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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라 초대전 Yun Dae-ra 尹 大 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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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라의 화면은 전통 동양화의 화제 쓰기와 같은 전통회화의 구성적인 요소들을 선보이고 있다.
"비키니 소다"의 발칙한 여행

박옥생 | 미술평론가, 한원미술관 큐레이터


1. 비키니 소다의 여행

현대미술에 있어서 캐릭터의 등장은 미디어 속에 자유롭게 넘나드는 현대인에게 그리 낯선 존재는 아니다. 캐릭터는 이미 익숙한 존재를 변형시키거나, 전혀 다른 존재를 작가의 독창적인 구조화에 재탄생되는 경우가 많은데, 윤대라 또한 그러할 것이다.
작가 윤대라는 두리 뭉실한 몸에 비키니를 착용한 큰 눈의 ‘소다 베일리아’를 탄생시켰다. 귀엽고 깜찍한 캐릭터로 나타난 비키니 소다는 작가가 내면속에 간직한 자아로 볼 수 있는데, 소다의 깜찍 발랄한 여행기를 통해 자신의 세상에 관한 관조와 성에 관한 세상과의 소통을 서술해 내고 있다. 비키니를 착용한 아이 같은 소다의 조형성은 작금(昨今)의 선정적이며 일방적인 섹슈얼리티를 조롱하는 듯 우의적이다. 사실 소다의 누드는 밀렌도르프의 비너스와 일정부분 닮아 있어, 지모신의 성격을 갖는 주인공의 신화적이며 원시적인 역사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작가가 즐겁지만 사색하는, 팝(pop)적이지만 고전(classic)을 담은 주인공의 탄생에 매우 고심한 흔적임을 알 수 있다.





윤대라의 화면은 전통 동양화의 화제쓰기와 같은 전통회화의 구성적인 요소들을 선보이고 있다. 고려 말의 다정가의 ‘이화에 월백하고’ , 석가 탄생게(誕生偈)의 ‘천상천하유아독존’과 같은 전통의 문학적, 종교적 모티브들을 해석하고 변용하기와, 해와 달을 동시에 띄우는 <시경> 천보(天保)의 내용(이는 궁궐의 일월오악도에도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을 덧입히기 등과 같이 전통을 작가의 일정한 견지하에 재해석해 내고 있다. 사실 이것은 윤대라의 화면이 대중적이며 고혹적인 팝이면서 동시에 고전의 아우라와 같은 힘을 느끼게 하는 이유이다.

비키니 소다의 여행은 고대 신화의 기상천외한 모험담과는 달리, 선재동자(善財童子)의 53선지식을 찾아 떠나는 <화엄경>과 닮아 있다. 이는 어린 소다로 이입된 작가가 고혹적으로 연출된 화면 속을 점프하듯 뛰어 들어와 그 세계를 5감을 넘어 관조하고 때로는 적극적으로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가 만들어낸 세상에는 매화와 달, 물과 같은 여성과 출산을 은유하는 상징물들이 등장하는데, 이를 통해 아찔한 성적인 분위기를 연출하여 몽환적이며 은밀함이 내재되어 있는 세계가 드러나고 있다. 즉, 비너스를 닮은 소다는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라는 것인데, 이 여행은 선재동자의 입법구도행(入法求道行)처럼 생명의 바다를 건너고 구름 위를 날아 위험을 극복하고 지혜를 얻는 것으로 완정성에 도달하고 있는 것이다.



2. 천공의 섬, 남근계(男根界)- 세계를 비유하다.

사실 비키니 소다가 궁극적으로 만나게 되는 세계는 남근석(Phallus)이 기암괴석으로 우뚝 솟아오른 남근계(男根界)라 할 수 있다. 남근은 동서양을 떠나 인류의 중요한 숭배의 대상이었는데, 발기한 남근은 남성적인 창조의 원리이자 자연과 인간의 출산 생성력이며, 창조주가 가진 기능과 잠재력, 생명의 흐름을 상징하고 있다. 그렇다라면 작가가 구현해 내는 여행담은 신성한 남근석으로 구현된 세계로 은유한, 순수한 생명의 원초적 에너지가 숨쉬는 곳에 관한 호기심으로 가득한 생명 탐구의 여정인 것이다. 여성인 비키니 소다가 남성으로 대별되는 세계와 만남으로써 벌어지는 다양한 현상들을 통하여, 음과 양의 만남과 조화, 그 속에서 벌어지는 현상에 관하여 비유적 상징들을 투영시키고 있는 것이다.

비키니 소다는 나뭇잎을 타고 바다를 건너고 둥근 달과 친구가 되어, 인간세계 속에 내재한 생명의 순환 또는 남근석으로 화생(化生)한 생명 덩어리 핵(core)을 향한 모험이 시작되는 것이다. <月下夢想歌>, 에서 보여주는 생명수를 내려주고 안락한 휴식을 제공해 주는 솟은 남근 섬(섬이자 산이다)은 작가가 암시하는 성계(性界)이자 여성과 남성이 공존해 살아가는 세계의 비유임을 알 수 있다.

그 동안 작가는 벗은 여인상과 같은 직접적인 에로티시즘이 가미된 작품을 그려왔다. 근자에는 여성누드에서 벗어나 한층 정제된 인물상을 선보인 것이 바로 비키니 소다이다. 신화적 비너스를 닮은 소다 베일리아가 보여주는 단순성은 현실적인 사실주의에서 벗어나 강한 원초성과 직접적인 시각적 반동을 불러일으킨다 하겠다. 이는 사실적이며 서술적인 구조에서 작가의 세상바라보기에 관한 상징적이며 문학적 해학성, 감성적 유쾌함을 동반한 것이라 하겠다. 이것은 정지된 화면을 생동감 있는 즐거운 놀이로 환원시킨 것이라 볼 수 있다.



3. “내게 꽃이 되련”
작가는 ‘휘리릭 뽕’하고 날아다니는 주인공과 섬세하게 녹여낸 모티브들을 통하여 억압된 성을 놀이화하고 있다. 놀이라는 말은 항상 자유로움, 능란함이라는 관념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확실히 휴식이나 즐거움의 분위기를 가져온다라는 로제 카이와(Roger Caillois)의 말처럼 놀이화를 통한 가벼움과 자유에의 갈구를 희망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윤대라의 화면에는 과거와 현재의 性이 교묘하게 그리고 황홀하게 녹아 있는데, 이는 사회경제적인 요건이 시대와 계급의 성문화를 결정짓는 것과 같은 성에 관한 가치판단 이전의 창조의 성스러운 원리가 내재해 있는 성인 것이다. 이것은 작가가 오랜 시간을 공을 들여 완성한 바다와 구름의 이완되고 부드러운 철선과 산수의 꺾인 돌산 표현이 혼합되어 환각(ecstasy)적이며 몽환적인 화면으로 완성되고 있다. 이는 작가 특유의 표현성이 만남으로써 빚어진 매혹적이고 감각적인 화면이라 하겠다.





성은 욕망과 억압이란 두 개의 모순된 축을 형성하고 있다 할 수 있다. 이 두 개의 경계에서 섹슈얼리티와 에로티시즘의 문화적 맥락들이 형성되곤 하는데, 이들은 교묘하게 은폐되거나 노출되기도 한다. 그러나 작가의 화면에 드러나고 있는 성은 유머와 위트로 연출되고 있는데, 이는 시, 공간을 초월한 인식의 경계에서 벗어난 놀이를 통한 자유로움임을 알 수 있다. 사실 작가의 화면에 포착되고 있는 것은 일정부분 페티시즘(fetishism)적인 요소이다.

그러나 나무나 돌에 깃들어 있는 초자연적인 힘을 숭배하는 원시적인 물신주의, 즉 문명화된 사회에 이식되기 전의 아프리카와 같은 대륙에 존재한 페티시즘에 가깝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화면이 원초적인 생명성을 견지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즉, 윤대라의 작품세계는 생명창조의 무한한 성스러운 힘을 찾기 위한 여행이라 하겠다. 비키니, 남근과 같은 性으로 조형화된 여행의 이면에 존재하는 것은 역동하는 생명이 조우(遭遇)하고 있는 인간세상의 비유와 상징인 것이다.



그 궁극적인 만남을 통해서 놀이와 같이 신경이 이완되고 풀어져 황홀한 즐거움을 취하게 되는 경계에의 해방을 꿈꾸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치 “내게 꽃이 되련”이라고 묻는 소다 베일리아와 달이 나누는 物과 我를 초월한 상큼한 대화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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