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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애숙: The road

  • 전시분류

    개인

  • 전시기간

    2017-11-21 ~ 2017-11-30

  • 참여작가

    梁愛淑 Yang, ae-sook

  • 전시 장소

    스퀘어원갤러리

  • 문의처

    032-456-4000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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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애숙 7회 개인전: The road

기간 : 2017.11.21(화)~2017.11.30(목)
장소 : SQUARE 1(스퀘어원백화점) 갤러리
      인천광역시 연수구 청능대로 210 스퀘어원 4층 

양애숙 梁愛淑 Yang, ae-sook

작가 약력
개인전 7회(서울, 인천)
대한민국기독교미술대전초대작가
인천광역시미술전람회초대작가
구상전초대작가 







자유로운 영혼을 찾아 나서는 새로운 길


안 영 길(철학박사, 미술평론)

  ‘길이 끝나는 곳에서 여행이 시작된다’는 말이 있다. 진정한 여행가나 탐험가는 이미 개척되어 잘 알려진 길을 편안하게 나서기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미 만들어진 길은 나아갈 방향이나 목표를 찾는 방법을 쉽게 제시하며 알려주지만 진정으로 새로운 나만의 길을 찾고자 하는 열정과 모험을 싣기에는 흥미나 즐거움을 느끼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행과 탐험은 자신의 창작에 대한 열정을 담금질하는 예술가들의 진지한 삶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작가 양애숙이 추구하는 삶의 목표인 예술가의 길은 무엇일까? 바로 예술창작을 통해 구현되는 긍정적이고 자유로운 영혼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예술가에게 구원이나 해탈에 해당하는 것으로 창작을 통해 자신을 위로하며 안식을 주는 성스러운 행위이다. 주체성을 지닌 작가로서 종교적 신념을 견지하고 있는 작가 양애숙은 창작에 얽매여 심신을 사역당하지 않고 창작의 즐거움 속에서 정신의 자유해방을 누리는 자신만의 길을 진지하게 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의 주제인 〈The road〉는 작가의 예술적 목표에 대한 다짐으로 구원의 빛과 같은 꿈으로 가는 길이자 수행자와도 같이 기꺼이 고난의 길을 가고자 하는 작가의 의식이 잘 드러나고 있다.

  작가가 인식하여 표현하는 대상은 자기 성찰의 시간을 거친 경험의 산물이며 결국 작가의 내면세계의 반영이다. 따라서 작가 양애숙은 화면 속에 등장하는 각각의 객체 및 그 특징 묘사를 중시하지 않고 총체적인 느낌과 특징 속에 어떤 특수한 관념이 형성되는가를 살펴 표현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작가는 형상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감성적 이미지 너머에 있는 보이지 않는 본질을 직관적 인식을 통해 심도 있게 표출하는 반추상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 감정을 드러내어 흥미를 유발하는 밝은 색조의 감각적 표현과 깊은 사색으로 이끄는 무채색의 화면이 공존하는 가운데 작가의 감수성이 응축된 시적 은유와 성찰이 내재된 자기 고백적인 아름다운 영혼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작가가 새롭게 찾아 나선 〈The road〉의 화면 속에는 자아의 표상인 인간, 산과 계곡, 동물과 식물 등의 이미지가 다양하게 변형되어 등장하는데, 새롭게 개척하는 길에서 마주치는 희로애락이 깃든 흔적들로 작가가 예술적 삶의 길을 탐구하면서 발견한 피안으로 향하는 길가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단순한 재현이 아닌 표현으로서의 다양한 화면구성은 작가의 자유로운 영혼이 깃든 내면의 진실에 대한 간절함의 표상이기도 하다. 화면에 간혹 등장하는 숫자 5는 인간의 영혼, 선과 악, 절반, 중앙, 오행, 제5원소, 왕성한 양의 에너지 등의 다양한 상징을 갖는 숫자로 작가가 특별히 좋아하는 철학적 성찰의 산물이다. 아마도 작가가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를 넘어서면서 깨달은 인생의 의미가 상징적으로 담겨 있을 것이다.

  작가 양애숙이 이번 전시에서 제시하는 〈The road〉는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창작의 길이자 자유로운 영혼이 유쾌하게 노닐며 쉴 수 있는 유토피아로 향하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의 아름다운 영혼이 자유롭게 펼쳐진 예술세계를 통해 지친 우리의 마음을 다독이며 치유할 수 있는 만남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  
  
  
The Voice 116.8×91.0 Oil on canvas 2017


The Voice 116.8×91.0 Oil on canvas 2017

The Voice 90.9×72.7㎝ Oil on canvas 2017



Voice of heaven 72.7×60.6㎝ Oil on canvas 2016



꿈의 향연 90.9×72.7㎝ Oil on canvas 2016










생의 한 가운데, 그리고 ‘꿈으로 가는 길’

이   재   언 (미술평론가)


양애숙의 그림은 기독신앙과 불가분의 관계이다. 노트에서 보듯 작가 미의식의 근간이 신앙으로 정향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 확신의 기반은 ‘은혜’라는 논리적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불가해한 뜨거운 체험이 있었을 것이다. 증거하지 않을 수 없듯이, 또한 표현하지 않을 수 없는 작가의 화면은 그야말로 체험의 결정체이다. 대체로 신앙의 궁극은 낙관주의이다. 그러한 낙관주의에 기초한 기독미술 또한 고귀한 이상과 정신의 승리에 대한 확신의 결정체로 구현되어 왔다. 유럽 전통의 이콘이나 워너 샐먼Warner Sallman의 예수상에서 보듯 기독미술은 이상화(理想化) 그 자체로 통한다. 

작가의 그림이 신앙에 기반하면서도 흔히 보는 이콘과 같은 재현보다는 표현적이고 추상적인 양식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즉 이상화를 위한 재현으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것이다. 작가가 재현에 역점을 두었던 아카데믹한 화풍의 단계, 자신의 신앙적 체험을 담아내기 시작한 이콘 단계, 그리고 오늘의 표현적이고 추상적인 양식의 단계에까지 오는 동안 많은 양식의 추이가 있었다. 무엇이 더 가치 있는 일인지를 단정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닐 것이다. 멜 깁슨이 열연한 영화 <패션 오프 크라이스트>에서의 하이퍼리얼한 재현과, 그리스도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벤허>에서처럼 감추어진 추상화된 것 간의 차이로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단적으로 양애숙의 그림은 자신의 현실에서 직면해 온 여러 차원의 고백록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진리의 확신과 체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이기에 별안간 밀려오는 고뇌와 회의를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이다. 불완전한 실존의 고뇌를 철학의 정초로 삼은 키에르케고르적 사유를 그림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라 보면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불완전한 실존이 처한 현실에서 절대자에게 의지해야 할 것은 낙관주의의 피할 수 없는 선택이지만, 그래도 억제할 수 없는 불안의 의식이 믿음의 단초인 것을 고백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일반에서 실존주의와 기독교의 양립가능성을 회의하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따라서 심미적인 영역에서 이 고뇌를 여하히 가치 있는 국면으로 반전시킬 수 있겠는가의 문제는 이중고가 아닐 수 없다. 자칫 딜레마일 수도 있는 이 장애물 앞에서 작가는 구원이나 로고스, 빛 등의 진리 문제에서 잠시 비켜나 모든 것을 ‘꿈’이라는 장치로 화해를 시도하고 있다. 그것은 믿음과 현실의 간극을 보다 잘 조합해낼 수 있는 접합점으로 기능을 한다. 그것이 ‘꿈으로 가는 길’ 연작이다.  


작가의 ‘꿈으로 가는 길’ 연작 화면들은 마치 느와르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어둡거나 대비적인 경우가 많다. 유토피아로 가는 과정에는 따스한 햇살도 있지만, 곧 장대비를 쏟아낼 것 같은 먹구름을 만나기도 하는 것이다. 작가의 화면에 명료한 것은 없다. 대부분 모호하거나 그림자 같은 실루엣, 네거티브 이미지들이다. 거친 붓질이나 마티에르의 교차 속에 간혹 등장하는 이미지들도 대부분 명료하게 등장하는 경우가 드물다. 십자가, 의자, 새, 왕관, 깃발, 숫자, 기호 등이 등장하는 그림의 컨텍스트는 굳건한 믿음에 근거한 소망 그 이면에 엄습해 오는 솔직한 인간적 고뇌를 느낄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작가의 화면에 자주 등장하는 숫자 ‘5’도 유사한 맥락으로 새겨져 있다. 
 
5는 절반이며, 한 가운데며, 중심이다.
돌아가기엔 길이 없고 도달하기엔 너무 멀다.
포기하기엔 주저앉을 자리가 없고 채찍하기엔 힘겹다.
5에는 슬픔의 깊음 위에 내리는 무심한 별빛이 있다.
또한 그 안에 깊은 생수가 있다. 
생수는 나를 마시우고 적시우고 이끌어간다.
5는 끝이며, 시작이며, 이미 완성이다.

1도 아니고 10도 아닌 5, 그 5는 생 그 자체의, 그 한 가운데서 직면한 실존적 상황에 다름 아니다. “생의 모든 일은 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루이제 린저가 <생의 한 가운데>에서 담담하게 받아들이고자 했던 고뇌와 슬픔의 삶 그 자체와도 통한다. 인간의 고뇌와 슬픔을 삶 자체로 받아들이고 기꺼이 극복하고자 했던 것, 또한 그것이 진정한 구원의 완성이라 믿는 것이 작가 미의식의 요체이다. 바로 5라는 숫자에서 암시되고 있듯, 그 화면의 그리다 만 것 같은 미완 혹은 불명료성은 언어의 의미작용을 회의하는 자크 데리다의 ‘차연’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꿈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은 이상이지만, 현실은 지극히 불확실하고 불안하기 짝이 없는 세계이다. 작가의 화면이 장밋빛 환상의 무지개를 보여주지 않는 것도 바로 이에 기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많은 작가들이 그러하듯, 한때는 아카데믹한 재현의 그림에 몰두하기도 했던 작가가 드 쿠닝 류의 추상표현적 화면에서 이제는 제스트적 요소를 희석시켜가고 있는 것이 두드러진다. 과거의 앙프르멜이 추구했던 것과 유사한 화면의 육질 내지는 질료적 요소가 풍부해지고 다채로워지면서 작가의 과잉에 가까운 에너지도 상당 부분 절제되고 있다. 물론 이조차도 자신의 미의식에 따른 숨고르기로 보인다. 5라는 숫자가 상징하는 현실로서의 회화 본연의 가치도 그 끝이 있는 것이 아니듯, 치열하게 내면을 투영시킬 도구라는 점에서 데카르트적 성찰의 대상이 되어 마땅한 것이다. 그는 치열한 실존적 삶의 한 가운데 서 있듯이, 그림 자체에 대해서도 막연한 자기만족이 통하지 않는 절박한 상황의 한 가운데 서 있음이 확실하다. 양애숙의 작품은 우리로 하여금 자기 영혼을 객관적으로 성찰케 하는 그 무엇임에 분명하다.     

 

꿈으로 가는 길 72.7×60.6cm oil on canvas 2013


꿈으로 가는 길 72.7×53.0cm oil on canvas 2013


꿈으로 가는 길 116.8×91.0cm oil on canvas 2013


꿈으로 가는 길 72.7×90.9 cm oil on canvas 2013


꿈으로 가는 길 90.9×72.7cm mixed media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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