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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부용 힐링 그래피즘-춤추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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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노트] 

지난 2011년 3월 19일부터 31일까지 13일간 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에서 '황부용 힐링 그래피즘' 전시회를 개최한 이후 정확하게 4년 만인 2015년 3월 18일부터 31일까지 14일간 선(選)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개최하게 되었다. 선갤러리는 지금으로부터 38년 전인 1977년 한국현대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고 김창실 님이 설립한 서울의 대표적인 화랑 중 하나로 서울 종로구 인사동네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춤추는 사람들'을 주제로 2013년과 2014년에 제작한 유화 작품 총 77점 중 54점을 추려 전시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마음속에 해결하지 못한 여러 가지 문제들을 안고 살아간다. 신체적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낫지만 정신적 충격은 심리적으로 깊숙이 자리 잡는다. 그리고 그 상처는 우리 몸 안에 에너지 형태로 담겨져 아무리 없애거나 부정하려고 해도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느닷없이 튀어나오게 된다. 나의 힐링 그래피즘은 예술을 위한 미술이 아니라 인간성을 위한 미술이다. 예술을 위한 미술이 모든 미술작품에 내재된 아름다움의 특성에 주목하는 것이라면 힐링 그래피즘은 인간의 일생에서 발생할 수 있는 특별한 감정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미술이다. 

나는 왜 오랜 세월 원초적인 그래피즘에 주목해왔을까? 인간의 진보가 반드시 종교를 불필요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전깃불을 환하게 밝힌다고 해서 사람 마음속의 두려움까지 쫓아내 주는 것은 아닌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찬양의 치유효과를 강조한다. 찬양이 상한 심령들을 치유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는 믿음이다. 열정적인 찬양을 통해 성도들은 은혜를 받는다. 마음의 상처와 원망이 치유되고, 쓴 뿌리가 제거되며, 분노가 가라앉고, 사악한 충동이 사라지는 놀라운 인생의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한편, 부적은 종이에 글씨ㆍ그림ㆍ기호 등을 그린 것으로 재앙을 막아주고 복을 가져다준다고 믿는 주술적 도구다. 기원은 원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인류가 바위나 동굴에 해ㆍ달ㆍ짐승ㆍ새ㆍ사람 등 주술적인 암벽화를 그린 것으로부터 찾을 수 있겠다. 부적은 승려ㆍ역술가ㆍ무당들이 만든다. 

나의 치유를 위한 그래피즘 작품에 동원된 실루엣 기법, 상징적이고 기호화 된 반면영상들은 주제 이외의 것들을 동원하지 않아 마치 심벌이나 트레이드마크처럼 단순 명쾌하다. 그래서 힘이 있다. 행복한 사람은 상처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상처가 많지만 스스로 치유할 줄 아는 사람이다. 나의 치유를 위한 그래피즘 작품들은 정서적인 면에서 그러한 믿음을 도와주는 기능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추구하는 그래피즘은 3만년 전의 주술적인 그 그래피즘의 재현은 물론 아니다. 기호나 부호도 아니고 오히려 사실에 가까운 실루엣의 묘사ㆍ합성ㆍ나열을 기초로 한다. 그리고 미신적이거나 역술적이거나 종교적이지도 않다. 의미론과 기호학적 구문론과 화용론, 조형심리 이론과 색채심리 이론 등을 기반으로 한 회화작품일 뿐이다. 

2012년 10월 4일,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영국의 UK 차트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미국의 빌보드 싱글 차트 2위에 2주 연속 올랐다. K-POP의 진정한 세계 진출 역사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64위로 처음 오른 다음 주에는 11위, 그리고 그 다음 주부터 내리 2위를 계속해서 달렸다. 그날 저녁에는 유튜브가 중계하는 가운데 서울광장에서 열린 싸이의 축하 공연엔 무려 8만 명이 운집했다. 관객들은 싸이와 함께 '말춤'을 흥겹게 추며 뜨거운 밤을 보냈다. 그것은 2002년 월드컵 거리응원의 열기를 방불케 할 만큼 뜨거웠다. "그래 저게 바로 힐링이야~!" 그날 밤 나는 감탄을 연발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광경은 내가 1994년에 그렸던 한 유화 작품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떠올렸다. 옥수동에 사는 내 조카가 소장하고 있는 그 그림은 마주보고 춤을 추는 두 사람의 실루엣을 마치 무척추 동물처럼 리드미컬하게 표현한 작품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오랫동안 단 한 번도 춤추는 사람들을 그려본 적이 없었다. 싸이가 서울광장에서 공연을 치루고 난 이틀 후 토요일 주말 아침, 나는 고교동기동창생의 딸 결혼식에 가려고 선물로 그린 그림 액자 한 점을 찾기 위해 단골 액자가게에 들렸다가 돌아오는 길에 불현듯 2015년 나의 힐링 그래피즘 개인전의 테마를 '춤'으로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 때 나는 이미 2011년 개인전 이후로 그 연장선상에서 30여점의 드로잉과 15점의 유화를 완성해 놓았던 시점이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춤ㆍ막춤ㆍ댄스ㆍ댄서ㆍ탱고ㆍ발레ㆍ무용ㆍ탈춤ㆍ승무" 등 춤과 관련된 많은 언어들로 이미지를 검색해보니 셀 수도 없이 현란하게 많은 수천 수 만점 춤의 이미지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런데 나를 더 놀라게 한 것은 의외로 대부분이 사진이었다는 것이다. "어, 왜 이렇게 춤과 관련된 그림들이 귀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앙리 마티스의 춤 그림의 감동이 내게 새롭게 다가와 다시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심리학 용어 중에 전경과 배경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경계선을 접하는 두 영역이 있는 한 장면에서 지각의 대상이 되는 부분을 전경이라 하고, 그 외의 나머지를 배경이라 한다. 전경과 배경이라는 용어는 흔히 전경이 앞에 있고 배경은 뒤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사용되나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전경과 배경의 경계선은 전경에 부속된 것처럼 보이고, 전경은 배경에 비해 잘 정의된 형태로 보인다. 또한 전경은 배경에 비해 더 밝게 보인다. 

전경과 배경의 관계는 원래 지각에 있어서의 구성적 경향을 나타내는 개념이었다. 인간의 시각은 분절되며 대조가 되어 경험된다. 요약하면 두 부분이 경계를 상호 공유할 때 전경은 뚜렷한 형태를 지니는 경향이 있으며, 반대로 배경은 단지 뒤에서 배경을 구성해 준다는 것이다. 전경과 배경을 구별하는 몇 가지 요인으로는 전경은 분명한 꼴을 갖고 있으며, 지각하는 자에게 더 가까이 느껴지고,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며, 더 인상적이며 기억에 남고, 더 밝게 보인다는 것이다. 이 원리는 시지각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청지각ㆍ운동성ㆍ정서ㆍ사고에도 적용될 수 있다. 

어떤 장면 혹은 패턴이 주의와 지각의 대상이 되는 전경과 그 나머지인 배경으로 분리되는 것을 전경과 배경의 분리라고 한다. 심리학에서의 이러한 전경과 배경의 법칙이 조형이론으로 건너오게 되면 도형과 배경의 법칙이 된다. 도형과 배경의 법칙은 인간의 신경계가 구성된 양상 때문에 작용한다. 눈에 닿는 시각적 자극들은 도형과 배경으로 조직된다. 이 배경을 토대로 도형이 지각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눈에 의한 지각은 동시에 두 개의 배경을 지각하지 못한다. 형과 바탕으로 구별되는 패턴에서 형이 바탕이 되고 바탕이 형으로 보이는 것과 같이 지각적 역전이 가능한 패턴을 가역적 전경 배경이라고 한다. 

"사과를 그리기 보다는 그 사과가 놓인 접시, 접시 보다는 접시가 놓인 탁자, 탁자 보다는 탁자가 서 있는 마룻바닥, 마룻바닥 보다는 그 마룻바닥 위의 공간을 그릴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아직도 내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 고교시절 나에게 회화의 원리를 처음 가르쳐 주신 박춘재 선생님의 가르침이다. 나는 문득 춤추는 사람들을 그려나가기로 작정하면서 1994년에 내가 그렸던 그 춤추는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른 춤추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공간의 에너지, 그 기(氣)를 그리고 싶어졌다. 

마블링은 물과 기름이 서로 섞이지 않는 성질을 이용해 우연의 효과를 살려 작품을 제작하는 기법이다. 마블링 물감은 다루기 편하고 색이 선명하여 아이들에게 흥미를 주고, 또 매번 찍을 때마다 모양이 달라 아이들의 상상력 향상에 도움을 주므로 주로 아동들의 미술교육에 활용된다. 이 기법은 사실표현 위주의 미술교육에서 벗어나 다소 즉흥적인 색채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아이들로 하여금 우연성에서 미적 가치를 얻을 수 있는 탐구 자세도 키울 수 있다. 방법은 물이 담긴 용기에 유성페인트나 유화물감을 떨어뜨리고 살짝 저은 후, 표면에 종이를 대어 찍어내고 말리면 된다. 색깔을 잘 배합하면 더 좋은 효과를 얻을 수도 있다. 그렇다. 춤추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공간의 기(氣)도 우리 인간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마치 마블링의 조형 효과처럼 힘과 열정이 넘치며 다소 어지럽기도 하고 또 아름다울 것이다. 

"나는 춤추는 여자다. 나는 파트너와 함께 하는 춤을 추는 여자다. 지금은 주로 살사와 스윙이지만 기회가 된다면 더 많은 장르의 춤을 즐기고 싶다. 그래서 나는 가장 이상적인 나의 짝은 춤추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춤추러 갈 때면 설레기도 한다. 이 중에 한 명이 과연 내 짝이 될 수 있을 것인가? 평생 나와 함께 춤을 출 사람이 나타날까? 꼭 춤을 추지 못하더라도 배워서 나와 함께 할 수 있다는 열린 마음이 있다면 그것도 또한 좋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내가 꿈꾸는 두 번째 이상형. 그러다가 이런 생각도 한다. 춤을 추지도 않고, 배울 의사도 없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내 인생이 얼마나 잿빛세상으로 변해버릴는지. 내가 얼마나 생기 없이 지내게 될지. 생각만 해도 악몽 같은 시간들이다. 그래서 다시 기도한다. '부디 춤추는 사람을 배우자로 만나게 해주세요. 안된다면 배울 수 있는 사람이라도 만나게 해 주세요'라고. 나는 오늘도 친구의 소개로 누군가 새로운 한 사람을 만날 계획이다. 새로운 만남은 즐거움도 있지만, 부담감도 함께 있어서 종종 낯선 시간이 무섭도록 싫기도 하다. 부디 모든 것을 떠나서 무엇보다 우선 나와 춤으로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우선 춤추는 단 2시간만이라도 즐거울 수 있도록……." 이 글은 수년전 30세의 어느 춤추는 미혼 여성이 자신의 인터넷 블로그에 올린 글이다. 춤이 한 여성의 인생에 차지하는 비중이 잘 나타나 있을 뿐만 아니라 추구할수록 더 깊게 빠져들게 되고 마는 춤의 진가가 잘 표현되어있다. 

춤이란 과연 무엇인가? 장단에 맞추거나 흥에 겨워 팔다리와 몸을 율동적으로 움직여 뛰노는 동작이며 음악 또는 박자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예술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춤은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하는 육체의 율동적인 예술 활동이다. 무도(舞蹈)라고도 한다. 무도는 원래 춤을 추며 걷는다는 뜻으로, 춤의 동작 및 공간 이동과 관련된 전문 용어라고 할 수 있다. 시ㆍ음악은 시간 속에 존재 하고 회화ㆍ조각ㆍ건축 등은 공간 속에 존재한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던 원시시대에 무용은 당시 인류의 최고급 문화요 예술이었다. 그래서 원시 종교와 춤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춤은 순수한 우리말이다. 한자어로는 무용(舞踊)이라고 하는데, 무용이란 팔ㆍ다리ㆍ온몸을 율동적으로 놀려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동작을 말하는 것이다. 무용은 윗몸과 아랫몸을 같이 어우러지게 해 감정과 의지를 리드미컬한 동작과 유연한 선으로 나타내는 예술이다. 

한국 고전 무용가들에 의하면 한국 춤은 단지 몸의 움직임과 장단 그리고 의상 및 무대 장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 춤의 출발과 발달 과정에 끊임없이 보편화 그리고 구체화된 이상이 스며들어갔기 때문이라는 것. 한국 춤 속에는 이미 제천의식(祭天儀式)의 경건한 넋, 사회적 축제로서의 가치판단의 마음, 깨끗하고 무한한 에너지 원으로서 몸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마음과 몸을 다스려 합일된 넋으로 춤이 이루어질 때 진정한 춤으로 인정한다고 한다. 즉 삼태극 합일체제로서 인간이 자신의 본질적인 세 요소를 합일시켜 움직임으로 표현한 것이 춤이라는 것이다. 

이번에 출품하는 작품들 중에는 한 쌍의 무녀가 축제 기간 중에 리본을 펄럭이며 즐겁게 춤을 추고 있는 광경을 묘사한 그림들도 있다. 춤을 추는 사람들의 형상은 기호화 된 단순한 실루엣으로 표현하고 오히려 춤추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공간이 창출하는 치유(治癒)의 기(氣)를 리드미컬하게 더 강조한 작품. 마치 고대 동굴벽화를 보는 것 같은 장엄함과 함께 흥겹고 역동적이며 힘과 열정이 흘러넘치는 힐링 그래피즘을 추구한 것이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기쁨, 민주화와 산업화를 모두 함께 성취한 기쁨, 세계 속의 선진국으로 우뚝 선 기쁨, 성큼 다가온 통일 조국 시대 이후에 대한민국 백성들이 대대손손 누려야할 태평성대의 기쁨을 표현했다고나 할까? 

춤과 미술의 인연은 깊다. 둘 다 시각적인 해독과정을 거쳐서 사람들의 가슴 속에 감동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온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로 미술은 춤에서 영감을 받아왔다. 오래전 원시시대부터 인류는 춤을 그려서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했다. 예나 지금이나 움직이는 인간을 그려낸다는 것은 화가나 디자이너들을 강하게 이끄는 모티브요 야심을 불러일으키는 동기부여의 단골 소재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들에게 그림으로 정지시켜 놓은 춤의 이미지들이 가지는 힘은 과연 무엇일까? 드라마 보다는 영화 속에 춤추는 장면이 훨씬 더 많이 등장한다. 어떤 이는 그것이 "시각의 지배하에 벌어지는 가장 관능적인 미장센"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춤추는 장면들을 보며 관객들은 관능의 세계로 몰입하게 된다. 인간의 육체가 만들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두 가지 표정이 바로 미소와 춤이다. 춤추고 싶어 하는 남자들과 여자들의 공통점은 그들 모두 관능의 힘을 알고 있다는 것. 손과 발이 벌이는 격정적 리듬, 육체적인 스릴, 꽃의 역할과 벌의 역할이 함께 빚어내는 익사이팅 하머니, 외부의 진동에 종속함으로써 자아를 내부로부터 파괴하는 이 과격하고 현기증 나는 유희는 가히 일상에 대한 작은 반란임에 틀림없다. 

내가 반면영상(半面影像)이라는 단어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대학 3학년 때부터였지만 작품으로 처음 선을 보인 것은 1977년 '파라솔 쇼우'라는 포스터 작품에서였다. 그리고 1983년부터 약 4년 동안 서울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 디자인실장으로 근무하게 되면서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위한 픽토그램 디자인 개발에 몰두하게 되었고 오랜 시간 문제풀이를 위한 방법론으로 늘 가까이 곁에 두게 되었던 것이다. 

빛으로 인해 우리는 밝음과 어두움이 있고 실체와 그림자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명암이나 그림자와는 다른 비침이라는 것의 존재도 알게 된다. 반면영상은 아름다움을 최소한의 외곽선으로 만 드러낸다. 반면영상을 실루엣이라고도 하는데. 원래 실루엣은 윤곽의 안을 검게 칠한 사람의 얼굴 그림을 일컬었다고 한다. 18세기 말, 프랑스의 재무상 실루엣이 극단적인 절약을 부르짖어 초상화도 검은색만으로 충분하다고 주장한 데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지구상에서 반면영상으로 처음 연극을 시작한 사람들은 중국인들이다. 중국의 그림자극을 피영(皮影) 또는 등영(燈影)이라고 부르는데 장막을 치고 동물가죽으로 만든 인형에 조명을 비춰 생긴 그림자로 연희하는 데서 나온 이름이다. 2011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한나라 무제의 애첩인 이 부인이 죽자, 이소옹의 간언으로 초혼을 하기 위해 그림자극을 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것이 피영의 유래라고 전해진다. 2000여 년 전 중국의 산시지방에서 처음 탄생해 당나라와 송나라를 거쳐 중국의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었다고 한다. 원나라 시대에는 군대에서 피영 극단을 대동해 원정을 갔기 때문에 중동과 유럽 등지에까지도 중국의 그림자연극이 알려졌다. 당시 피영이 성행했던 지금의 산시성 웨이허 평원 일대에서 상연되던 그림자 연극만 해도 수백 개에 이르렀고 곡조 또한 수십 종에 이르렀다고 전해온다. 청대(淸代)에 피영 예술은 전성기를 맞아, 궁정에까지 퍼지게 되었다. 오랜 역사 속에서 중국의 피영 예술은 지역 색을 반영한 여러 분파가 생겨났으며 이들은 모두 섬세하고 정교한 조형미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나는 지난 2011년 3월의 개인전을 계기로 중학교 2학년 때인 1964년 입문해서 47년간 열정을 쏟아 부었던 디자인계를 떠나 순수미술작가로 변신해 픽토그램의 사상을 기반으로 한 회화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앤디 워홀은 원래 그래픽디자이너였고 인생 후기에 예술가로 전향한 미국인이었다. 한국에서 앤디 워홀처럼 그래픽디자이너로 출발해 회화로 인생을 마감한 사례 중 하나가 되고 싶다. 내 젊었을 적 별명이 도쿠가와 이에야스다. '뚱뚱한 야심가'라는 뜻으로 디자인 분야의 친구들이 그렇게 불러주었다. 일본인이 가장 닮고 싶은 인생관을 지닌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명언 중에 "인생이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 서두르지 말라"란 말이 있다. 지난 64년의 인생을 돌이켜 보면 28세라는 어린 나이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10명의 그래픽디자이너로 선정되는 등 영광된 순간들도 많았지만, 반면에 수치스럽고 굴욕적인 경험들도 있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회화로 전향한 이후의 결실들이 고무적이라는 것이다.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자꾸 길어지고 있다. 나의 경우에도 질병의 발생이나 사고만 없다면 아마 20년 정도는 더 살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은 혼자 하는 일이고, 순간순간 평가 받는 일도 아니다. 디자인 작업을 해 오면서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고 하는데, '예술은 길고 디자인은 짧다'는 것이었다. 120년 전에 만들어진 제너럴 일렉트릭 로고 같은 예외적인 사례를 빼고는 아무리 잘 된 명작 로고라도 20~30년을 버티기가 힘들다. 창작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작품을 영원히 남기고 싶은 욕구가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많은 작품을 남기고 싶다. 적어도 몇 백점, 꿈같아서는 몇천점 정도 남기고 죽고 싶은데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산모퉁이 바로 돌아 송학사 있거늘 무얼 그리 갈래갈래 깊은 산속 헤매냐 밤벌레의 울음계곡 별빛 곱게 내려앉나니 그리운 맘 임에게로 어서 달려가 보세 어서 달려가 보세 어서 달려가 보세" 내가 가끔 노래방에서 열창하는 김태곤의 노래 송학사 가사에는 종교적인 뉘앙스가 있다. 마치 인생의 산전수전(山戰水戰)을 다 겪고 난 후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만든 노래 같다. 하지만 김태곤이 송학사라는 노래를 작사 작곡했을 때는 그가 군복무 중이었던 20대 중반. 당시 그는 신앙생활을 하는 청년도 아니었고 인생을 안다고 하기에도 이른 나이였다. 봄에 피는 꽃이 있고 여름에 피는 꽃이 있으며 가을에 피는 꽃도 있다. 드물지만 심지어 어떤 꽃들은 겨울에 핀다. 지나간 날들을 되돌아보면 참으로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걸어온 것만 같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실망시켰다. 나 역시도 적지 않은 사람들을 실망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헤어지고 버리고 잊어야하는 고통, 그 마음의 아픔에 일일이 주저앉아버렸다면 앞으로 나갈 수 없었을 것이다. 후세에 오래오래 사랑받을만한 작품 몇 점을 남기는 데 결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빈센트 반 고흐는 37세로 불행했던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약 10여 년간 900여점의 페인팅, 1100여점의 드로잉과 스케치 등 약 2000여점의 작품을 남겼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작품들은 대게 생애 마지막 2년 동안에 그려진 작품이라고 한다. 실수와 실패를 거듭할 수 있다. 그렇지만 유종의 미를 거둘 수만 있다면 그 실수와 실패는 잊히고 말 것이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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