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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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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신화적이고 순진 무구한 화가 이중섭 작고

[9월의 대표문화 소사]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지고 좋아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인 이중섭이 9월에 작고하였다. 그의 대표작 <소> 시리즈 연작에는 그의 드높은 화가적 성취와 시대적 절망감이 진한 조형언어로 담겨져 있다. 거친 숨소리라도 들릴 듯이 격렬한 동세를 보이며 저항하는 황소, 분노를 풀지 못한 상태에서 또 다시 질주할 곳을 찾고 있는 듯한 지친 소, 고통과 갈등 절망을 가득 담은 눈으로 클로즈업된 슬픈 소가 있다. 그속에서 우리 민족의 울분과 저항이 있었다. 그가 소재로 즐겨 다룬 가족, 부부, 어린이, 닭, 물고기, 복숭아 속에는 환상적인 농원, 평화로운 자연풍경, 자전적인 요소도 많이 담고 있다. 힘차고 대담한 터치, 단순화된 형태, 강열한 개성으로 인간 내면을 표현했다. 전쟁으로 재료의 극심한 궁핍속에서 태어난 독특한 그림이 은지화였는데 담배갑 속의 은종이에 철촉으로 ! 그어 그림에 대한 열정을 담아내었다. 또한 엽서 위에 많은 스케치와 가벼운 수채화를 남겼다. 뛰어났던 데생력과 풍부하고 자유로웠던 생동감의 필력이 특출하였던 화면 구성과 창조적 상상력을 발휘하였다. 


초기에는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한 향토적인 주제, 후년에는 자기 신변의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민족적 화가로 평화 염원의 간절한 구체적 심정을 담은 인간적 순수함이 우리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남는다. 6·25 한국전쟁에 월남하여 부산 서귀포 통영 등을 전전하며 피난살이를 했다. 1955년 1월에 서울에서 개인전을 가졌고 이듬 해 40세로 요절하였다. 그는 전쟁으로 부인과 어린 두 아들을 일본으로 보내야 했다. 그 뒤 절절한 고독감과 처자에 대한 그리움, 가장으로서의 무능을 자책하려고 든 병적인 고뇌, 안식처를 못갖고 자학적인 생활로 영양실조에 간장염까지 얻었다. 정신이상 증세가 나타나 청량리 뇌병원을 거쳐 적십자병원에서 삶을 마치고 무연고자로 3일간이나 방치되어 있다가 뒤늦게 친지들에 의해 망우리 공동묘지에 묻혔다. 이중섭은 순진 무구한 천성과 작가적 정신! 으로 많은 일화를 남겼으며 연극, 문학, 전기로도 극화 되었다. 사후에는 1972년 유작전(현대화랑), 1986년 30주기회고전(호암갤러리), 1999년 유작전 (갤러리현대) 등이 그의 면모를 살핀 큰 전시였다. 조선일보사에서는 그를 기리기위해 1989년 이중섭미술상을 제정하여 해마다 시상해 오고 있다. 제주도 서귀포에는 그가 살던 초가집이 복원되고 이중섭로 라는 거리가 생겨났다. 


1987년 통일전에 출품작인 <백두산의 산자락 아래 밝아오는 통일의 새 날이여>를 그린 조선대생 이상호 전정호가 구속되었다. 1984년 호암갤러리가 개관하였는데 개관 당시에는 중앙갤러리 이름으로 일본 북해도립근대미술관 소장품인 <아르누보 유리명품전>으로 전시를 가졌다. 삼성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호암갤러리는 비중있는 전시회로 자리 매김하였다. 우리나라가 국제전에 본격적으로 참가는 1961년 2회 파리비엔날레에서 시작되었다. 


9월의 미술계 인물로 한국화가 이상범, 서양화가 박득순, 이종무, 조각가 김복진, 공예가 이신자, 미국의 마크 로드코 등이 태어 났다. 작고한 미술가로 한국화가 노수현, 배렴, 황창배, 서양화가 김홍석, 박득순, 이중섭, 칠공예가 김봉룡, 도예가 지순택, 서예가 고봉주, 중국의 제백석, 프랑스의 인상파 드가, 로트레크, 소박파 앙리 루소, 미국 팝아트작가 리히텐슈타인, 멕시코 오로스코 등이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9월6일에 작고년을 달리해 이중섭, 노수현, 박득순, 정은영, 황창배 등이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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