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하용주 / 현대사회의 총체적인 동상이몽(同床異夢)식의 공존

하계훈

하용주가 자신의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는 미술 뿐 아니라 다른 예술장르와 철학 등의 분야에서 오랫동안 다루어 왔던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의 문제와 인간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한국화를 전공한 하용주는 대학원을 졸업하는 2006년 첫 개인전에서 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개최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제목에서 보는 것처럼 그의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요 소재는 gasmask이며, 뒤에 붙은 0200이라는 숫자는 제품의 모델 번호 같기도 하고 용량이나 기능을 표시하는 것 같기도 한데, 작가의 말로는 이 숫자가 그러한 의미를 담고 있다기보다는 작가 개인에게 사적으로 의미 있는 숫자일 뿐이며 그 의미가 밝혀지지 않은 채로 그냥 남아있기를 바란다고 하며 관람자와의 소통에서 부분적으로 개인적인 영역을 호기심과 함께 유보하고 있다.

‘방독면’이라고 번역되는 gasmask는 원래 18세기 말 독일 지역에서 광부들의 막장 작업에 이용하기 위해 처음 발명되었고 그 기능이 점차 향상되어 1차 세계대전에서 화학전에 대비하여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전투력 보호 장비인데, 하용주는 방독면이 갖는 착용 주체의 보호라는 의미보다 위장과 차단, 그리고 방독면의 필터를 통한 공기의 여과에서 연상되는 생각이나 사상의 순환에 대한 필터링과 그로인한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소통의 왜곡과 단절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수단으로서 방독면을 작품의 소재로 사용하였다.

하용주의 작품 속에는 이처럼 방독면을 착용한 인물들이 정지된 자세를 취하기도 하지만 자전거를 타거나 수영을 하기도 하고 무용 동작을 취하거나 심지어 방독면을 쓴 상태에서 담배를 손에 들고 화면을 응시하는 등 여러 가지 표정과 동작으로 표현되는데 이러한 인물들을 통해 작가는 현대인의 보편적인 모습이자 작가 자신의 모습으로서 상호간의 소통의 단절과 왜곡을 겪고 있는 주체를 발견한다.
하용주가 초기에 도입한 인물들은 주제를 강조하기 위한 인물로서 대부분 방독면을 착용한 채 정지 상태로 서있거나 천천히 걷는 정도로 그렇게 큰 동작을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작품 속의 인물들은 자전거를 타거나 수영을 하는 것처럼 움직임과 방향성이 첨가되고 화면에서의 공간감과 인물 상호간의 관계와 반응이 표현되기도 한다. 다만 작가는 배경이나 인물의 입체감 처리에 있어서 여전히 사실주의적 묘사를 적극적으로 모색하지 않음으로써 작품의 형식보다 주제에 더 치중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게 해준다.

방독면을 쓴 인물들과 함께 하늘 가득히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폭탄을 그린 작품들도 작가의 주요 작품들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는데 하용주는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전쟁 같은 현실의 상황으로 인식하고 그러한 상황에서 안식과 평화를 얻으면서 오염과 파괴의 위협 요소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수단으로서 방독면을 생각하기도 한다.

방독면을 쓴다는 것은 외부의 위협요소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동일한 장비를 착용한 사람들 사이에 개성을 제거하고 획일화된 정체성을 부여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기도 한다. 또한 다른 측면에서는 착용자가 방독면에 가려진 자아의 개성을 은폐하고 획일적인 군중 속에 자신을 내던짐으로써 군중 속의 익명성이 주는 자유와 해방감을 얻을 수 있기도 하다.

방독면이라는 소재를 통한 인간 과 인간 사이의 소통과 자기정체성의 문제를 다루는 하용주가 선택한 조형 언어는 한국화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배채법이라는 기법으로 화면 뒤쪽에서 먹을 바르면 그 먹이 종이에 배어들면서 화면 앞쪽으로 스며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작가는 자신이 의도한 정확한 화면의 표현을 얻을 수는 없을지는 모르지만 배채법이 가져다주는 독특한 효과를 얻어낼 수 있으며 여기에 화면 앞면에서 채색이 가해지면 화면 속에는 교묘한 깊이감과 변화가 나타나게 되며 이러한 화면을 바탕으로 인물과 배경이 표현되게 된다.
이러한 표현 기법은 하용주의 작품에 독특한 차별성을 부여하는데 배채법에 의한 줄무늬와 비슷한 패턴의 표현은 화면 속에서 여성의 옷 무늬나 인물들의 수영 장면에서 물결에 겹쳐지는 파동의 표현, 혹은 구름 낀 허공을 배경으로 비 오듯이 쏟아지는 폭탄을 표현한 화면에서 좋은 효과를 발휘한다.

하용주의 최근작 가운데 하나로서 우리의 눈길을 끄는 작품은 2008년작 <거대한 위장>이다. 미술사에서 많은 작가들이 창작의 절정기나 결산의 시기에 그랬던 것처럼 하용주도 가로 폭이 7미터가 넘는 파노라마 대작으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야심적으로 펼쳐 보여주고 있는데, 그 화면 안에는 이제까지 작가가 인물표현에서 거의 빠짐없이 적용시켰던 방독면을 착용하지 않은 일군의 인물들이 나타나 있다. 하지만 그들은 방독면을 착용하지 않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얼굴의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실루엣 형태로 묘사되고 있음으로써 작품 제목이 의미하는 것처럼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사람이나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이나 자신의 얼굴 표정을 정확하게 드러내지 않는, 다시 말해서 상대방과의 소통을 위하여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로 한 공간에서 공존하는 총체적인 동상이몽(同床異夢)식의 공존을 표현하고 있다.

이제까지 반복해서 언급한 것처럼 예술과 철학의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는 하용주의 작품이 차별성을 갖는 것은 표현의 독특함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배채법이라는 한국화 표현의 기법과 먹선의 유연함을 통해 유화나 아크릴화에서 얻을 수 없는 화면효과를 보여주는 것도 하용주의 작품이 갖는 장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작가가 이러한 장점을 살려 한국화를 바탕으로 한 보편성을 지향하면서도 자신의 개성을 유지해나가는, 쉽지 않은 작업에 성공적으로 도전하기를 바란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