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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김창덕 개인전 : 지지 않은 매화, NoW에 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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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김창덕

조월

42x30cm

돌가루,밀랍,아크릴

2023


전시제목 : 다음 김창덕 개인전 ‘지지 않은 매화, NoW에 피다’ 

전시기간 : 2023.03.08-03.30

오프닝 리셉션 :  2023.03.08(수) 5~6pm 

관람시간 : 화~토요일 10am~6pm (일,월 휴무)

전시장소 : 갤러리나우 (서울시 강남구 언주로 152길 16)


[ 전시 서문 ]


지지 않은 매화, NoW에 피다.


벌이 꽃가루를 채집해 꿀을 만들면서 생긴 밀랍을 75도의 열을 가해 다시 매화꽃으로 재탄생 시킴으로써 이 모든 게 돌고 도는 불교의 윤회와 흡사해 윤회매(輪廻梅)라 이름이 붙여졌다. 윤회매(輪廻梅), 생화가 살아있는 나무 위에 피었을 때 그 것이 꿀과 밀랍이 될 줄 어떻게 알았겠으며 꿀과 밀랍이 벌집 속에 있을 때 그것이 윤회매가 될 줄 알았겠는가. 그렇기에 매화는 밀랍을 망각하고 밀랍은 꿀을 망각하고 꿀은 꽃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윤회매가 매화로 되기 전에는 그것이 밀랍이지 꽃이 아니었지만, 매화에서 벗어나지 않은 것은 밀랍의 전신이 꽃이었기 때문에 븥여진 이름이다. ‘차(茶)’란 한자는 풀초(艸) 자와 나무목(木) 자, 사람인(人) 자가 합해진 것이다. 차는 마신다 하지만 마시는 것에만 있지 않다. 마시기 전에 차나무가 생장하기 위해서는 햇빛, 땅의 기운, 비, 자연의 조화로운 결정이다. 차를 통해 풀과 나무 사이에 사람이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다. 차를 벗하며 자연과 둘이 아님을 아는 것이다.


조선 정조 때 실학자로서 규장각 검서관과 적성(경기도 파주)현감을 지내신 청장관 이덕무 선생께서 찻자리에 놓고 감상하는 밀랍으로 만든 매화인 윤회매를 처음 만들었다. 찻자리 다화인 윤회매는 선생께서 17세 창제하신 것도 차를 좋아하셨던 다인이라 봄에 잠시 피고 지는 아쉬움 때문에 일품의 격이 있는 매화를 밀랍으로 제작한 것이다.


다음(茶愔) 김창덕의 윤회매는 밀랍과 노루 털, 매화 나뭇가지, 석채, 돌가루, 자연 색소 등 천연 재료들을 사용한다. 꽃술은 노루 털을 사용하고 옻칠을 해서 황을 묻힌다. 매화 잎과 꽃술, 꽃받침 등을 밀랍 땜질로 나뭇가지에 붙이면 작품이 완성된다. 다양한 매체의 실험을 통해 구축된 독자적인 조형 양식은 붉고 푸른 꽃잎과 꽃받침이 조화롭게 표현되며, 나뭇가지들이 어우러져 다채로운 느낌을 만들어낸다. 


찻자리 벗하는 다화인 윤회매, “보이는 것이 실체가 아니고 보이지 않는 가운데 실체가 있다 했으니, 작업과정에서 어떻게 격이 있게 비울 것인가”가 작가 스스로의 화두였고 가야할 길이었다. 작가는 “스스로를 벗하며, 오로지 작업으로 이야기할 뿐...” 큰 전제에서 보면 새로운 창작에 앞서 삶이 투명하게 투영되면서 함께 호흡하며 변화를 모색해 가는 과정인 것이다. 윤회매를 한잎한잎 제작해서 화병에 전통적 방식으로 연출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매화를 어떻게 하면 보관과 운반이 용이할까를 오랜 고민 후 평면으로 옮기면서 우리 도자를 다양하게 돌가루로 만들어 접목하여 제작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변화 있었고 이러한 새로운 창작 과정은 ‘무엇’과 ‘어떤 것’의 만남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부딪힘이었다. 부조화가 조화로움으로 변화는 작업에 있어서 무한의 빛일 것이고, 작가에게 있어서 반복되고 힘겨운 노동의 시간들은 “내 안에 있는 새로운 나와 만남이고 그 희망의 빛은 나로서 시작되고 또한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는 긴 여정”으로 기록된다.‘ 무량청향(無量淸香-맑은 향기 끝이 없어라)’이란 말이 있다. 향기로운 삶은 쉬운 일이 아니다. 봄이 되어서 피는 꽃 속에 향기만이 아니라 사람의 관계 속에 나눌 수 있는 격이 있는 모습과 상대를 꽃으로 바라볼 수 있는 내면적 성숙이 세상을 향기롭게 할 것이다. 


삼 백 여년 전의 이야기가 도자화와 접목하여 <윤회도자화((輪廻陶瓷畵)>가 탄생되었다. 새로운 단어가 만들어지고 <대한명인>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 평범함 속에 경이로움이 있었고 그리고 우리 마음 속에 숨어 있는 꽃이 삶 가운데서 피어나길 바라며, 네 가지 벗- 찻자리, 음악, 윤회도자화, 그림, 오래 전부터 같이 호흡하고 앞으로도 귀하게 흘러갈 것이다. <지지 않은 매화, NoW에 피다>展은 윤회도자화와 더불어 그림자 퍼포먼스, 영상, 영국 대영박물관 등에서 보여주었던 바라춤, 전주 전통술로 신. 구가 만나는 맛과 멋. 흥이 있어 함께 호흡하고 또한 모두와 함께 나누는 자리가 되기를 바라는 전시이다.


* 윤회매(samsara plum blossom)란?


- 조선 정조 때 실학자로서 규장각의 검서관과 적성현감을 지내신 청장관 이덕무(李德懋, 1741~1793)선생께서 밀랍화인 윤회매를 창제하셨다. 생화가 살아 있는 나무 위에 피었을 때 그것이 꿀과 밀랍이 될 줄 어떻게 알았겠으며 꿀과 밀랍이 벌집속에 있을 때 그것이 윤회매가 될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그렇기에 매화는 밀랍을 망각하고 밀랍은 꿀을 망각하고 꿀은 꽃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윤회매가 매화로 되기 전에는 그것이 밀랍이지 꽃이 아니었지만 매화에서 벗어나지 않은 것은 밀랍의 전신이 꽃이었기 때문이다.


* 공연 작품 내용


제목: 도산의 달밤에 매화를 읊다.

공연 시간: 14분야외 공연 무대 

스크린 크기: 9mx6m


밀랍으로 만든 매화를 그림자 놀이와 윤회매의 영상 작업과 어울려 바라춤으로 표현. 퇴계 이황 선생께서 평생 매화를 사랑하신 느낌을 표현한다.


윤회매가 매화로 되기 전에는 그것이 밀랍이지 꽃은 아니었지만 매화에서 벗어나지 않은 것이덕무은 밀랍의 전신이 꽃이었기 때문이다. 추위에 굴하지 않은 매화는 청빈 속에서 살아가는 선비의 기개이고 눈 속에서도 풍기는 매화의 향기는 군자의 덕이다. 우리 조상들은 매화를 일품의 격으로 매화의 정신성을 담고자 하는 삶을 추구했다. 조선 정조 때 북학파 실학자로서 규장각 검서관과 적성현감을 지내신 이덕무 선생께서 처음 윤회매를 창제하셨다. 차에 관한 시도 여러 편 있으며, 차를 좋아하셔서 찻자리에 놓고 감상하기 위해 만드신 것이다. 이번 공연은 이덕무 선생의 ‘윤회매십전’ 문헌을 보고 다시 재현한 것이다.


공연한 동영상은 갤러리 공간 내에 한 쪽 면에 작가의 작품이 걸려있는 상태에서 그림자 영상과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640년된 선암매가 영상으로 비춰진 가운데 전통 바라춤이 재현된다.


 [ 평론 ]

다음, 이덕무(윤회매)를 만나다.

류병학 (미술평론가)


필자는 작년 4월 초 광주시 남구 양림동에 위치한 이장우 고택에서 지인의 소개로 다음을 처음 만났다. 이장 우 고택은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전통가옥으로 광주 민속자료 1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 고택은 1899년 정병호가 안채와 대문간을 건축하였고, 1959년 이장우가 매입한 후 사랑채와 행랑채, 곳간채까지 완성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고택 주인인 이장우는 광주에 소재한 동신대학교 총장이다. 그 이장우 고택 별채에서 김황식 국무총리가 고시공부를 했다고 한다. 다음은 2010년부터 이장우 고택의 사랑채를 다실로 사용하고 있 다. 그는 그곳을 시은처(處), 즉 '도시 가운데 은신처' 라고 불렀다. 다음 왈, '다인은 차를 마시는 동시에 색과 향을 감상해요. 차를 처음 즐기거나 배우는 사람은 일단 백자부터 시작합니다. 하얀 잔에 담겨야 우러난 차의 색깔을 구별하기 쉽기 때문이죠. 그러다 점점 차에 빠져들게 되면 분청사기같이 색이 있는 다완을 사용해요. 특히 그 정점을 흑자로 보는데, 말차의 진 연두색이 흑자에 담기면 대비를 이루어 연두색이 더욱 선명하고 아름답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말차와 다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뜨거운 물이 담긴 다완에 말차가루를 넣어 솔을 가지고 빠른 손놀 림으로 말차를 만든다. 그는 백색 다완에 고운 거품이 있는 밝은 청록색의 말차를 필자 앞에 건네면서 “녹차라떼는 오래 전부터 만들어진 것이죠”라고 말한다. 필자는 두 손으로 다완을 잡고 베토벤의 〈후기 현악 4중주곡〉 을 들으면서 말차를 음미한다. 다음 왈, “모도 녹음이지만, 그런 만큼의 옛 정취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현악 4중주곡을 들을 땐 비올라와 제2바이올린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편입니다. 그 어울림이 참 좋은 음반이죠. 명상해 보면 맑은 종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사랑방의 벽에는 매화 그림' 이 걸려있고, 고가구 위에는 매화 가지에 꽃들이 활짝 핀 홍매가 화병에 꽂혀 있다. 사랑방의 열린 문 사이로 정원의 한 켠에 홍매가 보인다. “화병에 꽃혀 있는 홍매가 정원에 핀 홍매를 꺾어 놓은 것인가요?” 필자의 질문에 다음은 “아닙니다. 저 화병에 있는 것은 '윤회매' 입니다.” 윤회매? 다음 왈, “벌이 꽃가루를 채집해 꿀을 만들고, 그 꿀에서 밀랍이 생기고, 그 밀랍이 다시 매화가 되니, 이 모 든 것이 돌고 도는 윤회와 같다는 의미에서 윤회매라고 합니다. 조선 정조 때 북학파 실학자로서 규장각 검서관과 적성 현감을 지내신 이덕무 선생께서 17세에 밀랍화인 윤회매를 창제하셨지요. 차에 관한 시도 여러 편 있으며, 차를 좋아하셔서 찻자리에 놓고 감상하기 위해 만드신 것이죠.' 구구소한도 (九九消寒圖)라는 그림이 있다. 그것은 옛 선비들이 동짓날부터 81일이 지나면 매화가 피는 날이라 하여 하얀 종이에 먹 선으로 매화 여든 한 송이를 그려 놓고 매일 한 송이씩 붉은 색을 칠해 완성한 그림을 말한다. 그렇게 홍매화를 피워 내다 82일째 되는 날 창문을 열면 실제 붉은 매화꽃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선비들이 매화를 기다리는 마음을 담아 즐긴 돌인 셈이다. 다음 왈 고려시대에 차를 마실 때 향을 피우고 차를 맞이했어요. 다반엔 조그만 화병이 놓여 있었고요. 거 기에 꽃을 한 송이 꽂는 거예요. 차와 꽃과 향이 함께 하는 것이죠. 생화를 꽂았지만 종이로 만든 가화를 꽂 기도 했지요.” 다음은 윤회매가 차(茶) 문화의 소산이라고 말한다. 그는 차 문헌을 살펴보다가 윤회매를 알게 되었단다. 하지만 윤회에 제작 방법을 소장이 밝힌 이덕무 선생의 '윤회매십전' 문헌이 실려 있는 이덕무의 〈청장관전서(畵莊館全書> 원본은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 동아시아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어 한글 번역서를 참조했단다. 삼성출판사에서 발행한 '궁중채화(宮中探花)' 기능보유자 황수로의 〈한국 꽃 예술 문화사>가 그것이다. 궁중채화? 그것은 궁중의 연희나 의례 등에 사용된 비단 꽃을 말한다. 조선 시대 궁에는 꽃들이 주위에 널려 있었지만 생명을 존중하는 의미로 살아 있는 꽃을 꺾어 실내를 꾸미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 선조의 생명, 존중 사상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다음은 1996년 황수로의 저서에 실린 '윤회매십전' 를 읽고, 1998년 첫 윤회매를 제작한다. 다음의 윤회매는 천연 밀랍으로 만든 매화꽃으로 청매, 백매, 홍매 등 다양하다. 그가 탄생시키는 윤회매의 재료들(천연 밀랍, 천연 색소, 노루 털 그리고 나뭇가지 등)은 모두 천연 재료이다. 물론 윤회매에 사용되는 천연재료들을 구하기 는 결코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은 천연재료들을 여러 루트를 통해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림으로 존재하는 윤회매 제작 도구들을 똑같이 재현해 사용하는 것은 어려웠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현 대적인 개념의 윤회매 도구들을 직접 개발한다. 다음은 독일 출신의 번역가이자 '꿀초' 제작자인 빈도림에게서 천연 밀랍을 구해 윤회매를 만든다. 제대로 만 든 한봉밀랍은 그 빛깔이 누렇다. 그는 한봉밀랍을 써서 섭씨 75도의 불에 녹여 액체가 되면 '매화골' 이라는 도구 끝에 묻혀 찬물에 식힌 뒤 손으로 떼어낸다. 그러면 투명한 매화 잎이 완성된다. 꽃은 붉은색을 내는 안 료를 이용해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 꽃술은 노루 털을 쓴다. 이렇게 만든 매화 잎과 꽃술, 꽃받침 등을 밀랍 땜질로 나뭇가지에 붙이면 완성이다. 아니다! 윤회매를 담아주는 그릇이 남았다. 다음은 윤회매와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는 도자기를 찾는다.

필자의 윤회매 제작 과정 서술은 간략하기 그지없다. 밀랍은 온도에 매우 민감하다. 윤회매를 서늘한 곳에 두 면 바스라진다. 따라서 적당한 온기가 필요하다. 그는 작업할 때 참숯을 사용한다. 다음의 말에 의하면 윤회매의 꽃잎을 만드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한다. 왜냐하면 정교한 손놀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밀랍으로 제작된 작 은 크기의 매화 잎과 꽃받침을 보면 다음의 섬세함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더욱이 노루 털로 수 십 개의 꽃술을 꽂는 다음의 모습을 상상하자면 섬세함의 극치를 느끼게 만든다. 물론 그는 1998년 문헌 기록에만 의지하며 첫 윤회매 작업을 하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2004년 윤회매 15점을 처음으로 전시한다. 다음 왈, “이덕무 선생님이 제 마음 속에 늘 함께 있고요. 그 분의 글에는 정신이 있기 때문에 문헌을 보고 윤회매를 재현한 것입니다. 옛 분들의 정신을 내 삶에 놓치지 않는다면, 그 분들의 정신이나 사상, 문예 쪽으로 뛰어났던 그분들의 모습들을 (윤회매를 통해) 이 시간에 같은 풍류로서 호흡할 수 있는 것이죠. 이덕무 선생 같은 고결하고 격 있게 사셨던 선인들의 삶처럼 우리 모습도 그렇게 닮아가지 않을까 하는 꿈을 꾸는 것입니다. 윤회매를 만드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 이덕무의 '윤회매십전' 을 따라 제작하는 것이 다음의 목표가 아니다. 그는 윤회매를 만든 선인(이덕무)의 정 신까지 되살리고자 한다. 그렇다면 이덕무의 정신이란 무엇일까? 이덕무는 서얼(庶事) 출신으로 빈한한 환경 에서 자란다. 그는 가난한 환경 탓에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오직 책 읽는 일을 천명으로 여겼다고 한다. 가난하여 책을 살 형편이 되지 않았지만, 수만 권의 책을 빌려서 읽고 또 수백 권의 책을 베꼈다. 이덕무 스스로 자신을 '책만 아는 바보' 라고 하여 〈간서치전(看書痴傳)〉을 지었다. 그는 귀한 책을 구하면 집 안이 떠나 가라 웃었다고 한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는 단순하게 책을 읽지 않았다. 그는 다섯 번씩 읽어 정독하려고 했다. 그리고 정독한 뒤에는 반드시 느낀 점을 기록했다고 한다. 이덕무의 저술총서이자 조선후기 백과전서라 할 수 있는 청장관전서>를 보면 사실(史實)에 대한 고증부터 역 사와 지리, 초목과 곤충에 이르기까지 그의 지적 편력은 실로 방대하고 다양하여 고증과 박학의 대가로 인정 받는다. 필자가 만나 본 다음 역시 박학다식(博學多識)하다. 그는 마치 '책만 읽는 바보'처럼 수많은 서적을 읽고 자신만의 논리로 소화해 낸다. 더욱이 그가 어떤 특정 사항을 언급할 때는 출처와 연도까지 정확히 밝히 는데 할 말을 잊게 만든다. 그러니 그의 달변(설법)을 듣고 감탄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다음 왈, “매화가 다 그렇지만 암향이라고 해서 향이 겉으로 화려하게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진정한 아름다움 은 안쪽에 숨어있듯이 향도 안으로 숨어 있다는 것이죠. 우리 삶도 깊어지면 벼가 고개를 숙이듯이 우리가 인격적으로 성숙되고 뭔가 완성이 된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윤회매의 시각적 아름다움뿐만 아 니라 이덕무 선생이 첫 윤회매를 만들었던 그 마음을 떠올리면서 다른 각도로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죠. 이덕무 선생이 매화가 지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움에도 그렇겠지만 밀랍으로 만들어 윤회매라 이름 붙인 것도 우리 삶을 한번 돌이켜 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어서 그런 의미로 보면 화려한 꽃 이면에 우리 삶도 비춰볼 수 있는 소중한 계기가 될 수 있다면 하나하나씩 피우는 윤회매 작업이 많은 시간이 걸리기도 하지만 어느 하나. 소홀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이죠.'  


광주 시내 부근에 위치한 그의 집은 낡은 한옥이다. 그의 가족은 조선시대 이덕무처럼 청빈한 생활을 하고 있다. 물론 그 청빈 생활은 그가 선택한 것이다. 정조가 “가난이 선비의 재산이라고 말했듯이, 다음은 청빈을 아티스트의 재산으로 삼는다. 그렇다면 다음의 가족은 어떨까? 다음이 부처를 포기하고 선택한 부인은 마치 청빈을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 같았 다. 왜냐하면 그녀는 부귀를 포기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밝고 맑은 다음 부부에게 청빈은 마치 암향처럼 사랑의 다른 이름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성품이 깨끗하고 재 물에 대한 욕심이 없을 뿐이지 결코 가난하지 않다. 왜냐하면 삶의 질을 높여지게 하는 것은 부귀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다음은 공덕(功德)을 쌓는 것이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덕은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연기(緣起)와 윤회를 근본으로 하는 불교에서 가장 중시하는 행위의 하나이다. 선한 마음으로 남을 위 해 베푸는 모든 행위와 마음 씀씀이가 모두 공덕이 된다(물론 불교에서 가장 큰 공덕은 불법에 귀의하여 깨 달음을 닦는 것이다). 하지만 공덕은 결과보다 그것을 쌓고 닦아 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수행자로서 오랜 세월 자기 자신을 닦아온 다음은 선화와 음악 그리고 춤과 윤회매를 통해 공덕을 쌓는다. 왜냐하면 그에게 예술은 티 없이 가꿔온 수행자의 고결한 삶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베어 나오는 수행의 표현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음이 윤회매를 동시대에 맞게 복원하여 일반 대중에게 널리 보여주는 것은 일종의 수행 공덕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런 까닭일까, 다음이 제작한 윤회매의 자태를 보면 청빈 속에 살아가는 깐깐한 선비의 기개마저 느껴진다. 그의 윤회매를 보면 고인(이덕무)에 대한 지극 정성의 마음과 사무침 이 느껴진다. 그러니 감동 먹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격(格) 있는 놀이

다음 왈, “벗이 4가지가 있는데요. 첫째는 차를 만나는 것이고요. 그리고 명상음악이든 클래식이든 잘 선택하 면 음악도 좋은 벗이 되는 것이죠. 그리고 그림 그리는 것이나 윤회매를 만드는 것이 저의 평생의 벗입니다. (차와 음악, 그림, 윤회매). 그런데 제가 윤회매를 만들고 전시하고 공연하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윤회매를 부 각하는 것은 이덕무 선생이라는 인물에 대한 부각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국만리에 있는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가 돌아오는 것이 저의 소원입니다. 아직 윤회매가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찻자리에 일품의 격이라는 조선시대의 선비들이 추구했던 정신성이 윤회매에 함축되어 있다면 우리가 다시 문화로서 삶에 대한 깊이를 위해 윤회매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더불어 자기 시간과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차문화가 발전이 된다면 우리 삶이 훨씬 더 향기로운 삶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음은 범패와 범무를 동시대적으로 해석하고자 하듯이 동시대적 어법으로 다양하게 윤회매를 부각하고자 부단히 노력한다. 2013. 10월 광주국제미디어아트 페스티벌에서 선보인 다음의 <도산의 달밤에 매화를 읊다(陶山 月夜詠海)>는 음악과 윤회매의 그림자놀이 그리고 바라춤을 접목시킨 퍼포먼스이다. 특히 윤회매의 그림자놀이는 다산 정약용의 '그림자놀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으로 적어도 필자의 눈에 보였다. 달밤에 조명을 받은 윤회매가 집채만한 크기가 되었다가 손바닥만 하게 작아지기도 하듯이, 조명을 통해 윤회매의 그림자를 만든 영상은 마치 한 폭의 수묵화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다음은 매화를 지극히 사랑하였던 옛 선비들의 정신 세계를 미디어아트 퍼포먼스로 보여주고자 한 것이 아닌가? 다음 왈, “한자로 차 다자가 풀초,사람인,나무목자 입니다. 풀과 나무 사이에 사람이 있지요. 우리 모두는 자 연에서 왔다 본래 모습인 자연으로 회귀하는 존재입니다. 차를 만나는 것은 자연을 닮아가고 그 가운데 생각이 쉬어짐에 자기 자신을 만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거기에 일품의 격으로 매화인 윤회매는 더욱 잘 어울리는 찻자리 벗인 다화가 되는 것이죠. 제 생활에서 차 향이나 윤회매 격처럼 향기가 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다음은 18세기를 살다간 선인의 차 문화와 윤회매에 담긴 사상을 200여 년 후인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꼭 필 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진정한 풍류를 “격(格) 있게 노는 것”이라고 말한다. 왜 김창덕이 다음(茶音) 이란 호를 즐겨 쓰는지 아시겠죠? 격 있게 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차와 음악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그런데 다음은 차와 음악 사이에 마음(心)을 삽입했다. 말하자면 “마음을 다해 차와 음악을 만나면 몸과 마음에 평화 로움이 깃든다”고 말이다. 이런 단편적인 정보는 다음의 그림과 윤회매 그리고 춤은 바로 마음을 다해 만나는 차와 음악의 기반 위에서 꽃피울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를테면 맛(易)을 알아야 멋(五行)을 드러낼 수 있다고 말이다. 맛을 모르는 것은 일종의 댄디즘(dandyism), 즉 깊이를 고려하지 않고 단지 세련된 멋(치장)을 고려함으로써 대중에게 과시하는 겉멋(태도)일 뿐이다. 깊이 있는 맛과 멋을 즐길 줄 아는 것, 그것이 바로 격이 있는 놀이가 아닐까 요? 여러분, 다음의 윤회매와 함께 격 있게 놀아 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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