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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문화예술교육 : 박물관/미술관을 통한 향유자 교육

하계훈

1.
서양에서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이 독자적인 미적 가치를 지닌 독립적 영역의 활동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르네상스 시대 무렵부터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사회의 진화 단계에 있어서 르네상스적 특징을 보이는 단계 즉,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토지를 기반으로 하는 봉건사회적 농경 중심의 경제에서 제조업과 상업을 중심으로 하는 교환경제의 활동이 비교적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사회의 구조에 있어서는 전통적 계급사회의 고착성이 와해되어 계급간의 위상교차가 일어나기 시작하며, 정신적으로는 불확실한 미신적 혹은 종교적 사고가 계산과 증명이 가능한 과학적 사고로 전환되는 시기에서부터 문화예술에 대한 보다 높은 가치부여와 미학적 접근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물론 서양에서 르네상스 이후의 이러한 변화에 따라 형성된 신흥 중산계층과 군주 사이의 제휴와 거기서 생겨난 동류의식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문화예술품 수집과 향유현상이 근대 이후의 우리나라에서도 그대로 그 패턴을 재현하여 보여주었다고 볼 수는 없지만 대략적으로 어느 사회에서나 위와 같은 사회의 변화현상을 반영하는 환경에서 사람들은 이전과 다르게 문화예술 활동을 미적가치 중심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고 생각된다.

서양의 경우 르네상스 이전의 문화예술 활동은 미학적이기보다는 주로 주술적, 종교적 의미를 강조하였고 대부분의 예술 활동이 실용성에 바탕을 두고 예술적 부가가치를 현재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하였다. 그리고 문화예술 창작의 결과물을 창작재료의 재화적 가치와 거의 동일시하는 태도도 중세 뿐 아니라 근대사회에 이르기까지도 종종 드러나고 있다. 예를 들어 15세기 중엽 오스만 투르크와 전쟁을 치루던 교황 칼릭스투스 3세(Calixtus III, 1378-1458)는 전쟁비용을 충당하기 위하여 선대 교황의 관을 녹여 사용하였는데, 이 관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저명한 조각가 기베르티가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이러한 행위는 금전적으로도 엄청난 손실이며 문화적 상식으로도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무모하기 짝이 없는 행위다. 이 뿐만 아니라 근대에 들어서서 나폴레옹 시대에도 전쟁비용 충당을 위하여 수도원에 보존되어온 중세의 보물들을 대량으로 녹여서 군자금으로 사용한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1)

그러나 문화예술 활동과 그 활동의 결과물들이 재화적 가치를 뛰어 넘는 높은 부가가치가 있음을 인식하기 시작한 시기부터 사람들은 예술 감상 활동의 순수한 미적 가치에 의미를 부여하였으며 점차 문화예술 감상활동은 감상자의 사회적 신분이나 교양의 수준을 보여주는 하나의 배타적 권리로서 인식되었다. 절대군주 시대까지 왕과 귀족들은 예술가를 자신의 거처로 끌어들이고 예술품을 경쟁적으로 수집하여 자신의 교양과 가문을 미화하는 사교활동에 이용하였다. 그러던 것이 정치적인 측면에서 근대에 이르러 군주제가 무너지고 시민사회가 도래함으로써 예술 감상의 권리는 비교적 급속하게사회의 하층으로 확대되었으며 이제는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누구나 문화예술 감상의 기회를 자유롭게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대중들에게 주어진 이러한 문화예술 향수권은 스스로의 절실한 필요에 의해 요구되고 쟁취된 권리이기보다는 근대 유럽에서 일어난 정치적, 사회적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구체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사회를 세운 그들에게 부수적으로 주어진, 말하자면 소극적으로 얻게 된 권리였다. 따라서 대중들은 그들이 목숨까지 걸며 쟁취한 정치적 권리를 적극적으로 누리는 데에 비하여 문화예술 활동에 대한 감상과 향유를 위한 그들의 권리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두었다. 그들은 아직 예술향유 준비가 본격적으로 갖추어 지지 못했으며 문화예술에 대한 그들의 관심은 부차적이고 고작해야 호기심을 채워주는 수준에서 박물관과 미술관을 방문하고 만국박람회를 관람하였다.2) 따라서 이 사람들이 제대로 문화예술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설명과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문화예술의 향유자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은 근대 사회의 이러한 역사적 전개를 배경으로 이해해 볼 수 있을 것이다.


2.
우리나라에서 문화예술 향유자를 위한 교육의 필요성은 서양과 달리 정치적 배경과의 관련성이 적은 상태에서 비교적 근대에 들어서서 문화 계몽 또는 교양수준 향상과 교육적 관점에서 제기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문화예술 활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난 경우가 드물었으며 서양에 비해서 예술인들과 예술행위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높지 않은 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의 지배층에서도 문화예술과 관련된 활동을 통해서 자신의 교양을 자랑하거나 부를 축적하려는 노력을 한다거나 문화예술을 통한 고도의 정치적 술수를 도모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비하여 서양은 문화예술을 통한 대중 계몽과 정치적 목적에 입각한 문화활동 보급 등이 많은 편이었으며 문화적 자산을 두고 계층 간의 경쟁과 배타적 태도를 견지하는 일도 많았다. 게다가 유럽에서는 지리적으로 인접한 국가들 간의 경쟁적 문화활동이 때로는 과잉적인 예술지원이나 예술품 수집으로 나타나 일찍이 예술 산업을 활성화시키기도 하였다.

유럽의 경우 산업혁명 이후의 노동자 계급의 불만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스포츠 활동과 함께 대중의 예술 감상활동을 권장하기도 했으며, 예술 감상을 통한 노동자 계급의 교양 증진이 결과적으로 개인주의적 자아의식을 높이고 노동자 계급의 연대감을 약화시켜 당시에 고개를 들고 있었던 노동쟁의를 줄일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것을 간파하기도 하였다. 문화현상을 연구하는 학자들 중에는 문화기관 가운데 박물관과 미술관의 주기능을 이데올로기적 사회교화로 파악하고 그 설립자의 권력과 사회적 권위를 확인하는 장치로서 박물관과 미술관이 이용되어 왔다고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3)

서양의 경우 초기에 시민혁명의 정신에 입각하여 대중들에게 자유롭고 평등하게 개방된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에서는 관람예절을 갖추지 못한 관람객들에 의해 소장품이 파손되고 심지어 전시물의 일부가 도난까지 당하는 사태를 맞기도 하였다. 일부 관람객들은 전시실 안에서 함부로 떠드는 것은 물론이고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박물관을 피크닉 장소쯤으로 여기고 가져온 음식물을 펼쳐놓고 먹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정도가 되었다. 이쯤 되자 박물관 측에서는 관람객의 입장을 제한하여야 될 필요성을 느끼고 의도적으로 엄숙한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일부 박물관에서는 심지어 관람자의 복장까지 규제를 함으로써 민주사회가 도래했지만 여전히 박물관이라는 기관은 특정 계층에게나 어울리는 기관이라는 메시지를 주입하려고 한 적도 있다.

이처럼 문화예술 감상활동에 있어서 초기의 향유자 교육에는 기본적인 관람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훈육적인 요소가 들어있었으며 정치적 환경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세련된 예절이 결여된 대중적 관람자들은 많은 경우에 문화예술 기관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편이었다. 따라서 문화예술 기관에 근무하는 큐레이터나 관리자들 측에서는 오히려 암암리에 이들의 접근을 방해하는 장애요소를 첨가하는 경향도 있었으며 문화예술 컨텐츠에 대한 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이나 안내 활동은 비교적 소극적으로 제공되었다.

이러한 장애 요소의 대표적인 예가 입장료의 부과이며 이 밖에도 관람시간의 제한, 관람자 복장의 제한, 그리고 근무자의 고압적 태도에 의한 모욕감을 경험함으로써 재방문 욕구를 일으키지 못하게 되는 일 등이 있다. 당시의 노동자들에게 빵과 생필품을 구입하는 이외의 문화비 지출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었으며 19세기 중반만 하더라도 노동자들은 토요일까지 일을 해야 했으므로 박물관의 개장시간은 결코 이들 노동자 계급을 배려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4)

초기의 박물관에서는 관람자에 대한 배려가 적었는데, 독일의 경우에는 겨울철에 큐레이터가 근무하는 방에만 난로를 설치하고 전시실에는 아무런 난방시설이 없어서 관람객들은 추위 속에서 소장품을 관람했어야 한다든지, 스페인의 프라도 미술관의 경우는 비가 오는 날은 전시장을 더럽힌다는 이유로 관람객의 입장을 거절하는 사례도 있었다.5) 초기의 대영박물관의 경우에는 우편을 이용한 관람신청을 받음으로써 일차적으로 글을 쓰고 읽는데 자유로운 계층으로 관람객이 제한되었으며 이렇게 해서 관람 기회를 얻은 시민들도 박물관 큐레이터의 안내에 따라 정해진 시간 안에 단체로 관람을 해야만 했다.


3.
박물관과 같은 문화예술 기관 근무자의 관람객에 대한 이와 같은 부정적인 태도는 개관 초기부터 시작되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그 강도가 누그러지긴 했지만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지속되어왔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러한 적대적 태도가 전향적으로 바뀌어서 전시가 관람객의 편의와 만족에 초점을 두고 운영되고 있으며 전시 이외의 다른 활동들도 관람객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렇게 관람객 중심으로 문화예술기관을 운영하려는 태도의 변화는 주로 재정적인 후원 구조의 변화에서 기인한다. 박물관과 미술관이 군주나 일부 상류층의 후원만으로 운영될 수 있었던 시대에는 대중의 역할과 의미가 별로 중요하지 않았지만 오늘날과 같이 문화예술기관이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의 세금을 기반으로 하는 공공 재정의 지원에 상당한 부분을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세금의 부담자인 대중적 관람자들로부터의 반응이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가 되어버렸다.

따라서 박물관과 미술관에서는 대중적 관람자들이 자기 기관의 활동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관심과 흥미를 가지고 접근해 와야만 정부와의 지원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지원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으며 나아가 박물관과 미술관의 공공적 존재 근거를 주장할 수도 있다. 따라서 자기 기관의 프로그램이 관람객들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이제까지 해온 것과 같은 단순한 기본 프로그램 제공만으로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

관람객의 수적 증가는 계층과 그 계층의 취향의 다양성을 수반하였으며 이는 곧 프로그램의 다양화를 요구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박물관과 미술관 측이 관내에서 음악회를 개최하거나 영화를 상영한다든지 심지어 패션쇼를 여는 등의 복합적 문화활동을 펼치는 것은 박물관과 미술관이 관람객들의 저변확대를 위하여 그들을 유인하는 프로그램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오늘날 문화예술 프로그램의 향수자 교육은 이러한 정치적, 문화적 문맥 구조 속에서 실시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은 박물관의 전문가에 의해 일방적으로 가르쳐주는 방식이 아니라 관람객의 참여를 통해 그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소위 상호 소통적 교육을 지향하고 있다.

그렇다면 프로그램 향수자인 관람객을 위한 교육은 누가 담당할 것인가? 경우에 따라 외부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교육을 담당하는 측은 일차적으로 컨텐츠를 생산하는 문화예술기관 자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각 기관에 교육을 담당할 수 있는 전문인력이 배치되어야 하는 것은 이러한 활동의 성공을 위한 기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까지 문화예술 기관에서 자기 기관의 프로그램을 제공하면서 교육담당 전문가들을 통하여 관람객들의 다양한 문화적 수용 능력에 맞게 감상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교육 프로그램이 활발하게 펼쳐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바꿔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문화예술 기관에서 향수자인 관람객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까닭은 근본적으로 이러한 문화예술 기관들이 가지고 있는 인력의 부적절한 구성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관람객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은 최근에 들어 서서히 증가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기관의 실질적인 대응은 그리 신속한 편이 아니다. 그 까닭은 우리나라 문화예술 기관들이 안고 있는 공통적인 문제점 가운데 하나로서 기관 운영을 행정중심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은 기관의 조직을 보아도 금방 알 수 있다. 이들 기관에서는 중추적인 역할을 행정직원들에게 맡겨놓음으로써 중심 프로그램의 개발이나 교육 프로그램 등의 핵심적인 사업이 오히려 부차적인 것이 되어 이러한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도 제대로 충원되지 않고 충원이 될 경우에도 계속성에 보장될 수 없는 임시직이나 계약직 형태로 충원됨으로써 이들의 업무가 행정업무를 보조하는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행정 중심의 교육 프로그램 운영은 외부의 전문가들의 도움에 전적으로 의존하여야 하는 단점이 있으며, 내부 직원의 문화의식이 부족할 경우에는 교육의 진정한 목적과는 다르게 행정적 편의와 단순하고 비문화적인 계량적 실적에 의존하여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함으로써 교육 내용을 왜곡시킨다거나 교육 효과를 반감시킬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4.
오늘날 우리들 가운데 대부분은 현대사회에서 모든 사람이 문화예술을 향유할 권리가 있고 동시에 그들이 자신들이 속한 사회에서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문화예술의 컨텐츠를 생산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은 기본적으로 교육을 통하여 보다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우리나라의 박물관과 미술관에서의 관람객들을 위한 교육은 평생교육 기관에서의 교양과 문화의식을 함양하기 위한 교육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민주적이고 평등한 의식이 그들에게 전달될 수 있어야 하고 이러한 교육을 통한 효과가 장, 단기적으로 그 공익성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처럼 보기에 따라서는 문화예술기관을 통한 관람자 교육이 국가적 자기정체성의 자각에서부터 국민적 자부심과 도덕심 함양과 창의성의 개발 등 정규 학교 교육이나 그 밖의 다른 형태의 교육에서 쉽게 얻을 수 없는 훌륭한 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러한 임무는 단순히 행정가의 손에 의해 처리될 수 없으며 전문가에 의해서 계획되고 집행되며 차후의 사업을 위해 다시 그 결과가 전문적으로 평가되고 문제점이 검토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장기적으로는 문화예술 기관의 교육담당자가 점차 전문성을 가진 인력으로 구성되도록 기관의 조직을 개편하여야 하며 그들의 활동이 현실적으로 행정적 관행이나 규제에 의해 발목잡히지 않도록 비합리적이고 불필요한 관련 규정이나 내규를 폐지하고 수정할 필요가 있다.

이에 앞서서 단기적이고 과도기적 조치로서 부득이하게 문화예술 기관이 당분간 외부의 전문인력으로부터 도움을 얻는 경우에도 교육 프로그램의 본질이 담당 직원의 문화의식 결여나 외부 교육담당자의 신분상의 이유 때문에 비전문가의 우월적 지위에 의해 임의로 처리되거나 왜곡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문화예술 기관에서의 교육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교육 전문가의 탁월한 능력이 필요하겠지만 이밖에도 필요에 따라 인접 기관과의 유기적인 연대나 지역의 정규 교육기관과의 역할분담을 통한 교육효과의 증대 등을 고려해볼 수 있다. 그리고 문화예술을 포함한 모든 분야에 있어서 오늘날의 교육은 피교육자에게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소통하고 그러한 과정으로부터 피교육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무엇을 전해주어야 하는지를 발견하게 된다. 박물관과 미술관의 예술향수자로서의 관람객에 대한 교육도 이러한 시고의 틀 안에서 이루어져야 만족스런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1) 전진성, <박물관의 탄생> (살림, 2004) 10쪽 참조

2) 서양 근대에 각 나라마다 다투어 개최하던 만국박람회에 동원된 일반 관람객들이 지출한 비용은 대규모 박람회를 적자로 끝나지 않게 데 도움을 주었으며 결과적으로 제국주의적 자부심을 더욱 부추겼다. 주최측은 이러한 대규모의 대중 동원을 위하여 점차 오락적 요소들을 가미하게 되었다.
요시마 순야,(이태문 역) <박람회- 근대의 시선> (논형, 2004) 참조

3) Carol Duncan, Civilizing Rituals, inside public art museums, (London and New York, Routledge, 1995)

4) F. 엥겔스, (박준식, 조효래, 전병유 역) <영국 노동자 계급의 상태> (도서출판 세계, 1988) 참조

5) Alma S. Wittlin, Museums: In Search of Usable Future, (MIT Press, 1970) pp. 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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