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제36회 국제현대미술시장(FIAC)

하계훈

‘미술’과 ‘시장’이 결합된 ‘미술시장’이라는 용어는 미술을 인간의 감성과 영혼을 살찌게 하는 신성한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측이나, 시장경제의 원리에 충실하며 최고의 상품성을 찾아 적극적으로 이윤추구를 하는 측이나 모두 그리 썩 좋아하는 단어가 아니다. 그래서 일부 미술인들 사이에서는 작품의 시장성을 논의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경우도 있고 시장 원리를 좇아 활동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미술품 거래의 시장실패를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대부터 천재로서의 예술가를 바라보는 시각이 생겨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미술에 종사하는 일도 엄연히 사회적 노동의 한 부분이었고, 당연히 노동의 원리와 시장의 원리가 작용해왔었던 것을 미술의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다. 공개적으로 거론이 되건 아니건 간에 오늘날 미술은 문화상품이고, 따라서 그 유통에 있어서 시장의 매커니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어느 시대나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잠재 구매자에게 노출하는 일은 중요한 것이다.

10월 22일부터 25일까지 프랑스 파리 시내의 그랑팔레와 루브르 박물관의 사각정원(Cour Carre), 그리고 인접한 튈르리 정원에서는 36번째 국제현대미술시장(FIAC)이 열렸다. 원래 FIAC은 사용이 정지된 바스티유 역사에서 36년 전에 국제현대미술살롱(Salon international dart contemporain)이라는 명칭으로 시작하여 1977년 지금의 그랑팔레로 자리를 옮겼었다. 그런데 1993년 그랑팔레의 천정 유리가 떨어진 사건을 계기로 12년간의 폐쇄기간과 대대적인 보수공사가 진행되자 그 동안 FIAC은 파리 남부의 포트 드 베르사이유(Porte de Versailles) 전시장이나 세느강가의 케 브랑리 박물관 자리 등에서 개최되어 오다가 2006년에 다시 그랑팔레로 돌아왔다. FIAC은 파리 시내의 3군데를 행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본 전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 그랑팔레에는 모던 아트계열의 보수적 성향의 미술을 중심으로 한 시장이 서고, 루브르의 사각정원에는 올해 처음 참여하는 31개의 화랑들을 포함한 81개의 화랑을 통해 비교적 젊은 작가들의 실험적인 작품들이, 그리고 튈르리 정원의 야외 전시장에는 입체와 설치 위주의 작품 15점이 선보였다.

FIAC 운영위원장 마틴 베드노(Martin Bethenod)는 인사말에서 FIAC의 성격을 근대미술과 현대미술, 그리고 커팅에지 작품들의 균형 잡힌 파노라마라고 소개하였다. 이번에 참가하는 화랑들은 유럽을 비롯한 전세계 21개국 210개 화랑들로 구성되어 있다. 2008년도에 113개의 화랑이 참가한 것에 비하면 2배 가까운 외형적 확대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 가운데에는 75개의 프랑스 화랑들을 포함하여 대서양 양편의 역사가 깊은 굵직한 화랑들도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는가 하면 북유럽이나 동유럽에서 핀란드, 체코, 헝가리 등으로부터 63개의 화랑들이 처음 참가하는 것이어서 행사의 국제적 성격과 화랑들 사이에서의 세대간의 조화도 비교적 잘 이루어져 있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행사에 우리나라 화랑은 하나도 참여하지 않았지만 한국 출신의 작가 가운데 보따리 작가로 널리 알려진 김수자나 일본을 거점으로 활동해 온 이우환 등의 작품들이 외국 화랑들을 통해 소개되고 있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세계 미술시장의 규모 경쟁에서 미국과 영국에 이어 세 번째 자리를 지켜오던 프랑스가 마침내 중국에게 그 자리를 빼앗긴 충격이나, 프랑스가 세계무대에 자신 있게 내놓는 개념 가운데 하나인 미술을 더 이상 무기력한 상태에 방치할 수 없다는 사명감에서 이번 FIAC에 거는 프랑스의 기대는 작지 않았었다. ARCO를 통해 스페인이 유럽 미술의 중심으로 진입하려는 국가 차원의 시도가 있었고, 그 선봉에서 스페인 정부와 국왕이 나섰던 것처럼 이번 FIAC에서도 프랑스 정부가 수수방관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것은 FIAC 개막식 초청장의 주인이 사르코지 대통령으로부터 시작하여 문화성 장관, FIAC 운영위원장, 예술 감독 등으로 열거되어 있는 것으로도 짐작할 수 있으며, 올해 개막식 프리뷰 행사에도 장관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관심과 배려는 FIAC이 개최되는 시기에 파리 시내의 중요한 장소와 공공 미술관에서 FIAC을 떠올리는 행사가 연계되어 벌어진다는 것으로도 알 수 있었다.

세계 미술시장에서 바젤 아트페어가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그 다음으로 꼽히던 시카고 아트페어나 쾰른 아트 페어와 함께 침체의 길을 걷고 있는 FIAC은 2000년 들어와 새로 생긴 영국의 프리즈 아트페어와 지리적 인접성 때문에 종종 비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10월 16일자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켈리 크로우는 비슷한 시기에 개최되는 런던의 프리즈 아트페어와 FIAC을 비교하며 은근히 양국간의 경쟁심을 부추기기도 하였는데, 흥미롭게도 그가 예측하기로는 올해에는 상대적으로 실험적이고 젊은 성격을 특징으로 하며 상승 가도를 달려온 프리즈 아트 페어 보다는 오랜 역사와 검증이 이루어진 작품을 중심으로 행사를 개최하는 FIAC이 어려워진 세계 경제 사정과 맞물려 국제적인 컬렉터들의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투자를 더 많이 이끌어낼 것으로 보고 있어서 과연 그 예측이 적중할 지 궁금하다. 실제로 지난해부터의 미술작품 가격의 등락률을 조사한 Le Point이라는 잡지에서는 데미안 허스트, 리차드 프린스, 무라카미 타카하시, 앤디 워홀 등의 작품이 31-18% 정도 하락한데 비하여 전통적 시장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피카소는 4% 정도만 하락하고, 모네나 마티스 등의 작품들은 오히려 2-6% 정도 소폭 상승한 것으로 조사 결과를 발표하여 보수적인 컬렉터들에게 안정적인 투자를 강조한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였다. 작품의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프리즈 아트페어와 FIAC이 경쟁관계에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지만 어쨌든 두 행사가 인접한 곳에서 비슷한 시기에 개최됨으로써 비교의 대상이 되면서도 서로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FIAC 행사에서 특이한 점은 다른 아트페어와 달리 6개의 디자인 전문 갤러리가 함께 참여하여 그랑팔레 한 편에 별도로 공간을 점유하고 있었으며, 본 행사 이외에 세계적으로 이름난 10개의 갤러리들이 중심이 되어 라는 이름으로 그랑팔레에 근대 거장들의 작품전시 공간을 별도로 마련하였다는 점, 그리고 FIAC 행사의 공식 후원자인 라파이에트 백화점의 후원으로 루브르 사각정원 전시장에서는 여러 나라에서 참가한 14개의 갤러리들이 떠오르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을 마련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3명의 유명 큐레이터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에서 갤러리를 선정하면 라파이에트 측에서는 이들 갤러리들에게 상당한 금액을 지원하여 전시를 개최하게 하고 전시 중에 한 작가를 선정하여 라파이에트 상을 수여한다. 수상자의 작품은 라파이에트 측에 의해 구매되고 해당 작가는 이듬해에 유명한 장소에서 전시회를 갖도록 재정적인 후원이 이루어진다. 이 외에도 전시된 작품 가운데 심사를 거쳐 35000유로의 상금이 수여되고 퐁피두센터의 현대미술관에서 전시 기회가 주어지는 프리 마르셀 뒤샹(Prix Marcel Duchamp)이 있는데, 올해 이 상은 미셀 랭(Michel Rein) 갤러리를 통해 출품한 사단 아피프(Saadane Afif)에게 돌아갔다.
FIAC 행사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특이한 프로그램은 주최측이 기업의 협찬을 받아 FIAC 행사기간 동안 전세계에서 젊은 큐레이터들을 초청하여 FIAC과 프랑스의 현대미술을 직접 체험하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2006년부터 시작된 이 프로그램을 통해 현재까지 세계 곳곳에서 25명의 젊은 큐레이터들이 FIAC 을 참관할 기회를 가졌으며 올해에는 중국의 Zang Yaxuan을 비롯한 5명의 젊은 큐레이터들이 초청되었다.

올해 FIAC 개막식 날에는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 행사장 입구가 더욱 어수선하였다. 그러나 굳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전시장은 관람객과 취재진, 작가와 컬렉터들로 북적거렸다. 비록 세계 경제의 침체와 프랑스 현대미술의 독자적 행보로 인해 프랑스가 세계미술의 중심과 미술시장의 주도권을 놓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는 하지만, 이번 FIAC 행사를 통해서 현장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프랑스 정부의 적극적인 관심과 공공 미술관이나 기업의 협력, 그리고 예술의 도시라는, 오래 동안 유지해 온 파리의 브랜드 효과와 저력을 등에 업고 새로운 도약을 시도하는 FIAC이 전세계의 예술가들과 컬렉터들, 그리고 파리 시민들에게 전보다 많은 관심을 이끌어내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제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는지 기다려 보아야 할 것이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