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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전 : 빈지-퍼지 신드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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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욕이 비정상적으로 지속되거나 특정 음식에 현저한 식욕을 느끼는 것을 빈지-퍼지 신드롬이라고 한다.작가는 이 전시에서 이러한 병리적 증상을 '존재의 상대적 혹은 절대적인 결핍'으로 정의 내려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표현한다. 먹과 아크릴 물감이라는 비친화적인 성격을 재료를 조화시키는 실험을 전재로 '촉각적' 회화의 가능성을 더욱 확장한다.
음식 광대의 신드롬 초상


조동석 | 갤러리스페이스아침 디렉터, 큐레이터



타인을 향해 하염없이 보내는 웃음과 울음의 표정, 그리고 몸과 몸짓이 만나 부딪히면서 만들어내는 복합적인 춤사위는 광대를 바라보는 시선 중의 일부이다. 하얀 얼굴에 등장하는 과장되고 왜곡된 이미지와 북받치는 감정의 소용돌이들을 몰아치듯 분출하는 모습은 타인에게 다양한 시각을 선사하게 된다. 이것은 자아의 현실에 대한 자각적인 시각이 그들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시선을 결정짓는 잣대로 활용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놀이공원에서 친밀성을 무기로 관객에게 다가서는 그들의 모습은 자신을 숨기고 또 다른 이성의 산물로 변신을 거듭한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그들은 자신과 타인에 대한 공감대를 생성, 유발시켜 의도하는 대로 인간관계개선구도를 맺고자하는 몸부림의 언어로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무대에 서있는 광대는 주인공인 동시에 자신과 대칭구도를 그려내는 타인의 모습을 동시에 반영한다.
광대의 몸짓 하나 하나는 관찰자인 타인의 이성시각의 시선 차이다. 스스로 쌓아올려진 이성시각의 영역은 광대로 하여금 다원적인 면모를 갖추게 하는 핵심요인으로 등장한 것이다. 그렇지만 인간의 수많은 감정 기복의 단계가 이성적 시각의 차이에 의해 조절되고 규정화 되어가는 것이 현시대의 추세 중 하나이다. 그러므로 광대의 이성적인 시각의 차이는 보편적인 표피의 문제에 그쳐 결정지어지고 말 것이다. 예컨대 예견할 수 없는 미소와 몸짓에는 객관적 이성의 개괄을 뛰어넘고도 남을 만한 무지의 순수한 상대적인 이성이 잠재되어있기 때문이다. 이는 상대적인 이성시각의 차이를 규명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반어적인 존재가치를 탐구하는 것과 같은 행위로 상기시켜 볼 수 있다. 매시간 인간은 결정에 의한 삶의 갈림을 정하고 행동함에 있어 중립적 결정을 용인하지 않는다. 이성에 의한 결정의 순간이 두 가지의 절대적인 상대성 관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재차 확인시켜주는 대목이다. 광대가 지닌 내면과 외면의 상이한 정황은 앞서 거론한 바와 같이 이성의 상대적인 요소를 잘 배합하여 드러낸 예라고 볼 수 있다.



작가 이정민은 광대의 과장된 몸짓과 화장을 하듯 자신에 대한 탈이성적 욕망적 물음을 “담백한 진실을 입힌 음식 광대 신드롬”으로 이끌어 내어 총체적인 물음의 대상으로 압축시키고 있는 것이다. 물음의 압축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일상에 가까운 소재들은 우리가 광대를 바라보는 면과 같은 동일한 시각적 측면의 견해를 함께하고 있는 것 같다. 즉 광대를 스스로의 욕구를 숨긴 채 발산을 하고 있는 발광체로 인식하는 측면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욕구의 대상을 음식의 탐욕으로 바라보고 있는 그녀는 내면적인 광기 서린 광대의 기질을 음식과 인간의 관계에 절묘하게 동일화시켜 사건 시간의 정지를 명령하게 된다. 만물의 대상을 광대적인 기질의 물질로 인식하고 그들로 하여금 세상을 바라보는 놀이를 하게끔 유도시켜 그 결과와 원인을 파헤치고 분석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즉 시대에 적합한 욕구와 열망의 대상을 친숙한 요소로 유입하여 친밀성을 고조시키고, 시간을 정지시켜 본능에 대한 순응과 역행의 상황적 사건 전제를 제시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 내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음식의 친밀성은 1.본능적 탐식(쾌락의 해소방법)과 2.정신적 괴리로 인한 퇴행적 식욕(사회적 신드롬 열망의 해소방법)을 동시에 안고 있는 인지적 결과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모호한 중립적 관계”는 광대가 지니고 있는 이중적인 복합성을 음식과 인간에 비추어 냉철하게 관조하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자신의 이성적 시각적 해석법을 노출시키지 않고 여러 중론을 하나의 공통된 요지로 이끌어내기 위함이다. 그녀는 음식과 인간과의 관계를 광대의 모체로 삼아 중립적 입장에서 매우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다. 음식은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고유한 목적을 가진 장치로서 한낱 에너지의 근원체가 아닌 사회적인 통념에 따른 조장된 여론이 고려된 사회 이슈 현상이 대두되는 여러 화두의 불씨로 변환되기 시작한다. 다시 말하자면 시대적 광대를 음식으로 변모시켜 중립적인 입장에서 욕구에 대해 비판적 질문을 야기하기 위함이다. 음식의 형상들은 가장 기본적인 범주에 속해 있는 형태적인 구조의 이미지 위에 욕구적인 표피를 매끈하게 그려내고 있다. 인간과 음식의 본능적, 절대적인 관계를 냉철하게 반영하는 이미지를 대변하는 부분이다.
식욕은 특정한 사회문화적 시각에 따라 매우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는데 도시문명발달에 의해 상대적으로 유발되어지는 문제점을 드러내준다고 할 수 있다. 문명에 대한 ‘스트레스적 반향의 반사적인 폭식증세’와 ‘미를 비롯한 여러 사회 이슈 신드롬에 대한 욕구적 갈망에서 비롯된 거식증세’는 하나의 음식이 내포하고 있는 쾌락의 맥락에서 동일하게 표출되는 것 같지만 서로 다른 상대적인 관계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상대성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음식의 어느 한곳의 이미지에 치중하지 않고 정지된 상황의 중립지역을 형성해서 모호한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이는 작가만의 음식을 통한 세상 바라보기의 방법으로 외형적으로는 드러나 부딪히는 한편 내재화된 정신적인 해소방법으로 소화를 시키려는 바람으로 보인다.
신작 ‘두개의 우울’에서 접시에 담겨있는 두개의 햄버거는 폭식과 거식의 중간상태에서 생성되는 우울성을 직?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빵 표면에 눈물과 같이 흐르는 물감은 변화된 서구의 식생활과 그로 인하여 발생되어지는 신체적인 변화, 그리고 정서적인 문제까지도 함축적으로 담아내어 보여주고 있는 사례라고 생각된다. 이처럼 팬케이크, 꼬치, 생크림, 케이크, 햄버거 등의 음식들은 빠른 현대 문명에 활력소가 되는 반면, 만연된 개인주의가 주관적인 정신적 병폐를 가져오기도 한다. 이번 전시의 타이틀에서 드러내듯이 ‘Binge-purge syndrome(이상 식욕 항진증)’은 사회의 신드롬 욕구를 식욕에 빗대어 자신에 대한 반사적이고 정신적인 투사부분의 문제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음식물에 대한 욕구 해소의 방법이 경험적 성찰을 통해 보여 진다면, 극심한 다이어트 또는 스트레스에 의한 몸부림으로 보이는 ‘Anorexic Body(신경성 무식욕증 환자)’의 깡마른 신체는 사회의 변화에 대한 반사적인 역설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여과과정 없이 날 것으로 드러내는 직설적인 표현방법은 2003년 전작 ‘얼굴-풍경/근대 여성 예술가 8인에 대한 오마주’에서도 엿볼 수 있다. 한국 여성 근대문화예술의 시발점이 된 8명의 작가얼굴을 사실적인 기법 아래 인생의 겉과 안을 살펴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인물을 통한 정신적인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당시 여성의 사회성에 주관적인 경의를 내포하고 있다. 급변하는 사회의 굴레 속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욕구를 펼친 다양한 인생의 서사구조를 통해 탈이성적 결정에 따른 인과관계를 간접적으로 체험하고자 하는 의지를 엿보인다.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로 갇혀있는 굴곡의 인생을 섬세한 여성적 광대로 치켜 내세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이미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초상화의 화면구도를 갖추어 인물에 대한 객관적이면서 사실적인 면모를 담아내는 표현양식을 적극 활용하여왔다. 화면을 주도하는 초상화법의 화면배치는 이번 신작에 와서도 더욱 과감하고 강렬하게 도드라져 보인다. 더불어 전작의 인물에서 보이는 사실에 입각한 딱딱한 묘사법은 이제 감성에 호소할 수 있는 부드러우면서 거친 숨소리 같은 필치로 삶과 죽음의 모호한 중립적 묘사분위기를 유도하고 있다. 또한 필치는 형상에 대한 깊은 고찰에 의해서 운용되고 있는데 터치와 터치 사이에는 미묘한 간극의 차이로 당시의 심리적인 변화를 간결하고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전작에서는 경의에 의한 ‘숭고적인 필치’라고 본다면, 신작에서는 이성의 판단에 대한 보다 ‘감성적인 필치’로 변모되어 전개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여기서 짐작하건대 그녀는 여성성이라는 명제성을 전체적인 아우라로 삼아 외관상으로 변화되고 있음을 찾아볼 수가 있는데 ‘근대여성’에서 ‘현대여성’으로 이어지는 동안 변화하는 욕구의 열망을 담아내려는 것처럼 보인다. 초창기의 숭고적인 필치는 남성 우월적인 근대 속의 여성성에 대한 정신적 측면을 짚고 있었다. 차츰 그 이후에는 감성적인 필치로 현대 여성에 대한 사회성과 미의 욕망에 관해서 지적하고 있음을 일부 해석해 볼 수 있는데, 욕망이 가속화됨에 따라 개인주의적 문물이 만연하게 되고 주관적인 이성의 판단에 의한 편파적인 감정에 집중적으로 휩싸이게 된 이유에서이다. 그러므로 음식 광대는 정지된 사건 상황을 전제로 하는 모호한 중립적 입장의 자세를 취하게 되었다.



“담백한 진실에 대한 선택적 회고성”은 모든 대상들이 사실에 입각한 모습을 담백하게 표현하여 제시하고 스며든다. 인간의 욕망에 대한 열망에 거리를 두는 하나의 방법으로 사실적 표현에 색채의 담백함을 구현하며, 정지되어지는 공간에 대한 냉철한 성찰의 의미를 가시화시키는 것이다. 시간의 정지는 공간의 분열과 혼합이 교차하는 가상적인 현실을 구현해내기에 이르러 그곳에서는 매우 직설적이면서도 간접적인 이중적 구조로 서로 결부되어 분열되기 시작한다. 먹과 아크릴이 만남을 이루어냈고 중간계의 색채를 자아내는 순간이다. 먹의 유연과 아크릴의 합성수지는 물에 의해 융화되지만 서로 자신의 중립의 정점에서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먹은 동양의 정신세계를 대변하고 있으며 아크릴은 서양과학의 문물을 표상하고 있는데, 이러한 어울리지 않은 결합이 상대적인 관계를 인고를 통해 중립의 단계라는 한층 성숙한 단계로 몰아가고 있다. 이들의 결합은 순수한 인공재료(송진의 탄소가루)와 화학적인 물질의 인공재료(에스테르 수지)이기 때문에 매우 천천히 견고한 층을 이루면서 캔버스의 표면을 형성해 나가는데, 은은하면서 거친 느낌의 복합적 색감(불화합적 중간색)의 완성에 이른다. 동서양 문물이 하나가 되는 상대적인 성격의 재료의 합일은 시대적 정신과 감성에 합일에 도출하는 구심점으로 연결지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 표면에 음식에 대한 솔직한 감정의 중심에서 중간층의 세계를 제시하고 욕구 결정의 선택권을 부여하고 있다. 이것은 욕구에 의한 불만의 해소이거나 아니면, 억제에 대한 반항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렇듯 원인에 따른 결과에 대해 서로 다른 양상을 띠게 되는데, 그녀는 이를 방관하듯 자신만의 진실을 찾기 위해 기준점에 해당하는 영역범위를 형성해 놓고 기다리고 있다. 그 곳은 현실공간에서 중심을 잃지 않으려는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을 뜻한다.
신작 ‘야만-되기’에서 음식을 관통하고 있는 꼬치는 하늘을 향한 인간의 거만함과 과시욕을 상징하듯 보여주고 있는 반면, 음식물들은 마치 상처를 받은 듯 기운이 빠져있다. 꼬치에 끼워진 음식은 인간의 잔인한 폭력과 야만성에 의해 치부되어진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도 색채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중립적인 담백함이 이를 덮고 있는 것이다. 팬케이크를 여러 겹 쌓아올린 거대한 탑이나, 생크림의 서로 뒤섞이고 얽혀있는 겹겹의 층, 햄버거의 쏟아질 것 같은 내용물의 과포화상태 등 부분 포커스적인 표현의 사례들은 앞서 거론한 꼬치와 동일한 성향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들의 음식들은 원초적인 형상에 벗어나지 않고 진실성이 가미된 본질에 가까운 살아있는 움직임의 터치를 이루어낸다. 대상을 이루어가고 있는 획과 획들의 사이에는 수많은 색의 중첩에 의해 자칫 융합이 되지 않아 가벼워질 수 있는 자신을 끈끈한 점액질로 메워가고 있다. 인고의 시간에 걸쳐 완성된 색채와 필치의 운용은 진실에 대한 작가만의 회고방식이다. 수많은 색과 터치가 쌓아 올라가는 표면상층부에서 자신이 지향하고자하는 담백한 진실을 세상을 향해 흘려보내고 있다.



앞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결과적으로 작가는 인간의 욕망을 친밀한 음식을 대상으로 삼아 담백한 중립적인 광대의 이미지를 내세우고 있다. 광대를 바라보는 듯 관조적인 입장에서 군상의 욕망의 대상에게 접근하고 있다는 말이다. 사회 비판적인 이야기를 여성이라는 절대적이고 제한된 조건내부에서 선택권에 의해 생성되는 원인과 결과에 대한 신음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전작의 얼굴의 모습은 시대적인 아픔에 대항하며 살아간 여성의 삶을 경의의 대상으로 보고, 인물을 통해 인간의 내면에 대한 성찰을 보여준 것이었다. 이처럼 여인들의 얼굴 속의 광대적인 이미지는 인간이 지닌 선택의 운명을 추론한 것이라면, 이번 신작의 얼굴은 음식광대를 통한 사회적 신드롬에 대한 명제를 선택적인 결과에 대한 두려움과 허구성으로 논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절대적인 선택의 판단이 이성적 관철을 통해 순수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모노드라마에서의 광대놀이처럼 이 시대의 초상화를 냉엄한 시각으로 그려내고 있다. 어느 한부분에 치우치지 않은 중립적이면서 모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자신의 일련의 회화를 ‘Freeze Frame(정지화면)'이라고 명명하듯이 정지되어진 순간의 사건적인 결과에 대한 맥락에서 전/후 상황을 파악하고 혼탁해지지 않도록 지극히 공정한 입장에서 바라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른바 인간군상이 지니고 있는 욕망에 대한 수치의 경계선을 보여주며 개성적인 이성판단을 겨냥하고 있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준 시대의 신드롬 자화상과 같은 것이다. 시대의 광대가 사회적 이슈를 가지고 희로애락으로 펼치듯이 작가는 비록 제한적일 수도 있지만 욕망의 양면에 대한 담백하면서 달콤 쌉싸름한 보고서를 써내려가고 있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빈지-퍼지 신드롬 Binge-purge syndrome
난달2007-13창작지원기획 이정민 개인전

전시기간 : 2007년 12월 19일~2008년 1월 04일
초대일시 : 2007월 12일 19일 pm 05:00
전시장소 : 갤러리스페이스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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