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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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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적이지 않은

  • 전시분류

    단체

  • 전시기간

    2010-10-20 ~ 2010-11-03

  • 참여작가

    김은지, 김준명, 류혜경, 박지원 ,김소나

  • 전시 장소

    갤러리175

  • 유/무료

    무료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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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시뷰어

I. 전시개요

1. 전시명 : <00적이지 않은>

2. 장소 : Gallery175, 서울시 종로구 안국동 175-87 안국빌딩 지하1층

3. 기간 : 2010년 10월 20일(수) ~ 2010년 11월 3일(수)

4. 오프닝 : 2010년 10월 20일 수요일 오후 6:00 

5. 참여 작가: 김소나, 김은지, 김준명, 류혜경, 박지원

6. 입장료: 무료

7. 관람가능시간 및 휴관일 

  매주 화요일~일요일 12:00~18:00/매주 월요일 휴관




II. <공공적이지 않은> 전시서문


‘00적이지 않은’이라는 전시 제목을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 ‘0’을 숫자로 읽으면 ‘영영적이지 않은’ 혹은 ‘공공적이지 않은’으로 읽을 수 있다. ‘공공(公共, 空空)’은 여러 뜻을 가진다. 그 자체로 ‘대상이 없다’는 뜻(空空)이 아니라고 이해할 수도 있고 사회 구성원을 아우르는 공공(空空)에 ‘적(的)’이라는 접미사를 붙여 많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아울러 ‘어떠한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적(的)’이라는 접미사는 전시 제목을 보다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게 한다. 예를 들어 어떤 대상을 ‘예술적’이라고 할 때, 그 대상은 예술과 비슷하지만 결국 예술 자체는 아니다. ‘적’이라는 접미사는 대상을 수식하지만 수식어와 비슷하되 ‘적’ 앞에 붙는 명사 자체는 아니다. 제목 자체가 매우 모호하다. 그리고 그렇게 모호한 만큼 많은 해석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어떻게 해석하든 역시나 해석은 관람자의 몫이다. 

     최초에 다섯 명의 작가들은 Un-public Icon 이라는 키워드로 만나 전시를 기획했다. 하지만 다섯 작가의 작업을 두루 관통하는 공통점은 없었다고 솔직히 이야기 한다. 미술계를 떠도는 공공을 위한 거대 담론에서 벗어나 그들 자신이 고민하는 것 자체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다. 사회라는 곳에서 예술가로서의 역할을 하기 이전에 그들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는 것, 그들 자신이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 그것이 다섯 작가의 공통점이다. 예술가의 역할이 무엇인지 단언하기는 힘들지만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은 현상에 대해 고민하고 시각화시키는 것이 예술가 역할 중 일부라면, 이들은 이미 그 역할을 충실히 그리고 솔직하게 이행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스스로 ‘공공적이지는 않다’고 이야기하면서 반대로 공공/세상에 대한 가능성을 더욱 활짝 열어두고 있다.


공공적이지 않은 질문

‘도자(陶瓷)’ 작업을 이어온 김준명은 전통과 전통적 미감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찍어낸’ 도자기에 담아낸다. 도예와 순수미술 사이에서 자신의 위치를 고민하면서, 동시에 쓸모를 위해 제작되는 도자기의 기능과 형태, 제작 방식, 다시 말해 전체적인 사회 구조 속에서 모호하게 자리하는 도자와 그러한 도자를 이용하는 자신의 지점에 대한 고민을 드러낸다. 

     전통적으로 도자기는 흙을 물레에 얹어 손으로 빚는다. 그리고 빚어낸 도자기에 안료로 그림을 그리고 유약을 사용해 굽는다. 하지만 작가는 1000년을 넘게 이어온 이 제작 방식에 딴죽을 건다. 물론 도자 캐스팅이 상업적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지만 그는 순수예술의 테두리 안에서 전공공적이지 않은 질문

‘도자(陶瓷)’ 작업을 이어온 김준명은 전통과 전통적 미감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찍어낸’ 도자기에 담아낸다. 도예와 순수미술 사이에서 자신의 위치를 고민하면서, 동시에 쓸모를 위해 제작되는 도자기의 기능과 형태, 제작 방식, 다시 말해 전체적인 사회 구조 속에서 모호하게 자리하는 도자와 그러한 도자를 이용하는 자신의 지점에 대한 고민을 드러낸다. 

     기원(祈願)의 의미와 여러 상징적 의미를 지니는 전통적 도자기 그림과 달리 그가 보여주는 드로잉은 내용 자체도 모호하다. 장식 그림에 제작자나 사용자의 욕망이 전이 된다면 드로잉으로 장식 자체를 덜어내는 그의 작업은 사용과 감상을 분리하여 욕망을 덜어내는 것에 다름 아니다. 

     뭔가 부족한 듯 제작된 도자기에 반해 작업이 놓이는 나무 탁자는 평범한 탁자와는 사뭇 다르다. 사선으로 연결된 테이블 다리 구조는 나름의 조형성을 가지며 도자기에 비해 매우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그는 전형적인 도자기 모양의 놀랄 만큼 엉성하게 만들어진 작업을 역설적으로 제시하면서 1000년이 넘게 이어온, 지금도 유효한 도자를 대하는 사람들의 미감에 대해 질문한다. 도자라는 매력적인(작가왈) 매체를 이용해 작업을 해왔지만 앞으로 나아가기위해 원점으로 돌아와 예견된/의도된 실패를 통해 스스로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답은 여전히 모호하게 남아있다. 

     마찬가지로 도자를 이용해 작업하는 박지원은 자신의 작업이 스스로에 대한 치유의 방법이라고 말한다. 사람의 자세에서 말보다 더 많은 뉘앙스를 읽어 낼 수 있다고 말하는 작가는 어릴 적 기억과 자신의 성향을 흙으로 빚어 사람과 다른 동물을 섞어놓은 형태로 드러낸다. 그가 만드는 작업 이미지는 자신감이 없는 듯 웅크리고 있다. 뭔지 모르게 부자연스럽다. 더해서 성(性)도 종(種)도 모호한 이미지는 얼굴 표정도 없고 퍼즐처럼 조각나 있다. 치유적인 작업이라면 밝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겠지만, 작가는 스스로를 작업에 투사하고 무겁고 딱딱한 도자를 이용해 관객을 압도할만한 자신의 신체보다도 훨씬 큰 크기의 작업을 만든다. 매끈하고 유려하다고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도자라는 매체가 작가에게는 위압감을 주는 것이기에 도자로 작업을 할 때, 나아가 사람들 앞에 드러냈을 때의 안도와 쾌감이 권력과 소외의 양가적 상태를 계속해서 오가게 만든다. 

김소나의 작업은 자기 자신에게서 시작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고민의 과정이다. 박지원처럼 자기 치유의 수단으로 작업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상 속에서 자신이 보는 것과 보지 못하는 것, 분명히 존재하지만 시각적으로 인지하지 못하는 것, 즉 자신의 감각에 대한 질문에서부터 작업을 시작한다. 

     우리는 공간을 인지하지만 공간 속에서 구체적인 대상을 볼 뿐 공간 자체를 보지는 못한다. 그 공간이라는 것은 대상과 대상 사이에 존재하는 사이/틈 일 수도 있고, 나와 대상, 나와 다른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 혹은 관계 자체일 수도 있다. 작가는 이런 눈에 보이지 않은 ‘공간’을 주로 석고를 이용해 시각화 한다. 공간이 비어있는 어떤 것이라면 작가는 비어있는 것을 석고로 채우고 반대로 공간 속 구체적인 대상은 외연만 남기고 비워버린다. 일정한 형태의 주물을 만들기 위해 제작된 거푸집처럼 음각된 형태를 지니지만 작가의 작업은 공간의 입장에서 보면 음각(negative)이 아니라 양각(positive)이 된다. 그리고 만들어진 시각화된 공간, 즉 자신의 작업을 또다시 바라보고 그것과의 관계를 다시금 고민한다. 작가는 고민의 방식으로 드로잉과 회화를 이용하는데 만들어진 작업을 그리고, 지우고, 지워진 흔적을 또다시 보고, 변형하면서 고민을 이어간다. 

     이번 전시에 보여줄 작업들이 그런 고민의 결과물이다. 결과물이기는 하지만 답이 나오지 않는 아직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프로젝트의 일부인 것이다. 보고, 생각하고, 만들고, 보고, 생각하고, 그리는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스스로에게서 촉발된 문제를 해결하고 발전시켜나가는 작업은 여전히 끝/답을 예측하기 힘들다. 

     일상적으로 쉽게 볼 수 있는 담쟁이 잎사귀와 잎사귀를 뭉쳐 육면체를 제작한 류혜경의 작업은 작가의 말대로라면 ‘인류가 있기에 생겨난 자연에 대한 이야기’다. 오래된 건물을 덮고 있는 담쟁이는 고풍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이 담쟁이가 건물 자체에 뿌리를 내리고 계속해서 번식해 나가면 건물은 결국 파괴된다. 인간의 미감에 도움을 주지만 놀라운 생명력과 파괴력을 지닌 반면 약하게만 보이는 담쟁이는 시각적으로 일면 공포로 다가올 수 있다. 


그리고 류혜경의 만들어진 잎은 전시장을 뒤덮는다. 그리고 그 잎 중 일부는 네모나게 압축되어 건물을 둘러싸는 대신 쉽게 포장해서 어디로든 쉽게 보내질 수 있는 형태로 놓여있다. ‘식물을 물화된 대상으로 바라보는 인간의 욕망’을 응축된, 강하게 보이는 조형적 형태로 만들고 싶다고 작가는 이야기 한다. 

     ‘내’가 ‘나’이기에 자기중심적 사고를 할 수 밖에 없듯 인간은 자연 속에서 인간 중심적 사고를 할 수 밖에 없다. 작가는 그런 인간의 사고방식을 예술이라는 철저히 인공적인 수단으로 드러내 보인다. 인류가 사라진 이후에도 살아남을 담쟁이를 도자로 박제/보존하고 인간의 의해 어디든 보내질 수 있는 형태로 변형한다. 철저히 인간-중심-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질문하는 것이다. 

     작가도 정확한 답은 모른다. 인간 자체가 자연의 일부이기에 자정 작용에 의해 조절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자연과 인간을 따로 떼어 생각해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후자 경우는 인간과 자연을 이분법적으로 대하는 오만한 태도로 그런 태도가 지금의 환경 문제를 초래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작가는 자신/우리에게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위한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다만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류혜경과 마찬가지로 김은지 또한 인간과 자연의 관계, 나와 세상의 관계를 고민한다. 바닷가에 버려진 쓰레기들, 플라스틱, 유리, 그물 조각 등 인간이 만들어 버린 빛바랜 쓰레기를 바닷가 모래와 대비되어 아름답다고 느끼는 작가는 스스로의 미감이 도대체 어디에서 연유하는지 묻는다. ‘왜 내게는 이것들이 예쁘게 보이는 걸까?’ 그래서 작가는 바닷가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는다. 청소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계속해서 쓰레기를 수집한다. 그리고 그 쓰레기를 조합/조립해 자신의 인상 속에 남아있는 새 등 자연의 이미지로 재현한다. 그리고 제작/재현된 이미지는 류혜경과는 반대로 전시가 끝나면 수집했을 때와 같은 상태로 해체된다. 유리 혹은 합성수지로 만들어진 쓰레기는 그 스스로 수천 년을 썩지 않고 지속될 테지만 작가가 만든 이미지는 스스로를 부정하듯 사라진다.  

공공적이지 않은 그러나 공공을 향한

다섯 작가의 고민과 그에 따른 질문은 철저히 스스로에게 향해있다. 고민의 방식과 그것을 드러내는 방식은 모두 제각각이지만 근본적인 태도는 일맥상통한다. 모두 사회나 세상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 전시 제목을 <00적이지 않은>이라고 붙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작업이 지금은 공공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들의 시선은 이미 공공을 향해 있다. 스스로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것처럼 스스로에 대한 진지하고 끊임없는 탐구는 결국 세상으로 향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해서 그러한 고민의 흔적을 작업으로 드러내고 전시를 통해 보여주는 행위는 관객들에게 평소에 하지 못했던 고민의 실마리를 던져주는 것이기에 이미 공공성을 담지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고민 또한 이 시대, 여기를 살기에 가능한 것으로 결국은 사회, 즉 공공에서 기인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들은 스스로 공공적이지 않다고 이야기 한다. 아직 여전히 스스로에 대한 탐구가 많이 남았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유명한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스스로를 얼마만큼 제대로 알 수 있을까? 죽을 때까지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알려고 노력하는 태도가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가치가 아닐까? 그리고 그런 노력이 타인/세상을 향한 첫 걸음이 아닐까? 

     다섯 작가 모두 아직 어리고 젊다(글을 쓰는 나 또한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자신에게로 향한 진지한 탐구가 이들의 가능성을 더욱 크게 키워낼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 보다 -지금도 물론이지만- 앞으로의 작업을 응원하고 기대하며 지켜볼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글 서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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