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전시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전시상세정보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심경자전

  • 상세정보
  • 전시평론
  • 평점·리뷰
  • 관련행사
  • 전시뷰어

시적 공간과 상상의 세계



심경자의 초기작에 해당되는 70년대 초반의 작품들을 보면, 나무의 중심을 잘라낸 원주목의 탁본과 더불어 옛 동경(銅鏡)의 뒷면이나 엽전, 기왓장, 그리고 떡살들에서 찍어낸 문양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목리문은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동경, 엽전, 기와장, 떡살 들이 한결같이 오랜 시간의 저편에 존재되었던 것들이어서 화면은 옛스러움의 향취로 가득 넘쳤다.
그는 이들 작품들을 <가르마>라 명명했다. 명제에선 여성특유의 섬세한 정서가 배어 나왔다.
동양화에선 사물을 묘사할 때 주름살을 통해 그 형상과 입체감을 구현해 내었는데, 어떻게 보면, <가르마>는 준( )에 해당되는 그 특유의 묘법으로 간주되어도 무방할 것 같다. 사실 그렇긴 하나 그의 탁본에서 보는 선조(線條)는 준법에서와 같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어떤 집성을 통한 우연의 결과일 따름이다. 목리문이나 엽전, 기왓장, 떡살의 문양들이 제각각 특징적인 요소들을 머금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한자리에 쏟아부어 놓으므로써 단순한 선의 집적(集積)에 지나지 않게 됨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그의 화면은 평면위의 앗상브라쥬(Assemblage)라고 명명해도 좋을 정도로 독특한 집성의 미학을 지니고 있다. 한자리에 집성시킨다는 것은 원래의 오브제가 지녔던 요소를 탈각하고 집성이라는 논리 속에서 추구되는 새로운 구성의 세계를 지칭함이다. 원래 앗상브라쥬는 버려진 폐품들을 한자리에 집성시킨 것인데, 폐품들 개별이 지녔던 원래의 속성들이 탈각되고 집성이라는 논리 속에서 또다른 별개의 세계를 창출해내었던 것이다. 실로 앗상브라쥬의 기적은 속성의 치환에서 일어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경자가 동원하고 있는 옛 기물들 - 비록 탁본에 의한 찍어낸 것이긴 하나 - 역시 그것들이 갖는 고유한 속성이 탈각된채 집성이라는 논리 속에 함몰되므로서 구성의 새로운 세계를 열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인 앗상브라쥬의 작품들이 물질을 집성하는 자체에 머물고 있는 점에 비해 심경자는 구성이라는 새로운 단계로 진척시키는데 그 독특한 영역을 발견할 수 있다. 그의 화면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다양한 기물들의 표면들이 집대성되지만 한발만 뒤로 물러나 보면 화면은 탄력있는 구성의 열린 단계로 진행되고 있음을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탁본은 옛 비석의 글자들을 종이에 옮겨 놓는 방법이었다. 이미 그 역사는 오래다. 이와 유사한 방법이 서양의 프로타쥬 기법이다. 초현실주의자들에 의해 발견 되고 시도되었다. 돌팍이나 나무 판 위에 종이를 얹고 연필이나 초크로 문질러 육안으로 쉽게 파악되지 않는 사물의 미세한 표면의 표정을 걷잡는 방법으로 우연성, 예기치 않음에서 오는 놀라움에 착안 된 것이다. 옛 비석의 글자들을 종이에 옮기는 탁본은 그 목적이 뚜렷한 기능적인 기법인 점에 비한다면, 초현실주의자들에 의해 시도된 프로타주는 우연에 대한 천착의 결과일 뿐이다. 심경자의 방법은 물체 표면위에 종이를 얹고 표면의 문양을 떠낸다는 점에서는 동양의 탁본의 기법과 일치되나 우연성에 착안한 점에서는 프로타주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물체의 표면에 아로 새겨진 흔적을 선명하게 걷잡는다는 것보다 표면에 나타난 흔적들이 지니는 예기치 않는 상상의 촉매에 그의 관심은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70년대 초부터 현재에 이르기 까지 그의 기조는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표면상으로는 변화의 흔적들이 편재 되지만 탁본이라는 형식과 거기서 일어나는 여러 상상의 구성화란 근간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에 따라서는 변화를 해체와 재구성이란 대담한 방법을 통해 실현해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내밀한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조심스럽게 안으로 안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변화의 작가들도 있다. 심경자는 확실히 이 후자에 해당되는 작가이다. 변화없이 보이는 속에 변화를 추구한다는 것은 들어난 변화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한 점진적인 자기 속의 변화야 말로 굳건한 자기 세계의 확립이요 다짐이기도 하다.

심경자는 전통회화를 수업했고 동양화가로서 출발하였다.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70년대 초반의 데뷔작들은 전통이라든지 동양화라든지 하는 고식적인 방법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의 70년대 초반의 작품들은 지금에 보아도 신선함을 주고 있다. 그의 초기의 신선함은 조금도 시들지 않았다. 당시는 더욱 충격적이었을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더구나 그의 등단의 무대가 어떤 재야전도 아닌 국전이란 관전(官展)이었다는데 더욱 충격파가 컸음을 짐작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작품이 전통이나 동양화라는 범주를 완전히 벗어난 것이냐 하면, 결코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다. 그의 작품이 혁신적이고 신선함을 지니면서도 전통이나 동양화라는 오랜 정신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데서 오히려 그의 작품이 주는 혁신과 신선함은 더욱 돋보인 것이 되었다. 동양화이면서 동시에 동양화가 아닌 세계란 동양화에서 출발하면서 이미 동양화를 극복해 보인 세계를 이름이다. 그것은 보편적인 회화의 지향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작품을 오늘날 흔히 볼 수 있는 동양화의 서양화지향 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보편적인 회화의 지향이 곧 서구화, 서양화라는 잘못된 인식이 만연되어 있는 오늘의 한국미술계에선 그의 제작의 방향이 시사하는 바는 결코 적지 않다. 그에게 있어 보편적인 회화의 지향이란 고루한 형식을 벗어나서 현대적 감수성에 호소하는 것을 의미한다. 동양화가 어제의 양식이 아닌 살아 있는 오늘의 회화로서 자립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시대적 미의식에 상응되는 보편적 미학을 지니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 지금까지 그가 추구해 온 방법의 요체라 할 수 있다. 그런점에서 그의 회화는 단순한 혁신을 위한 혁신의 맹목성이나 동, 서양화를 따지기에 앞서 회화만 되면 그만이라는 그럴듯한 자기위안책과는 거리가 있는, 결코 동양화를 해체하지 않으면서 그것의 오늘의 존재 가능성을 꾸준하게 탐색해온 과정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우선 무엇보다도 그가 선택하고 있는 것이 한지와 수성의 재료란 점에서 전통적 매재의 굴레에서 벗어나 있지 않음을 엿 볼 수 있다. 작품에 동원되는 매재란 방법의식을 이끌어 나가는 가장 직접적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매재는 작가에게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결국, 작가는 매재를 통해 사유하는 것이니까 사유의 형식이 매재에 직접적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그는 누구보다도 한지가 갖는 독특한 물성(物性)을 가장 많이 체득하고 있는 작가라 할 수 있다. 탁본을 하는 과정에서, 그것을 찢어 꼴라쥬 해가는 과정에서 종이는 그의 신체와 가장 많은 접촉을 이루고 있다. 종이는 그 고유한 속성을 잃어버릴 정도로 그의 신체 속에서 육화(肉化) 되는듯한 느낌마저 주고 있다. 종이의 물성이 물성자체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신체와 일체된 어떤 정서의 단면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어울릴 듯 하다. 특히 한지가 주는 정서는 단순한 물질로서의 그것에 머물지 않고 한국인의 선험적인 정신에 닿아있다. 한국인들은 태어났을때부터 죽을 때까지 종이에 에워싸인 공간속에서 생활한다. 전통적인 가옥 구조에서는 특히 이점이 두드러진다. 한지가 갖는 푸근함은 알게 모르게 한국인의 의식속에 침투되어 은은하면서도 깊은 전신의 단면으로 체득된다. 심경자의 작품이 현대적 미의식을 추구하는 보편적 예술 세계에 도달되어 있으면서도 그의 뿌리는 선험적인 한국인의 정서에 깊게 잇닿아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 점에서야 말로 그의 예술은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특수한 것을 내장한 세계로 규명해 볼 수 있다.




이미 앞에서도 지적한바 대로 그의 방법의 근간은 탁본이다. 종이 위에 각인된 다양한 문양과 흔적을 다시 찢어붙이는 꼴라쥬에 의해 구체적인 구성의 단계로 진입된다. 거대한 원주목의 목리문이 화면중심을 이루면, 나무판의 물결무늬나 돌팍의 얼룩, 기왓장의 선조문양들이 그 주변을 장식한다. 엽전이나 떡살의문양은 주로 초기에 많이 등장되었지만, 최근작에 올수록 나무의 물결무늬나 원주목의 나이테가 구성인자로 자리 잡는다. 탁본을 찢어붙인 꼴라쥬가 일단 마무리 되면 주변에 은은한 색채를 가미하여 공간감을 부여한다. 이 마무리의 설채(設彩)에 의해 비로소 화면은 깊이감을 갖게 되며, 전경과 후경이란 이중화된 구조를 들어내게 된다. 그의 화면이 평면화에서 벗어나 다분히 입체성을 띄게 되는것도 이 이중화에서 기인된다.
그의 화면에는 어떤 구체적인 것도 찾을 수 없다. 그러면서도 무언가 찾아질 것 같은 기대와 예감으로 차있다. 지시적인 이미지가 없다는 점에서 쉽게 그의 예술을 비구상으로 분류하기엔 너무도 많은 상상의 물결로 넘쳐난다. 분명하게 결정지워진 이미지를 주는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성하는 이미지를 뒤 쫓게 하고 있다. 실로, 그의 예술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활짝 피어오른 모란의 정원을 거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가 하면, 풍광이 수려한 해안의 굽이굽이 휘돌아가는 단애(斷崖) 앞에선 느낌을 자아내기도 한다. 무수하게 소용돌이치는 물결위로 날아오르는 물새들의 울음소리가 귓전에 들릴 것 같은 환각에 젖기도 한다. 이처럼 그의 화면에는 산수가 있고 화조가 있다. 전래의 형식에 얽매인 산수나 화조가 아니라 상상속에 꽃피어 나는 새로운 산수요 화조다. 어쩌면 그런 상식적인 분류마저 무의미한지도 모른다. 거대한 우주공간이요, 인간의 심층심리의 저 아득한 자리라 할까.
그의 화면을 편의적으로 분류하면 다음 네 가지 유형이 된다. 상상 상의 이미지와 여백이 만드는 풍경적인 화면, 목리문으로 화면 전체를 메운 전면화 화면, 단편적이긴 하나 구체적인 이미지가 등장하는 화면, 한지의 원료에서 추출하여 실이나 천의 질감들을 살린 새로운 구성의 꼴라쥬 등이 그것이다. 이같은 유형은 조용하면서도 꾸준히 자기 변화를 시도하는 작가의 심화의 양상을 반영하고 있다. 첫번째 유형은 새로운 산수, 새로운 화조화에 비유되는 작품군이다. 겹겹이 쌓인 아스라한 산맥을 연상시키는가 하면, 거대한 분화구를 통해 흘러 넘치는 용암을 방불케 하기도 한다. 거대한 스케일의 작품이 있는가 하면, 섬세하게 피어오르는 꽃과 야생초의 가녀린 식물을 은유화 한 소담스런 내용의 작품도 있다. 거대한 소용돌이의 드라마틱한 구성이 전개되는가 하면, 한없이 안으로 침잠하는 은은한 표현속에 자적하기도 한다. 조용하면서도 웅장하고 섬세하면서도 폭발적이다. 상충하는 요소들을 가누고 침투하는 요소들을 흩트려 놓는다. 끓임없는 변화가 일어나고 생성의 에너지가 흘러 넘친다.




나무의 물결치는 무늬로 가득 채워진 전면화 화면은 마치 앵포르멜의 표현을 연상시킨다. 공간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린다는 행위의 자적에 전체를 내맡기는 유형에 닮아있다. 물결치는 무늬는 찍어 낸 것이기는 하나 작가는 그것들을 꼴라쥬 해가면서 소용돌이치는 무늬속으로 자신을 던져 넣는다. 그 무수한 세월의 흔적 속에 자신을 던짐으로서 예기치 않은 만남의 충격을 획득해 나간다. 화면은 태초의 카오스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물결 또는 기운들로 넘실거린다. 이 알수 없는 혼돈은 창조를 위한 예감으로 충만하다. 단편적이긴하나 구체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는 화면은 예컨대, 파도처럼 일렁이는 무수한 작은 돌기 속에 하얗게 들어난 길이나, 공중에 걸려 있는 줄에 매달려 있는 인간의 형상이나, 자전거를 타고 가는 인간의 모습들로 채워지는 것들이 지극히 암시적이긴 하나 지시적인 내용들임에 분명하다. 그의 화면 속에서 이토록 구체적인 영상이 등장하는 것은 90년대 후반부터이다. 분명히 드러난 하얀길이나 공간에 매달려 있는, 또는 자전거 페달을 열심히 밟고있는 인간의 실루엣은 다분히 관조적인 시각의 결정물처럼 보인다. 작가는 생을 되돌아볼만한 연령에 도달되어 있다. 자신의 삶에 대한 회한이 없을 수 없으며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한 뿌듯한 감회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굽이치는 많은 돌기 속에 뻗어있는 길은 어쩌면 자신이 걸어온 변화 속의 일관된 삶의 역정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으며,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인간의 모습은 살얼음을 디디고 살아가는 보편적인 현대인의 자의식의 반영인지도 모른다. 그의 최근 작 가운데는 종이 꼴라쥬와 더불어 한지원료를 찢어 붙인 작품군이 새로운 시도로서 등장한다. 그것은 탁본에 의한 종이 꼴라쥬와는 다른 직접적인 물질의 첨가라는 점에서 꼴라쥬의 복합성을 드러내고 있다. 목리문을 탁본한 종이 꼴라쥬에 비해 한지의 원료 꼴라쥬는 구체적인 마티엘로서의 표현에 상응된다. 그만큼 화면은 풍부한 변화의 촉매로 넘쳐난다.

동양의 옛 선비들은 회화 속에 시가 깃드는 것을 이상으로 생각해 왔다. 남화의 시조로 알려진 왕유(王維)의 작품을 가리켜 그림 속에 시가 있고 시속에 그림이 있다고 했다. 회화가 단순한 기교의 산물이 아니라 높은 정신적 격조의 세계임을 피력한 것이다. 어쩌면 이 점이야 말로 동양의 회화가 갖는 독자적 내면일 것이다. 선비의 계층이 사라진 현대에 와서도 이와같은 작품에 대한 평가의 기준은 사라지지 않고 연면 되고 있다. 작품 속에 정신적 향기가 없다면 단순한 기교의 산물로 폄하되고 있음이 그 증거이다.
심경자의 작품은 어떤 면에선 고도의 기술적 공정을 요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일일이 탁본을 해야하고 그것들을 다시 꼴라쥬해 가는 과정의 전체는 완벽한 기술에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화면에서 어떤 기교적 잔흔을 찾기는 어렵다. 마치 화면은 자연스럽게 태어나는 듯한 꾸미지 않은 소박함으로 뒤 덮혀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기교를 구사하면서도 그것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내면화의 경지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심경자의 예술이 동양화의 이상적인 경지, 즉 그림 속에 시가 있는 경지에 와 있음을 발견하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어떻게 보면, 그의 화면은 시를 회화로 번안해 놓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회화에 앞질러 시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할수 있다. 회화에 앞질러 시가 나타난다는 것은 그만큼 회화 속에 깃들인 시적 상상력의 구현이 회화적 작업을 앞지른다는 것이기도 하다. 누구든지 그의 화면 앞에 서면 무수한 시간의 퇴적속에 잠겨있는 잃어버린 영상들을 되찾아 상상의 나래를 타고 끝도없는 기억의 나락으로 자맥질하게 될 것이다. 꿈꾸는 듯한 신비한 공간속을 자유롭게 유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2003. 11.
오광수│미술평론가, 前국립현대미술관장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