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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트 헨릭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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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26일부터 6월 21일까지 아라리오 서울 갤러리에서 켄트 헨릭슨의 첫 국내 개인전을 개최한다. 실크 스크린으로 인쇄된 린넨에 디지털 자수를 놓아 액자에 틀을 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제작된 그의 신작 15여 점과 조각 5여 점, 그리고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벽지가 설치된다. 현재 뉴욕에서 거주하며 도쿄, 토리노와 베를린을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헨릭슨은 현대 사회의 딜레마와 문제점들을 전통적인 이미지와 매체로 풀어내는 연구 중에 있다. 


켄트 헨릭슨이 직접 제작한 벽지 위에 걸린 작품들에게서 받게 되는 첫 느낌은 중세 시대 귀족 집안의 한 방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평화롭고 목가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금빛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액자 틀을 들여다보면 중세의 명화를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작품들에게서 받았던 첫인상을 잠시 접어둔 채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그림 안에 등장하는 만화와 같은, 얼핏 귀여워 보이기도 한 캐릭터들의 모습 때문이다. 부르주아계급 가정의 벽지나 소파커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온한 초원의 풍경이나 화려한 패턴이 인쇄된 배경 속에 후드와 마스크를 뒤집어 쓰고 관객을 위협하듯 날카로운 흉기를 휘두르고 있는 이들이 있다. 


관객들은 켄트의 화면에 등장하는 마스크를 쓴 캐릭터를 보면서 강도, 암살, 테러와 같은 폭력과 관계된 온갖 단어들을 떠올린다. 이는 인류가 겪어오고 있는 폭력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켄트는 1970년대 스리랑카의 자살폭탄 테러집단인 타밀 호랑이(Tamil Tigers of Sri Lanka) 의 마스크 유니폼에서 처음 영감을 받았다. 이 단체는 후드와 눈 부위만 커다랗게 오려진 마스크를 쓰고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쳐가며 투쟁하던 집단이다. 스리랑카 호랑이들의 마스크를 조금 변형시켜 흰색 실로 마스크를 자수 놓은 후 두 눈 구멍을 따로 오려내고 나니 KKK의 모습이 되었고, 여기서 조금 더 변형시켜 입 부분도 오려내니 스키 마스크를 뒤집어 쓴 구멍가게 좀도둑의 모습이 되었다. 이러한 연구를 통하여 헨릭슨은 마스크의 구멍의 위치에 따라서 캐릭터의 아이덴티티가 변형됨을 깨닫게 된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후드의 색감이나 구멍 사이로 비치는 피부의 색깔을 변형시켜 폭력과 충돌은 모든 문화와 사회에 존재함을 나타낸다. 


켄트는 마스크를 쓴 캐릭터들이 상징하는 폭력과 파괴력을 자수라고 하는 지극히 여성적이고 가정적인 매체로 재탄생 시킨다. 전쟁, 테러, 강간과 같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허위의 유토피아의 풍경을 아름답게 수놓은 천에 새김으로써 작업의 아이러니가 완성된다. 교수형에 처하거나 악마에게 먹히거나 잔인한 방법으로 고문을 당하는 등의 모습을 섬세하고 화려하며 우리에게 너무나 친근한 자수라는 방식으로 제작함으로써, 이러한 공포들이 우리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을 때 우리가 얼마나 수동적이고 무책임하게 되는지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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