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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석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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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립미술관 ‘갤러리GMA' 기획초대전

<김호석 - 묻다>



* 전 시 명 : 갤러리GMA 기획초대전 <김호석 - 묻다>

* 전시기간 : 2014. 5. 1 - 6. 8

 -작가와 만남 : 2014. 5. 2(금) 오후5시

* 전시장소 : 갤러리GM A(서울 종로구 사간동 소재) 

* 참여작가 : 김호석

* 주  최: 광주시립미술관

* 입 장 료 : 없음

* 관람가능 시간 및 휴관일 : 09:30 - 18:30, 휴관일 없음



❍ 광주시립미술관(관장 황영성)은 2014년 광주시립미술관 ‘갤러리GMA’  기획초대전으로 <김호석-묻다>를 2014. 5. 1 ~ 6. 8까지 개최한다. 

❍ 김호석 작가는 조선시대 전통 초상화 기법을 오랜 기간 연구하여 현대적으로 계승한, 국내 인물 초상화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작가이다. 뿐만 아니라 작가는 일찍부터 현장과 현실에 바탕을 둔 수묵운동에 참여하여 역사화, 농촌풍경화, 가족화, 군중화, 동물화에 이르기까지 자신만의 회화세계를 확장시켜 왔다. 

❍ 이번 전시에는 ‘법정스님 진영’ 2점을 포함하여 총 20여점의 작품이 출품된다. 작가는 법정스님의 진영 제작을 의뢰받은 후 초상화 제작에 앞서 언제나 그렇듯이, 스님이 남긴 수많은 글들을 읽고, 스님이 산책했던 길, 좋아했던 것을 직접 체험하며 스님에게 다가서기 위해 노력했다. 작가는 이러한 과정에 대해 “생명의 감동과 실감을 느끼는 것, 그것은 대상자의 본 모습과 전신(傳神)을 추구하기 위해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하였다.   


❍ 또한 김호석 작가는 “나에게 수묵은 간결 명쾌한 해방이었다. 속박이 아니라 자유였다. 작업을 하면서 선과 그림의 극단적 상충성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찾은 것이 초감각적 세계를 표현하는데 감각적 극단이었다. 형사를 떠나 마음속의 뜻을 그리기란 쉽지 않았다. 선사의 물음에 화의로 답하는 방식이 아닌 그림으로 선사께 묻고 싶었다.”라고 이번 전시를 준비하기까지의 심경을 밝혔다. 이번 전시 타이틀이 <김호석-묻다>인 이유이기도 하다.  

❍ 광주시립미술관 장경화 학예연구관은 “김호석에게 법정의 가르침의 교훈도 있겠지만 어떻게 단순하고 간결한 수묵만으로 본질을 그릴 수 있었는가를 생각해보자.”라고 물으면서, 전통을 존중하는 수묵인물화의 탁월한 기량과, 일상생활에서 보석처럼 반짝이는 순간순간들을 놓치지 않는 예리한 예술적 감각, 마지막으로 현실비판에 앞서 진솔한 생활의 모습을 그려내야 된다는 작가의 전제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 평했다. 

❍ 한편, 광주시립미술관은 2012년 10월 광주지역 작가들의 중앙미술무대 진출을 돕고자 국내 주요미술관 및 갤러리들이 밀집해 있는 종로구 사간동에 ‘갤러리GMA’를 개관, 운영 중에 있다. ‘갤러리GMA’는 광주지역 작가들을 중심으로 한 대관위주의 운영을 하고 있지만, 국내 유명 작가 및 지역작가들을 초대하는 년 2~3회의 기획전시를 개최하고 있다. 



법정 스님에게 바치는 무소유의 서정시

장경화 |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관

김호석은 80년대 이후 수묵화 특히 인물화에 탁월한 성과를 일구어 내면서 우리 미술계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특히 그의 인물화는 전통적인 기법을 되살려 인물의 품격과 생물적 생동감을 부여하여 삶의 본질에 다가가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어 왔다. 생활그림은 그러한 기법과 형식으로 소박한 소시민들의 사소한 일상적 삶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분석해 괄목할만한 성과를 일구어 내었다. 이러한 생활그림은 은유적으로 가족과 이웃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때로는 직설적으로 시대와 사회에 대한 비판과 정화를 담아내 왔다.

김호석의 예술적 역량은 어린 시절부터 탄탄하게 다져온 가풍의 전통위에 대학시절 현대적인 형식과 기법의 축척으로 전통과 현대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작가적 역량으로 그 빛을 발하고 있다. 전통을 소중히 여기는 그의 유.불.선의 정신세계는 오랜 시간동안 가치기준의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불교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은 ‘성철 대선사 진영’(1994, 종이에 수묵담채, 253×183㎝)과 인물화를 제작하게 되면서 부터이다. 그는 이 그림을 위해 꼬박 2개월을 성철스님이 머물던 해인사에 기거하면서 수도승과 같이 생활하며, 불교의 깊이를 익혀갔다. 이러한 그의 노력과 열정은 큰 성과를 거두어 당시 성철의 진영은 전통적 배면기법으로 그려진 초상화로 최고라는 평가를 얻기에 충분했다. 


 
법정에게 묻다

김호석은 3년 전, 법정스님의 진영 제작을 의뢰 받아 다시 법정스님에게 다가가 불교를 묻게 되었다. 1983년 청년화가 김호석은 법정스님과 해인사에서 첫 인연을 맺는다. 그는 당시 법정과의 적지 않은 시간을 통해 “긴장감과 자신감, 당당함과 의연함에 매료 되었습니다. 눈빛은 강열하고 냉철했지만 인간적인 맑음이 느껴지는 분이지요” 라고 회고하고 법정을 스케치하고 사진으로 남겨두었다. 이러한 기억과 자료가 이번 초상화제작에 큰 기초가 되었음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3년 전, 그는 법정과 눈을 맞추기 위해 ‘길상사’로 들어가 스님이 좋아했던 것, 자주 만났던 사람, 남긴 의복, 스님의 수많은 글, 산책하던 길, 발우(鉢盂)와 해우소(解憂所)를 반복해가면서 수행자로 스님에게 다시 다가서기를 하였다. 다가서면 설수록 법정과 심오한 불교의 정신세계, 그는 3년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을 법정에게 묻고 또 물어가는 반복 속에 선화를 담아내기 위해 자신에게 엄격한 수행을 철저하게 반복하며 뜻을 담는 방법을 익히고자 하였다. 그리고 전통의 한지위에 전통의 먹과 붓으로 바람의 흐름대로 자유로운 그림을 그리려 하였으나 이 또한 구속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는 법정스님에게 다시 묻는다. “무소유란 무엇인가요?”   

그는 법정의 초상을 2점 그렸다. 모두 법정의 여유로움과 세상을 관조하는 기품, 어느 한곳 빈틈이 없이 소박한 삶과 깊은 정신을 담아내고 있다. 필의 강함과 약함의 기교나 흔적 없이 무심으로 풀어진 초상은 검박한 수행자의 자세로 그렸다. 그리고 모두 전통 초상화의 배면기법을 사용하여 인물의 뒷면에 100여 번의 중첩으로 색을 입혀 자연스럽게 앞면에 배어나오게 하여 법정을 더욱 생동감 있게 되살려 놓았다. 이로 인해 법정의 피부는 더욱 고풍스런 생기와 함께 품격이 우러나와 마치 살아있는 듯한 예술적 감동의 성과를 보여준다.  

‘법정스님 진영 1’(2013년 작)은 법정의 맑음과 청정의 향기로움, 세속의 모든 고뇌를 품어주는 너그럽고 인자함을 인간의 욕망을 무심으로 품고 가는 시대의 큰 그릇의 삶과 정신을 담아 마치 생시의 모습의 긴장감이 감도는 감동을 주고 있다. ‘법정스님의 진영 2’(2014년 작)는 지난 70년대 세속의 부당함과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권력 앞에 시대의 희망으로 의연하고 당당했던 스님의 품격이 눈빛에서 읽혀진다. 작가는 이러한 인물의 특성을 더욱 강조시키기 위해 상대적으로 의복의 선을 단순화시켰다.  

김호석은 80년대와 90년대를 관통하면서 뜨거운 사회적 정치적 열기의 현장에서 체험했던 시대와 현실에 대한 고민과 통찰을 자신의 예술에 녹여 담아내었지 않았던가? 김호석은 법정의 곧고 예리하면서 강직한 칼끝의 긴장감이 도는 초상을 그리고 싶었을 것이다.



반복해서 묻다

“모든 사물에 부처가 존재해있으며, 나에게도 부처가 존재한다.” 작품 ‘덧’은 무심하고 소박한 그림이다. 그냥 법정이 벗어둔 옷으로 의미 없는 낡은 껍데기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단순한 껍데기로 보이질 않고, 그 낡은 옷을 통해 법정에게서 불교의 정신과 미학에 대해 논쟁 하고자 한다. 참선을 마치고 가볍게 일어선 뒤 자리에 남겨진 또 다른 법정을 만나고 있다.

작품 ‘불일암’은 무심결에 지나치는 하찮은 버려진 배추로 법정이 김장을 하고 한포기 남겨둔 것이다. 겉절이는 생명이 말라있지만 내면에는 온기가 살아있는, 이 또한 생명체이다. 이처럼 법정의 가르침은 내면에 눈을 돌리고 남과 또 다른 생명을 귀하게 여기라는 가르침을 주고 있다. 즉, 남의 허물을 탓하지 말고 내 탓으로 돌리는 자신을 성찰하는 배추가 곧 법정이다.
작품 ‘나무꾼 대선사’는 땔감을 구해 귀가하는 평범한 촌부로 거친 환경에서 자신의 삶에 충실한 모습이다. 얼굴 표정에는 힘이 들어가 있지만 고뇌가 없다. 어떠한 욕구도 없이 자유인으로 그냥 삶을 살아갈 뿐이다. 그는 그 할머니가 윤회의 자유를 찾은 선사로 보였을까? 그렇다면 그 할머니는 부처이다.

작품 ‘이제는 의자가 쉬자’는 법정이 서툴게 만들어서 늘 쉬고 있던 낡은 의자로 이제는 ‘불일암’를 찾는 많은 사람들이 이 의자에 앉아 법정을 만나고자 한다. 그는 이 의자를 뉘어 놓고 그림을 그렸다. 작품의 명제가 주듯 이제 법정이 떠난 뒤 의자를 쉬게 하고 싶은 마음에서 인가? 그는 쉬고 있는 무소유의 법정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작품 ‘불이’는 큰 화면에 머리만 남은 대구가 서로를 물고 뜯고 있는 그림으로 몸은 하나로 2가지의 표정이 흥미롭다. 바로 인간의 이중적 가식과 표정, 사악함과 온화함의 양면성은 서로를 물어뜯는 다는 경고를 법정이 하고 있다.  
 
작품 ‘거울 앞에서’는 우리는 매일 거울 앞에서 자신을 본다. 때로는 웃는 모습을, 때로는 화난 모습을, 때로는 우는 모습을... 이러한 자신을 보면서 허물을 보고 반성하면서 맑은 얼굴로 아름답게 살아가자는 법정의 가르침이 읽혀진다.



맺는 물음  

김호석에게 법정의 가르침의 교훈도 있겠지만 어떻게 단순하고 간결한 수묵만으로 본질을 그릴 수 있었는가?를 생각해보자. 우선 전통을 존중하는 수묵인물화의 탁월한 기량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보석처럼 반짝이는 순간순간들을 놓치지 않는 예술적 예리한 감각이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현실비판에 앞서 그는 진솔한 생활의 모습을 그려내야 된다는데 전제가 있었다. 그러하기에 진솔한 생활의 모습들이 쌓이고 또 쌓여서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있는 큰 힘이 될 수 있었다. 

이러한 바탕 위에 그가 화답이라도 하듯 예술적 성과가 높은 작품을 보여주는 것이다. 마치 그의 기량을 통해 예술은 보석처럼 빛을 발해주는 주옥같은 대목이다. 김호석은 오늘도 화실과 일상을 통해 법정을 만나 불교와 무소유의 정신을 묻고 또 물으면서 깨달아 갈 것이며, 필묵을 접을 때까지 반복적으로 되물어가며 그림을 그려갈 것이다. 





작가노트
                                                             김호석 | 수묵화가

몇 해 전, 법정스님의 진영 제작을 의뢰 받았다.
언제나 그렇듯 진영 제작에 앞서 먼저 스님께서 남긴 글들을 찾아 읽었다.
스님의 정제된 문학 작품은 나에게 문학이 아니라 법문이었고 화두였으며 미학이었다. 불교를 설파한 방편이었다.
그리고 법정 스님과 인연을 맺은 인간과 자연을 찾아보았다.
이들을 만나면서 불교의 핵심은 나 자신과 사회의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발고여락(拔苦與樂)이었다. 그러면서 근본토대가 자정기의(自淨其意)에 있음도 배우게 되었다.
 
나는 초상화 제작에 앞서 먼저 대상자의 면면들을 그림으로 그리는 과정을 경험한다.
생명의 감동과 실감을 느끼는 것, 그것은 대상자의 본 모습과 전신(傳神)을 추구하기 위해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법정 스님을 그리는 과정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것은 또 다른 대선사를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화가로서의 삶이 아닌 수행자의 검박함을 체득할 수 있었다. 

수묵화로 스님을 그리면서 다음과 같은 의문점이 들었다. 
선과 그림의 정신적 일치점은 어떤 것인가?
초월적인 무아의 세계는 무엇이며 가능할까?
대자연의 순수한 미감으로부터 초탈할 수 있을까?
화의와 선심이 하나일 수 있는가?

많은 의문이 있었지만 서로의 입장을 생각하며 하나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런 생각은 그림은 그림대로 진행하도록 하는데 힘과 용기를 주었다.
이번에 내놓는 그림들은 이런 번민과 좌절 그리고 해결할 수 없는 것은 그대로 놓아 둔 작업 과정의 편린들이다. 
나에게 수묵은 간결 명쾌한 해방이었다. 속박이 아니라 자유였다. 
작업을 하면서 선과 그림의 극단적 상충성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찾은 것이 초감각적 세계를 표현하는데 감각적 극단이었다.
형사를 떠나 마음속의 뜻을 그리기란 쉽지 않았다.
선사의 물음에 화의로 답하는 방식이 아닌 그림으로 선사께 묻고 싶었다. 






작가약력
김 호 석(金 鎬 䄷)

1981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졸업
1987년 홍익대학교 대학원 동양화과 졸업
2006년 동국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졸업(문학박사)
현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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