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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의 소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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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베트남의 수교 25주년을 기념하여 기획된 이 전시는 양국의 젊은 예술가들이 지난 30여 년간 급변한 사회를 보는 시선을 더듬어 보는 자리이다. 여기에 초대된 베트남 작가들은 대부분 1986년 개혁개방(‘도이 머이Đổi mới’) 정책 이후 교육을 받고 사회활동을 시작한 이른바 ‘포스트 도이 머이’ 세대로 불린다. 비슷한 세대의 한국 작가들 역시 해외여행 자유화, 아시안-올림픽 게임, 민주화 운동 등을 직간접적으로 겪으면서, 그 이전과는 사뭇 다른 특징을 가지게 되었다는 세대론적 접근의 대상이 되곤 한다.


전시 제목인 “정글의 소금”은 베트남의 소설가 응우옌 휘 티엡(Nguyễn Huy Thiệp)의 소설 제목에서 빌려온 것이다. 이는 정글에 30년마다 한번씩 핀다는 소금처럼 하얀 꽃의 별칭으로, 그 꽃을 보는 사람은 평화와 번영을 얻는다고 한다. 소설 속 노인은 수컷 원숭이를 사냥하려다 암컷이 슬퍼하며 총에 맞은 수컷을 따라오는 것을 보고 당황한다. 무더운 정글에서 짐승처럼 헐벗은 노인은 험한 말을 내뱉으며 사냥한 원숭이를 포기하는 순간, 이 꽃을 본다. 그것이 자연과 생명을 무참히 파괴해온 인간에게 뒤늦게 찾아온 뼈저린 깨달음인지, 아니면 여전히 파괴를 번영의 징조로 착각하는 인간의 짐승보다 못함을 인정하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바로 그런 양면성에 대한 직시가 이 소설을 도이 머이 이후의 현실을 가장 날카롭게 은유한 작품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양면성에 대한 직시는 지난 30여 년간의 사회적 변화를 바라보는 양국의 젊은 예술가들의 시선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의 과정에서 자연, 신화, 전통, 소수민족, 기억, 정서 등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하지만, 다른 한편 이전 세대에 비해 타문화나 변화를 당연한 것으로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또한 역사와 사회에 대해 비판적 관심을 갖고 있지만, 이념과 사건을 비장하고 무겁게 제시하기보다는 도시화, 산업화, 이주 등으로 인해 나타난 일상의 변화를 솔직하고 경쾌하게 다룬다.


이 예술가들은 집요한 리서치를 해도 그 결과를 풀어서 설명하기보다는 이미지 안에 함축하려 애쓴다. 응우옌 프엉 링은 중남부 베트남 지역의 고무나무 재식농업의 현재 모습을 영상에 담고, 흙으로 드로잉을 한다. 20세기 초 베트남에 들어온 고무 산업에는 베트남의 경제적 부흥뿐만 아니라 복잡한 현대사가 얽혀 있지만, 작가는 그것을 시적인 이미지로 만든다. 김보민은 ‘이야기를 가진 이미지’에 관심을 가져 지도나 도시의 설화, 변천사 등을 찾아다니지만, 그 이야기들을 차분하고 잔잔한 수묵담채로 그린다. 조혜진은 일명 ‘도시루’라고 불리는 플라스틱 종려나무 잎에 대한 편집증적 조사를 통해 평범한 사물에 얽힌 문화, 역사, 자본 등의 복잡한 층위를 찾아내지만, 다시 그것을 ‘조각적 형태’의 연쇄로 풀어낸다.


다른 한편 단순한 장면을 영상의 힘으로 증폭시키는 작가들도 있다. 더 프로펠러 그룹은 베트남 사람들이 애용하는 오토바이의 타이어 자국을 표현수단으로 확장하고, 염지혜는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커질 때의 감각을 몽타주를 이용해 더욱 과잉상태로 만든다. 린+람은 정착할 수 없는 사람이 매번 다른 장소에서 보낸 짧은 엽서에 베트남의 노래와 느리고 고요한 물의 이미지를 병치해서, 기다림과 절박함의 리듬을 만들어낸다. 임영주는 인터넷에서 수집한 영상을 편집해서 물, 불 같은 기본적인 물질을 기묘하고 영적인 이미지로 승화한다.


젊은 회화 작가들의 그림은 밝고 경쾌하지만 ‘회화적인 것’에 대한 고민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은새는 특유의 솔직한 고민을 평범한 일상 속의 회화적 긴장감으로 표현하고, 도 타잉 랑과 응우옌 득 닷은 현실을 묘사하지 않는데도 화면에는 그들의 유연하고도 복잡한 정체성이 드러난다. 응우옌 반 푹은 현실을 정직하게 묘사하는 가운데 아주 미세한 희화화를 시도한다. 이들 회화작가들은 모두 주어진 사회적 무게에는 집착하지 않지만, 회화의 힘을 새로운 방향으로 작동하게 하려는 실험을 계속한다.


아트 레이버 콜렉티브는 베트남의 경제부흥과 함께 도로변에 나타난 운전기사들을 위한 해먹 카페를 전시장으로 옮겨와 ‘자라이 이슬’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모든 존재가 윤회를 거듭하면 마침내 이슬이 된다고 믿는 자라이 민족의 설화를 통해 부유하는 사람들의 존재를 각인시킨다. 이들은 새로운 도시에서 전시할 때마다 그곳의 작가나 기획자들과의 협업을 해왔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의 영상 작가들을 작품으로 끌어들인다. 특히 이주의 경험을 감각으로 풀어온 믹스라이스는 이주 여성들이 춤추는 손동작을 영상에 담고, 공장 노동자의 반복 동작을 노래로 만들고, 청어를 엮는 춤/노동을 그린 신작 드로잉을 선보인다.


그동안 베트남의 젊은 작가들은 개별적으로 한국에 소개된 적은 있지만, 그들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한 자리에서 보여주거나 한국 작가들과 교차지점을 드러내는 전시는 많지 않았다. 이번 전시가 한국과 베트남의 복잡하게 얽힌 역사에 대한 대화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김보민_좁은 강 모시에 수묵담채_테이프 91×116.8cm 2017


염지혜, 그들이 온다. 은밀하게, 빠르게, 2016, 1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15분 15


도타잉 랑, 무제, 2016, 종이에 혼합 매체(종이와투명 비닐에 유화), 144x144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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