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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현 / 혼성의 개체를 통합하는 제유적(synecdochic) 시각

하계훈

한국에서 판화를 전공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본격적으로 회화를 공부한 김소현의 작품에서는 많은 판화작가들이 관심을 갖는 것처럼 텍스처에 대한 관심이 반영되어있다. 그녀가 사용하는 재료는 벽에 작업 흔적을 드러낼 때 자주 사용하는 석회 반죽과 비슷한 핸디코트라는 건축 인테리어 재료에 아크릴 물감을 혼합하여 만든 파스텔조의 안료로서, 이것은 프레스코 벽화의 느낌을 낼 수도 있고 부분적으로 균열을 만들거나 단층을 형성할 수도 있고 적당한 농도로 화면 위에서 흘러내리는 효과를 표현하는 등의 방법으로 작품 속에 다양한 조형언어를 담아내기에 적절한 재료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재료를 이용하여 김소현은 캔버스 위에서 평면작업을 통한 풍경의 암시와 색채의 조화나 대비를 이끌어냄으로써 독특한 공간감과 추상적 내러티브의 전개를 보여준다. 김소현은 캔버스에 안료를 적용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전통적인 회화에서 사용하는 붓에 의존하는 것보다는 실크스크린 판화에서 안료를 실크 원판에 적용하는 방법과 비슷하게 스퀴지(squeegee)나 두꺼운 종이와 같은 넓은 면을 화면에 수평으로 횡단시킴으로써 얻을 수 있는 표현효과를 활용한다. 이 경우 화면에 나타나는 효과는 일정부분 우연성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작가는 자신이 의도한 화면의 표현을 얻기 위하여 한 부분에 대하여 여러 차례 채색과 합성을 반복하기도 한다.

여러 차례 물감을 덧칠함으로써 물감층을 쌓아올린 듯한 화면 효과를 주는 파스텔조의 수평적 단층같은 색띠와 그 사이에 조금씩 드러나는 사실적 형상으로 자연 풍경이나 도시의 구조물이 암시된 김소현의 화면은 우리의 삶에 대한 은유로서 청색 혹은 녹색 계열의 파스텔 톤의 색채가 미묘한 변주를 지어냄으로써 극히 상징적이고 심리적이면서 세련된 화면을 만들어 낸다.
김소현이 작품을 통해 표현하는 주제는 현대인과 그들이 속한 현대사회에서의 삶의 모습이다. 그러나 다양한 문화예술 장르에서 중복해서 다루어지고 있는 현대사회 혹은 현대인의 삶이라는 것은 누구나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면서도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희귀하지 않은, 비교적 흔한 주제로 머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김소현으로서는 자신의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가 차별성을 갖기 위해서는 주제에 대한 보다 더 세밀한 천착과 독자적인 표현기법과 소재의 선택이 필요하였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김소현이 현대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은 은유적이고 상징적이다. 그녀의 작품 화면에서 현대의 삶은 다양한 개체의 집적에 의한 전체를 하나의 구조물과 같은 형상으로 표현한 화면으로 제시된다. 그녀의 작품에서 일종의 유닛(unit)처럼 겹겹이 쌓아올린 모습으로 등장하는 수평의 긴 색띠는 건축적 구조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조형적 요소이면서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사회의 한 가지 유형적인 삶을 제유법(synecdoche)으로 표현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도 있다.

현대사회를 바라보는 김소현의 시각은 일정부분 비판적이지만 직접 현장에 뛰어들기보다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관조하는 태도를 보이며 자신의 사유의 결과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데 있어서 그리 과격하지 않고 오히려 분석을 통한 치유를 도모하며 가치 긍정적이고 희망적이기도 하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현재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예술에 국한되지 않고 미래에 대한 희망과 가능성, 인간의 존엄한 가치를 살피는 사색의 작업으로 남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김소현은 우리의 현대사회와 그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행동 패턴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우리 주변에서 펼쳐지는 삶의 모습에서 마치 패션을 리드하는 고급 물건을 치밀하게 진열해놓은 부티크(boutique) 매장처럼, 현실과는 다른 허구와 허상이 문화적으로 포장된 모습을 발견한다. 이번에 출품된 boutique landscape 연작은 이와 같이 잘 꾸며 놓은 우리의 현대사회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해석하여 수평적인 색채의 띠와 부분적으로 형상성을 드러내는 먼 산이나 하늘, 바다와 같은 풍경으로 표현한, 구상과 비구상의 대비를 보여주는 중간지대의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작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러한 사회의 모습을 혼성(Hybrid)의 문화가 만들어낸 허구적인 풍경으로 파악하고 있다. 한국적 사회의 특성과 서양적 사회의 특성이 혼성되어 있는 우리 현대사회의 모습은 잡종강세적 생산성과 성장속도를 확보한 측면이 있으나 근본적으로 중시되어야 하는 도덕성이나 가치관이 결과지향적 사회의 동력에 밀려나 부차적으로 치부되면서 사회적 건강성을 위협하는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도 사실이다.

부분적 특성의 결합이 다양하고 유동적인 전체를 구성한다는 김소현의 기본적인 사고는 초기의 평면화된 구조적 형상에서 점차 2점 투시도법과 같은 입체적 구조로 전이되는데 전체적인 색조나 표현 기법에서는 크게 변화하는 것이 없으나 작가의 화면을 구성하는 수평적인 색띠가 상대적으로 짧아지거나 마치 부두에 가지런히 쌓아놓은 컨테이너와 같은 모습으로 변형되기도 한다.

작가는 이렇게 다양한 색색의 단위 입방체가 가지런히 쌓아 올려진 모습에서 마치 레고처럼 결합되는 우리사회의 다양성을 통한 상호작용과 함께 눈에 보이지 않는 관습과 인식의 통제가 작동하는 힘을 발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소현은 현대사회의 다양하면서도 불안정한 혼성문화가 하나로 모이는 현상 속에서도 중심으로의 집중화를 거부하고 개개의 유닛이 가진 다양성을 옹호하면서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흘러내리는 물감자국을 통해 개체가 가진 생명을 외화하고 결합하는 방식으로 우리가 사는 현대사회를 진단하고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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