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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회화전 :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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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김환기,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
▶기 간 : 2016년 3월 25일(금) ~ 8월 14일(일)
▶관람시간 : 오전 10:00 – 오후 6:00 (매주 금요일 오후 9시까지, 월요일 휴관)
▶입장료 : 성인 1만원 / 학생 5천원 / 경로 5천원 / 일반단체(10/30인 이상 8/7천원)
* 티켓 할인 프로모션 진행 (홈페이지 및 SNS을 통해 공지될 예정입니다.)


전시안내
환기미술관은 2016년 3월 25일부터 8월 14일까지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展을 개최한다. 본 전시는 수화 김환기의 예술세계를 모티브로 하여 설계한 가장 아름다운 현대 건축물 중 하나인 “환기미술관”에서 김환기의 1950년대 초기에서 1970년대 말년에 걸친 유화, 드로잉, 과슈, 신문지·한지에 유채, 종이 콜라주 등 시대의 대표작 400여 점의 작품들이 대거 전시되는 역대 최대 규모의 전시로 2016년의 첫 특별전이다.


전시명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는 수화 김환기의 부인이자 예술적 동반자이자 환기미술관의 설립자로서 문화·예술계의 뮤즈라 불리는 김향안(1916~2004)이 남긴 글로서 1989년 수화의 전기(傳記)를 다룬 도서의 명제이기도 하다. 2016년 한해의 시작을 알리는 본 전시의 타이틀이 김향안의 원문으로 붙여진 것은 천재 예술가의 탄생에 절대적 지지와 조력을 아끼지 않았고, 작가의 사후에 환기미술관을 설립하여 그의 예술이 갖는 가치와 거장의 예술혼이 더욱 빛날 수 있도록 고군분투한 김향안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 의미를 되새겨보기 위함이다.

한국현대미술의 중추적인 흐름을 주도하며 현재에 이르기까지 국·내외 예술계의 주요 화제로 다뤄지는 예술적 에너지의 원천인 수화 김환기. 그리고 그의 예술혼이 담겨진 예술장場으로 선보이기 위해 내·외적으로 온 힘을 다한 김향안의 아름다운 열정은 1992년 환기미술관을 설립하였다. 김환기의 작품세계를 주제로 설계한 우규승의 환기미술관 공간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아름다운 건축물로서 세계로의 도약을 위해 우리의 근간을 이루는 가치를 강조하고 치열하게 도전하는 창작열정으로 일관한 김환기의 예술혼이 숨 쉬고 있다. 우리는 2016년 김향안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설립자 김향안의 미술관 설립 목적을 되돌아보고, 설립자가 평생을 바쳐 몰두한 김환기 예술세계의 다양한 면모를 통해 예술가 김환기가 노래한 자연과 인간애와 시정신의 감흥을 만나게 된다.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는 대표적인 유화작품과 더불어 미공개작을 포함한 순수하고 정감있는 수많은 드로잉과 과슈, 콜라주가 본관 1,2층에 나뉘어 전시된다. 1950년대 초 한국전쟁 당시 부산 피난시기에 그린 작은 스케치의 작품에서부터 서울 성북동시절, 파리시대 작품에 이어 1970년대 전면점화가 탄생하기까지 다채로운 화면구성과 리듬감으로 시적인 감수성을 자아내는 점, 선, 면의 변조들을 드로잉을 통해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또한, 김환기의 즉흥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과슈(Gouache)를 함께 선보이면서 산, 달, 매화, 구름 등의 자연의 정서와 민족적 감흥을 일깨우는 화면구성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전시장의 하이라이트라 불리는 본관 3층은 작가의 창조적 에너지의 집약체이며 그 여정의 기록이라 일컫는 대형점화點畵가 전시된다. 김환기 대형점화의 공간은 우리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열어주며 시작도 끝도 없는 몽상의 세계로 이끌고 그 속에서 펼쳐지는 정신적 탐험은 영혼의 메아리가 되어 감동을 부른다. 현실의 무게와 세상의 번잡함에 지친 영혼을 정화시켜주는 숭고한 명상의 세계이다.


> 1F : 한국·파리시대의 구상적 드로잉_(1950-60년대) <

50년대 초 한국전쟁 당시 부산 피난시기와 서울 성북동시절, 그리고 3년간의 파리시대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한국전 당시 정박해 있는 군함을 그린 <진해풍경>, 부산 피난지에서의 <판자집>과 <피난열차>, 좌판을 펼치고 바닥에 앉아 있는 여인상 등은 김환기 특유의 서정성으로 시대상과 자신의 일상을 이야기 해주며, ‘뙤약볕이 내려 쪼이는 생철지붕 밑에서도 그림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강한 예술 의지를 엿보게 한다.

한편 <학>,<산과 달>,<도자기와 여인> 등은 50년 대 양식의 소재를 구상해 보던 밑그림으로서, 간략하게 대상을 파악해 내는 그의 정확한 시선을 통해 단순하면서도 강한 선으로 만들어 낸 세련미와 밀도 있는 힘을 보여 준다. 그리고 프랑스에서의 체류기간(1956-59) 중 그린 프랑스 곳곳의 풍경과 인상을 기록해 놓은 드로잉들도 소개된다.


부산시대라면 떠오르는 것이 많다. 
멍게, 자갈치 시장, 아이들이 일전 얻으면 멍게를 사서 먹던 그 서글픈 풍경, 
그러나 멍게는 자양분이 넘치는 고소하고 오묘한 맛이 훌륭한 군것질감이었다. 
우리는 잠시 후 다락방을 면하고 동래로 옮겨 미니리반 언덕에 머물렀다. 
그 싱싱한 미나리와 풋마늘을 안주로 마을에서 만드는 약주와 막걸리, 소주. 
피난 시에 무슨 그림을 그리나 할 것이다. 그러나 김환기에겐 그림과 술밖에 없었다. 
바다에 임한 막바지 부산 피난살이 때. 

김향안, 1951년 1월



> 2F : 한국의 자연을 담은 과슈(Gouache)_(1960년대) <

불투명 수채물감인 과슈(Gouache)는 수용성 고무를 주성분으로 안료와 혼합한 것이다. 투명수채화에 비해 불투명한 색조가 유화 특유의 질료적 특성과 유사하게 보이지만, 유화의 질감과 광택이 없는 수성으로서의 흡수성이 빠른 특성을 보여준다. 유화를 연상시키거나 다루기가 용이하고 빨리 마르는 재료의 장점으로 인해 형태나 빛깔을 다루는 김환기의 노련함이 더욱 빛을 발한다. 한국의 자연을 담은 산월山月과 순수한 추상으로 이어지는 점, 선, 면의 회화과정을 통해 과슈라는 독립된 영역으로서의 완성도를 보여준다. 김환기는 뉴욕 진출 초기인 1963-64년, 한국에 있는 부인 김향안에게 보내는 다수의 편지그림일기를 제작하였다. 이는 ‘향안에게’ 라는 스케치북으로 남겨졌으며 본관 전시에 이어 달관 수향산방에서 이를 살펴볼 수 있다.


맑은 광선에서 모처럼 과슈를 해보겠어.
어젯밤은 새벽 3시까지 그림(과슈)를 꾸몄지.
고무로 깨끗이 때를 지우고 다시 보니 참 아름다워요.
그림이란 참 재미나는 거야.

김환기





> 다양한 실험적 구도_(1963-1970년대 초) <

김환기는 1963년 50세의 나이로 뉴욕에 건너가 1974년 작고할 때까지 11년간의 치열한 예술혼을 불태우며 다양한 화면구성의 변주와 재료의 변화를 실험하였다. 색 면과 색 띠를 이용한 구도, 타원이 중심을 향해 밀집되는 십자구도, 원의 모양이 세로로 쌓이거나, 각 스퀘어 내에 문자 형상을 추상화시킨 불규칙한 점적 요소, 하트모양의 구성을 보여주는 작품 등 화면구성이 다채로운 모습으로 작가의 불굴의 실험정신을 보여주며, 1970년대의 전면 점화 시대를 예고한다.


선(線)인가? 점(點)인가? 
선보다는 점이 개성적인 것 같다. 
나는(飛) 점(點), 점들이 모여 형태를 상징하는 그런 것들을 시도하다. 
이런 걸 계속해 보자.

 김환기, 1968년 1월 23일



> 2~3F : 점· 선· 면의 울림_(1960년대-74년) <

1963 - 74년 뉴욕에서 시도한 양식적인 실험 작업 중에서도 드로잉은 양적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김환기 작품 세계의 놀라움은 지속적으로 일관된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구현하였다는 점과 동시에 작가가 그것을 갈고 다듬어 변화시키고 완성하는 노력을 끊임없이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당시 그려진 점,선,면의 드로잉과 3m가 넘는 대형 전면점화는 작가의 창조적 에너지의 집약체이며 그 여정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점화를 ‘새로운 창’이라고 불렀던 작가의 말처럼 이 시기에 그려진 전면점화에는 새로운 무엇을 발견하게 한다. 김환기는 캔버스 화면을 통해 공간을 탐구하는 장으로 삼아 섬세한 점과 선, 면을 그려나갔고 그만의 개성적인 방법으로 조형공간을 다양하게 해석하고 있다.



이른 아침부터 뻐꾸기가 울어댄다 했다. 뻐꾸기 노래를 생각하며 종일 푸른 점을 찍었다. 앞바다 돗섬에 보리가 누렇다 한다. 생각나는 것이 많다. 부산에서 향(鄕)과 똑딱선을 타고 아버지 제사를 모시러 가던 때… 맨해튼…. 지하철을 타고 뻐꾸기 노래를 생각해 본다.

김환기, 1970년 6월 23일





환기미술관은 작가가 작고한(1974) 후, 미망인 김향안에 의해 설립된(1979) 환기재단(Whanki Foundation)이 발판이 되어 건설되었다. 환기미술관은 작가가 생시에 구상하던 현대미술관을 구체적인 실현의 단계로 옮긴 것으로 실로 그 구상의 기간은 오래다. 환기미술관의 건설은 1989년 서울에 환기재단이 설립되면서 1990년에 착수하여 1992년 11월에 완공되었다.

환기미술관은 작가의 작품을 한 자리에 모으고, 그의 예술이 갖는 귀중한 가치와 그가 생전에 미친 한국미술계의 영향을 다시 되새기며 작가가 생전에 꿈꾸었던 한국미술의 저 풍부한 결실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환기미술관은 작가의 대표적인 작품의 상설전과 특별기획전을 열며 더불어 현대미술에 대한 각종 기획과 행사를 병행할 것이다.

작가의 투명하고도 격조 높은 조형의 언어는 다시 우리들에게 되돌아와 성좌의 영롱함으로 빛날 것이다.


사람은 가고 여기 
                그의 예술은 남다.

김향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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