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
가이드북 서문
보다 ― 바다와 씨앗 (하편)
(See ― Sea & Seed)
전시감독 김성호
(1편에서 계속)
II. 행사와 전시 구성: 씨앗들이 머무는 곳
《2015바다미술제》는 해운대해수욕장, 광안리해수욕장, 송도해수욕장을 거쳐 올해 새롭게 시작하는 다대포해수욕장에서의 특별한 공간성에 주목한다.
특별한 공간성이란 143,000㎡(길이 900m, 폭 100m)에 이르는 드넓은 모래사장 그리고 해안에서부터 300m의 바다까지도 1.5m 안팎인 얕은 수심을 지닌 바다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습지와 모래사장이 한데 어우러진 독특한 지형, 부산의 다른 해수욕장들과 달리 상권으로부터 이격된 천혜의 자연이라는 상황 역시 빠질 수 없다. 게다가 내년 완공을 목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인근의 지하철역 공사 현장의 어수선한 풍경과 같은 현재적 맥락까지 모두 아우른다. 여기에 덧붙여, 관객이 다대포해수욕장 중앙에서 바다를 보고 섰을 때, 앞에는 드넓은 남해가, 뒤에는 고층 아파트들이, 좌측에는 이전에 섬이었으나 현재는 육지로 연결된 몰운대가, 우측에는 남해와 낙동강이 서로 만나는 바닷물과 민물의 접점 공간이 있다. 이 모든 것은 전시 구성을 위한 공간 연구에 있어 흥미로운 지점이다.
전시는 감독으로부터 초대된 참여 작가들이 만드는 본전시와, 감독으로부터 초대된 한 기업, 피터 린 카이트(Peter Lynn Kites Ltd, 뉴질랜드)의 특별 출연작이 일주일 동안 만드는 특별전으로 구성된다. 본전시는 이러한 공간에서 펼쳐지는 하나의 스토리텔링을 따라 전개된다. 어디선가 씨앗들이 날아와 자리를 잡고 발아하여 식물로 자라는 일련의 ‘자연 성장’의 내러티브가 그것이다. 아래의 도표에서 보듯이 ‘1)산포하는 씨앗 → 2)발아하는 씨앗 → 3)자라는 씨앗 → 4)자라는 바다’는 이러한 ‘자연 성장’의 내러티브를 가시화한다.
〈표2〉 전시 구성과 해설
그러나 ‘자연 성장’은 ‘성장 뒤의 성장’을 의미하기보다 ‘성장 뒤의 소멸’이 뒤따르는 ‘자연의 순환적 운동’임을 천명한다. 밀물과 썰물의 지속적 운동이 만들어 내는 바닷가의 풍경은 이러한 순환적 운동이 실현되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산책로를 점유하는 ‘섹션 1. 산포하는 씨앗’은 유목주의 세계 그 자체이다. ‘섹션3 자라는 씨앗’은 또 어떠한가? 이 섹션은 해수변 위에 기념비적인 조각은 물론 지하철 공사가 한창인 어수선한 다대포의 풍광을 연장하는 공간을 구성하고 그곳에 실험적인 설치 위주의 작품들을 배치한다. 그것은 미려한 완성이기보다는 에너지가 충만한 미완성을 지향한다. 다른 섹션들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우리의 마지막 종착지 ‘섹션 4.자라는 바다’는 생성/소멸의 순환적 운동을 끊임없이 일렁이는 시공간 속에서 창출해 낸다. 이러한 차원에서 ‘섹션 4. 자라는 바다’는 현실적인 종착지이지만 이번 주제와 관련하여 이내 새로운 출발점으로 변환된다.
‘생성/소멸/생성’의 순환적 지속을 가시화하는 이번 공간 구성에서 특히 ‘섹션 2. 발아하는 씨앗_상상발굴프로젝트’는 다대포 지역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지금의 모습과 비교, 고찰하는 통시적(通時的) 모험을 선보인다. 1930년대 다대포 지역에서 발굴된 ‘다대포패총’으로부터 신석기 시대의 빗살무늬토기와 청동기의 무문토기 등 각종 유물이 발견되었던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이 지역의 시원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만든다. ‘섹션 2. 발아하는 씨앗-상상발굴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각기 다른 조형 언어로 다대포 지역의 역사적 사실(fact)을 추출하고 그것을 자신의 예술적 상상력으로 해석(interpretation)하여 허구(fiction)의 발굴프로젝트를 벌인다. 그런 면에서 이들의 작업은 사실과 허구가 만나는 팩션(faction)에 다름 아니라 할 것이다.
망각으로부터 과거의 기억을 길어 올리듯, 우리는 역사 속에 묻힌 기억의 맥을 찾아 땅을 파고 발굴프로젝트를 벌인다. 발굴프로젝트가 이루어지는 모래사장의 반지하 공간은 따라서 중력이 이끄는 ‘수직의 공간 아래’(┃)로 깊숙이 잠입해서 과거의 역사와 그것에 관한 우리의 기억을‘지금, 여기’의 ‘수평의 현실 위’( ― )로 끌어 올리는 곳이다. 또한 미디어파사드로서의 수직 공간(┃)과, 중력에 저항하면서 직립한 많은 수직적 조각들(┃)이 이루는 현실적 지평을 보라! 그 뿐인가? 우리가 보게 되는 몇 개의 ‘고원으로서의 수직의 공간’(┃)은 ‘지금, 여기’의 작가, 즉《바다미술제》를 낳은 부산 지역의 출신 작가에 대한 오마주를 헌사하는 곳이다.
이 모든 수직(┃)과 수평( ― )의 공간은 다대포해수욕장이라는 장소 안에서 그리고( & )라는 연결체를 통해 함께 어우러짐을 펼쳐 낸다. 즉 하나의 장소성 안에서 통시성과 공시성을 함께 드러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개의 언덕( ┃ & ― )은 이 시대의 ‘살아 있는 한 전설의 미술가’에 대한 경외를 보내는 곳이며, 몇 개의 언덕들( ┃ & ― )은 이 시대에 여전히 남아 있는 반상업적인 미술의 가능성과 그것의 희소적인 가치에 대해 갈채를 보내는 곳이다.
야외미술제의 특성에 부합하는 설치, 조각 뿐 아니라, 미디어아트, 퍼포먼스를 두루 포함하는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초대한 까닭은 이번 《2015바다미술제》를 단순한 환경조각제나 설치미술제로 자리매김하려는 시도를 처음부터 거부하려는 이유에서이다. 전시의 결과가 어떠하든,기획자의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야외에서의 미술제에 대한 일련의 조형적 실험을 시도한 것에 대한 자족(自足)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기획자로서 이번 《바다미술제》가 야외에서 펼쳐졌던 기존의 다른 전시들에 비해 공간 해석이나 전시 구성에 있어 훨씬 낫다고 우길 생각은 없다. 본전시, 특별전 구성의 형식이나 특별 강연, 축제 및 시민 참여 프로그램 등 행사 구성에 있어 타전시들과 특이점 역시 별반 없다고 할 수 있겠다. 다만 기획자로서는, 올해의 《바다미술제》가 그간의 정형화된 조각, 설치 위주의 틀에서 벗어나는 실험적인 연출 방식을 부단히 찾으려고 했던 노력들을, 관객들이 관심 있게 지켜봐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출전 /
김성호,「보다-바다와 씨앗(See- Sea & Seed)」, 가이드북 서문, (2015바다미술제, 2015. 9. 19-10. 18, 다대포해수욕장), 가이드북, 2015, pp.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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