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하모니
박한흥 개인전에 부쳐
지인의 소개로 방문한 연천은 생각보다 꽤 먼 곳이었다. 선배는 소개하고픈 작품이 있으니 함께 방문해보자고 연락을 했다. 도로 한쪽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에 햇빛을 등지고 들어섰을 때 세 가지 다른 성격의 기운이 느껴졌다.
한편엔 장식성이 느껴지는 작은 소품들이 보였고, 중앙과 왼쪽엔 마치 콘스탄틴 브랑쿠시의 작업을 보는 듯, 미니멀한 작품들이 조용히 내게 다가왔다. 각 덩어리들의 인상은, 화계사의 무심히 열린 문을 통해 만났던 수없이 많은 나한상에서 받았던 단아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중앙 뒤편에는 목공구들이 가지런히 나열되어 있고 굵직한 탁자가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개성이 다른 3 세계가 한 공간에 자기의 색깔을 품은 채 공존하고 있었다. 간단한 소개 후 그런 나의 마음을 읽은 듯 박작가는 “제 아내가 아프기 전 목공예 작업을 하던 공간 입니다. 중앙의 작업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작업한 저의 최근 작품들입니다.” 그의 짧은 설명은 다른 3가지 성격의 세계를 그대로 이해 할 수 있는 열쇠가 되었다.
그의 최근 조각 작업들에서 ‘존재성’이 강조된 2가지의 다른 표현을 읽을 수 있었다. 한 가지는 엔타시스 (배흘림)기둥의 밑면을 보는듯한 꽉 찬 볼륨의 작업들과, 다른 하나는 공허를 가득 안은 확장된 외면을 가진 작품으로 크게 나누어진다. 즉 존재가 가진 충만과 비움이다.
첫 번째 ‘충만’의 대표적인 작품은 (시간의 하모니 1) 이다. 사각의 형태가 두루뭉술한 덩어리들로 비스듬히 비켜 앉은 존재를 보는 듯 했다. 작업할 때 입는 에이프런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무심히 벽에 걸린 에이프런에서 ‘삶이란 무엇이며, 존재란 무엇인가?’를 묻게 되었다. 수십여 년이 넘게 돌을 다뤄온 그에게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이 화두는 이제까지의 작업과는 다른 미니멀한 조형언어와 내용으로 표현되었다.
이 작업들이 이번 개인전에서 전시하는 (시간의 하모니) 시리즈 작업들이다.
작업 (시간의 하모니 1, 2, 7) 조각들은 마치 세워 놓은 알을 보는 듯하다. 검은 마천석을 배경으로 하얀 대리석, 청옥석 그리고 프레스토브라운석이 사용되었다. 각기 다른 나라에서 온 고유의 특성과 다양한 원석 위에, 자신의 마음과 일기를 쓰는 듯, 꽃과 나비, 식물들이 각을 가진 패턴으로 새겨져 있고, 추상적 패턴과 문양도 눈에 띈다. 반복되는 일상과 그 속에 일어났던 작가만의 기억과 일들이 세모꼴과 사각형의 추상패턴으로 상감 되어 있다. 이 요소들은 검정, 빨강, 초록, 핑크, 청자색 등의 칠보석, 임페리얼레드, 그린 마블, 청옥, 브라질석 등 세계 각국에서 출토된 다양한 색감과 마아블링패턴의 돌들이다. 이것들은 작은 조각으로 깎여져 원석에 끼워 마쳐진 후, 부드럽게 다듬어진다. 작가는 원하는 색상과 질감이 나올 때까지 계속 그것을 연마 시켜 나간다.
작품 (시간의 하모니1)은 에이프런 구조에서 나온 외형형태로 최소한 응축시킨 유선형의 흐름을 가진 검은 마천석이다. 비스듬히 걸린 에이프런에서 전체 흐름의 부드러운 형상을 가지고 왔다. 작가와 밀착되어 삶의 순간들을 함께 한 그것은 마치 작가의 육신을 닮은 듯 조용히 온 힘을 빼고 벽에 걸려 있다. 자신의 할 도리를 다 마친 그 구조 속엔 고단했던 노동과 그와 다른 공허와 휴식이 함께 보인다. 색색의 다른 돌들로 꽃과 나비와 더불어, 시간의 유구성과 수많았던 변화들의 상징으로 네모와 세모, 지그재그의 기하학적 패턴이 상감 되어 있다. 작품의 외형은 마치 어머니를 보는 듯 충만함과 풍요가 유선형의 볼륨을 타고 위에서 아래로 확장과 수축을 거친 형상으로 마무리되어 있다. 양(陽)의 기운이 가득하여 이 세상을 더 사랑하고 긍정적으로 보려는 마음이 읽혀진다.
하지만 이와는 달리, 두 번째 스타일의 작품에는 비움과 공허가 느껴진다. 대표작으로 (시간의 하모니 8, 9번) 이다. 작품 (시간의 하모니 8)은 마치 사람 얼굴을 미니멀적으로 나타낸 듯 다가왔다. 분홍빛이 감도는 마블링 오로라석 위에 각진 과거의 일들을 추상적으로 상징하는 듯 적색의 브라운 마블석과 그린마블석의 사각형들이 원형의 큰 표면 앞쪽에 새겨져 있다. 아픔을 끌어안고 원만히 익어가는 나이 들어감의 관용이라고나 할까? 앞면은 딱딱함을 끌어안은 강한 부드러움이 느껴진다. 헌대 이 작품 뒷면은 앞면과 달리 많이 방황하고 아파했던 비움의 과정들이 수 없이 깎여진 커다란 공허의 공간으로 새겨져 있다. 부드러운 이해, 관용과 사랑이 그것을 얻기까지의 아픈 경험과 과정 그리고 비움과 짝을 이루어 한 작업으로 존재하고 있다.
작가는 17살부터 시작한 석공 일에서 다양한 석재가 가진 고유의 물성을 경험해왔다. 각 원석이 가진 부드러움과 거침, 밀도의 연함과 딱딱함 등, 서로 다른 성질의 질료가 뒤섞인 잡석에서도 장자의 책에 나온 ‘포정’처럼, 속성을 분리하는 경지가 되어 갔다. 하지만 실생활에서는 80년대의 민중운동, 사회참여 운동, 노동조합 활동을 하며 정의에 목말라 참석한 사회활동으로 힘든 시간을 경험하기도 하였다. 한 인간으로 걸어온 60년! 이제까지의 모든 것을 다시 되돌아보고 진정한 가치를 묻게 된 그는 지금까지의 공격성, 진취성, 지배성, 경쟁성 등 남성적 특성으로 대변되는 양의 기운보다는, 부드럽고 따뜻하며 포근함을 가진 음의 기운에 더욱 가치를 두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특성은 작품 (시간의 하모니 9)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묘사하지 않은 둥글게 정리된 사각형의 흐름 양쪽에 각인된 두 작은 면은 보는 즉시 한 사내의 뒷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그의 팔은 생각에 잠긴 듯 팔짱을 낀 것처럼 느껴지고 등판은 60여 년을 살아온 작가 자신의 뒷모습 같다. 아니, 삶의 무게를 어깨에 메고 현재 이 순간을 꼿꼿이 살아가는 우리의 자화상은 아닐지!
흐르는 시간에서 경험한 작가의 희로애락의 삶이, 음과 양의 조화처럼 흐름과 정지, 각짐과 유선형, 채움과 비움을 통해 작업에 투영되었다. 채우기도 하고 덜어내기도 하며,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던 자신의 삶이 시간 속의 하모니가 되어 돌 위에 투영되고 있다.
이번 박한흥 개인전을 통해 흐르는 시간 속 무엇에 가치를 부여하며, 이 삶과 죽음의 여행을 누구와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를 깊게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길 기원 한다.
박성실 (미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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