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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대로, 들리는대로, 상상하는대로 전 / 청계창작스튜디오

하계훈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 재능 있는 화가와 조각가는 든든한 후원자의 지원을 받으며 작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생활에 필요한 경제적 문제나 그 밖의 여러 가지 사소한 일들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후원자가 주문하는 대로 작품을 제작하면 창작생활과 사생활의 물질적인 안정은 어느 정도 보장되는 셈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창작환경은 작가들에게 물질적 안정을 제공해주는 대신 창작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인 미켈란젤로의 경우 동시대의 전기 작가 바사리의 기록에 의하면 바티칸의 시스티나 예배당을 장식하는 과정에서 교황과의 일화가 소개되고 있는데, 그 내용이 의미하는 바가 이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어느 날 교황이 미켈란젤로가 작업하는 시스티나 예배당에 찾아와 조급한 마음에서 언제 작품이 완성되느냐고 물었고 미켈란젤로는 교황에게 “내가 만족할 때”가 작품이 완성되는 때라고 대답하였다. 당시로서 이러한 태도는 일반적인 후원자와 작가 사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미켈란젤로는 작가로서의 자존심과 예술적 신념을 주저하지 않고 표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대답에 기분이 상한 교황이 서둘러 작업을 마치지 않으면 그 위에서 너를 떨어트리겠다며 노여움을 보이자 미켈란젤로가 겁이 나서 서둘러 작업을 마치고 교황에게서 멀리 달아나버렸다고 한다.

이러한 에피소드에서 본 것처럼 예술가들에게는 예로부터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요소가 작품의 창작을 둘러싸고 그들을 괴롭혀 온 것같다. 창작을 위한 안정적인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든든한 후원자가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후원자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시시콜콜 간섭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는 태도가 대부분의 작가들에게서 나타나는 것이다. 군주국가 시대를 지나 민주적 시민사회가 도래한 오늘날에 작가들은 후원자들의 간섭에서 벗어나 자율성을 얻을 수는 있었지만 동시에 든든한 후원자를 잃게 되었던 것이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 후원자는 없을까?

오늘날의 작가들은 이러한 후원에 가장 근접하는 형태로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창작 스튜디오 입주를 희망한다. 안정된 작업공간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일정 기간 동안 작업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몇 해 전부터 서울시와 서울시설공단은 우수작가 양성과 시민들이 예술가들의 작업에 보다 가까이 다가서는 기회를 마련해주기 위해 청계천에 예술가 전용 창작 스튜디오를 조성하였다. 시에서는 금속작업을 포함한 시각예술 분야에서 뛰어난 작업을 해온 작가들을 선발해서 개인별로 작업실을 제공해줌으로써 그들의 창작활동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으며, 이 작업실들을 일반 시민들에게 개방해 작가들의 창작활동을 함께 느끼고 교감하며 전시회를 관람할 기회를 주고 있다.
4월 28일부터 청계3가에 위치한 청계창작스튜디오에서 열리고 있는 <보이는대로, 들리는대로, 상상하는대로>전은 이들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정기기획전으로 준비된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상상하는 대로>전은 청계천을 중심으로 작업하는 5인의 예술가 박광옥, 정승, 난나 최현주(이상 청계창작스튜디오), 김정표, 강은구(이상 수표금속문화공방) 작가들이 청계천이라는 공간과 그곳의 역사적 의미를 작가 개개인이 저마다의 시각으로 해석하고 실험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을 보여주는 전시다.

정기기획전과 함께 청계창작스튜디오 1층에서 상설로 선보이는 <청계아카이브관 :무쇠구름>전은 ‘2008 도시갤러리 예술+기술 : 특수상가 프로젝트’로 당선된 미술가그룹 플라잉시티의 작품 전시다. 플라잉시티의 작품은 청계천 주변의 금속공방 기능인들과 예술가들의 공동 작업을 통해 제작된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어서 청계창작 스튜디오의 설립 정신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성인들을 위한 전시뿐 아니라 다양한 재료를 활용한 아이들이 놀이체험 <연체동물놀이> 등 청계천의 이모저모를 다양하게 예술 작품화함으로써 폭넓은 연령층의 시민들의 흥미로운 관람을 유도하고 있다. 앞에서 미켈란젤로의 에피소드에서 본 것처럼 작가의 창작에 관한 자율성을 보장하면서도 그들에게 안정된 창작환경을 제공해주는 모범사례로서 청계창작스튜디오가 자리 잡기를 바라며 아울러 이번 전시와 같이 시민들과 작가들의 친밀한 교감을 통해 예술과 생활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현장으로서의 청계창작스튜디오가 보다 더 활성화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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