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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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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전시

  • 전시분류

    단체

  • 전시기간

    2011-02-09 ~ 2011-02-27

  • 참여작가

    가브리엘 브라운(Gabriel Brown), 구헌주(Heonjoo Koo), 서평주(Pyoungjoo Seo), 차지량(Ji-ryang Cha),강정은(NOVO)

  • 전시 장소

    갤러리175

  • 문의처

    02.720.9282

  • 홈페이지

    http://blog.knua.ac.kr/gallery175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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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점·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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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전시개요


1. 전시명: <가짜전시>

2. 장소: Gallery175

3. 주최: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연구소

4. 기간: 2011년 2월 9일 수요일-2월 27일 일요일/12:00~18:00.

5. 오프닝: 2011년 2월9일 수요일 6:00pm 

6. 참여작가: 강정은(NOVO), 가브리엘 브라운(Gabriel Brown), 구헌주(Heonjoo Koo),            

            차지량(Ji-ryang Cha), 서평주(Pyoungjoo Seo)

7. 전시 기획: 김아영, 성아리, 임영신

8. 입장료: 무료


II. 전시서문


가짜전시


<가짜전시>는 1985년 정부의 탄압으로 유발된 <힘전>사태를 당시 기획자 및 작가로써 참여했던 이들을 재조명한 2010년 조형연구소 기획전<지천명>전에 이어 현시점의 20~30대 작가들의 개인적이고 파편적이며 복합적인 요소를 띤 또 다른 확장된 형태의 저항을 보여주고자 한다. <힘전> 당시에는 노골적인 탄압으로 작가들의 발언 자체가 묵살되던 시기였지만 지금의 상황은 표면으로는 변화한 사회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표면에 보이는 것처럼 정말 달라진 상황인 것인가? 오히려 교묘하게 포장되어서, 그 이면에 감춰진 억압은 찾고자 하지 않으면 드러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지금의 평화로운 풍경 이면을 들여다보면 25년 전의 그 시점과는 많이 다르지 않다. 여전히 사회 곳곳에는 부패와 부정, 부조리와 억압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끊임없이 발언하고자 하는 우리의 욕구는 바로 그 점에 대한 반증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짜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힘전>의 선배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회를 향해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이들의 움직임은 개별적이고 예리하며 냉철한 관찰을 바탕으로 한 비판적 성격을 띤다. 그리고 이들의 행위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지지를 보낸다. 이러한 현상은 하나의 세력을 형성하며 이는 비주류(subculture) 현상으로 드러난다. 비주류 현상들은 주류문화에 대한 하나의 견제 기능을 수행한다. 즉, 문화의 흐름을 주도하는 주류문화는 아니지만 쉽게 간과할 수 없는 존재감을 지닌다. 이러한 의식에서 출발한 <가짜전시>는 진짜 전시로 여겨지는 것들에 대한 반향이다. 진짜라고 지칭되는 것들을 진짜로서 신뢰하지 않고, 차라리 가짜라고 발언함으로써 진짜를 역설한다. <가짜전시>가 <지천명>에 비하면 소극적인 발언을 한다는 점에서 <지천명>은 상대적인 진짜전시이다. 하지만 <가짜 전시>의 핵심이 전시라고 볼 때, 전시는 진짜라는 점에서는 가짜가 아니다. 본 전시는 가짜이면서 진짜이고 진짜이면서 가짜인 아이러니를 바탕에 깔고 있다.

  

   억압은 어떻게 존재하며 억압의 실체는 무엇인가? 이에 대해 사회와 집단 그리고 개인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현대사회에서 기성세대 혹은 주류 문화를 향한 젊은 세대의 끈질긴 저항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은 개인의 저항이 쉽게 좌초되어 무기력해질 수 있음을 인식하면서도 멈추지 않고 계속 시도한다는 점이다. 이 점에 주목한 <가짜전시>에서는 예술적 행위를 통해 주류사회와 기성세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끊임없이 발언하고 있는 다섯 명의 작가들을 모았다. 서로 다른 관심사들이 달성하고자 하는 바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주류 문화를 한번 더 의심해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거나 혹은 새로운 문화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들은 하위문화가 다루는 그래피티, 꼴라주, 타투, 시위 퍼포먼스, 인터넷 기반 커뮤니티 활동 등을 활용해 지속적이고 산발적으로 자신을 둘러싼 지정학적 위치를 자각하게 하고 비판할 수 있게 한다. 이들의 작업은 개인의 현상을 단순히 드러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내보임으로써 공감하는 이들을 끌어 모아 하나의 문화적 흐름을 형성한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더불어 전 세계에 확산되고 있는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 등은 파편적이면서도 동시에 대중에게 파급효과를 가져오는 발언의 새 시대를 열었다. 작가들은 이 새로운 미디어 환경을 기존 표현 방식과 접목시켜 매우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그들은 과거에 비해 기술상의 제약이 줄어든 상황에서, 새로운 미디어를 활용해 자신을 둘러싼 정치에 일시적인 형태로 혹은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관여한다. 또한 이들은 예술의 주변부에 발을 딛고 있거나, 중심에 진입하지 못하고 주변이 될 수밖에 없는 주제를 다루거나 혹은 주류에 편입되기를 자발적으로 거부한다.

         <지천명>전의 작업 중, 박불똥이 신문에 실린 이명박 대통령의 이미지를 스테(이 생략)플러로 찍은 후 촬영해서 확대 인화한 <호치키스>라는 작업이 있다. 이와 유사하게 서평주는 신문에 실린 정재계인사들의 이미지를 이용한 패러디 작업을 선보인다. 그의 작업은 본 전시의 모태가 되는 <지천명>전과 대구를 이루면서 다양한 상관관계를 밝혀볼 수 있는 유의미한 작업이다. 박불똥의 강력한 선언과는 달리 서평주는 요즘 세대의 감각적인 말하기 방식을 택하지만 둘의 작업은 모두 자신을 둘러싼 정치에 대한 발언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서평주는 회화라는 전통적인 매체를 신문지에 인쇄된 이미지 위에 사용하지만 전달하는 메시지는 인터넷 상의 가벼운 패러디의 유희와 유사하다.

또 젊은 세대들은 우리를 둘러싼 억압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정치적인 것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서평주와 접점을 갖는 구헌주의 작업은 미술관뿐만 아니라 제도의 바깥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특징을 갖는다. 구헌주는 제도 바깥에 존재하면서 미술관에 그대로 수용될 수 없는 불법적인 그래피티를 그의 발언 수단으로 삼는다. 그래피티는 대중적 미학과 사회에의 저항이라는 두 가지 코드에 맞닿아 있는데 그는 이를 이용하여 미술 전시장을 유희하면서 미술계의 관습적 태도에도 제동을 걸고자 한다. 또 당대의 시의성 있는 정치적 이슈와 심각하지만 쉽게 잊혀져버리는 사건들을 지속적으로 거리에 기록한다. 작업은 외부에 허가 없이 노출되어 항시 제거당할 위험에 놓여 있지만 그것이 대중적인 공간에 노출되어 있는 동안 불특정 다수의 대중들은 그 이미지에 상당한 영향을 받게 된다. 우리는 그의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이해하고 지지한다. 


        가브리엘 브라운(Gabriel Brown)의 경우는 또 다른 생각의 단초를 제공한다. ‘어이없는 구걸의 표어’를 들고 거리에 서 있는 우스꽝스러운 퍼포먼스는 보는 이들에게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한다. 어느 누구도 자신을 대표해 달라고 작가에게 부탁하지 않았지만, 자발적으로 시작한 7주간의 구걸 행위는 거대한 움직임에서 배제된 사람들을 대표한다. 그의 퍼포먼스는 그저 장난으로 치부되기도 하지만 자본주의가 그려놓은 경계선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결국 소외되어 버린 이들을 일깨운다.

   

차지량은 인터넷에 공지를 띄워 사람들을 자유롭게 모은다. 그는 거대 정치의 바깥에서 우리 세대에 대한 이야기의 장을 마련한다. 공지에 의해 모인 젊은 세대들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우리세대가 갖는 구조상의 문제점을 타결할 방안을 모색해보기도 한다. 젊은 세대들이 기존의 장르 안에 속한다기보다 탈 장르적인 자유로움을 갖는 점, 다양한 매체, 새로운 방식의 어법, 우리세대만의 감성을 공유한다는 점은 본 전시의 내용을 풍부하고 보다 다층적인 구조를 구성하게 한다

차지량이 불특정 다수에게 공지문을 띄워 자유롭게 방향을 유도한다면 NOVO(강정은)는 좀 더 적극적으로 자신이 설정한 방향으로 사람들을 모은다. 그는 타투의 역사를 보여주면서 '현시점에서 타투가 우리 사회에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가'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타투에 대한 문화적 현상을 함께 고민하며 개선하고자 한다. 본 전시에 소개된 그의 작품은 타투를 그저 음성적인 어떤 것이라고 치부해버리는 선입견에 맞서, 그 부정적인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한다

이번 전시는 본 전시의 작가들과 다른 작가들, 관객들과 함께 젊은 세대의 고민과 그들의 사회적 현실에 대해 발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전시의 작업들은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통일성을 결여하고 있지만, 이것은 동시에 그들 작업의 특징이면서, 동시대 젊은 세대들이 다양성을 이해하는 또 다른 방식이다. 미술이라는 카테고리, 전시라는 제도, 기성세대가 내린 어떤 정의에도 부합하지 않는 이들의 행보가 우리 사회가 갖는 억압과 부조리에 멈추지 않는 저항과 비판의식으로 계속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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