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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로,미켈란젤로전

  • 전시기간

    2017-01-26 ~ 2017-06-30

  • 전시 장소

    헬로뮤지엄(능동어린이회관)

  • 유/무료

    유료

  • 문의처

    1661-0553

  • 홈페이지

    http://lovemichel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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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로,미켈란젤로전

2017.01.26 - Open Run

헬로뮤지엄(능동어린이회관)



컨버전스 아트의 선두주자이자 문화예술전문기업인 본다빈치㈜가 세기의 천재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작품을 담은 <헬로, 미켈란젤로展-당신과 마주하는 위로의 순간>을 오는 1월26일 헬로뮤지엄(서울 능동 어린이회관 특별전시관) 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본다빈치㈜의 마음챙김(mindfulness)을 위한 <헬로(hello)> 시리즈의 하나로 기획된다. 특히, 본다빈치㈜는 삶과 연계된 키워드를 통해 마음챙김과 마음배려를 전시의 메시지로 전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 전시의 키워드는 ‘위로’이다. 


<헬로, 미켈란젤로展>은 이탈리아의 대표적 조각가, 건축가, 화가, 그리고 시인인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삶과 그의 명작을 최첨단 영상 기술과 결합해 펼치는 전시로서, 지난해 8월부터 11월까지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렸던 미켈란젤로의 컨버전스아트전 두 번째 상위 버전이다. 지난 미켈란젤로 전시가 연대순을 따라 전체적 개관을 제시했다면, 지금은 그 특유의 시대적 감성과 쟁점에 초점을 맞춘 그야말로 학술적 시각이 아닌 감성적 시각을 제시하고 공유하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고, 김려원 연출가는 전한다. 


그리고 “예술은 무엇을 위해 존재할까요? 대체적으로 역사적 해석과 가치적 해석을 따라 예술의 값어치가 정해지고, 그것은 곧 작품 혹은 작가의 등급과 영향력에 결부돼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예술적 역사를 담고 있는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이야기는 상당히 고전적일 법하나 회화와 드로잉, 조각을 아우르는 그의 천재성에 우리는 다시 한 번 심도 있게 그의 삶을 들여볼 만한 가치를 느낍니다.”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래서 상의 변혁 속에서 몸살을 앓고 있던 순간에도 거대한 대리석 덩어리를 깎아내며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던 미켈란젤로의 따뜻한 위로를 기대하게 한다. 


전시가 펼쳐질 헬로뮤지엄은 어린이회관 특별전시장을 새롭게 네이밍하고 브랜딩하며 본다빈치㈜의 상설전시관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이 곳은 명화를 컨버전스 아트로 만나고 예술가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면서 그들의 예술세계를 통해 관람객 자신의 삶과 마음을 되돌아보는 ‘마음챙김’의 문화체험의 공간이 될 것이다. 특히 뮤지엄 외부에 설치된 은은한 조명은 낭만적이고 감각적인 정취와 아름다운 경관을 관람객들에게 제공할 예정이다. 또한 내부에 ‘헬로 카페’도 마련되어 있다. 


<헬로, 미켈란젤로展>은 미켈란젤로가 관객들에게 건네는 ‘위로’의 메시지를 여섯 가지 콘셉트로 정리해 전시존(ZONE)을 구성했다. ▲서정적 아름다움을 통한 위로 ▲형태적 질서를 통한 위로 ▲절대적 시선을 통한 위로 ▲의식적 숭고함을 통한 위로 ▲비례적 조화를 통한 위로 ▲예술적 구성을 통한 위로로 이루어진 전시존은 미켈란젤로의 회화, 조각 작품 등은 물론 그가 남긴 편지와 시를 통해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 


스페셜 공간인 ‘미디어 미술관(MEDIA GALLERY)’에서는 미켈란젤로의 조각상 형태 위에 펼쳐지는 빛과 어둠이 분리되어 존재의 의미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엿 볼 수 있다. 점-선-면-공간으로 차원의 범주가 확장되어 가는 과정은, 마치 미켈란젤로가 구현한 <시스티나 천장화>의 ‘천지창조’에서 묘사된 창조주의 창조 과정과 흡사하다.


또한 미켈란젤로의 문학성을 엿볼 수 있는 ‘큐브 미술관(CUBE GALLERY)’은 완벽한 예술가였던 미켈란젤로의 인간적이며 감성적인 숨은 면모를 비춰볼 수 있는 공간으로 미켈란젤로의 소네트(sonnet시의 형식)에 대해 알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를 예술가로 성장시킨 메디치의 묘소와 그의 작업실, 성 베드로 성당을 그대로 재현한 공간을 비롯해 창세기 내용을 바탕으로 그린 시스티나 천장화 ‘천지창조’ ‘최후의 심판’ 등이 컨버전스아트로 보여져 눈길을 끈다. 전시장 한편에는 그가 평생에 걸쳐 심혈을 기울였던 조각 작품도 3D 영상으로 선보이게 된다. 전시장 곳곳에는 그의 명언들이 소개돼 예술가이자 르네상스인로서 가졌던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본다빈치㈜는 “이번 전시는 화려한 르네상스 시대에 쇠락한 가문의 살림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서 한시도 온전히 자신을 위한 삶에 충족해 보지 못한 미켈란젤로의 인생을 통하여 그가 예술을 통해 스스로 던진 위로의 메시지를 조각과 회화, 시 등의 작품으로 감상할 수 있는 전시”라면서 “그가 던지는 위로의 메시지를 통해 그 의미를 우리의 삶으로 확장해 보는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 구역에서의 관람이 끝난 관람객들에게는 인터랙티브 체험 공간이 마련돼 있다. ▲ 퐁당풍덩 미끄럼틀 볼풀장 ▲ 내가 만든 바닷속 이야기 ▲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만난 모래 놀이터 ▲ 디지로그 낚시터 ▲ 가면무도회 ▲ 팡팡 터트리기 ▲ 모션 플로어 등의 인터랙티브존이 있다. (아래 사진 참조) 인터랙티브존 이용요금은 별도다.
 
아울러 전시관 전체는 에어세이프티존(Air Safety zone)으로 운영된다. 도심 미세먼지를 벗어나 관람객들의 쾌적한 관람을 위해 향온향습과 살균시스템이 가동될 수 있게끔 에어백신을 설치한다. 에어백신은 오염물질과 바이러스를 차단해주는 제품으로 신개념 공기 살균 청정기다. 

이번 전시는 본다빈치㈜의 상설전시관인 ‘헬로뮤지엄’에서 개최되며,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 30분까지 관람할 수 있다. 입장은 오후 7시 30분까지 가능하다. 휴관일은 매주 월요일이며 오는 설날연휴 때에도 관람할 수 있다.

▶예매 티켓링크(www.ticketlink.co.kr) / 인터파크 티켓(ticket.interpark.com)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작가의 생애 

미켈란젤로는 피렌체의 소규모 은행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태어난 직후 석공의 아내였던 유모에게 맡겨졌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여섯 살 때 돌아가셨고 미켈란젤로도 다른 귀족들의 후손들처럼 고전문법학교에 다녔지만 라틴어보다 그림에 대한 열망이 더 강해 아버지와 갈등을 겪었다. 결국 그는 열세 살 때 기를란다요의 제자로 들어갔다. 그러나 1년쯤 지나서부터 미켈란젤로는 이미 다른 곳에서 영감을 구하고 있었다. 

그는 그라나치를 통해 연로한 조각가 베르톨도를 알게 되었다. 베르톨도는 피렌체 출신의 위대한 조각가 도나텔로의 제자였다. 베르톨도는 1491년에 사망했으나 젊은 제자 미켈란젤로의 재능이 워낙 탁월하여 로렌초 데 메디치는 자신의 궁에 방을 마련해 주고 후한 보수를 지급했다. 그러나 1년도 못 가서 로렌초가 죽고 그로부터 2년 후 메디치 가문은 피렌체에서 완전히 추방되었다. 

혼란의 시기가 지나고 1496년 미켈란젤로는 로마로 갔다. 미켈란젤로는 고대 조각에 대해 이미 상당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 2세기 로마의 <잠자는 큐피드>를 모사한 적이 있었는데, 진품과 너무나 흡사하여 미술거래상이 이 작품을 고대 진품이라 속이고 팔아먹은 사건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이것이 속임수임이 드러났을 때 미켈란젤로는 오히려 뛰어난 재능에 대해 찬사를 받았다. 로마에서 미켈란젤로의 첫 번째 의뢰인이 되어준 사람은 바로 그 모사품을 구입한 리아리오 추기경이었다. 리아리오 추기경은 그를 로마로 초청했고, 이 때 <바쿠스>와 <피에타>를 제작한다. <피에타>는 무거운 감상주의에 빠지는 대신 절제되고 아름다운 날카로움을 표현했으며 신의 섭리에 대한 복종을 다룬 심오한 작품이다. 

다시 피렌체로 돌아온 그는 피렌체 정부로부터 다윗 상을 의뢰받는다. 높이가 4미터에 달하는 이 작품으로 미켈란젤로는 동시대 최고의 조각가로 손꼽히게 됐고 <다윗>상은 오늘날까지도 피렌체 정치의 심장부를 지키고 있다. 

1508년 교황 율리우스 2세는 미켈란젤로에게 시스티나성당의 천장화를 그리는 일을 맡겼다. 미켈란젤로는 4년 동안 작업의 프로그램을 짜고 거기에 따라 일을 진행해나갔다.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천장 밑에 세운 작업대에 앉아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천장에 물감을 칠해나가는 고된 작업이었다. 이로 인해 목과 눈에 이상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는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혼자서 4년 만에 이 대작을 완성하였다. 

1513년 교황 율리우스 2세가 죽고 조반니 데 메디치가 레오 10세로 교황의 자리에 올랐다. 당시 미켈란젤로는 율리우스 2세의 영묘 작업만을 고집했다. 수많은 재계약과 계약수정을 거쳐 마침내 1545년 산 피에트로 대성당에 완성된 작품은 당초의 웅대한 계획에 비해 매우 초라한 규모였다. 미켈란젤로는 <레아>와 <라헬> 등 대비되는 두 인물을 조각하여 2단으로 된 기념비의 하부작업만을 담당했는데, 각각 행동하는 삶과 명상하는 삶을 상징하는 두 조각상은 웅장한 대리석 조각 <모세>의 양쪽에 놓였다. 실물보다 크게 표현된 모세는 머리에 달린 뿔과 뱀처럼 구불거리는 긴 수염과 화난 표정으로 마치 괴물을 연상시킨다.

1534년 교황 바오로 3세가 선출되고 교황은 미켈란젤로를 ‘로마 교황청 최고의 건축가, 조각가, 화가’ 로 임명했다. 미켈란젤로는 1536년부터 1541년까지 쉬지 않고 <최후의 심판>작업에 매달렸다. 60대 노인의 강도 높은 육체적 작업에서 비롯된 창조물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거의 기적에 가까운 작품이다. 

미켈란젤로는 1564년 2월, 89세를 일기로 로마에서 사망했다. 그의 소망에 따라 시신은 비밀리에 피렌체로 이송되었고, 지금은 그가 어렸을 때 예술의 세계를 익혔던 산타 크로체 성당 안에 안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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