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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식과 표현·색·추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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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식의 <잔칫날> 연작/

표현ㆍ색ㆍ추상으로부터 기운생동을 향하여




서영희 |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이두식은 표현주의 색채 추상화가이다. 그가 운용하는 강렬한 색채와 즉흥적인 붓자국은 W. 칸딘스키나 S. 프란시스의 제스추엘 색면추상을 상기시키기도 하지만, 그의 작품에는 점, 선, 면으로의 환원이나 형식 분석으로 국한될 수 없는 면모들이 있다. 바로 한국 민족의 문화정신이 작품의 내용으로 작용하는 부분이다. 


이두식은 형식의 논리적 환원을 통해 추상에 도달하지 않았다. 극사실의 <생의 기원> 연작이 마무리될 즈음, 문득 삶의 결을 따라 자연을 본받고 마음의 근원을 체득하려는 의지가 발했다 그리고 그 묘리를 얻기 위해 표면적 형상 밖으로 초월하는 추상을 달성해냈다. 물론 그의 화력에서 추상이 이때가 처음은 아니다. 1960년대 말~1970년대 전반에 기하학적 구조와 앵포르멜의 붓작업이 결합된 작품을 했으나, 이 시기의 추상은 당대 화단의 조류가 반영된 예술적 정체성 모색의 결과로 분류된다. 


이두식의 <잔칫날> 연작은 그로부터 대략 15년의 간격을 두고 등장하며, <잔칫날>이라는 화제를 지금까지 20여 년 넘게 사용하고 있다. 그 만큼 <잔칫날>은 작가에게 있어서 대표성을 띠는 추상 연작이다. 여기에 나타난 거침없는 활력과 생명력의 맥동에 대해서 많은 평자들이 감탄하고 대중도 교감해마지 않는다. 그렇다면 화가가 한 시리즈에 유독 지속적으로 몰입하고 감상자와의 소통에도 성공하게 된 근거는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그 근본 이유를 요약한다면, 아마도 다음의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잔칫날’을 통해 작가 자신의 본성과 감성을 생동케 하려는 욕구가 지속됐고, 둘째, 이 욕구가 생명의 에너지로 작용하여 작품 역시 기운생동으로 활연관통했기 때문이며, 셋째, 서양식 색채추상 형식에 민족 고유의 정서와 미감을 내용으로 담아 누구든지 친밀하게 느낄 수 있는 동서양 쌍방향의 소통이 가능한 작품이 됐기 때문이다. 


1980~1990년대의 한국 화단의 흐름이 <잔칫날> 연작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길항작용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언급하기로 한다. 여하튼 동서 통합의 탈영토성 미학을 구축한 직관의 화가 이두식은 작품의 문맥을 위해 유기적 체계의 음양오행사상과 오방색의 상징을 택한다. 우주만물의 기운이 순환상생하는 관계를 상징한 오방색의 사용은, 당대의 선행작가들인 박생광이나 하인두의 작품에서 그랬던 것처럼, 기운생동과 전일적 통합의 미술로 나아가게 하는 전제가 된다. 특히 이두식의 경우, 기운생동에의 지향은 ‘잔치’라는 주제 선택에서부터 간파된다. 잔치 혹은 축제는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총체적으로 교류하며 즐기는 제祭의 행사이다. 우리 전통의 관혼상제나 무제巫祭의 경우, 오감통합의 상징인 오방색을 사용하여, 신과 인간, 하늘과 땅의 일치를 경험하게 하고 생명력과 활기를 끌어올렸다. 작가도 바로 이 점을 주목해서 <잔칫날> 연작에 적, 청, 황, 백, 흑의 화려한 오방색과 오간색을 적용하고, 제祭에서와 같은 희로애락을 생동케 한다. 이로 인한 감상자의 시각적 감동과 공감의 카타르시스는 곧 삶의 원동력인 기운의 증폭으로 이어진다고 생각된다. 


이두식은 자신의 회화가 갖는 독특한 활력의 근거를 오방색으로 설명하곤 했다. 그의 해석은 매우 일리가 있다. 음양오행설에 따르면 오방색은 만물의 생성과 변화를 암시하는 동시에 심지어 그 작용에 영향을 미치는 기氣로 간주된다. 물리학적으로도 색이 에너지(빛)이고, 시각적으로는 채색이 되어 기운을 북돋는 정서적 자극이 된다는 점을 상기하면, 색이 곧 기가 되어 힘과 에너지, 마음과 생명, 그리고 내적 감정의 발동인 흥興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납득할 수가 있다. 불교의 반야심경과 화엄경에서도 색을 공空이라 보는데, 이는 색이 빛이며 공간을 채우는 역동적 유기체라는 의미로, 우주의 기운 그 자체라는 뜻이다. 또한 데리다가 <플라톤의 약학>에서 로고스중심의 독단을 해체하기 위해 역으로 색(감성의 독)으로 이성 체제를 분해, 정화해야 한다고 한 논점을, 음양오행설에서 색의 흥과 기氣가 생명력을 상승시키는 한편 악을 멀리 쫓고 정화하는 힘이라고 보았던 관점과 비교해볼 만도 하다.


따라서 <잔칫날> 연작의 오방색은 다른 서양회화의 색처럼 시각적 형식 기호로 국한해서 설명될 수 없다. 그것은 인간의 정서, 심리, 정신을 아우르는 의미의 표상이며, 자연의 소멸과 생성 같은 우주 질서를 형성하는 에너지로도 해석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동안 색채가 형식주의에 의해 배타적인 기호체계 안에 묶여있었다면, 이두식의 색채-오방색은 시공간의 온갖 생기들을 포괄하는 전일주의의 가치관을 열어놓는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분석과 환원의 세계관을 포기한 현대과학이 유기적이고 통합적인 가치관을 정립하고 있는 사태와 일치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두식의 <잔칫날>연작은 적어도 세 가지 점에서 오늘날의 회화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있다. 첫째, 민족적 정서의 색으로 서양 색채추상의 한계를 반성하는 한편 감상자와의 소통을 확대하고, 둘째, 음양오행과 오방색의 동양미학으로 주체적 정체성을 앞세우면서도 역설적으로 탈중심의 차원과 국제적 보편성을 획득한 점, 셋째, 기운생동으로 현대사회 일상에 짓눌린 생명력의 하락을 저지하는 역앤트로피(negentropy) 효과를 창출해낸다는 점이다.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HOMA)에서 그의 정년을 기념하여 개최한 이번 초대전 『이두식과 표현ㆍ색ㆍ추상』은 <잔칫날> 연작 중 가장 최근 작업된 대작들로 구성됐다는 점 외에 위의 세 가지 시사점들을 확인할 수 있어서 의미 있는 전시회로 주목된다. 앞으로도 작가의 미적 영감이 부단히 펼쳐지고, 기운생동의 표현, 색, 추상이 유기적 소통과 전일적 통합의 차원에서 늘 새롭게 전개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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