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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진 / 빛과 색채로 기록한 추억과 삶의 자서전

하계훈

화가는 어떻게 태어나는가? 근대 이전의 화가들은 스승의 작업실에 들어가 청소에서부터 그림 도구 세척 등의 허드렛일을 해가면서 스승의 그림 솜씨를 조금씩 어깨너머로 배웠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14살 때 베로키오의 작업실에서 이렇게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고, 렘브란트는 10대 후반에 피터 라스트만의 화실에서 제자로서 6개월간 배운 경험이 바로크 미술의 대가로 성장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화가가 탄생하는 방식이 달라진 것은 근대에 들어와서 아카데미 형식의 미술교육 기관이 생김으로써 스승과 제자의 사적인 관계가 아카데미라는 공적인 기관의 틀 안에서 형성되게 되면서부터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상파 화가들이나 20세기 초의 마티스, 피카소와 같은 화가들도 모두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작가로서의 길을 걸어갔다.

이번에 첫 개인전을 여는 문창진은 앞에서 언급한 유럽의 미술사에서 보는 것처럼 본격적인 스승과 제자 관계를 형성하는 미술 학습을 거친 적은 없다.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1979년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직장생활 첫 해에 미술대학 학생으로부터 유화의 기초를 배운 적이 있는데 그것이 문창진으로서는 공식적인 미술 학습의 전부인 셈이다. 그 뒤로 공무원으로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일 년에 두 세 점정도 취미 수준에서 그림을 그렸는데, 이러한 작업이 좀 더 본격적 궤도로 올라서게 되는 계기는 1991년 제1회 공무원 서화전에 입선하면서부터였다.
문창진은 공무원 서화전에 입선한 일을 계기로 목우회 공모대전과 신미술대전, 신미술 창작전 등의 다양한 공모전에 출품하여 여러 차례 입상하였으며 점차 창작에 대한 자신감과 의욕을 키워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상록회의 고정멤버로서 상록미전에 참가하기도 하고 전국 공무원미술 동호인회가 결성된 1994년부터는 매년 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해오고 있다.

문창진처럼 아마추어 화가로서 출발하여 조금씩 작업의 강도를 높임으로써 본격적으로 개인전까지 열게 되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람 가운데에는 전직 국무총리 나 대기업 그룹 명예회장 등과 같은 사람들이 있으며, 국민화가 가운데 한 사람인 박수근도 변변한 미술교육을 받은 적이 없이 독학으로 국전의 심사위원까지 역임했던 작가였던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외국의 경우에는 서머셋 모옴의 소설 <달과 6 펜스>의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의 역할 모델이 되었던 폴 고갱, 세관 직원으로서 일요화가 모임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던 앙리 루소 등이 이러한 작가들의 대열에 놓일 수 있을 것이다.

문창진의 작품은 10호 내외의 소형 캔버스나 보드에 유화로 제작된 풍경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서양 미술사에서 풍경화는 원래 독립적인 장르라기보다는 역사화나 종교화의 배경으로 제작되어 왔으며 17세기경에 이르러서야 독립된 장르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특히 소형 풍경화는 18세기 이후 유럽의 상류층들이 그리스 로마 문화를 찾아 그랜드 투어를 떠나는 일이 유행하면서 여행의 추억을 담은 기념품의 성격으로 수집되곤 하였다.

문창진의 작품 역시 작가의 개인적 추억과 삶의 궤적을 기록한 시각적 자서전과 같은 것이다. 문창진이 작품 속에서 포착하는 풍경은 그의 집 주변의 풍경과 공무원으로서의 부임지 주변의 풍경, 그리고 휴가 기간 동안 가족들과의 여행에서 마주친 풍경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변의 자연에서 느끼는 인상과 대상과의 감정이입을 통해 표현되는 풍경의 모습은 관람객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작품의 형식면에서 문창진의 작품은 전통적인 유화의 기법을 착실하게 따르고 있다. 원래 유화 물감은 (최근에 아프가니스탄에서 5세기경부터 유화기법이 사용되었다는 연구가 발표되긴 했지만) 중세까지 유럽에서 많이 쓰이던 템페라화 기법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고안된 것이다. 달걀 노른자에 안료를 섞어 패널에 그림을 그리는 템페라 기법은 안료의 성질상 물감이 빠르게 마르므로 색면의 층층이 겹쳐지는 효과와 점진적인 명암의 표현이나 세부의 묘사에 한계가 있었다. 이에 비하여 유화는 린시드 기름이나 테레핀 기름과 안료를 섞어 화면에 바름으로써 기름이 천천히 마르는 동안 기존의 붓자국 위에 새로운 붓자국을 가하여 좀 더 부드럽고 미묘한 효과를 낼 수 있었다.

문창진의 작품의 대부분은 어두운 바탕색을 기초로 그 위에 밝은 색을 겹쳐 쌓아가는 방식으로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작가는 빛의 작용에 의해 화면에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을 대비시키고 그림자가 거의 없는 화면에서는 색채의 대비를 통해 화면에 생동감을 부여하는 형식으로 작업해왔다. <공원의 오후>(1995)나 <꽃잎지는 날2>(2000)와 같은 작품들은 인상파적인 화면을 보여주기도 하고 칸딘스키의 1906년 무렵의 작품이나 미국 화가 프렌더가스트의 작품을 연상시키는데 이러한 전통적인 붓놀림의 표현은 점차 사선의 움직임이 강조되는 문창진 특유의 스타일로 진화하게 된다.

주 제네바 대표부 참사관으로 근무하던 시절 문창진은 유럽의 많은 미술관들을 방문하였다. 서양 미술사 속의 걸작품들을 보며 창작의욕을 키운 문창진이 2000년에 제작한 <레만호에 지다>는 주제네바 대표부에 기증되었으며 이 그림을 본 스위스 현지화랑 주인으로부터 전시 제안을 받기도 하였다고 한다. <레만호에 지다>는 청색과 바이올릿을 주조로 제네바에 있는 레만호의 수면과 하늘의 구름이 바람에 빠르게 움직이는 듯한 인상을 담은 작품으로 야수파 시절의 드랭이나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연상시켜주기도 한다.

문창진의 풍경화가 갖는 매력은 안정된 구도와 색채의 조화, 그리고 빛의 작용에 의해 드러나는 대상의 모습을 인상적으로 포착하는 점이다. 이제 공직에서 물러나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 문창진이 이번에 개최하는 개인전은 본인 스스로가 인정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화가로서의 본격적인 첫발을 디디는 출발점이 되는 셈인 것이다. 동호인 수준의 화가로서의 활동을 넘어선 본격적인 화가들의 대열에 서기 위해서는 작품의 형식과 규격 등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자신의 고유한 스타일의 개발에도 본격적으로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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