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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안(心眼)으로 본 타자전

  • 전시기간

    2015-04-09 ~ 2015-05-16

  • 참여작가

    김옥선 박형근 이광호 이만나 이채영 이현호 임동식

  • 전시 장소

    갤러리룩스

  • 문의처

    02.720.8488

  • 홈페이지

    http://www.gallerylux.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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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제목 심안(心眼)으로 본 타자
전시일정 2015. 4. 9 (목) - 5. 16 (토)
참여작가 김옥선 박형근 이광호 이만나 이채영 이현호 임동식
전시기획 박영택
전시장소 갤러리 룩스 (서울시 종로구 옥인동 62)
개관시간 화요일 - 일요일 11:00 - 18:00 (월요일 휴무)



갤러리 룩스가 《심안(心眼)으로 본 타자》 전시를 2015년 4월 9일(목)부터 5월 16일(토)까지 개최한다. 《심안(心眼)으로 본 타자》는 미술평론가 박영택의 기획으로 구성됐으며, 김옥선, 박형근, 이광호, 이만나, 이채영, 이현호, 임동식 등 일곱 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심안(心眼)으로 본 타자》는 무한경쟁과 자본이 우선시 되는 사회에서 소모적이고 불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예술/미술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에서 출발됐다. 이번 전시는 일상에서 접하는 익숙한 동시에 기이한 타자에 대한 시선을 모았으며, 김옥선, 박형근, 이광호, 이만나, 이채영, 이현호, 임동식 등 일곱 명의 작가들은 사진과 회화라는 매체를 통하여 자연(나무)에 주목했다. 

사실 자연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동시에 낯선 존재이다. 우리의 삶 가까이에 지속적으로 존재하지만, 한편으론 통제할 수 없는 대상으로 생경하게 다가온다. 박영택은 '낯설음이란 특정한 외부의 경험에 의해 생성되는 내적인 심리상태를 지칭하는데, 작가들은 그 낯선 풍경과 대상을 의심한다'고 언급한다. 또한 '작가들의 재현이라는 방식은 가시적 세계를 보여주는 것 같으나 사실상 대상의 이면을, 세계의 내부를, 타자의 속을 뒤집어 보여주는 것이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작업은 결과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미술은 불가능한 작업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며, 그 과정에서 이를 암시하는 '깊은 표면'을 발견하게 된다. 이번 《심안(心眼)으로 본 타자》는 자연(나무)가 뿜어내는 영기를, 매혹적인 낯섦을 발견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심안(心眼)으로 본 타자展 


                                                    박영택 (경기대교수, 미술평론가)


인문학은 ‘인간의 무늬’를 다루는 학문이다. 예술 또한 그렇다. 예술이 추구하는 것은 정답이 없는 삶과 인간이 출현시키는 그 무수한 현상의 의미를 공들여 들여다보는 일이다. 그것은 그토록 애매한 인간 혹은 인간의 가늠하기 어려운 애매함을 다룬다는 말로서 인간 존재의 다양함을 받아들인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간의 다양한 측면은 그 자체로 의미를 발생시키고, 그 의미들이 해석을 열며, 이 해석들이 텍스트를 풍부하고 깊게 만드는 근거가 된다고들 한다. 그러나 오늘날 주어진 제도와 삶의 틀이 요구하는 인간형은 애매성을 거부하거나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것은 무한경쟁과 자본이 우선되는 사회에서 소모적이고 불필요한 일로 치부된다. 특히나 특정한 가치관과 이데올로기를 강요하거나 주입하는 한편 유사한 인간형을 요구하는 우리의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곳에서 예술/미술을 한다는 일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애매함, 모호함은 삶의 본질이자 인간의 본질이며 나아가 세상의 본질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간은 답이 없으며, 끝까지 답이 없는 세계에서 살다 죽는다.” 예술은 그런 인간의 자리를 찾아 나선다. 

우리는 자라면서, 교육을 받으며 세계와 삶에 대해 배운다. 기존의 가치관에 의해 물든 사유의 편린을 수용한다. 나 스스로 보고 깨우치는 것이 아니라 기성세대와 현실이 인식하고 있는 틀을 반성 없이 배운다. 그러니 우리는 실체와 본질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기 보다는 이미 갖고 있던 관념이나 이미지를 현실에 덮어씌우려 한다. 그래서 정보와 지식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사물과 세계에 대한 단순한 이미지에 갇히기 쉽다. 반면 좋은 작가들은 비록 불완전하더라도 자기 눈으로 세계를 보고 그에 관해 말하고자 하는 이들이다. 스스로 보고 느낀 것을 그리고자 한다. 여기서 그는 비로소 주체가 된다. 작가란 이처럼 스스로 보는 이들이다. 사물이나 세계에 부여된 관념이나 상식을 따르는 이들이 아니라 그것을 물리친 자리에서, 여백 같고 공(空)한 자리에서 무엇인가를 보려고 노력하는 이들이다. 사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낯설고 의아하고 생경한 타자들이다. 인간은 그 타자를 완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지만 최소한 자신과 관계 맺는 타자에 대한 포용과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작가란 존재들은 타자에 대해 그런 마음을 지닌 이들이다. 그것은 특정 장소, 특정 사물을 보고 있는 순간의 자기 자신에 대한 감각과 존재에 대한 충실함과 연관되어 있고 그 ‘현재’에 사로잡힌 시간에 대한 개인적 정서의 구현에 관계되는 욕망이기도 하다. 

 
갤러리 룩스에서 마련한 이번 기획전시는 자신의 주변에서 만난 익숙한/기이한 타자를 접하는 시선을 모아본 전시다. 사진과 회화를 통해 이들 7명의 작가들은 자신의 일상에서 만난 자연(나무)을 주목해서 그리고 찍었다. 그 특정한 소재인 자연/타자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존재다. 그것이 어느 날 자신에게 다가와 감정의 파문을 일으키는가 하면 익숙한 세계에 구멍을 내고 파열음을 만들어냈다. 자신의 일상에서 매번 접하는 ‘아무것도 아닌’ 풍경들이 어느 날 낯설고 기이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이해하기 힘든 그러나 분명 자신의 내부에서 감지하는, 더구나 욕망하는 힘에 의해 그 대상을 다시 주의 깊게 들여다보고 이를 그리는가 하면 사진촬영을 했다. 그는 바로 지금 ‘내 앞에 있다‘는 그 현재라는 시제에 만난 것, 어떤 것이 이 순간 바로 내 앞에 있는 현전의 체험에서 문득 낯선 느낌을 받는다. 그들은 익숙하고 일상적인 것들이 어느 순간 낯설게 다가옴을 느낀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강한 힘을 발산한다. 낯설음이란 특정한 외부의 경험에 의해 생성된 내적인 심리상태를 지칭한다. 그들은 자신이 보고 있는 지금의 풍경, 대상을 의심한다. 자신들이 보고 있고 알고 있는 것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또한 눈에 보이는 것만이 세계는 아니다. 인간이 감지하는 이 세계 외에 어떤 것을 본다. 일상의 시간 속에서 느닷없이, 불현듯 나타나는 것들을 만난다. 현실세계에 비이성적이고 신화적인 세계가 순간 침입한 것이다. 순간 현실은 금이 가고 이른바 ‘이격(離隔)’된다. 작가들은 그림을 그려나가는 시간 동안 그는 알 수 없는 의문과 지속적으로 대면한다. 결국 그들이 그린 것, 재현한 것은 특정 대상의 외양이 아니라 그로부터 촉발된 자기 내부의 컴컴한 초상이다. 

세계는 주체에게는 늘 수수께끼다. 그러니까 카뮈식으로 말하면 부조리하다. 그것은 우리가 배운 언어와 문자의 틀을 유유히 빠져나간다. 지식은 날 것의 세계, 대상 앞에 한없이 무력하다. 외계는 자신의 내부로 들어와 매 순간 암전된다. 참여작가들이 보여주는 재현회화/사진은 보이는 외계의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러나 그것이 결국 대상의 모방으로 귀결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림으로, 사진으로 보여 지는 것은 화면 밖의 사물과  유사한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출발하여 더 멀리 간다. 조형적 재현이 유사를 내포할 수 있지만 그러나 닮았다는 것이 재현으로 귀착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재현에 의해 특정 대상의 재현이고 가시적 세계를 보여주는 것 같지만 실은 그 이면을, 세계의 내부를, 자신의 속을 뒤집어 보여준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외부세계를 관습이 아닌 그것 자체로 생생하게 접촉할 때 생기는 생소함을 그리고자 한다. 그러니까 의미가 소멸된 사물 자체를 바라보게 되는 순간, 순전히 보고 있는 그 자체를 그리는 것이다. 기능과 의미가 지워진 자리에는 기묘하고 낯선 이미지만 남게 된다. 

이런 생경한 이미지로부터 사물은 비로소 의미의 대상이 아닌 ‘의미의 주체’가 된다. 알려진 모든 선입견과 편견이 지워진 지점에서의 사물과의 우연한 만남, 맞닥뜨림, 그리고 이로부터 또 다른 가능한 세계와 대면하는 것이 그의 그림이다. 그것은 분명 여기, 이곳의 풍경이지만 동시에 이곳에 없는 풍경이기도 하다. 일상과 비일상 사이에 있는 묘한 풍경이다. 있으면서 부재한, ‘없지 않은’ 그런 풍경, 세계이다. 따라서 그것은 현실과 비현실, 시각과 비시각, 객관성과 주관성 사이에 위치한 모호한 풍경이 되었다. 모든 대상은 표면, 피부만을 보여주지만 작가는 그 이면을 생각해보는 존재다. 그림/사진이란 사물의 외피를 주어진 캔버스나 인화지의 표면 위로 밀착시키는 일이지만 동시에 보이지 않는 내부를, 어떤 이면을 암시하는 일이다. 그러니 그것은 너무 ‘깊은 표면’이 된다.  

본다는 행위는 헤아릴 수 없는, 형언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 기억 등을 동반한다. 작가는 자신의 신체가 받아들인 그 지각, 감각을 형상화하고자 그린다. ‘순간적인 느낌들을 재구성’하면서 ‘그것(it)‘을 그리고자 하는 것이다. 응시한다는 것은 모종의 욕망이기도 하다. 그 욕망은 사물의 이면을 보고자 하는 것이자 시선이 도달할 수 없는 곳까지 보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욕망은 충족되거나 실현되기 어렵다. 그러니 미술/예술은 그러한 불가능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일이다. 이를 통해 익숙하지만 알 수 없는 주변의 사물, 타자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방법을 배운다. 그것들이 뿜어내는 영기를, 놀라운 매혹을 낚아채고자 하는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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