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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화랑 재개관 프로젝트 – 담론의 구축


gallery SPACE Re-Opening Project : Construction of Discourses 01


 박기원(Kiwon Park) – 마찰(Friction)



전시기간  2008. 10. 2. 목 ~ 11. 16. 일 (오전10시~오후7시)

개막식    2008. 10. 2. 목. 오후 5시 공간화랑 

기자간담회  2008. 10. 2. 목. 오전 11시 공간화랑

(개막축하공연  화음챔버오케스트라 실내악 연주)




공간화랑 재개관 프로젝트 : 담론의 구축       



공간화랑은 2008년 10월부터 2009년까지 ‘공간화랑 재개관 프로젝트 – 담론의 구축’을 통해 의미 있는 재출발을 시작한다. 공간화랑은 최근 한국 미술계의 유의미한 담론 생성이 빈약하다는 현실을 주목하고 있다. 현대미술은 동시대의 다양한 현상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독특한 미학적 해석을 제시해야 할 시대적 의미를 갖는다. 과거 탈중심과 다원성을 구현하던 포스트모더니즘의 창발적 진화의 시대에 한국의 미술계는 활발한 자생적 담론들을 생산해 냈다. 그러나 공간화랑이 재개관하는 2008년의 시각으로 볼 때, 자생적이고 유의미한 담론의 생성은 극히 저조하며, 무분별하게 도입된 이질적 개념이나 가치들만이 무비판적으로 수용되고 있다. 오늘날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가치들에 대한 미학적 문제의식과 실천적 해석은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예술의 본원적 가치가 적절하게 구현되지 않는 사회가 갖는 문제들이 종국에는 사회 전반에 걸친 ‘정신의 위기’를 야기할 수 있음을 우리는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토양적 환경을 기초로 하는 담론이 부족하다는 것은 예술적 가치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환경에 대한 기본적인 해석이 부족하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존립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의 부재는 탄탄한 개념적 구조를 갖춘 예술작품의 창출 기반을 약화시킴으로써 결국 왜곡과 전도로 점철된 가치관의 편재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공간화랑 재개관 프로젝트의 주제를 ‘담론의 구축(Construction of Discourses)’으로 결정하였다. 자생적 담론들이 활발하게 발화하던 시기로부터 토박한 개념적 환경에 처한 오늘날까지 의미 있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작가들의 새로운 작품을 통하여 오늘날 한국 미술의 흐름을 반추해 보고자 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요체이다.

본 프로젝트에서는 유의미한 개념적 맥락을 이어온 작가들의 작품이 가진 자생적 담론의 구조와 오늘날 보편적 상식으로 통용되는 가치들에 대한 다양한 문제의식과 해석의 과정을 공유하고자 한다. 각각의 전시들은 작품을 통해 제기되는 작가들의 다양한 발언들로 존재하게 될 것이며, 후에 그러한 발언들을 취합하여 의미 있는 결과물로 발표할 계획이다. 궁극적으로 동시대 미술의 유의미한 개념 구조를 수립하는 다양한 방법론을 접할 수 있는 장을 펼치는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 전시들이 동시대 미술의 스펙트럼을 해독하는 지침의 기능을 한다는 류의 계몽주의적 시각은 본 프로젝트가 지향하는 가치가 아니다. 기실 작품은 그 자체로 자생적이고 유기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선험적 개념 규정으로 작품들을 질서정연하게 배치하고 해석을 강요하는 구조는 자칫 오만과 독선의 오류를 범할 우려가 있다. 본 프로젝트는 작품을 통해 출현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작가의 변화무쌍한 존재성을 체험하는 일종의 현상인 것이다.



전시도록 서문: 닿음과 부딪힘, 그 사이 어딘가    



박기원은 우리가 어딘가 늘 그 속에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공간’에 대한 인식의 문제를 소재로 하여 작업하는 작가이다. 작품이 놓여질 공간을 보고 작품의 창작여부를 결정하는 박기원은 공간을 관찰하고 자신만의 관점에서 분석한 후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을 시작한다. 그의 작품은 그 공간이 가진 속성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공간의 구조적 요소의 일부로 기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덮거나 씌우기, 바닥에 놓거나 벽에 붙이는 행위들은 박기원의 작업이 가시화되는 보편적인 방법론이다.


박기원의 작품


미니멀한 오브제가 주를 이루던 박기원의 작업이 지금과 같이 공간의 속성과 결부된 요소적인 속성으로 전환된 것은 1990년대 중반이었다. (정확하게는 1996년에 있었던 개인전을 계기로 지금과 같은 형식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는 그 이전부터 공간의 속성을 탐색하는 것에 대한 잠재적 욕구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하는데, 오늘날 그의 작업은 미니멀리즘의 형식적 특색을 추구하던 그가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미니멀리즘을 확장한 것일 수도 있겠다. 

박기원은 특별한 작가적 상상력과 치밀한 사전 계획을 기반으로 매번 전혀 새로운 방법으로 공간을 바꾸는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한옥 구조의 전시장 천장을 반투명 비닐로 덮어씌우기도 하고, 회색의 시멘트 벽에 유성바니쉬를 겹칠한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먹을 먹인 무늬목으로 벽과 천장, 바닥을 뒤덮거나, 건물의 외형을 초록빛의 반투명한 재질로 둘러 싼 작품도 선보였다. 심지어 과거 고성(古城)이었던 미술관의 벽과 천장에 온통 산업용 그리스를 칠하고 비슷한 색의 에어매트를 바닥에 깔아놓기도 했다. 

박기원의 작품은 어떤 공간이 하나의 공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속성을 드러내기 위해 관객으로 하여금 공간을 바라보거나 인식하는 방법을 전환시켰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 무중력의 상태, 영(零)의 상태의 공간에 사람이 들어온다. 빈 공간과 사람의 사이에 없는 듯, 작품은 존재하게 된다. 관객은 산책하듯 공간을 돌아보고 나간다. 박기원의 작품은 ‘감상’하는 것이기 보다는 ‘체험’을 하는 것에 더 가깝다. 특정한 시점과 공간을 점유하며 존재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작품과 합쳐져 변화된 속성으로서의 공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관객은 원래의 구조와 느낌이 완전히 뒤바뀐 공간 속에 ‘존재’하게 된다. 관객은 작품의 일부가 되는 것이고, 작품은 온전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마찰’


이번 공간화랑 재개관전에서 박기원은 ‘마찰(摩擦, Friction)’이라는 작품을 발표했다. 그는 작품의 형식적 속성이나 그로부터 얻은 느낌들로부터 작품의 제목을 조어한다. 가벼운 무게(Light weight), 파멸(Ruin), 수평(Level), 보온(Warmth), 부피(Volume)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마찰’은 실처럼 가는 금속(스테인레스 스틸)이 불규칙적으로 얽혀있는 상태로 전시장 바닥에 깔리는 작품이다. 공간화랑의 건축적 구조 내에서 없는 듯 존재하는 이 작품은, 관객으로 하여금 ‘입던 옷을 빨아서 입는 느낌’처럼 낯익으면서도 새로운 분위기로 공간을 체험하게 한다. 

‘마찰’이라는 단어는 물리적으로 두 물체가 서로 닿은 상태를 의미한다. ‘마찰’에 해당하는한자는 ‘문지를 마(摩)’와 ‘문지를 찰(擦)’ 인데, 문지른다는 의미를 중복해서 사용함으로써 감각적인 요소를 강조한 느낌을 준다. ‘마찰’에서 관객의 발이 작품에 ‘닿는다’는 물리적인 상황은 관객과 작품의 공존을 전제하고 있다. 관객은 작품과 맞닿아 있는 상태에 놓이게 됨으로써 작품과 관객 간의 이격(離隔)이 존재하지 않는, 가장 내밀한 환경에서 관객이 작품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마찰’이라는 단어는 의견이나 견해가 다른 주체간의 충돌을 가리키는 추상적 의미도 가지고 있다. 이 경우 대상간의 ‘닿음’은 내밀한 감각적 체험의 차원에서 벗어나 갈등과 충돌의 부정적인 분위기로 접어들게 된다. 작품의 소재는 ‘마찰’이라는 단어의 중의적 속성을 적절하게 구현하고 있다. 즉 피부에 부드럽게 와 닿는 이 작품의 실체는 매우 정밀하게 절개된 금속인데, 절개의 정도가 더해져 날카로운 상태의 금속면을 부드러운 촉감의 표면으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 부드러움과 금속으로서의 경성(傾性)의 조화는 잘 떨어지지 않는 어떤 얼룩 같은 것을 일거에 제거하는 능력을 부여받게 된다. 역설적인 조화와 중의적 의미를 통해서 박기원은 어떤 독특한 분위기 속에 구체적인 표현을 더했다. 공간의 속성을 변화시키지 않고, 형성된 표면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박기원은 매우 조용하고 내밀한 방법으로 온갖 종류의 마찰들을 슬며시 불러들인 것이다. 


박기원의 메시지


박기원의 작품은 유일성과 한정성을 가지고 시공간을 점유하는 미술작품의 고전적 형식을 거부하고 작품이 놓여지는 공간 자체를 작품의 요소로 간주한다. 공간에 변형을 가하지 않고 공간 자체의 속성과 합쳐짐으로써, 관객의 인식의 스케일을 전혀 다른 차원으로 확장시킨다. 

꾸준하고 일관되게 어떤 ‘속성’의 문제를 탐구하는 것은 박기원이 가진 분명한 차별성이다. 어떤 공간에 조용히 개입하여 공간 본래의 어떤 ‘속성’과 ‘특징’을 읽어내는 일련의 작업들을 통하여 그는 말한다. 공간의 물리적 속성의 변화는 곧 공간에 개입한 주체의 시각과 인식의 변화라는 것, 결국 그 공간에서 감지하는 것은 공간 그 자체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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