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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준의 별경(別景), 대국적 발상과 한국적 카메라 아이 (Camera eye)

 

 구성수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전문사 강사)

 

 

  리준의 산수화같은 풍경 사진은 사진술이 갖는 광학적 한계를 극복하려는 한 젊은 사진가의 실험 정신에서부터 비롯되었다. 풍경 사진을 촬영함에 있어 광각렌즈를 써야한다거나 조리개는 조이고 거리는 무한대에 두는 것은 아마추어 사진가들도 아는 상식이긴 하지만, 작은 피사체를 찍는 클로즈업 촬영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리준은 자연 풍경을 작은 크기로 실내에 재현, 감상하는 취미인 분경 미니어처를 자기 사진의 대상으로 삼았다. 여느 자연 풍경을 찍는 보통의 풍경 사진과는 달리, 리준의 경우는 축소한 작은 풍경을 피사체로 삼았으므로 조리개를 최대한 조여도 여느 풍경 사진에서 기대할 수 있는 깊은 심도를 얻을 수 없다. 보통의 풍경 사진에서라면 원경과 근경이 모두 선명하게 초점이 맞겠지만, 리준처럼 축소한 풍경을 촬영할 경우, 선명한 원근감이 결여되어 구체적이지 못한 풍경 사진이 되게 마련이고 결국 선명함보다는 심상적인 사진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리준이 피사체로 작게 축소한 풍경에는 풍경 사진에 흔히 쓰이는 대형 카메라도, 작은 피사체를 촬영하는 데 사용하는 마이크로 렌즈도 적합하지 않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찍기 곤란한 피사체를 자기 작품의 대상으로 삼은 리준의 시도는 통념을 벗어난 무모한 발상같기도 하다.

 

  이같은 광학적 한계를 리준은 이렇게 극복했다. 디지털 카메라로 부분 부분 초점을 이동하여 여러 장의 사진을 찍은 뒤, 초점이 맞지 않는 부분을 지움으로써 전체적으로 초점이 맞는 흑백의 풍경 사진을 만든 것이다. 수십장의 원본 파일을 합성하여 이중 초점을 한꺼풀씩 걷어내는, 정교한 회화 작품 이상의 인내와 고통이 따르는 작업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리준의 연작 「별경(別景)」은 총 60여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리준은 이 작품들을 찍기 위해 전국을 돌면서 소위 취미를 넘어선 걸작이라는 ‘미니어처 분경’들을 찾아 다녔고, 비닐하우스나 분경 소유자의 집에서 밤새 촬영한 경우도 허다했다고 한다. 리준은 아파트 베란다나 거실에 꾸며진 작은 폭포와 안개 발생기로 연출된 미니어처 분경을 카메라 파인더로 보고 있노라면 대자연의 축경같이 보인다고 말한다. 그의 이 말에서 아파트 실내에다 축소한 가짜 풍경이라도 만들어 자연의 기운생동(氣運生動)의 교감을 맛보려는 현대인의 자화상이 보이는 듯하다. 그가 제목으로 붙인 '별경'이라는 말은  '또 다른 깨달음'이라는 동양적 사색의 역설적 표현이기도 하다. 리준의 미니어처 분경 사진은 언뜻 보면 또 다른 세상의 자연 풍경에서 깨달음을 얻는다는 전통적인 다소 고루한 양식의 풍경같지만, 작가는 이 사진들을 찍으면서 클로즈업의 매력에 흠뻑 빠져 생기를 만끽하고 현실 세계와는 다른 작가만의 마술적 최면에 빠져 실제 자연의 기운생동 이상의 경이로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리준의 「별경」연작은 조선 후기의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와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조선 후기의 진경산수화가 우리나라의 유명한 산천을 답사하여 그린 산수화이듯, 리준의 「별경(別景)」연작은 우리나라의 유명한 미니어처 분경들을 답사하여 찍은 사진이다. 그러나 진경산수화가 단지 산천을 그대로 베낀 그림이 아니라 우리 산하에 대한 자긍심을 담은 그림이듯, 조선족 중국인인 리준 역시 미니어처 분경을 통해 자신의 고향인 두만강을 보는 듯한 대륙적 역동성을 자신의 사진에 담았다. 이 조선족 유학생이 백두산을 자기 집처럼 드나들며 키웠던 원대한 꿈은 콘크리트 숲속에서 갑갑하게 돌아가는 서울이라는 전혀 다른 곳에서 미니어처 분경처럼 쪼그라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풍경 사진은, 한국 산수화 전통에 맥이 닿으면서도 또 한편으로 현대 도시 문명으로 재해석한 새로운 풍경 사진이며, 한국어와 중국어를 구사하고 할아버지의 고향이 북한인 조선족 중국인이 한국에 와서 찍은 소위 ‘현대 사진’인 것이다. 풍경 사진에 대한 조선족 유학생 리준의 새로운 접근은 한국 사진계가 주의깊게 봐야 할 한국 사진의 또 다른 가능성이다.

 

   또 한편으로 리준의 이같은 작업은, 디지털 기술을 풍경 사진에 보다 진전된 방식으로 적용했다는 점에서 사진 기법적 의의가 있다. 풍경 사진에 있어 기존의 디지털 기법은 도시 풍경 표현이나 단순한 선을 가미하는, 소위 '합성' 차원에 머물러 왔지만, 리준은 클로즈업의 초점 문제를 디지털로 극복했다든지, 디지털 기술을 적극 활용함으로써 복잡한 자연 풍경도 실재의 풍경처럼 마음대로 그렸다는 점을 높이 사고 싶다.

 

  그러나 그의 이같은 적극적이고 진일보한 디지털 기법 활용은, 정교한 회화 이상으로 치밀하고 인내를 필요로 하는 아날로그적 접근의 도구인 것이다. 즉, 리준의 이같은 작업은 무한 복제와 양산으로 요약되는 디지털 테크놀로지 시대에 현대 사진이 나아가야 할 바를 시사한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그는 중국의 광활한 풍경에서 대국적 발상을 얻었고, 한국적 현실을 인식하고 이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재해석한 자신만의 풍경 사진을 만들 수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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