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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부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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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갖는 조부수 작품전에 부쳐   




                                                  임영방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1998년 서울에서 개인전을 가진 이후 어찌된 일인지 지금까지 작품이 눈에 띄지 않던  화가 조부수가 12년간의 침묵을 깨고 2011년 3월 16일부터 인사동 선화랑에서 작품전을 열어 한편으로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 큰 기대를 갖게 한다. 조부수는 그간 서울을 떠나 시골로 아예 잠적해버렸는데, 그 이유는 시끄럽고 복잡한 도시생활을 멀리하고 고요 속에서 좀 더 깊은 내면세계로 침잠하고픈 마음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는 예술가로써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생활을 단순화하여 예술세계로 집중하고픈 열망이 아주 간절했던 것같다. 그래서 조부수는 번거러웠던 생활환경, 혼탁한 마음세계로부터의 탈출을 감행했고, 그 결과 인간으로도 또 화가로도 새롭게 탄생하는 값진 세월을 가졌다. 정화된 삶, 그는 바로 그것을 바랬던 것이다.   

     조부수가 인적없는 구석진 촌에 삶의 터전을 잡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 것은 2003년부터였다. 새소리에 아침잠이 깨고 춘하추동 사계절의 변화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지는  곳, 자연의 신비를 매일 맛볼 수 있는 곳, 바다가 있고 산이 있으며 흐드러지듯 꽃이 넘실대는 들판이 있는 곳, 그 곳에서 그는 서정적인 시상을 마음껏 길러냈고 예술적인 감성의 세계를 폭넓게 확장시켰다. 아마도 작가는 그러한 자연환경이 본인의 기질하고도 맞아 그런 곳에서 지극히 행복했으리라 여겨진다. 그 때문인지 그가 그 곳에서 한 작품들은 한결같이 서정성이 짙게 깔려 있고 자연의 풍요로움과 고요함이 깃들어있으며, 무엇보다 기쁨과 행복, 충만함이 넘쳐나고 있다. 삶의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버려나가는 절제된 삶의 결과인 듯 그림에서는 자연의 청량함과 상큼한 신선함, 상쾌함이 전해진다. 삶과 자연에 새롭게 눈 뜬 조부수는 그 감흥을 이렇게 순수하고 정결한 감미로운 세계로 전환시켰던 것이다. 

     작품을 보면, 몇 가지 색으로 한정된 원색이 단조롭고 경쾌한 색감으로 화면을 채우고 있는 가운데 같은 색이라고 하여도 미묘한 색조의 변화를 보여 꽃밭의 향기를 저절로 느끼게 한다. 게다가 꽃밭을 밝고 상쾌한 단색조의 변화로 전개시켜 자연의 넓은 공간성을 만들어주고 있다. 이것은 색이 주는 오묘한 회화성으로 신비로움마저 느끼게 하는 부분인데 바로 여기서 색조의 특성을 충분히 파악한 작가의 능력을 엿볼 수 있다. 채색을 다양하게 하고 겹쳐 붓질하여 색의 세계를 진하고 무겁게 보이면서 작품을 구성하는 작가들도 많지만, 조부수는 이와는 달리 단색조 변화의 전개를 위한 경쾌하고 평탄한 붓질로 경쾌함, 색조변화의 아름다움, 넓은 공간성을 산출한다. 또한 주격의 색채에 대립하는 대조색의 출현으로 화면에 예리한 충동을 야기시켜 화면의 단조로움을 깨고자 했다.





       요컨대, 그의 색채세계는 되도록이면 인위적인 그림의 수사학을 멀리하면서 혼합의 다양한 색채세계를 피하고 노랑, 빨강, 청색, 초록색등의 원색을 기본색으로 삼아 서로 대립시켜 회화적인 감미로움을 산출하는 특성을 보인다. 흰색의 꽃밭을 그린 그림을 보면, 흰색을 돋보이게 하는 검은 색의 선을 엷게 넣어 흰색의 꽃밭이 무한한 공간속으로 뻗어나가는 듯한 간결하고 고상한 자연성을 창출해냈다. 자고로, 회화의 공간성은 선원근법으로 만들어지고 공간의 무한성은 비어있는 공간으로 산출되는 것인데, 조부수는 이러한 물리적인 공간성을 넘어 아름다운 시정(詩情) 공간이 무한히 전개되는 듯한 공간성을 만들어냈다. 그는 끝없이 꽃으로 채워진 들, 물가의 수련, 배가 있는 바다를 소재로 삼아 끝없는 시정의 세계를 펼쳐보였던 것이다. 

      특히 바다 그림을 보면, 채색이 절제된 바다경관은 검은 윤곽선만으로 모습을 드러내보이는 몇 척의 고기잡이배로 망망대해를 시사한다. 여기서 작가는 채색을 하지 않은 공간을 제시하여 바다공간의 무한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했다. 보통 공간성을 표현할 때 서양화에서는 색채로 감지할 수 있는 공간성을 보여주고 있고 동양화에서는 무색으로 공간성을 나타내고 있는데, 서양화가인 조부수는 바로 그 동양화에서의 공간성 표현을 자신의 그림에 접목시키고 있는 것이다. 바닷가 갯벌 언저리에 윤곽선만으로 잡혀진 고기잡이 나뭇배는 소박한 어촌의 삶을 보여주면서 위압적인 망망대해에 도전하며 생계를 꾸려나가는 어부들을 떠올리게 한다. 험한 바다를 상대하면서 살아나가는 어부들의 불굴의 인간상이 저절로 떠올라 가슴을 저미게 한다. 이런 정서를 가질 수 있고 이런 표현이 나올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작가 조부수가 바닷가인 인천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전체적으로 조부수는 함축된 표현방법을 써서 가능한 한 화면을 간결하고 상쾌하게 정리하여 청결한 분위기가 감돌게 했다. 이것은 그가 도시를 떠나 자연 속에 묻히면서 심신을 정화하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사색의 시간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본다. 숙성의 시간을 갖고 난 후 그는 육신의 눈보다도 마음의 눈으로 자연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구석진 곳의 촌생활이 나를 키우고 성숙하게 했다”고 말하고 있는 조부수는 이제야 비로소 그림이 무엇인가를 깨달아가는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덧붙이고 있다. 마음의 고요를 찾게 해주는 자연의 삶속에서 그는 그림과 자신이 일치되는 경지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이번 전시작중 이색적인 작품으로 2004년 작인 ‘꽃과 물고기’가 있는데, 이 그림은 다른 그림들과 달리 추상세계를 보여준다. 평면을 자유스럽게 구획한 면에는 간략하게 묘사된 가냘픈 한송이 꽃과 물고기 한 마리가 제각기 공간을 차지하고 있고 전체적으로 몇가지 색으로만 구성된 화면을 보인다. 작가는 꽃이 가득찬 들판, 광활한 바다를 그려나가다가 어느 순간 이렇게 기호적인 추상표현으로 간소화된 세계로 접어들은 것 같다. 무궁무진한 추상적인 표현의 가능성을 엿보게 하는 그림이다.

       십여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오로지 성찰과 비움을 통해 자신을 정화시키고 자신에게 감추어져 있던 여러 가능성을 탐색하면서 새로운 예술세계를 꿈꿔온 조부수의 앞날에 더 많은 발전이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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