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02-04 ~ 2026-03-29
최종태
02.720.1020

최종태 개인전 《Face》
가나아트센터 전관
2026. 2. 4 (수) – 2026. 3. 29 (일)
가나아트는 한국 현대 조각의 선구자, 최종태(Choi Jongtae, b. 1932-)의 개인전 《Face》를 개최한다. 이 전시는 최종태의 지난 화업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두상에 집중한다. 작가가 작업 초기부터 꾸준히 다뤄 온 인물과 인체 조각 중 얼굴은 인간의 심성 표현이거나 시대적 발언이며, 조형 실험의 도구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얼굴 작업에 대해 그는 인체의 한 부분이 아닌 하나의 조형으로서 완전한 얼굴을 완성하고 싶고, 여전히 그 과정 중에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여정에서 <얼굴> 연작은 소재나 형태 면에서 수많은 변이를 보였고, 이에 따른 다양한 해석이 존재해왔다. 최종태의 얼굴 조각만을 다루는 전시는 2001년 가나아트센터에서 있었던 《일흔의 시간, 얼굴》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2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 1970년대부터 최근까지 제작된 작품 60여점을 망라함으로써 최종태의 <얼굴> 연작의 역사를 되짚어 보고 새롭게 나타난 경향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김종영(1915-1982)에게 사사하며 조각의 길로 들어선 최종태는 졸업 이후 스승의 것과 구별되는 조형성을 찾으려 계속해서 노력했다. 작가는 1968년 어느 날 신촌의 작업실에서 즉흥적으로 깎은 두 점의 얼굴 조각을 통해 김종영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았다고 회고한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두 작업 모두 이전의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얼굴이되 추상 성향이 강한 형태’, ‘단순하고 납작한 얼굴 조각’을 우연히 만든 것을 계기로, 최종태는 자신만의 조형 세계를 확고히 해 나갔다. 이후 두상은 최종태가 조형 실험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거점 역할을 했다. 그는 작업 중에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할 때마다 얼굴을 조각했다.

Face, 1980s, Bronze, 18.2 x 35.5 x 55(h)cm, 7.2 x 14 x 21.7(h)in.
이번 전시는 최종태의 얼굴 조각의 시대별 변천을 살펴볼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1970년대 제작된 <얼굴> 연작을 보면 작가가 자신의 조형 어법을 정립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나무, 브론즈, 석조, 테라코타 등을 사용하며 재료 실험을 했으며 서양 미술가의 조각을 탐구한 흔적도 몇몇 작업에서 나타난다. 그가 1968년 처음 시작했다고 밝힌 ‘단순하고 납작한 얼굴 조각’ 외에도 동그랗거나 구상적인 얼굴 조각이 이 시기 다수 제작됐다. 이러한 와중에도 반복해서 나타난 도상이 마치 화살촉과 같이 뾰족하게 솟아오른 삼각형의 얼굴 조각이다. 주로 나무로 제작된 이 삼각형의 얼굴에서는 얼굴의 최소한의 요소만 남긴 간결한 형태, 그리고 얼굴의 옆모습이 강조되도록 정면을 콧대를 중심으로 선과 같이 납작하게 표현하는 방식이 돋보인다. 이러한 특징은 향후 이어지는 <얼굴> 연작에서 중요한 기초가 된다.
1980년대의 <얼굴>에서 주목할 점은 작가 특유의 조형성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는 것과, 이를 토대로 생긴 작업 경향이다. 최종태는 1970년대의 폭이 좁고 납작한 모양의 두상을 변형하여 목이 가늘고 얼굴이 옆으로 긴 ㄱ자 형태의 조각을 제작했으며, 이를 1981년 개인전에서 첫 선을 보였다. 이 같은 형태의 얼굴 조각은 1985년 FIAC의 가나아트 부스에 출품된 이래 ‘도끼 여인’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1980년대 제작된 <얼굴> 연작은 도끼형 얼굴의 옆면을 비대하게 키우거나 볼록한 볼을 표현하기 위해 양감을 더하는 방식으로 변주되었으며, 대부분 브론즈로 주조되었다. 지금까지 제작된 최종태의 추상 얼굴 조각이 모두 1980년대의 얼굴 조각 구조를 기본 골조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도끼형 얼굴은 그를 대표하는 도상이라고 할 수 있다.

Face, 1981, wood, 20.5 x 19 x 52(h)cm, 8.1 x 7.5 x 20.5(h)in.
1980년대 중반에 제작된 도끼형 <얼굴>은 당시 한국의 정치 현실에 대한 작가의 심정과 저항의식을 담은 작업이라는 해석이 많다. 군사 정권의 폭정과 억압에 대한 날선 비판으로서 얼굴을 날카롭고 날렵한 도끼처럼 조각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독특한 얼굴형에 대해 작가는 “그 무렵 외부의 상태와 내 내부의 상황을 연결시키고자 하는 시도는 상상지도 못했다.(중략) 표현은 일종의 충동이었다”고 회고하면서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최소한의 형식을 빌려서 분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즉, 도끼형 얼굴은 비판적 의도를 전제로 하지는 않았지만 직접 작가가 당대의 현실을 목격하며 축적된 감정들이 자연스럽게 표현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예술의 바탕에는 학창 시절 읽은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의 영향이 짙게 배어 있다고 하면서 6·25전쟁, 4·19혁명, 5·16군사정변, 5·18민주화운동 등을 겪는 동안 예술이 인간의 삶에서 무관할 수 없다는 생각이 점차 깊어 졌다고 수차례 언급한 바 있다.
1990년대부터 최종태는 <얼굴>을 다양한 형식으로 변주하는 데 매진했다. 정수리부터 목덜미까지 직각으로 떨어지던 초기의 도끼형 얼굴은 마치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는 듯이 기울어진 형태로 변모했으며, 이목구비가 크고 또렷해지거나 혹은 완전히 사라지고, 머리카락 표현이 다양해지기도 했다. 1996년에 한하여 도끼형 얼굴이 야외 설치를 염두에 둔 듯 거대한 규모로 제작되기도 했다. 2005년 대전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대규모 회고전, 《최종태- 영원과 본질의 탐구》를 기점으로 최종태는 채색 조각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원시미술을 연상케 하는 원색의 강렬한 색채가 얼굴 조각에서 자주 사용되었으며 음각이나 양각으로만 표현되던 이목구비가 붓으로 그려 지기도 한다.
반 세기가 넘는 얼굴 조각의 역사에서 수많은 작업을 관통하는 주제는 ‘인간됨’이다. 최종태는 특정 모델을 두고 작업하지 않는다. 그의 얼굴 조각 대부분은 작가의 심상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다. 그는 “내가 그리는 얼굴은 실재의 얼굴과는 많이 다르게 되어 있다. 나는 좋은 사람, 착한 사람, 훌륭한 사람을 그리고 싶은 것”이라고 말했다. 인간의 내면에 선성(善性)이 존재한다고 믿는 최종태는 그의 조각이 높은 단계의 선성을 취하기를 희망하며, 이를 위한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종합해보면 새로운 예술에 대한 갈망, 인간에 대한 연민, 구도자적인 삶의 태도가 최종태의 얼굴 조각 전반에 깃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최종태는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서울대 명예교수, 우성김종영기념사업회 회장, 김종영미술관 관장, 이동훈미술상 운영위원장, 이동훈기념사업회 회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4년 8월에는 유럽의 출판사 스키라(Skira)에서 최종태 화집 『CHOI JONG TAE: Eternity』가 출간되기도 했다. 그의 얼굴 조각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리움미술관 등 유수의 기관에서 소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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