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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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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안국약품(주) 신진작가공모 황수연전
당신의 주머니 속에 당신의 단어 속에
2014.06.05 - 07.22 
Opening 06.11 18:00



당신과 나, 자신과 타자의 한 가운데
‘L’ : 우리는 그녀를 체험하고, 이해하고, 다시금 공감하게 된다

천미림 | 미술비평

   불안한 것은 완벽한 것보다 더욱 완성되어있다. 흔들리는 것이 더 완벽하다. 적어도 흔들리는 것은 존재를 알리며 움직이고 있다. 불안은 시간을 진동시키고 있다. 시간을 진동시키면서 자신의 뿌리를 고정시키려고 끊임없이 안정으로 다가가는 것이다. 완벽한 안정을 얻어내는 순간, 다시 불안을 향해 끊임없이... 완성되어야 한다. 



  책상 위에 잘게 잘려진 노란 고무줄이 있다. 누군가 그 고무줄을 유심히 본다. 그리고 그 책상에 앉아 있는 한 여인의 잔상을 떠올린다. 그녀는 책상 앞에 앉아 고무줄을 응시한다. 무언의 대화. 그녀의 손에 의해 잘게 잘려지는 모래알 같은 고무줄 조각들은 이제 더 이상 우리가 알고 있던 고무줄이 아니다. 그녀의 모든 격정이 고무줄의 이형 아래 황금 모래알처럼 부서졌다. 아, 하고 모든 장면이 함께 사라진다.『Object_물건,목적(2009)』 
환상 같은 일이다. 아니, 그것은 그 자체로 환상이다. 작가 황수연의 작업들은 모두 그녀의 그림자를 담고 있다. 그녀의 작업은 사물과의 끊임없는 대화다. 외부 세계에 놓인 흔한 사물은 단지 시공간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존재한다. 그리고 작가는 그 물리적 존재감을 사물의 변형을 통해 다시금 확인하고 새로이 부여한다. 사물과 마주한 그녀의 대화는 많은 시간과 인내를 필요로 한다. 

  작업은 세계란 가시적인 면이 전부인가에 대한 인식론적 의문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녀는 물리적이고 가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비가시적인 세계에 대한 이해의 욕망을 보여준다. 작가가 재구성하는 세계는 타인과 감정, 관계와 같은 형이상학적 이해로부터 형성된다. 물리적 세계에 놓여있는 사물은 외부 세계와의 규약 속에서 하나의 정형화된 의미를 갖는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그 규칙을 엄격히 지키려 애쓴다. 작가는 세계를 구성하는 그 엄격한 규칙의 가혹함을 동정한다. 그녀는 그 감정에 기반하여 세계의 필연적 변화를 인정하면서도 또 다른 변화를 도모한다. 그녀의 반란은 사물을 엄격함으로부터 탈출시키는 것이리라. 작가는 사물에 감정을 담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녀가 변화시킨 사물을 지켜보면서 가슴 시린 작가의 세계에 공감할 수 있다. 

 관계 안에서 

  우리가 공유하는 세상 안에서 사물은 실제이자 공리이며 간혹 불변의 이해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모두 그렇게, 같은 방식으로 인식 가능한 것을 사물의 순수한 물성이라고 이해한다. 반면 사적인 감정은 가변적이다. 우리는 감정이란 모두 다르게, 각자의 방식으로 상대성을 가지고 이해 가능한 것이라고 여긴다. 세계가 두 축으로 확연히 나누어진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매 순간 순수한 물성과 사적인 감정의 맞닿는 지점을 경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두 축이 어떠한 방식으로 맞닿고 있는지 경험 안에서 확실하게 확인하기는 어렵다. 작가는 이 공유 지점을 시험한다. 두 세계는 현실에서 어떻게 합치 되는가_ 황수연의 작업은 끊임없는 회의와 물음, 탐구로 이루어진다. 




  작가는 주머니(pocket)라는 작은 공간을 통해 자신만의 기준으로 두 세계를 분리시킨다. 주머니는 작가의 사적인 감정들로 채운 지극히 내밀한 장소이다. 그녀는 물리적 세계의 변형을 통해 자신의 주머니 속에 숨겨둔 것들을 꺼내 보인다. 『More hard(2014)』는 가장 연약한 물질이 작가의 손에 의해 할 수 있는 최선의 견고함을 갖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얇은 호일은 서로 겹겹이 싸여 뭉쳐지고 지속적인 외부의 압력에 의해 단단해진다. 그래서 이 호일은 외부 세계 안에서 더 이상 유약한 존재가 아니다. 그렇게 호일은 주머니 안에서 밖으로 나올 수 있다. 작가에 의해 변형된 오브제들은 더 이상 그 이전의 물리적 세계에서 우리가 인식하던 그 모습은 잃지만, 반대로 새로운 것으로 재해석된다. 
나는 이렇게 재해석되어 주머니 바깥으로 꺼내진 대상들의 데뷔를 확인한다. 황수연은 오브제들을 변형을 통해 재탄생 시킨다. 그리고 그는 이전의 의미를 잃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은 대상들을 가장 열린 공간에 두고 극적으로 연출한다. 대상은 이전의 소모적이고 흔하던 존재가 아니라 작가의 감정덩어리로 뭉쳐져 ‘황수연’의 그것으로서 존재한다. 전시장이라는 가장 벌거벗은 공간에 들어오는 순간, 작가의 감정의 뭉쳐짐들은 다시 타인의 감정으로 전환된다. 관객들은 가장 멋진 극을 보고 찬사를 보내듯이, 초라했던 오브제의 출현에 동요할 것이다. 
 
  오브제들은 관객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인간이 느끼는 모든 사적 감정은 사실상 보편 감정이라고 보는 것이 더 합당하다. 아담 스미스Adam smith에 의하면 모든 인간은 내재적으로 감정을 느끼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기쁨, 슬픔, 우울함, 외로움, 분노와 같은 감정들은 나의 감정이자 동시에 모든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공통 감정이다. 이와 더불어 인간은 또한 타인의 감정을 느끼고자 하는 경향성을 갖는다. 누구나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고자 욕구한다. 그러나 타인의 감정에 공감한다고 해서 그 감정이 나의 감정과 꼭 같은 것은 아니다. 인간은 타인이 느낀 감정에 대하여 상상하고, 그 상상에 의한 자신의 감정을 가질 때 그것을 공감한다고 여긴다. 황수연의 작품을 그녀의 사적 감정의 덩어리라고 한다면, 그 감정은 그녀만의 것이자 동시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그런 종류의 감정일 것이다. 우리는 오브제를 통해 그녀의 감정에 공감하고자 한다. 그녀의 외로움, 그녀의 기쁨과 슬픔, 그녀만의 우울함과 분노를 이해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오브제를 보며 느껴지는 감상자의 공감은 분명 그들 스스로의 것이다. 결코 그녀의 오브제가 담고 있는 사적 감정들을 타인은 완전하게 알 수 없다. 따라서 그녀의 비밀은 여전히 지켜진다. 그리고 감상자는 작가의 작업들로부터 감정을 가진 인간으로서의 공감과 위안을 얻는다. 상호 공감에도 불구하고 감상자의 감정은 그들 스스로의 것이기에 그는 사적인 비밀들을 지켜갈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은 황수연의 작업으로부터 시작된다. 


 In your pocket, 당신의 주머니 안에

  황수연이 세상을 만나는 방식은 흥미롭다. 시각적 세계를 비시각적인 방식으로 잘게 분해함으로서 자신이 속해있는 확인 가능한 세계를 마주한다. 작가의 사적 감정들은 작은 새처럼 파르르 떨며 대상으로 날아든다. 모든 사물은 작가가 가진 내적 이미지를 통해 하나의 형상을 갖는다. 그리고 그 형상의 내면에는 작가와 마주보는 타인의 모습이 웅크리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외로우며 자신이 속한 세계 안에서 끊임없이 타인과 소통하고자 한다. 작가도 세상 안에서, 한 인간으로서의 가장 내밀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작가는 사물을 담담하게 시간을 들여 변화시키는 것과 달리, 가장 원초적인 감정들을 사물에 부여한다. 어느 날, 그녀는 책상 구석에 초라하게 놓인 담배에 외로움을 부여하고, 그림자를 놓아주었다.『등(2010)』 담배의 구부러진 등에 투시된 외로움은 작가의 것이다. 이 담배는 우리가 아는 그저 그런 담배가 아니라 이제 ‘그녀’의 담배가 되었다. 
테니스 공의 본질은 공이다. 우리는 사회 안에서 동그란 물체를 ‘공’이라고 명명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공의 형상에 노란 부직포를 덧대는 순간 공은 ‘테니스공’이 되며, 다른 종류의 공과 비교해서 그 명칭과 의미, 기능이 상이해진다. 작업『전부(2010)』는 테니스공으로부터 노란 부직포를 분리하여 새로운 공의 형상을 재해석함으로서 우리가 본질이라고 막연히 믿었던 진리에 대한 회의적인 태도를 제시한다. ‘테니스공’은 형광색 표면을 잃음으로서 ‘공’이 되었고, 형광색 표면은 내부의 기능을 상실한 채 다시 ‘테니스공’이 되었다. 어떤 것이 과연 테니스공의 본질인가.

  공적인 세계로부터 출발한 단순한 사물의 존재는 물리적 한계에 도달하여 긴장의 극치에 달한 순간 사적인 세계로 진입한다. 작가는 물리적 대상에게 가하는 끊임없는 힘을 통해 물성을 변화시킨다. 이 과정에서 그 대상은 더 이상 우리가 공적인 세계에서 발견했던 바로 그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작가의 감정이 이입된 새로운 대상으로 재해석된다. 그리고 새롭게 태어난 그 대상은 작가가 사물에 부여한 감정과 의미를 나타냄으로서, 작가가 대상과 어떠한 대화를 나누었는가를 보여준다. 그 한 편의 대화는 극적인 세상과 작가 간의 이해와 타협으로 연출된다. 

  나는 황수연의 작업에서 가장 원초적인 욕망을 본다. 아이들과 같은 감각적 호기심, 애정과 이해에 대한 갈망, 세상에 대한 탐구. 그리고 그 욕망은 오롯이 사물에 투영된다. 작업 『모래 구(2014)』는 그녀의 호기심과 욕망을 담는다. 작가는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확인하는 모래의 역사를 확인한다. 도시에 갇혀있는 모래는 처음부터 그 곳에 있었던 것일까? 그녀는 모래가 지나온 강과 길의 흔적들을 답습한다. 그녀의 손 안에서 모래는 다시금 새로운 경험들을 쓴다. 흔히 사물은 예술가들의 가장 가까운 대화 상대이자 친구라고 했던가. 작가의 작업은 사물과의 긴밀한 관계와 내밀한 대화, 그리고 비밀스러운 소통과 공감의 결과물이다. 그녀는 자신의 욕망을 사물의 이형을 통한 상호 관계성을 바탕으로 해소하고자 시도하는 듯하다. 이는 가슴시릴 정도로 외롭고 견디기 힘들 정도의 인내심을 요구할 것이다. 작가는 그 모든 과정 안에서 무한히 움직이며 긴 터널을 지나 예술로의 어느 지점에 도달하는 것이다. 

  과연 그 내밀한 대화의 내용은 어떠한 것일까? 나는 문득 그 비밀을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누구나 타인의 비밀에 관여하고 싶어 한다. 저 사람은 누구일까, 어떤 생각을 할까, 하물며 만일 작가가 사물과 ‘비밀’의 대화를 나누었다면 그 비밀은 무엇인지 진정 궁금할 것이다 : 작가와 사물이 나눈 그 긴밀한 대화는 과연 무엇일까? 『신뢰(2010)』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날달걀을 관통한 샤프심은 한 치의 틈도 없이 입을 다문다. 둘 만의 비밀은 아무것도 알 수 없기 때문에 좋다. 타인이나 관객이 몸서리치게 그 대화를 궁금해 할수록, 더 좋다. 누군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들의 대화를 유추하고 상상하는 순간, 공감과 이해는 이루어진다. 우리는 같은 시공간에서 물리적 세계를 살아가는 인간이므로_ 그 비밀은 다르면서 비슷하고, 비슷하면서 또 다를 것이다. 작가는 그 비밀을 이해받으려 하지 않을 뿐더러 만약 그 비밀을 타인에게 오해받더라도 개의치 않을 것이다. 비밀은 오직 자신만이 알고 있기 때문에 의미가 있으므로. 이러한 불친절함은 오히려 더 알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out of pocket, 당신의 주머니 바깥에서

  나무의 위태로운 연결로 설치된 오브제는 기이한 형태로 서 있다. 종이테이프로 연결된 지점들은 불안함을 자아낸다. 『A4안의 사전(2014)』은 이 설치물의 접힘으로부터 온다. 이는 우리가 세계에서 공유하는 용어적 의미론에 대한 반문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세계의 용어적 규약은 큰 유용성을 가진다. 우리가 사전을 펼치고 하나의 의미를 찾을 때에 그 의미는 누구에게나 용인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단어를 그렇게 단정적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작가의 반문은 곧 새로운 의미의 정의로 이어진다. 그녀는 사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 단어마다의 사적인 정의를 덧붙인다. 단어는 기존의 규약을 잊어버리고 개인적인 의미를 통해 재해석된다. 나는 그녀의 작업에서 시블리Frank Noel Sibley의 논의를 떠올렸다. 그녀의 새로운 용어 정의가 가지는 예술적 의의는 시블리의 미적 용어Termini를 생각나게 한다. 그는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를 비미적 용어와 미적 용어로 구분한다. 비미적 용어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통상적 의미를 지칭하며, 미적 용어는 주관적 해석을 동반한다. 황수연의 사전은 비미적 용어에 대한 네거티브로부터 온다. 그녀는 동일한 단어에 대한 비미적 의미론에 회의적 태도를 가지며, 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미적 용어를 만들어낸다. 그녀만의 의미를 부여하는 이 단어들은 그녀의 주관성과 사적인 감정 상태를 오롯이 드러낸다. 그녀의 사전은 시블리적인 의미에서의 비미적 용어들을 담는다.

 ⌜Out of pocket⌟ 시리즈는 그녀의 이전 작업들과 맥락을 같이 하면서도 새로운 물성과 구조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나타난다. 조각으로부터 기인한 이 모델들의 형상은 도형에 대한 기하학적인 관심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녀는 단순한 도형으로부터 복잡한 대상을 연상하고, 그 연상으로부터 다시 단순한 형상으로 돌아온다. 이러한 연상과 상상은 작업의 지속적인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사전은 대체로 단순 도형의 집합으로서, 전개도면의 형태를 가진다. 납작한 전개도면을 부피를 차지하는 가구로 만들어내는 그녀는 대상에 큰 존재감을 부여한다. 사전은 단지 닫혀있을 뿐,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가진 단어들로 꽉 들어차있다. 그녀는 그 사전을 조각으로 만든다. 사전 안의 공간에 열어서 단어들의 존재감으로 새로운 공간을 창조한다. 
『당신의 단어 속에_ in your word』에서 그녀가 담아내는 것은 단순한 의미가 아닌 그녀의 세계관이다. 작가는 ‘word’와 ‘world’라는 단어 사이에서의 커다란 존재론적 차이를 발견한다. ‘L’이라는 알파벳 하나가 세계 안에서 가지는 엄청난 부피와 무게_ 그녀는 언어가 창조해내는 무한한 세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발견해낸다. 황수연이 창조해낸 사전 속 새로운 세계들은 그녀의 경험이면서도, 그것을 발견하는 타인들의 미적 경험을 통해 타인의 경험이 된다.



 
‘L’ : 우리는 그녀를 체험하고, 이해하고, 다시금 공감하게 된다. 

『A4시리즈(2008)』는 황수연이 어떻게 세계와 대상을 마주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스스로가 다소 집착한다고 여기고 있는 A4종이에 관한 그녀의 관심은 지극하다. 작가는 규격화된 양방향의 종이가 갖는 일반적인 의미와 사적인 감정 사이에서 고민한다. 종이가 늘어질 때까지 물리적 압박을 가하는 작업 과정을 통해서 종이는 처음 자신에게 부여되었던 일반적 의미를 잃고 새로운 감정을 바탕으로 하는 주관적 의미를 가진다. 작가는 우리가 속해있는 세계에서 공유되는 일반적인 의미와 규약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A4사이즈의 종이라고 여긴다. 규격화된 종이에 대한 집착은 종이를 대하는 예술가의 가장 원초적인 물음일 것이다. 
그렇다면 공간을 차지하는 대상과 오브제와 달리, 이차원이라는 종이 안에 담긴 이야기들은 무엇일까? 작가의 드로잉은 얼핏『모래 구(2014)』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 보인다. 모든 오브제들은 어디로부터 온 것인가에 대한 물음은 새로운 물리적 해석을 통해 나름의 추론 결과를 갖는다. 그녀는 도판이라는 그림사전에서 발췌한 시각적 정의들을 종이에 옮겨 가장 단순한 기하학적 도형으로 환원시킨다. 가장 태초의 형태를 상상한다. 

 예술 안에서 어떠한 것들은 죽어있다. 그리고 어떠한 것들은 생(生)을 갖는다. 아마도 예술가의 역할은 죽은 것에 생을 부여하고, 생을 가진 것에 새로운 삶을 찾는 것일 터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예술가는 살아 있다. 그녀의 생의 주머니는 이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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