓴 에세이를 모아 출간한 많은 수상집을 통해 확인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는 마치 무지개 너머의 세계를 찾아 나선 소년처럼 아름다움의 본질을 찾아 세계 방방곡곡을 여행한 적 있다. 국전의 추천작가상을 받은 부상으로 그 당시로서는 결행하기 힘든 것이었지만 그는 일본과 미국을 거쳐 영국, 스페인,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그리스, 이집트 등을 여행했다. 많은 박물관과 유적지를 돌아보던 중에 로마에서는 한국에도 잘 알려진 파치니(Fericle Fazzini)와 같은 조각가를 만나 대화하기도 했다. 그 여행에서 그의 관심을 끈 것은 그리스 로마의 고전조각이 아니라 이집트의 유물이었다. 그의 조각에서 볼 수 있는 정면성과 부동성은 고대 이집트조각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러나 그것에 그친 것은 아니었다. 귀국길에 그는 타이페이에 들러 그곳의 고궁박물원에서 열리던 ‘도자기특별전’을 보고 서양과는 다른 동아시아의 예술이 지닌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기회를 갖기도 했다. 귀국 후 그는 곧장 석굴암과 국립경주박물관으로 갔고 그곳에서 자신이 찾고자 했던 아름다움의 가능성을 발견하였다. 이 경험을 통해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정면성이 비단 이집트로부터의 영향에 머물지 않고 불상과도 연결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 후에도 그는 여러 차례 경주를 답사했고 한국의 전통 속에서 자신의 조형언어를 길어 올리고자 했다. 이렇듯 그의 작품에 두드러진 정면성은 이집트, 한국의 불상은 물론 장승과 같은 민간예술에 대한 고찰의 결과인 것이다.



The Mountain and The Moon, 1990, Pastel on the paper, 28x53cm


그러나 정면성 못지않게 그의 작품 속에 흐르고 있는 정신성에 대해서도 주목해야 한다. 잘 알려진 것처럼 최종태는 우리나라 추상조각의 개척자인 우성 김종영의 제자로서 그로부터 큰 감화를 받았다. 김종영의 생전에는 제자이자 동료교수로서 항상 옆을 지켰고 스승이 타계한 후 회상록도 출판하고 현양사업에도 누구보다 앞장섰다. 그러나 예술가인 그에게는 하나의 과제가 있었다. 존경하더라도 스승을 따라 하는 것은 스스로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스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김종영이 브랑쿠지의 길을 추구했다면 그는 쟈코메티로부터 자신의 방향을 찾고자 했다. 그러나 결과는 쟈코메티와는 전혀 다른 최종태만의 양식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최종태가 쟈코메티로부터 배우고자 한 것은 양식이나 형태가 아니라 그가 추구했던 고양된 정신성이었을 것이다.

김종영으로부터도, 쟈코메티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최종태가 평생 추구해온 사유와 한국적인 것으로 향한 탐구정신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2017년 여름 그는 나와 함께 진행했던 구술채록 마지막 무렵 이런 말을 했다. “미술사로 들어갔다가 나와 보니까 미술사가 없어졌다.” 그것은 선사(禪師)가 문득 깨달음에 이르러서 툭 내뱉는 말처럼 돈오(頓悟)의 경지에 도달하지 않은 한 하기 힘든 말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말에 깃든 깊은 뜻의 끄트머리일지 언정 그 의미의 심연이 어디에 닿아 있는지 희미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일 년 만에 만났을 때 그가 강조한 “민화에 대한 역사는 새롭게 쓰여야 한다”는 말의 진정성에 공감한다.
    


The Sea, 2018, Pastel on the paper, 55.5x74.3cm


언젠가 나는 그가 종교 조각만을 모아 연 개인전을 열었을 때 쓴 글에서 그를 ‘미의 구도자’라고 정의한 바 있다. 이것은 꼭 종교 조각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그를 만나서 대화하며 발견한 사실은 그가 언제나 사색과 성찰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대화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작품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미술사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나아가 한국적인 무엇을 이룩해야 한다는 마음의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그의 작품도 자유로워지고 있다. 나무 위에 백토를 바르고 그 위에 화사한 색채로 채색한 조각은 납작한 목판을 재료로 사용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평면과 입체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언뜻 테라코타처럼 흙물을 바른 조각은 마침내 인체로부터도 해방되고 있다. 입방체 위에 얹힌 머리를 통해 무릎을 감싼 채 앉아있는 사람을 연상할 수 있을 따름이다. 이 단순성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가. 마음이 풍요롭지 않으면 인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조급함에 사로잡힐 수 있다. 그것으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미술사와 은밀하게 만나고 있으면서도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운 그만의 고유한 형태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충만하되 한도를 넘지 않는 절제, 그것이야 말로 최종태가 추구한 미의 결정체이다. 최종태의 작품에 깃든 특징에 대해 ‘단순과 고요’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금방 요한 요아힘 빈켈만(Johann Joachim Winckelmann)이 『그리스 미술 모방론』에서 그리스 조각에 대해 정의했던 유명한 개념인 ‘고귀한 단순(edle Einfalt), 고요한 위대(stille Groesse)’를 떠올릴 테지만 나는 최종태의 작품이야 말로 단순과 고요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이 단순과 고요는 형태에 대한 탐색의 결과 도달한 마음의 평화로부터 비롯하고 있다. 장황한 수사가 아니라 시적인 함축을 통해 형태가 스스로 드러나도록 하는 것, 그것은 작가가 평생 추구해온 성찰을 자양분으로 성장한 미의 본질이 형식으로 구현된 결과이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