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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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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제목: 권순철 : 시선
전시일정: 2016.2.16 - 5.22
장소: 대구미술관



화가의 초상

                                

이 달 승 (미술평론)


                                                                     “나한테는 ‘얼굴’ 이 말보다
                                                              더 큰 파도를 일으키는 말은 없어.”
                                                                    (벤비찌벤다) benbizzibenda
                                                                                                                                                                                      
                                   
   그림은 어쩔 수 없이 화가의 초상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가 봅니다. 그림이란 화가가 그림을 통해 열어간 길의 자취, 다름 아닌 화가의 눈길의 자취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화가의 눈길은 늘 보고픈 얼굴을 향하고 있었으니, 화가의 눈길은 ‘그리움’의 행로와 다르지 않은가 합니다. 화가의 초상은 그렇게 그리움의 초상이 되었습니다.

   보고픈 얼굴은 화가의 눈에 어둠을 드리웁니다. 그리움이 사람의 눈에 어둠을 드리우듯 말입니다. 보고픈 얼굴, 그리운 얼굴이 화가의 눈에 어둠을 드리우는 것은 보고픈 얼굴, 그리운 얼굴은 늘 어둠 속에 잠겨있는 어둠 속에 비친 얼굴이기 때문입니다. 눈감아도 떠오르는 얼굴이라 말하듯이, 보고픈 얼굴, 그리운 얼굴은 늘 어둠 속에서 떠오르는가 합니다.

   화가에게 얼굴 이 말은 어둠이 드리운 그리움 속의 눈을 깨우는 말입니다. 그런데 스스로 어둠을 드리우며 어둠을 들여다보는 화가의 눈에는 모든 것이 얼굴로 다가옵니다. 사람도, 풍경도, 그 어떤 물건도 모두가 화가의 눈에는 얼굴로 다가옵니다. 하물며 어느 시인의 말처럼 “밤도 밤의 얼굴을 하고 있어 얼굴로 있지 않은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화가의 눈에는 모든 것이 얼굴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얼굴’ 이 말은 화가에게 있어서 모든 것의 존재를 일컫는 말입니다. 가시적 형체이든 무형의 비가시적인 것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 어둠을 드리우는 그리움 속의 눈으로 향하지 않을 때, 가시적 형체는 한낱 생기 없는 물체에 지나지 않고, 무형의 비가시적인 것은 공허한 관념으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생기 없는 물체를 두고, 공허한 관념을 두고, 우리는 얼굴 이 말을 차마 떠올릴 수가 없습니다. 

   화가의 눈은 얼굴 이 말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화가란 보고 싶어 하는 눈에 다름 아니고, 그 눈의 기억에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이란 없습니다. 그만큼 화가에게 얼굴 이 말은 존재, 있음을 대신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화가의 눈은 굳이 존재, 있음이라는 말들조차 필요치 않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우리는 밤하늘의 얼굴은 말하여도 밤하늘이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화가의 눈에는 얼굴이 있음이 곧 있음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화가의 눈이 있는 이유는 얼굴이 있는 이유와 다르지 않은가 합니다.


   화가의 눈이 있게 하는 얼굴이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화가의 눈에는 모든 것이 얼굴로 다가옵니다. 다가오는 얼굴은 만남을 향한 열림입니다. 그래서 화가는 얼굴을 찾아 나섭니다. 화가 권순철, 그의 눈에 얼굴은 세잔이 말하는 모티브에 다름 아닌 말입니다. 화가에게 모티브는 나의 생각 속에 미리 주어진 계기나 실마리가 아닙니다. 모티브는 얼굴이 그러하듯이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얼굴은 알고 모름 너머로 늘 새롭게 나타나는 얼굴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얼굴을 찾아, 산의 얼굴을 찾아, 바다의 얼굴을 찾아, 석공의 손길을 빌어 드러나는 돌의 얼굴을 찾아, 어둠 속에 등을 드러내는 듯한 밤의 얼굴을 찾아, 곁에 있어도 없는 듯 찾는 당신의 얼굴을 찾아 이렇게 화가는 그리움의 길을 나섭니다. 그리움은 깨어있음입니다. 어둠 속에 깨어있는 그리움 속의 눈은 어둠 위로 얼굴을 내미는 표정들을 향해 그리움의 손을 뻗고 있습니다. 늘 새롭게 나타나는 얼굴의 표정을 향해.
 
   얼굴은 침묵의 표정입니다. 얼굴은 침묵의 표정으로 말합니다. 얼굴은 어둠 속에서 늘 새롭게 떠오르는 빛나는 침묵의 표정으로 말합니다. 굽이치는 삶의 곡절의 조형적 증언과도 같은 뭇사람들의 말없는 위엄에 찬 얼굴도, 굳센 골격을 드러내며 솟아올라 다시 깊은 어둠 속에 몸을 내리는 산의 얼굴도, 맑고 깊은 어둠 위로 밀려가고 몰려오는 푸른 일렁임으로 새겨지는 바다의 얼굴도, 새하얀 잉태의 약속을 잊지 않은 그리움과 꿈의 ‘제물’이 되어버린 ‘예수’의 얼굴도, 이 모두가 빛나는 침묵의 표정으로 말하는 이 ‘땅’의 얼굴입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어둠이 어둠인 것은 빛을 숨기고 있어 어둠이라는 것을, 그리고 빛이 빛나는 것은 늘 어둠 속이라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어둠과 밝음을 가르지 않습니다. 어둠과 밝음을 가르고 나면 그리움으로 찾아 나설 얼굴이 보이지 않습니다. 침묵의 표정으로 말하는 얼굴이 보이지 않습니다. 

   침묵의 표정으로 말하는 얼굴은 어둠 속에 빛나는 빛, 곧 살아있음의 반영입니다. 화가 권순철에게 살아있음은 거친 상흔傷痕의 외침만으로 남아있지 않습니다. 말없이 얼굴을 적시는 눈물이 드리운 어둠의 눈 속에 경건함으로 빛나는 세찬 저항의 물결이 흐르고 있음을 우리는 모르지 않습니다. 그 물결의 높이를 산의 굽이가 지켜보고, 그 물결의 넓이를 바다의 너울이 품어주고 있는지요. 이렇게 살아있음은 늘 어둠 속에 빛나는 빛의 물결로 오고 있는지요. 어둠 속에 빛나는 빛으로서의 살아있음, 이를 이름 하여 ‘넋’의 얼굴이라 합니다. 

   그리고 그리나니... 권순철에게 그림은, 이렇게 어둠이 드리운 그리움으로 그리는, 침묵의 표정으로 빛나는 넋의 얼굴을 향한 힘찬 송가頌歌입니다. 그 송가가 화가의 초상이기를 그리워하고 꿈꾸는 것은 화가의 밝은 침묵 속에서인가요.  

                                                          


권순철의 대구미술관전에 부침


김윤수_미술평론가, 前 국립현대미술관장


권순철이 그림을 그린 지 어언 50성상이 넘었다. 그 동안 서울과 파리에서 여러 차례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권순철은 대구와 연고가 있음에도 단체전에 한두 번 출품한 것 말고는 개인전을 가진 적이 없었다고 한다. 만시지탄이지만 이번에 대구미술관의 초청으로 큰 규모의 작품전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게 되었으니 경사가 아닐 수 없다.

권순철은 1989년에 번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 오직 그림에 전념하기 위해 가족을 데리고 프랑스 파리에 정착하였고 그곳에서 작품 제작에만 몰두하여 참 많은 그림을 그렸으며 현지에서 응분의 평가도 받았다.


권순철이 작품에 임하는 태도, 발상, 제작 방식은 매우 사려 깊고 진지하여 남다른 데가 있다. 그는 수 없이 많은 스케치를 하고 이를 바탕으로 본그림을 그리는데, 작업방식은 마치 철학자가 사색에 사색을 거듭하듯이 붓으로 사색한다고 할까. 그런 면에서 권순철의 그림에는 철학이 있고 우리 현대사에 대한 통찰이 스미어 있다.

그가 그리는 그림은 모티브는 거의가 한국의 산과 바다 그리고 한국 사람의 얼굴이다. 산과 바다만 해도 그저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라 산의 형상과 그 변화에, 바다그림에선 짙푸른 물 속의 움직임과 그 위에 부서지는 파도를 그린 붓질이 탁월하다.
권순철이 그리는 주제는 산과 바다, 그리고 사람의 얼굴 특히 나이든 노인들, 이를테면 만고풍상을 겪으며 살아온 촌로, 촌부의 얼굴들이다. 이들의 모습을 통해 이 땅에서 태어나 살다 간 사람들의 형상을, 삶의 흔적을 혹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간 잔상을 어렴풋이나마 유추해볼 수 있을 것이다.

권순철은 특히 인물 스케치를 많이 하고 인물마다 각기 다른 특징을 잡아 내 잘 그린다. 그러나 그가 그리는 인물은 거의가 한국사람, 그 중에서도 특히 노인들, 세파에 시달리며 힘겹게 살아온 노인들의 이러저러한 모습이다. 이처럼 동시대에 살고 있는 보통사람들의 얼굴을 그리고 있지만 그 인물들에서 우리는 지난 세월 힘겹게 살다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사람들의 모습을 연상해 볼 수 있다. 어느 의미에서 권순철은 현존하는 인물을 통해 우리 역사 속에 묻힌 서민들을 가시적 형상으로 복원했다고 할까. 그가 그린 촌로 촌부의 일그러지고 찌든 모습들, 한 많은 세월을 살다 속절없이 죽어 간 그 애절한 잔영은 보는 이로 하여금 짙은 페이소스를 환기시킨다.


한편 권순철은 특이하게도 ‘넋’을 주제로 한 그림을 많이 그리고 있는데 아마도 그는 화가로서 삶과 죽음의 문제를 깊이 생각하는 듯하다. 넋이 존재하는지의 여부는 논외로 하고 그가 넋을 주제의 하나로 삼아 그리는 것은 아마도 어릴 때 6.25동란 중 아버지를 여읜 충격과 상실감이 동기가 아니었는가 한다. 하지만 그는 개인사적 차원에 멎지 않고 광풍처럼 휩쓸고 간 이 땅의 현대사를, 남북 간의 분단과 대결 상황을 중심 삼아 작업을 한다. 한편 이 화가는 넋을 다양한 형상으로, 억울하게 죽은 많은 사람들의 넋을 갖가지 형상으로 그리고 있어 그 발상도 발상이려니와 넋의 이런 저런 형상이 흥미롭기도 하고 의미심장하다고 할까. 그가 그린 넋은 보는 이들에게 각자 사별한 가족을 회상하며 나름의 호소력을 제공하지 않을까. 그가 그린 넋은 여러 유형이어서 보는 사람이 저마다 상상을 하게 하는, 각자 개별적인 특수한 경험을 제공한다. 권순철은 이를 개인적 체험에 멎지 않고 보편적인 정서로 전환시킴으로써 보는 이에게 어필한다. 그 밖에도 넋을 그린 그림, 이를테면 3.8선에서 혹은 휴전선을 끼고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을 표현한 작품들은 단순하면서도 강한 호소력이 있다. 삶과 지워져 버린 역사의 진실을, 망각을 거슬러 흔적을 추적하는 작업이 아닐까. 권순철의 그림은 발상도 특이해서 가령 캔버스에 철책을 잘라 붙인다든지 신발 한 짝을 그려 놓는다든지, 혹은 캔버스 비스듬히 한쪽을 가린 형상을 그린다든지, 넋이 남북의 분단과 대치 상황을 은유적으로 나타낸다든지 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특히 보는 이의 눈이 그림의 발상을, 화면 구성을, 탁월한 붓질을 따라가다 보면 불현듯 그의 생각은 깊고 솜씨는 이미 대가급임을 실감하게 된다. 

이처럼 권순철의 그림에는 피맺힌 역사가 있고 철학이 스며 있다. 권순철이 이러한 작업을 하고 있는 저변에는 우리나라의 역사와 사람들에 대한 깊은 통찰과 우리 현대사에 대한 통한을 가슴에 새기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 맺힌 분단의 세월과 동족상잔 그리고 그 상흔과 같은 무거운 기억, 더구나 남과 북이 대치하고 전란의 공포가 상존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권순철의 그림이 주는 의미와 그 무게는 크다. 그럼에도 하지만 이를 주제로 그려온 화가는 오늘날 우리 화단에서 점점 줄어들고 있어 권순철 말고는 크게 드러난 화가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 면에서 권순철은 철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이 분야에서 그리고 있는 드문 화가일 뿐 아니라 거의 유일한 화가, 아니 거장이라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권순철이 그림을 그려 온 지도 많은 시간이 흘렀고, 그 동안 미술의 개념이나 경향 내지 흐름도 큰 변화를 나타내고 그에 따라 국내 미술가들의 사고와 제작방식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 그럼에도 권순철은 이런 흐름이나 변화에 아랑곳하지 않고 긴 세월을 흔들림 없이 초지일관 오직 한길에 전념해옴으로써 일가를 이루고 이제 거장의 반열에 올라서게 되었다. 거장은 이렇게 하여 탄생한다는 것을 화가 권순철이, 그의 작품이 보여주고 있다.


한편 파리에서 권순철의 그림을 오랜 동안 보아온 프랑스의 평론가 프랑수와즈 모냉(Francoise Monnin)은 2010년 전시 카탈로그에서 권순철을 서슴없이 master 대가, 거장이라고 적었다. 권순철의 그림을 보면 볼수록 발상에서 화면 구성이나 특히 그 붓질에서 탁월한 솜씨를 보여주고 있어 관심 있게 본 사람이라면 이 화가의 생각과 철학이 무엇이며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더욱이 그 솜씨나 기법이 무르익을 대로 익고 있어 그를 거장이라 말한 프랑스 평론가의 평이 결코 과찬이 아님에 동의할 것이다.





인간미에서 조화로

프랑수아즈 모냉
미술사학자, 잡지 아르텅시옹(Artension) 편집장


권순철이 40년 넘게 그려온 인물들의 시선을 견뎌내기란 만만한 일이 아니다. 시선은 고정되어 있으며 진지하고 강렬하다. 시간이 흐른다고 달라질 건 없다. 오히려 시선을 대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질문을 던진다. 너는 누구인가? 너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우물처럼 깊은 이 눈들은 우리를 자기 성찰로 인도한다.


검은 동공과 얇은 눈꺼풀 주위로 묘사된 광대뼈가 불거진 부분은 산맥을 연상시키고, 편평한 이마는 검은 머리칼 숲으로 둘러싸인 기름진 평야를 연상시킨다. 귀는 분화구를, 목은 흘러내리다 갓 식은 용암을 닮았다. 초상화로 그려낸 머리 하나하나는 얼굴이며 풍경이요, 지구의 야생성과 풍요로움에 대한 은유로, 원초적이고 절대적이며 무자비한 생명을 예찬한다.


공들여 작업한 다색의 두터운 질감은 이미 겪어 낸 투쟁을 증언한다. 요동치는 각진 소묘는 앞으로 다가올 싸움을 예고한다. 자화상이건 초상화건 선으로 그리고 붓질한 얼굴 하나하나는, 자주 파묻혀 있지만 더욱 많은 경우 겉으로 드러나 있어서, 어김없이 강렬한 인상을 전한다. 이 얼굴은 어떤 존재가 겪는 혹독함을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다. 표현주의 계열의 화가 권순철은 빈센트 반 고흐(1853 – 1890)와 장 포트리에(1898 – 1964), 외젠 르루아(1910 – 2000)를 닮았다. 이들과 마찬가지로 권순철은 존재의 힘겨움과 신비를, 역동적이고 놀라우며 영롱하게 반짝이는 화려한 작품으로 승화시킨다.


세계역사는 권순철의 캔버스와 종이 위에서 지도로, 심지어 문신으로 표현된다. 그의 작품은 철저히 유럽풍인 근대적 방식과 지극히 동양적인 전래 전통 사이를 잇는 전례없는 가교(架橋)로서 펼쳐진다. 내밀하고 육체적인 고통과 집단적﹒영적 규율이 동시에 작용하여, 마침내 보편적이고 시간을 초월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직접 체험한 참혹함과 적당한 만큼의 신중함으로 빚어냈으며 세부묘사 없이 합(合)을 갈구하는 이 초상화들은, 용기와 저항의 상징으로서 우리를 존엄의 길로 초대한다.


묘사된 얼굴은 이따금 몸에서 벗어나있다. 이러한 얼굴은 하늘 전체를 배경으로 찍힌 지문 같은 모습이다. 수의(壽衣)에서 빠져나온 듯 거대한 가면이 우주공간 앞에서 부유하는 듯 보인다. 형광 빛에 가까운 강렬한 붓 터치로 이루어진 형태는, 투명하고 놀라우면서도 철저히 자비로우며 우리를 해방시키는 구름으로 이내 변모한다.


권순철이 종종 그려왔으며 대구미술관 회고전에서 소개되는 조용한 일상의 측면 하나하나가 모두 그러하다. 파리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한 나신, 농부가 놓고 간 연장 하나, 여자 실내화 한 켤레, 속이 깊은 꽃병, 빈 병…. 살갗이나 금속, 비단, 도자기, 모든 소재는 무엇보다 질감이며, 작가는 이 질감의 떨림을 표현한다. 오랜 세월 반복된 이 작업을 통해 작가의 붓은 한결 정확해졌으며 팔레트의 색조는 무한히 늘어났다.


대상이 비친 형상을 통해 드러나는 이 회화작품들의 본질적 주제는, 세계의 생명력 그리고 이것이 에너지로 변모하는 모습에 대한 끊임없는 관찰이다. 서울 작업실에서 그린 대형 산(山) 풍경화는 이러한 추구를 여실히 드러낸다. 추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봉우리들로 인해 울퉁불퉁 기복 진 수평선 양쪽으로 광물성 자락은 점점 가벼워지는 한편 대기의 움직임이 형체를 드러낸다. 지칠 줄 모르는 붓의 춤, 붓 터치가 중첩되며 이루는 무수한 색조를 통해, 위와 아래에서 모든 것들이 속삭이며 대화한다. 대지와 하늘의 만남을 비롯하여, 농밀함과 무중력, 육체와 영혼, 현재와 과거의 만남이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추구에 있어서 권순철은 몇몇 위대한 근대 풍경화가들과 맥을 함께 한다. 그 중 특히 폴 세잔(1839 – 1906)과 클로드 모네(1840 – 1926), 마크 로스코(1903 – 1970), 폴 젠킨스(1923 – 2012), 자오 우키(1920 – 2013)를 들 수 있다. 이들과 마찬가지로, 권순철은 살아있으며 조화로운 세계를 꿈꾼다.



다른 대형 풍경화 작품에서는 물과 섬이 한층 내밀한 대화를 나눈다. 또 최근 몇몇 작품에서는 나무와 길도 밀담을 나눈다. 이곳은 모든 것이 상호 보충되는 장소로, 그 무엇도 서로 대립하지 않는다. 영롱한 반짝임은 외곽선을 확장하고 경계를 굽어 나가게 만든다. 인간이 존재하지 않으며 빈 공간이 없는 이 영토에서 드디어 평온함이 가능한 듯 보인다.




작가소개 


권순철/ Sun-Cheol Kwun / 權純哲

1944 경남 창원 출생 
1971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1984 서울대학교 대학원 회화과 졸업

개인전(28회)
2015 봉산문화회관, 대구
2012 아라아트센터, 서울
     갤러리 손, 베를린, 독일
2010 가나아트 뉴욕, 뉴욕, 미국
2003 현대미술관, 트루아, 프랑스
2001 갤러리 가나 보부르, 파리, 프랑스
     갤러리 홍익, 뉴욕, 미국
2000 갤러리 가나 보부르, 파리, 프랑스
1997 갤러리 가나 보부르, 파리, 프랑스
1993 제4회 이중섭미술상 수상 기념전, 조선일보미술관, 서울
1992 프랑크 하넬 화랑, 프랑크푸르트, 독일
1991 바또 라브와르 화랑, 파리, 프랑스
1990 FORUM, 뒤셀도르프, 독일
1988 스톡홀름 미술대전, 스톡홀름, 스웨덴
1986 서울미술대전, 서울
1981 서울미술관, 서울
1978 그로리치화랑, 서울

주요 단체전
1971- 2015 광복 70주년 기념 특별전-기억의 초상, 경남도립미술관
             창원 외 다수의 국내외 단체전 (한국, 미국, 중국, 프랑스, 독일, 폴란드)
    
수상
1992   제4회 이중섭미술상
   
주요 소장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경남도립미술관
호암미술관, 가나문화재단, 프랑스 OECD 대사관, 벨기에 OECD 대사관



나, Self-portrait, 2012, Oil on canvas, 72.8x60.5cm



넋, Soul, 1996-1998, Oil on canvas, 200x254cm



돌 깨는 일꾼, Workers Breaking Stones, 1976-2003, Oil on canvas, 130x98cm



등, Back, 2010, Oil on canvas, 240x200cm



북한산 잔설, Remaining Snow of Bukhan Mountian, 2006, Oil on canvas, 90x22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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