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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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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제목 : 이민경 개인전 '풀지 않는 매듭 (Untied Knots)'

전시작가명 : 이민경 (Lee, Min Kyung/李珉暻 평면회화)

전시기간 : 2012.09.05~2012.09.14

초대일시 : 2012.09.05 수요일 오후 5시

후원/협찬 : 이탈리코 

입장료 : 없음



매여 있음의 고통과 쾌락


이선영(미술평론가)

 캔버스 위에 그려지거나 붙인 것이 아닌, 캔버스와 하나가 되어 예쁘게 묶인 이민경의 리본은 단순한 형태지만, 삶과 아름다움에 관한 중요한 진실을 담고 있다. ‘풀지 않는 매듭’전의 주제는 달갑게만 다가오지는 않는 구속과 속박이 놓여있는 다양한 맥락을 캔버스를 재단하는 독특한 기법을 통해 표현한다. 이미지를 만드는 선은 그리기가 아닌 바느질을 통해 만들어진 가느다란 홈이며, 작품 속에 이런저런 방식으로 잡혀있는 주름은 환영이 아닌 실제이다. 주름은 만져지며 조명에 따라 움직이는 그림자를 낳는다. 캔버스와 이미지는 그 이원성을 해체하고 거칠거나 매끄러운 하나의 면으로 이루어진다. 이 복합적인 하나의 면이 추후에 틀 지워진다. 캔버스 천 뿐 아니라, 린넨, 한복 천, 퀼트 천, 프린트 천, 디지털로 프린트하여 만든 천도 사용한다. 리본은 거칠게 시접과 실밥이 드러난 뒷면이 작품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요즘에는 눈속임처럼 무늬를 살짝 그려 넣기도 한다. 

재단된 것과 그린 것이 혼동되는 작품에서 실재와 환영의 관계는 더 복잡하게 펼쳐진다. 잎사귀 무늬가 재단된 작품 [fake]에서 아래로 늘어 뜨려진 끈과 달리, 위의 끈은 유화 물감으로 그려져 있다. 하나의 끈은 중력의 힘에 지배되고 다른 하나의 끈은 그림의 규칙에 의해 배치된다. 끈은 작품 [string]처럼 서로 다른 캔버스 안에 재단된 끈 뭉치 이미지들을 3차원 공간에서 연결해주기도 한다. 캔버스 천에 이미지를 재단한 후 박음질하여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은 오차 없이 진행되어야 하는 정밀한 과정이다. 여러 조각들을 연결해 이미지를 만드는 공정에서, 펼쳐 당기면 평면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2차원에 그려진 3차원적 환영으로서의 그림의 방식은 물리적 구성에 의해 해결되어야 한다. 이민경의 작품은 환영이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고도의 인공적인 장치에 의한 결과임을 알려준다. 

이미지와 바탕은 조각 잇기를 통해 하나의 계열에 속해있다. 이미지는 좀 더 조밀하고, 바탕은 좀 더 넓은 조각일 뿐이다. 형태와 바탕은 서로 밀고 당겨진다. 이미지를 둘러싼 공백은 단순히 배경이 아니라, 형태만큼이나 사건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이민경은 그림의 순수성을 확보하기 위해 텅 빈 캔버스에 가까운 평면으로 진화해온 모더니즘적 과정을 포함하면서도 환영을 다시금 도입한다. 작품에 매듭과 구속에 대한 내용을 많이 담아온 이민경은 실타래나 끈처럼 묶을 수 있는 소재를 통해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안주하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다. 아름다운 구속이라고 표현될 수 있는 이러한 이중성은 속옷이나 신발 같은 물신적 소재에의 집중에서 더욱 분명하다. 그것들은 이상적인 형태를 만들기 위해, 그대로 두면 이리저리 퍼져나가는 자연적 형태를 가리고 조이고 변형시키는 구속 장치들이다. [속 밖] 시리즈는 붙잡을 수 없고 채워지지 않는 욕망은 구획된 형태 안에 담으려 한다. 

욕망은 바느질로 만들어진 가느다란 홈과 주름에 고이고 그것을 타고 흘러간다. 작가는 정밀한 조정들을 통해 밑도 끝도 없는 욕망이 흐르는 방향과 순서를 정해준다. 포장에서 시작하여 포장으로 끝나는 과정들을 실재를 무화시킨다. 실재가 더욱 장황하고 번거롭게 느껴지는 시뮬레이션의 시대에 겉포장은 또 다른 실재로 다가온다. 모든 것이 표면으로 기어오르는 현대사회에서 실제와 끈 떨어진 기표들로부터 자유를 느끼는 부류는 더욱 늘어간다. 작품 기표들은 성적인 물신과 밀접하다. 여기에서 기표는 다른 기표와 줄줄이 연결되어 있다. 프로이트가 인간 무의식이 은유와 환유로 이루어져 있다고 밝혀낸 이래, 욕망의 환유적 대상, 사랑의 은유적 대상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신발이나 속옷, 그리고 그것과 연결된 끄나풀 같은 것들은 부분적인 대상이다. 그리고 결여와 욕망의 대상이다. 

이 부분적 대상들은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사랑의 역사]에서 말하듯이, 주체의 소재이고 안감이지만 의식의 주체라고 간주되는 주체는 아니다. 이민경의 작품에서 알맹이 없는 포장들, 또는 아예 기표 자체와 하나가 된 기의는 에로스가 본질적으로 인간에게 결여된 욕망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사랑하는 것이다. 전체가 아닌 부분들이 욕망되고, 전체와의 유기적 질서를 상실한 부분들의 연결은 끝없는 탐닉의 대상이 된다. 전체는 한정되어 있지만 물신의 항목은 끝이 있을 수 없다. 그것이 물신의 매력이고 동시에 질곡이다. 소유할 수 없는 전체로부터 떨어져 나온 부분적 대상들은 자극의 강도를 집중시킨다. 몸을 과도하게 포장하고 묶는 구속 장치는 소수자의 도착적 쾌락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아름다움과 잔혹함은 동전의 양면이다. 미는 늘 상 규격과의 관계였다. 이민경의 작품에서 틈과 주름으로 이루어진 여타의 다른 재단된 이미지들은 장식에 의해 변형된 부재하는 몸을 암시한다. 이 포장들은 살아있는 몸을 가리면서 동시에 가리킨다. 

욕망의 흐름을 통제하는 구속 장치들은 불확실한 욕망에 경계를 정하고 그 경계를 끝없이 넘나들면서 쾌락을 극대화한다. 구속 장치는 육체 뿐 아니라 심리적 과정에도 작동한다. 가령 사랑은 예속이다. 롤랑 바르트는 [사랑의 단상]에서 예속을,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의 대상에 종속된, 즉 사랑하는 사람의 조건 자체라고 말한다. 바르트에 의하면 사랑하는 이와의 완전한 결합에의 꿈, 그것은 분리되지 않는 휴식이자, 혹은 소유권의 충족이다. 그러나 종국에는 하나로 묶여진 서로의 반쪽이라는 총체나 전체라는 상이 사라지고, 부분적 대상들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하나에의 꿈은 이전시대의 신화적 종교적 가설만큼이나 불가능해 보인다. 우리의 마음과 몸에, 이민경의 용어로 ‘속 밖’에 유령처럼 떠도는 물신들은 사랑하는 이를 전유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된 관계의 어려움을 증거 한다. 이민경의 작품은 인생 또한 비끌어 맬 수 없는 것을 끝없이 묶고 푸는 과정임을 알려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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