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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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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색으로, 이준 화백 특별 회고전

  • 전시분류

    개인

  • 전시기간

    2008-06-19 ~ 2008-07-31

  • 참여작가

    이준

  • 전시 장소

    미술관가는길

  • 문의처

    02.738.9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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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개요

전시명: “빛으로 색으로, 이준 화백 특별 회고전” 

기  간: 2008. 6. 19 (목) ∼ 7. 31 (목) 

장  소: 미술관가는길(종로구 경운동) T.02-738-9199


■ 전시내용

■ 자연의 빛으로 엮은 추상회화의 진수, 남사(藍史) 이준 화백 특별 회고전 

■ 前 대한민국 예술원 회장을 역임한 이준 화백의 화업 60년 회고한 40여 점 출품. 

■ 기하학 추상작품, 삐에로 연작 구상작품과 함께 수채화 작품 첫 선보여. 

■ 1960년대 말부터 선과 면이 두드러지는 기하학적인 추상화를 소개한 대표작가. 

■ 53년 국전에서 대통령상 수상, 이화여대 미대 교수로 30년 근속.

■ 조각보 돗자리 등에서 보이는 우리 전통문양과 색을 접목한 것이 특징. 

   (초기에는 선과 면 위주로 차갑고 날카로웠던 반면, 후기로 접어들면서 크고 작은 원이      많아져 부드러워져. 줄곧 밝은 색조를 즐겨 젊은 작가의 작품으로 착각할 정도)

■ 요즘도 매일 새벽 5시 기상해 하루 8시간씩 작업, 미발표 작품이 300여점일 정도.

■ 기존 미술관 위주를 벗어나 대중적인 장소인 인사동 소재 화랑 첫 개인전. 


■ 이준 화백의 작품세계

이 준의 ‘모자이크 추상’-기하학적 추상의 표본

글_서성록(한국미술평론가협회장, 미술평론가)


이준화백은 ‘구체물’의 표현에서 점차 추상으로 옮겨온 화가이다. 그의 화력이 반세기에 이르니 우리나라 미술과 궤적을 같이한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딴 데에 한 눈 팔지 않고 오로지 ‘미의 개척’을 위해 헌화하듯, 그렇게 인생을 뜻있게 보낸 원로 화가이다. 이준화백은 일본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김환기, 유영국, 이규상 등과 함께 우리 화단에 추상회화를 펼쳤다. 그들보다 몇 살이 아래고, 또한 추상화가로서 레이스를 늦게 끊은 편이지만 70년대 이후 지금까지 한걸음으로 기하학적 추상의 길을 달려오고 있다. 그가 ‘기하학적 추상의 표본’처럼 인식되고 있는 데에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현역으로 활동하는 그의 예술적 투혼에 힘입은 바가 크다. 

이준화백은 구상화가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신의 화풍을 천착해간 소신파 화가로 분류된다. 그의 부드러운 성품이 어떤 화가들과도 잘 어울릴 수 있게 했는지 모른다. 국전에 빠짐없이 출품했지만 그는 예술적인 면에 있어서는 다른 사람과 일체의 타협이나 양보를 하지 않았다. 어떤 시류에도 흔들림 없이 자신의 길을 개척할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만추>(1953)는 그의 데뷔작과도 같은 작품이다. 전쟁이 끝나고 상경한 이듬해 <국전>에 출품하여 영예의 대통령상을 받은 유화가 바로 이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창덕궁의 성정각 ‘희우루(喜雨樓)’를 그린 것으로 앞에는 고궁이 있고 우뚝 솟은 산을 배경으로 한 그림이다. 전체 구도는 뒷산과 앞의 나무를 경계로 반쪽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것은 아카데미즘을 지향했던 국전의 화풍에는 맞지 않는 생경한 구도였다. 참신한 풍경화를 타진한 이 준화백의 내심을 읽을 수 있다. 

몇 년 뒤에 발표한 <점두(店頭)>(1957)는 대한민국 미술전람회에서 특선을 수상한 작품이다. 노점에서 과일을 팔고 있는 소녀와, 다른 편의 환한 쇼윈도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숙명여고 근처의 밤풍경을 스케치해서 옮긴 작품인데 구도의 단순성과 형태의 축소, 그리고 명암의 콘트라스트가 두드러진다. 이 작품을 제작할 무렵 이화백이 국전내의 신선한 감각집단인 <창작미술협회> 등의 구상 화가들과 가까이 지낼 때였으니까 같은 구상화라도 모던한 감각으로 조형적 갱신을 이루고자 한 작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그의 화풍은 1960년대 초반에 들어와 구상에서 추상으로 바뀌게 된다. 당시에 화단을 휩쓴 뜨거운 추상의 영향이거나 자신의 작품을 좀 더 심화시키기 위한 자연스런 일환이랄 수 있다. 그러한 단계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 <춘원>(1967)이란 그림이다. 이 작품은 상파울루 국제미전에 출품한 작품으로 기존의 구상적 이미지가 자취를 감추고 전적인 추상으로 바뀐 것을 볼 수 있다. 먼저 원색을 적극적으로 껴안고 있을 뿐 아니라 마티에르에 강조점을 찍었다. 구상화가로서 발판을 굳힌, 기성화가의 입장에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용단 내지 작가 정신을 투영한 셈이다. 그의 향후 회화의 전조(前兆)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후 그의 작업은 거의 한 흐름, 곧 기하학적 추상으로 요약된다. 우리가 기억하는 이 준화백의 대표작들은 대부분 이 기간 동안 나온 것들이다. 그러니까 그의 작품생활에 창의적이고 개성적인 화풍을 만들어낸 시기라는 이야기다. 60년대에서 지금까지 거의 50년 동안 추상회화에 매진해옴으로써 한국화단에 이 준화백 하면 ‘영롱한 색채 화가’요 ‘감각적인 추상화가’란 이미지를 뚜렷하게 각인시켜놓았다. 

60년대에서 80년대까지의 작업들은 ‘심상풍경’으로 요약된다. 무슨 말인가 하면 외부의 풍경을 마음에 고이 담아놓았다가 추상의 옷을 입혀 내보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방식은 어떤 한 시기에만 적용된 것이 아니라 모든 시기를 관통하는 ‘예술적 키워드’가 된다. 추상이되 이미지가 있는 추상이고 환영과 시어(詩語)가 넘치는 추상이다. 이 시간 그의 그림은 산과 하늘, 그리고 길과 같은 일루전이 아스라이 곁들어진다. 겉으로 보기에 단순한 추상같지만 가만히 보면 바깥의 풍경이 스멀스멀 떠오른다. 이것은 그의 작품이 ‘자연의 대화’에서 얻어진 것이며, 자신의 예술을 외부세계와 연결짓는 통로로 인식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80년대 이후의 작업들은 직조(織造)와 가까운 형식을 띤다. 씨줄과 날줄의 관계가 조밀해지며 환한 광선이 화면을 에두른다. 수법적으로는 붓 대신 롤러와 테이프를 사용함으로써 바탕을 더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게 된다. 터치는 찾아볼 수 없고 색깔과 기하학적 형태는 잘 가다듬어져 세련된 맛을 풍긴다. 형태적 구성과 색채적 구성이 단짝을 이루면서 이 준 특유의 ‘모자이크 평면’(이 일)을 만들어냈다. 먼지를 풀풀 날리듯 휘적거리는 발걸음보다는 조신한 몸동작을 연상시키는 동작 및 매무새가 그의 작업의 특징을 알리는 푯돌처럼 단단하게 자리잡게 된다. 

90년대 들어서 그의 작업은 한층 더 내밀해진다. 대단히 섬세하고 견고한 평면을 구축하였다. 조형인자들의 관계의 측면에서 볼때 종래의 부분과 부분의 관계에서 부분과 전체의 관계, 그러니까 화면을 단순하게 이끌어가면서 어떤 통일성을 띠게 된 것은 특기할만하다. 화면에 주도동기가 등장하며 거기에 부속하는 리듬이 뒤따르게 된다. 주 선율에 꾸밈을 가하듯 부속하는 리듬들(자잘한 기하학적 형태)은 화면에 생기를 불어넣는 구실을 한다. 

뿐만 아니라 종래의 작업이 외부의 이미지를 변용하는 차원에 머물렀다면, 90년대 이후부터는 색과 기하학, 그리고 구성이 보다 중요한 의미를 띠게 된다. 회화적 조형어휘를 기용하되 유창한 어법구사에 머물지 않고 해맑고 교교하게 사용하였다. 색은 색끼리, 동그라미는 동그라미끼리, 각진 부분은 각진 부분끼리, 색띠는 색띠끼리 어울리면서 전체적으로 하모니를 이뤄낸다. 

그런가 하면 색깔이 보석처럼 반짝이고 빛으로 산란하는 공간과 마주하게 된다. 음악을 들으면 잔향(殘響)이 생기듯 그의 그림을 보면 잔잔한 파문이 마음까지 몰려든다. 색은 빛과 결합하여 어떤 여운을 남긴다. 그 여운이 심중에서 꿈틀거리며 바스락거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 여운은 ‘서정적인 물결’이랄 수 있으며, 그의 작업을 돋보이게 하는 조형적 힘이 되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색깔의 오묘한 쓰임은 시각적 망막을 자극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관통하며 정서적 반응을 일으키는 단계로까지 깊숙이 육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이후의 작품들은 구성이 한결 간결해졌음을 알 수 있다. 주도동기와 보조 효과를 더욱 절묘하게 배치한 덕분이다. 전체는 부분들을 이끌어가고 부분들은 전체에 긍정적으로 순응한다. 억지도 없고 어떤 갈등도 없다. 화해의 강물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근작을 보면 이준화백의 작업에 흰색이 큰 면적으로 착색됨을 알 수 있다. 간혹 어둔 색면도 있으나 그것은 일부에 지나지 않고 또는 오히려 밝음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구실을 한다. 흰색이 점점 더 공간에 메아리쳐 희망의 목소리를 우렁차게 들려주는 것 같다. 색깔에서도 옅은 청색과 갈색, 투명한 잿빛 등 희망을 떠받치는 색들로 보조를 맞춘다. 색의 은밀한 변조, 조형어휘에 대한 세심한 배려, 질서 있는 규율, 맑은 서정성 등이 고르게 묻어난다. 엄격한 규율 속에서도 따듯함과 해밝은 표정을 잃지 않고 있다. 

 “미는 지상을 긍정케 하는 힘을 가졌다”는 이 준화백의 말처럼 그의 그림을 통해 아름다움으로 물들여진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그런 세상은 우리가 간절히 희구하는 세계요 앞당겨진 천국에 다름 아니다. 근작을 보며 그의 예술세계가 어느덧 달관의 경지에 와 있다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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