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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작가 공모전 - 민정See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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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작가 공모전 - 민정See 'Plastic Society'
2014.10.02-11.13
갤러리 AG




소비재를 벗어난 대체 기호와 무감각한 현실의 표상  
-구조와 환경에 관한 아픈 독백

홍경한 | 미술평론가

1.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일상인 현실에선 무엇이든 일회성에 충실하고 충만하다. 쉽게 얻는 만큼 쉽게 버리며 다시 쉽게 생산하고 쉽게 폐기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미디어가 발달된 동시대의 사람이란 어쩌면 사이버머니 같을뿐더러 그에 비례해 끊음과 맺음 또한 한순간이다. 이런 인스턴트식 생활이 일상인 상황에서 매일 간단하게 이용하고 던져지는 사물에게서 무슨 특별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겠는가. 그것에 시선을 고정시킨다는 것 자체에 의미부여를 한다면 모를까. 
이에 필자가 옮기고 싶은 것 역시 작가 ‘민정See’의 관점이다. 온갖 다양한 플라스틱(Plastic)이 등장하는 그의 작업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부분이다. 현상과 사물의 원형이 과감하게 변용되는 과정에서의 개입의 실체, 평범한 이슈를 내적으로 재창조해내는 시선, 자신의 작품 속으로 외계를 융합해 기존 현상을 재해석하거나 이미 형성되어 있는 사실을 재구성 혹은 덧씌움으로서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열어 놓고 있는 그의 분석적이고 때론 역설적인 미의식에 방점이 있음이다.  
그럼에도 서론을 잠식해야할 부분은 ‘민정See’의 작업 배경이요, 그것은 바로 환경이다. 즉, 플라스틱으로 넘치는 도시에서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 우리가 만들어낸 인공의 바다 속에서 어떻게 하면 이상적인 자연을 획득하고 그 자연과 조화로울 수 있는 지에 대한 고민인 셈이다. 
그는 궁극적으로 이에 대해 “사회 시스템, 우리 세상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개인들이 되길 바라며,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여 주기 위해 노력한다.”는 말로 대신하고 있지만, 실제론 “모든 생태계, 자연과 인간이 미세하게 얽힌 하나의 생태망 안에, 나비효과 같이 모든 것이 연결된 Net 속에, 빙하가 녹아 사라지고 숲이 사라지는 등 현재의 생태학적 불균형은 인간의 자본에 대한 욕망, 소비, 잉여 이윤의 추구로 빚어지고 자연과 인간 모두 위태하다.”는 발언이 보다 그의 작업에 무게를 더하는 분동이 된다. 


참!잘했어요 ,아크릴,쓰레기,가변설치,2014


2. 그의 작품들은 모든 것의 잃어버려짐과 그 고통을 예상하는, 인간과 사회를 교차시키며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려는 의도를 내보인다. 플라스틱과 쓰레기, 녹색이라는 상징적 도상과 기호를 통해 스펙터클 소비 되는 행태를 지적하면서 나를 둘러싼 우리 환경 이면에 감춰진 본질에 대한 적시, 고통에 무감각한 채 대량 소비, 확산시키는 데 어떤 의식조차 느끼지 못하는 현시대의 비극을 지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 내부엔 삶의 무게를 더해 가는 방식으로서의 ‘나’와 환경과의 관계, 가시적 효용성과 실질적 삶의 무게 사이에서 서로 충돌하며 어쩔 수 없는 수용과 받아들임을 자각케 하는 울림의 프로세스가 투영되어 있다. 그렇게 생성된 울림은 때로 상호 배제적이고 모순적이지만 호환성을 갖고 있기도 하다. 생성과 소멸, 무위와 인위, 보이는 것과 보려는 것, 도시의 화려함과 추함, 순응과 자각, 자연미와 인공미 등이 그것이다. 
그는 이와 같은 관점을 설치, 영상, 사진 등 넘나드는 장르를 통해 거울처럼 반영한다. 이중 눈에 띄는 작품은 신작  <Resistance>이다. 뾰족한 가시가 쓰레기를 뚫고 있는 이 작품은 판화 위에 꼴라주한 것으로, 한때 어느 지점과 장소, 위치에서 적절하게 쓰임 되었을 법한 사물의 가치를 이후의 무용지물이거나 폐기되어버린 운명으로 전환시킴으로써 시대를 날카롭게 은유하는 작업으로 꼽힌다. 폐허(실은 신축되고 있는 건물) 같은 건축물에 여러 선들이 복잡하게 교차하거나 쓰레기들이 매달려 인공자연을 추구하면서도 그것을 진짜 자연이라 믿으려 하는 우리의 삶을 표현한 <Plastic Green> 시리즈 와 더불어 내레이션이 그리 길지 않은, 군더더기가 없다는 점에서 인상적인 작업이다. 
플라스틱 컨테이너들이 바닥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설치 작업인 <Plastic Society>는 다소 시적인 영상과 어우러져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당대를 조명하는 작업이다. 물에 비친 하늘과 아파트, 비 오는 장면이 영상으로 투사되고 그 주변을 바짝 마른 갈대가 서있다.(갈대는 <Island>(2009)라는 작품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다. 이는 주제에 대한 작가적 탐닉, 일관성을 보여준다.), 여기서 하늘과 물은 인간이 제조 및 가공할 수 없는 물질임을 상징하며 플라스틱은 그 대각선에서 투과하는 기호로 작동한다.
그러나 직접적으로 맞닿는 작업은 각종 유통업체가 운영하는 배달차량을 디지털프린트로 형상화 한 <Plastic Society>이다. 그의 작업에서 자주 등장하는 배달 차량은 우리가 마트에서 상품을 만나는 방법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많은 상품들이 무공해 상품, 청정한 상품 등으로 변신하여 비싼 가격으로 가가호호 들어서고, 꾸며지고 포장된 것들이 오히려 유기농으로 탈바꿈되어 우리 곁에 다가서지만 작가의 시선에서 그 예쁘게 치장된 것들은 허구임을 지적한다. 그리고 이는 곧 우리가 만든 세상에서 그냥 나온 먹거리는 위험함을 짚어내며 ‘아픔’(신체적, 정신적)의 단초일 수 있음을 호출한다. 이를 가리키듯 그의 작업에 등장하는 배달 차량의 컨테이너는 대개 끈적끈적하게 녹아내리거나 위장, 즉 에어 캡으로 가려져 있다.  
흥미로운 건 역시 설치 작업인  <참! 잘했어요>이다. 근작인 이 작품은 유년시절 숙제를 잘해가거나 학습태도가 좋으면 학교에서 찍어주던 상(賞) 스탬프를 이미지화 한 것으로, 바닥의 쓰레기 더미와 같이, 자세히 보면 ‘myself’라는 글자가 겹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제가 있음을 인지하면서도 개선하지 못하는 인간의 가치관, 회피하는 것에서 더욱 안락함을 느끼는 아이러니한 사회, 당장 소용되는 것에 급급한 우리네 모습 등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그 비판의 결정은 작품 아래에 놓인  3개의 녹색 쓰레기 큐브(녹색 깡통과 각종 플라스틱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로 대체된다. 
위아래의 직렬식 메시지가 강렬한 작가의 이와 같은 시선은 무의식적으로 소비하는 것에 익숙한 이들에겐 꽤나 불편하다. 그의 작업에 자주 나타나는 녹색 실처럼 아름답게 포장된 채 얽히고설킨 관계마저 쉽게 가위로 자르듯(그의 작업에 종종 활용되는 형식이기도 하다. 실이란 얼마나 자르기 쉬운가.) 정리되고 버려지는 오늘날을 투영하면 회피하고 싶은 마음도 든다. 
그렇지만 현 인류가 함께 추구해야 하는 삶의 이면을 예술의 가치를 통해 재생산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관점은 동시대미술에서 의미 있는 접근이라고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예술의 역할에 대해 되묻고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더구나 예술가가 현실 참여적인 발언을 하느냐 아니냐는 제 발언을 두려워하는 현재의 우리에게도 대단히 중요한 것이 사실이므로 그의 보는 방식에 대한 고찰은 유의미하다. 


Self defence,디지털프린트, 꼴라주, 80x45,2014


3. 그에게 세상은 온통 쓰레기 혹은 쓰레기통이고 쓰레기 혹은 쓰레기통은 그에게 세상이다. 플라스틱으로 위장된 문화요, 가치관에 대한 기표이며 즉석에서 간편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선호한 나머지 본질마저 훼손하는데 무감각한 현실의 표상이다. 이는 곧 소비재를 벗어난 대체 기호와 무감각한 현실의 표상이며, 구조와 환경에 관한 아픈 독백이다. 
이와 같은 주제의식은 일정한 공간에 박스와 갈대를 들여놓고 대체현실을 반영한 <Island>(2009), <Cure>(2009), <Plastic Beauty>(2009) 이후 지속적으로 드러나며 지금까지 잇고 있는 여러 작업에서 작가만의 스타일을 엿보게 한다. 또한 이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자연을 말하며 자연스럽지 못한” 실상을 담은 사진 작업 <cage>(2013)나, ‘안전제일’이라는 띠가 가로지르고 녹색실로 프레임에 갇힌 나무와 잔디를 담은 2013년 <Plastic Green> 사진 작품처럼 시대를 증거 하는 작업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오늘날 ‘민정See’의 작업들은 관계의 목적성과 지향점이 예술에 보다 구체적으로 적용된 사례를 보여준다. 궁극적으로 전부와의 헤어짐이요 상실이어야 할 것임을 말한다. 물론 가끔은 너무 직접적이기에 누군가에겐 거북하거나 괴로운 대화의 시도일 수 있으나, 예술적 대상으로서의 객관적 현실과 예술 자신의 미학적 원리를 예술작품 속에서 어떻게 통일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연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인간과 사회, 사물과 인간에 대한 주객변증법을 통해 리얼리즘의 현실연관성을 찾아가고 있다는 사실에서 변별력을 내보인다. 
그러나 다소 아쉬운 부분은 있다. 그렇다고 그것이 ‘민정See’만의 아쉬움은 아니다. 현실을 반영하는 것에서가 아니라, 어떤 대상과 예술 주체의 끊임없는 상호 교섭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실제 현실의 총체성에 비한 예술, 그것이 지닌 표현이란 어쩌면 너무나 빈약할 수밖에 없는 공통의 아쉬움이라는 게 맞다. 때문에 어떤 면에선 그렇기에 예술의 부정적 인식이 그의 작업 내부에서 끝없이 유효할지도 모른다. 미적 주체와 예술작품, 그리고 실제 현실과의 상호관계 속에서 쳇바퀴 돌 듯 그려지고 그려지는 현재이니 말이다.


Plastic Society,디지털 프린트, 85x100 2014


작가 노트


Plastic을 주제로 한 나의 작업은 우리의 환경을 그리고, 가치관을 묻는 작업이다.

플라스틱은 쉽게 쓰고 버리는 우리 문화를 대변할 수 있는 상징성 있는 소재이자 의미를 가지고 있다. 플라스틱은 사전적으로 가짜의, 인공물의, 싸구려의, 플라스틱 합성물, 신용카드란 뜻이다. 하지만 60년대까지만 해도 플라스틱은 사람이 만든 최고의 인공물이란 극찬을 받았다. 이런 플라스틱이 싸구려란 뜻을 가지고 쓰레기통을 뒹군다. 나는 쓰레기통이 세상을 보여준다고 믿는다. 플라스틱 과자 봉지, 포장 컨테이너 박스, 플라스틱 소품들이 인스턴트 도시의 가볍고, 얇고, 부풀려지고, 무색, 무취한 쉽게 쓰고, 버리는 플라스틱 문화를 보여준다.

나는 도시에서 자라 반짝이는 쇼윈도와 높은 유리 건물들, 밤이 낮보다 더 화려한 색을 뽐내는 것이 익숙하다. 나는 그 안에서 자연을 그리지만 절대 벌레와는 같이 살 수 없다. 도시에서 꿈꾸는 이상하고 편리한, 너무 깨끗한 자연 이미지들이 플라스틱 컬쳐를 만들고 있는 도시인들에게 있다. 자연스럽고 싶기에 녹색을 쓰지만 플라스틱 녹색이다.


Plastic Green 3종류의 녹색 쓰레기, 각각 약 60x60x60cm, 2013


우리 주변의 플라스틱 컬쳐는 플라스틱 그린, 인공자연을 만든다. 
인공 잔디, 남의 땅과 내 땅을 가르는 녹색 펜스, 녹색 쓰레기를 바라본다.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고 자연스러우라 쓰는 녹색 이지만 플라스틱 이기에 자연스러움이라는 단어가 묻혀 버렸다. Plastic Surgery 라 부르는 성형수술 역시 인간이 만든 미로 인공스러운 면이 부각되는 이유 역시 자연스러움을 잃어 버렸기 때문 일 것이다.

모든 생태계, 자연과 인간이 미세하게 얽힌 하나의 생태망 안에, 조화로운 인간에 대해 생각 해 본다. 플라스틱이 가득 찬 도시, 사람이 만든 인공물 속에서, 도시 안에서 자연을 그린다. 그러나 나비효과 같이 모든 것이 연결된 Net 안에, 빙하가 녹아 사라지고, 숲이 사라지고 있는 등 현재 생태학적 불균형은 인간의 자본에 대한 욕망, 소비, 잉여 이윤의 추구로 자연과 인간이 모두 위태하다.

Plastic Society , 플라스틱 컨테이너, 갈대 석고, 영상,2014


이러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작업을 하고 있다. 사회 시스템, 우리 세상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개인들이 되길 바라며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여 주는 작업을 위해 노력한다.
민정See |  20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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