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전시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전시상세정보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김병종전-생명의 노래

  • 전시기간

    2005-11-24 ~ 2005-12-07

  • 참여작가

    김병종

  • 전시 장소

    갤러리현대

  • 문의처

    02-734-6111

  • 상세정보
  • 전시평론
  • 평점·리뷰
  • 관련행사
  • 전시뷰어
199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김병종의 연작중 근작
생명의 노래 - 바라보기


이주헌│미술평론가


흐르는 것도 때론 멈출 때가 있다. 샘이 흐르다 멈추는 곳이 못이다. 시간도 그렇게 흐르다 멈춘다. 거기가 어딜까?
우리의 기억이 머무는 곳, 우리의 그리움과 향수가 머무는 곳, 꿈엔들 차마 잊힐 리가 없는 곳, 우리의 동경과 희망이 메아리치는 곳, 그곳이 바로 시간이 멈추는 곳이다. 이 시간의 못으로 흘러들고 싶을 때 우리는 눈길을 돌려 저 먼 하늘을 바라보거나 눈앞의 작은 사물들을 관조하게 된다.
바라보는 행위를 통해 의식은 시간으로부터 해방되고 추억이니 그리움이니 향수니 동경이니 하는 것들이 하나 둘 마음 밭에 똬리를 튼다. 그렇게 우리의 삶은 순간에서 영원으로 스며든다.
김병종의 그림에서 우리가 대하는 세상도 바로 그런 시간의 못이다. 그의 그림 안에서는 누구도 세월의 짧음을 아쉬워하지 않고 그의 그림 안에서는 누구도 지나간 일들이나 다가올 일들로 근심하지 않는다. 그곳은 추억과 향수로 충만하고 그곳은 동경과 희망으로 충만하다. 그곳은 생명의 못이다.




물고기가 하늘과 땅 사이로 유영을 하고 연인들이 서로 껴안거나 손을 맞잡고 걷는다. 새와 꽃이 어우러지고 사람과 동물이 어우러진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림 속에서 그들 모두가 서로를 바라본다는 것이다. 바라봄으로써 대화하고 바라봄으로써 상생한다. 고은 시인의 시구처럼 "이곳에서 나는 나 혼자가 아니다. 이곳에서 나는 당신의 당신이다."
당신의 당신. 바라보는 이가 있어 당신은 나의 당신이 되고 나는 당신의 당신이 된다. 돌이켜보면, 우리가 이 시간의 못으로 흘러든 것도 무언가를 깊이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가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내가 바라본 그 무언가도 지금 나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추억이, 향수가, 발걸음을 멈춘 시간이 나를 그렇게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그는 나에게로 흘러들어 왔고 그렇게 나는 그에게로 흘러들어 갔다.
김병종의 그림에서 물고기와 사람, 새와 말,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는 모습은 바로 나와 세상이, 나와 삶이 서로를 바라보는 모습의 의미심장한 단편이다. 그 어느 날 내가 당신을 바라보지 않았다면 어디 사랑이 피어났으랴. 그 어느 날 내가 당신을 바라보지 않았다면 어디 사유와 사색의 깊은 강이 내게로 흘러들었으랴.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좋은 것은 서로의 마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눈빛을 교환하며 서로를 바라보는 것만큼 신뢰와 애정을 도탑게 쌓는 일도 없다. 홀로 바라보는 것은 사물과 형상을 바라보는 일이지만, 서로 바라보는 것은 존재를 바라보는 일이다. 사물과 형상을 뛰어넘어 본질을 바라보는 일이다. 저 눈빛 속에 무엇이 있는가? 형상이 있는가, 사물이 있는가? 저 눈빛 속에는 아무 것도 없다. 내가 소유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오로지 나를 바라보는 본질이 있다. 나를 바라보는 사랑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시선의 권력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나는 바라보기만 하고 그는 바라보임을 당하기만 하는 그런 세상에서는 결코 사랑과 평화가 강물처럼 흐를 수 없다.



김병종의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이처럼 생명들이 서로를 향해 진솔한 눈빛을 던지기 때문이다. 서로를 형상이 아니라 존재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본질은 그렇게 교환되고 본질은 그렇게 증식한다. 그게 생명이다. 본질과 본질이 만나 더 큰 본질로 증폭해온 것, 그것이 지금껏 생명이 성장해온 역사요, 우주가 성장해온 역사다. 그 하모니가, 여운이 못내 잊혀지지 않는 이들은 김병종의 그림을 좀더 찬찬히 들여다볼 일이다. 그렇게 찬찬히 보노라면 불현듯 그의 그림 또한 당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자연스레, 아, 내가 단순히 이 그림을 보고 있었던 게 아니라 이 그림과 깊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행복한 기분이 들 것이다.



아마도 이 행복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우리가 그림을 바라보는 것은. 아마도 이 행복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와 눈길을 주고받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 어머니와 눈이 마주쳤을 때 얻은 게 무엇인가? 바로 행복이다. 존재가 존재를 바라볼 때, 본질이 본질을 마주할 때 생겨나는 것, 그래서 저 우주 끝까지 퍼져나가는 것, 그것이 행복이다. 김병종의 그림에서 그 행복의 파장은 무엇보다 분청사기의 흰색으로 환하게 피어오른다. 행복의 색깔은 무슨 색인가? 무지개 빛인가?



무지개 빛도 한마음 한뜻이 되면, 그래서 서로 하나가 되면 흰 빛이 된다. 제아무리 찬란한 오채도 희고 순결한 하나의 빛, 흰빛으로부터 왔다. 흰색은 근원이다. 행복도 근원이다. 생명은 행복으로부터 삶의 의미를 길어온다. 행복하지 않은 생명은 짠맛을 잃은 소금이다. 생명의 노래는 언제나 행복의 노래이다. 생명감으로 충일한 노래일수록 그 노래는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맑고 밝게 한다. 순결하게 한다. 그 바탕 위에서 혹은 뛰놀고 혹은 거니는 뭇 존재들은 그 충만한 행복 때문에라도 서로를 따뜻하게 바라보지 않을 수 없다. 서로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도 저 그림 속의 나비처럼, 물고기처럼, 또 새와 사람들처럼 서로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자. 그렇게 혼자가 아닌, 당신의 당신이 되어보자. 이 눈빛만이 너와 나를, 우리를 진정으로 살아있게 한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